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개정안] 피케티의 '글로벌 자본세', 어떻게 징수할 것인가 ㅡ'지대본위화폐'의 효력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세계자본세를 제안하면서 그것을 "유용한 유토피아"라고 불렀다. 당장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신이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썼다. 쓰지 않으면 논의의 폭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먼저 짚어두자.
가령 어떤 사람의 월급이 해마다 3퍼센트씩 오른다고 하자. 그리고 그가 가진 땅과 주식의 값이 해마다 6퍼센트씩 오른다고 하자. 30년이 지나면 월급은 2.4배가 되지만 재산은 5.7배가 된다. 열심히 일해서 버는 속도보다 이미 가진 것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른 것이다. 피케티가 수백 년의 세금 자료를 뒤져 확인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높은 것이 예외가 아니라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일해서 따라잡는 길이 닫힌다. 그리고 재산은 상속되므로, 한 세대가 지나면 출발선 자체가 달라진다.
그의 처방은 이랬다. 세계 모든 나라가 함께,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 해마다 그 재산의 몇 퍼센트씩을 세금으로 매긴다. 한 나라만 하면 돈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니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누가 어디에 무엇을 가졌는지를 나라들이 서로 기록하고 교환한다. 그것이 세계자본세다.
그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다. 진단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처방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왜인가.
원리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세 칸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누가 걷는가. 누가 내는가. 그리고 그것을 무엇으로 객관적으로 재는가.
세금 이야기에서 이 셋이 비어 있으면 그 제안은 선언에 머문다. 세율을 몇 퍼센트로 하자는 논의는 그 뒤에 오는 문제인데, 대개 그 뒤까지 가보지도 못한다.
그런데 지난 몇 달 한겨레:온에 지대본위화폐와 세계연방은행을 연재하면서 뜻밖의 것을 발견했다.
https://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722
https://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070
그 설계가 메우는 것이 공교롭게도 피케티가 비워둔 바로 그 세 칸이라는 점이다.
미리 말해두면, 이 글이 내놓는 답은 더 나은 징수 방법이 아니다. 징수하지 않고 같은 효과에 이르는 길이다.
먼저, 이 글이 쓰는 세 낱말
연재를 읽지 않은 분을 위해 세 낱말만 짚어두겠다. 이 셋만 알면 뒤는 어렵지 않다.
첫째, 지대와 지가는 다르다.
어느 가게 자리에서 해마다 임대료 1천만원이 나온다고 하자. 그 1천만원이 지대다. 땅이 한 해에 만들어낸 이로움이고, 해마다 새로 생기는 흐름이다.
그런데 그 자리를 사려면 4억을 내야 한다. 그 4억이 지가, 곧 땅값이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나올 임대료를 미리 계산해서 한 덩어리로 묶어놓은 값이다. 지대가 해마다 흐르는 물이라면 지가는 그 물을 앞당겨 받아 쌓아둔 저수지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대는 땅을 쓰는 사람들이 실제로 치르는 돈이라 숨기기 어렵다. 반면 지가는 기대와 심리로 부풀고, 부풀면 그것을 담보로 돈이 또 풀린다.
둘째, 지대본위화폐란 무엇인가.
한때 세계는 금본위제였다. 각국이 금고에 쌓아둔 금을 근거로 화폐를 찍었다. 금이 화폐의 본위, 곧 발행의 근거였던 것이다.
지금은 무엇이 근거인가. 한국의 경우 시중에 도는 돈의 상당 부분이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빌려주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집을 사려고 대출을 받으면 그 순간 없던 돈이 생긴다. 그러니 사실상 땅값이 화폐의 근거가 되어 있다. 땅값이 오르면 돈이 풀리고 돈이 풀리면 땅값이 또 오른다. 연재에서 이것을 지가본위라 불렀다.
지대본위화폐는 그 근거를 바꾸자는 것이다. 쌓인 땅값이 아니라 해마다 땅과 바다와 공기의 쓰임에서 나오는 지대를 근거로 화폐를 발행한다. 쌓인 것 대신 흐르는 것을 근거로 삼는 것이다.
셋째, 세계연방은행이란 무엇인가.
그 화폐를 세계 차원에서 다루자면 기구가 필요하다. 각 나라가 자기 영토의 지대를 평가해 올리고, 그것을 서로 교차검증하고, 검증된 지대에 근거해 세계 공통의 결제 단위를 발행하는 기구다. 연재 제2부에서 열 가지 원칙으로 그 설계도를 그렸다.
이제 세 칸으로 들어가자.
첫째 칸 ㅡ 누가 걷는가
피케티의 세계자본세에는 걷을 기구가 없다. 그는 국제 협력을 말하고 유럽 차원의 선행 실시를 말하지만, 실제로 세금을 부과하고 징수할 주체는 끝내 지명되지 않는다.
지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세권은 주권의 핵심이다. 군대를 가질 권한과 세금을 걷을 권한, 이 둘이 근대 국가를 국가로 만든 것이다. 그것을 국제기구에 넘기려면 조약이 필요하고, 조약에는 각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에 과세권을 국제기구에 넘긴 나라는 없다.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확인된 바가 있다.
2021년 OECD에서 글로벌 최저법인세가 합의되었다. 다국적 기업이 세금이 낮은 나라로 이익을 옮겨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는 어디에 있든 최소 15퍼센트는 매기기로 한 것이다. 140개 가까운 나라가 동의했다. 인류가 세계적 조세에 가장 가까이 간 사례다.
