한반도에 신냉전의 먹구름이 밀려들고 있다. 시진핑과 블라디미르 푸틴 두 정상은 미국을 겨냥한 최고의 전략 연대를 과시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 이례적으로 북한 문제도 담았다. 미국은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에 실질적인 행동으로 호응해 대화 재개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사실상 미국 책임론을 재차 강조했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중·러 정상회담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하면서 북·중·러 연대를 암시했다. 반면에 미국은 중·러 정상회담을 ‘정략결혼’이라고 비판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한·미·일 안보 협력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완전 정상화되고 5월 일본에서 주최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대립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다.
북·중·러 연대를 통해 한반도의 냉전 구도 조성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북한은 작년 말부터 ‘신냉전론’과 ‘지정학적 요충지론’을 내세우면서 미국과 중·러의 대립 국면에서 지정학적 가치를 높이려는 속셈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북한은 미·중 갈등의 최전면에 등장하는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중국 편을 들고 있다. 북한이 중·러와의 전략적 연대를 과시하고자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북한은 유엔 제재로 인한 경제난으로부터 돌파구를 마련하고, 향후 추가 제재를 저지하는 데 있어서도 중·러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실제로 중·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가면서 사실상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추가 제재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북·중·러 연대가 북한 의도대로 공고해질지는 의문이다. 중·러는 북한이 주장하는 신냉전 논리 자체에 유보적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북한과는 분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북한과 달리 러시아에 대한 명확한 지지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 지원 요청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미국·유럽 국가들과의 대립 상황이 더욱 고조되는 것을 회피하고자 한다. 시진핑은 러시아 방문 후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스페인 총리를 비롯해 프랑스·이탈리아 총리, 그리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을 연이어 베이징으로 초청했다.
중국은 경제 회복을 향한 일정에 매진하고 있다. 25일 열린 고위급 발전포럼에 글로벌 최고경영자들을 대거 초청한 데 이어 28일부터는 보아오 포럼도 개최한다. 미국과의 대립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지만 동시에 북한으로부터 야기되는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도 중국은 갖고 있다. 북한은 핵 위기, 미사일 도발, 경제난 등으로 중국 국경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향해 ‘전략적 소통’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이면에는 북한발 안보 불안을 관리하려는 의도도 있다. 북한은 연이은 도발을 통해 북·중·러 연대를 견인하고자 한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 문제로 인해 미국과의 대립이 더 확장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 역시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인해 전략적 부담이 가중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국 외교의 역할과 공간이 있다. 북한이 견인하고자 하는 북·중·러 연대의 약한 고리에 주목하고 공략해야 한다. 북한 도발이 거세질수록 한반도의 불안정 해소라는 공감대를 기반으로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의 끈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동률(동덕여대 교수·중어중국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