그런데 그 합의에도 걷는 주체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OECD가 걷는 것이 아니다. 각국이 자기 의회에서 법을 만들어 자기가 걷는다. 그래서 어떤 나라가 입법하지 않으면 그만큼 구멍이 생기고, 큰 나라가 발을 빼면 체제 전체가 흔들린다. 140개국이 합의하고도 징수주체는 끝내 비어 있었던 것이다.
세계연방은행의 해법은 역설적이다. 걷는 자를 아예 두지 않는다.
이 기구에는 재는 자와 발행하는 자만 있다. 각 나라가 자기 영토에서 발생한 지대를 평가해 올리고, 상위 단위가 교차로 검증하고, 그 검증된 지대에 근거해 기구가 화폐를 발행한다. 아무도 걷지 않으므로 아무도 과세권을 내놓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이 작동하는가. 발행 자격이다.
자기 지대를 평가해 올리지 않거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는 나라는 발행 몫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제망 바깥에 있게 된다. 세금을 안 냈다고 벌금을 매기는 것이 아니다. 참여의 조건을 맞추지 않았으니 참여가 안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실제로 통하는가. 통한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예가 있다.
은행에는 자기자본비율이라는 것이 있다. 빌려준 돈에 비해 자기 돈을 얼마나 갖고 있어야 하는가를 정한 기준이다. 스위스 바젤에 있는 국제결제은행이 그 기준을 만들었고, 이를 바젤 협약이라 부른다.
그런데 국제결제은행에는 조약상의 규제 권한이 없다. 어느 나라 은행을 처벌할 수도 없고 과징금을 매길 수도 없다. 그런데도 전 세계 은행이 그 기준을 따른다.
왜 따르는가. 안 따르면 거래가 안 되기 때문이다. 자기자본비율이 기준에 못 미치는 은행과는 해외 은행들이 거래를 꺼린다. 그러면 무역 대금을 주고받을 수 없고 외화를 빌릴 수도 없다. 처벌이 아니라 거래 상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규제가 아니라 참여의 조건으로 작동한 셈이다. 세금은 주권 사항이라 조약이 필요하지만, 참여의 조건은 기구의 내규다. 같은 효과를 다른 법적 성격으로 얻는 길이 거기에 있다.
둘째 칸 ㅡ 누가 내는가
피케티의 납부대상은 개인의 순자산이다. 가진 것에서 빚을 뺀 값이다. 그런데 이 값을 확정하는 일이 그의 구상에서 가장 약한 고리다.
쉬운 경우를 생각해보자. 예금과 상장 주식은 간단하다. 통장 잔고가 있고 주가가 매일 나온다.
그런데 가족이 운영하는 비상장 회사의 가치는 얼마인가. 거래되지 않으니 시세가 없다. 세무당국이 100억이라 하면 소유자는 30억이라 한다. 미술품도 마찬가지다. 창고에 걸어둔 그림의 값은 팔아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더 어려운 문제가 있다. 재산은 옮겨진다. 그리고 쪼개진다.
한 사람이 재산을 법인 이름으로 돌려놓고, 그 법인의 주인을 다른 나라의 재단으로 두고, 그 재단의 수익자를 신탁으로 감추면, 서류상 그 재산의 임자는 사라진다. 피케티가 평생 조세회피처를 문제 삼은 이유가 여기다. 세율을 정하는 일보다 누가 얼마를 가졌는지 확정하는 일이 훨씬 어렵고, 그 확정은 끝없는 소송이 된다.
땅은 다르다.
땅은 숨길 수 없다. 위성이 본다. 옮길 수도 없다. 소유자가 법인 열 개로 쪼개도 필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신탁에 넣어도 면적이 한 평도 줄지 않는다. 조세회피처로 옮길 수 있는 땅은 없다.
19세기 미국의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에 매기는 세금이야말로 회피할 수 없는 세금이라고 했다. 150년 전의 통찰이 지금도 유효한 것이다.
그런데 세계연방은행의 설계에는 한 걸음이 더 있다. 정산이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므로 개인을 특정할 필요가 아예 없다.
어느 나라 영토에서 한 해에 발생한 지대의 총액만 재면 된다. 누가 소유자인지, 그가 어느 법인을 끼고 있는지, 어느 신탁에 넣어두었는지를 따질 일이 없다. 피케티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등록하려는 마음의 방향이 뒤집힌다.
피케티는 국제 금융 등록부를 제안했다. 누가 무엇을 가졌는지를 국제적으로 기록하고 자동으로 교환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등록부는 등록당하는 쪽에 순전히 손해다. 기록되면 세금 고지서가 온다. 그러니 자발적으로 할 이유가 없고, 각국 정부도 자기 나라 부자들의 반발을 무릅쓸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제자리다.
세계연방은행은 그 장부를 자기가 굴러가기 위해 필요로 한다. 검증된 지대가 없으면 지분을 산정할 수도 발행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성격이 뒤집힌다.
몽골을 예로 들어보자. 몽골이 자기 초원과 광산 지역의 지대를 평가해 올린다. 피케티 체제에서라면 그 자료는 세금 고지서로 돌아온다. 그러니 올릴 이유가 없다. 이 체제에서는 그 자료가 지분이 되고 발행 몫이 된다. 같은 자료인데 결과가 반대인 것이다.
세금을 걷으려고 장부를 만들라고 하면 거부하지만, 장부를 만들면 발행 몫을 준다고 하면 줄을 선다. 30년의 교착이 원리의 문제가 아니라 유인의 방향 문제였던 셈이다.
셋째 칸 ㅡ 무엇으로 재는가
피케티의 세율은 임의적이었다. 0.1퍼센트인지 1퍼센트인지 2퍼센트인지를 그는 연역하지 못했고, 예시라고 인정했다.
이것이 치명적이다. 세율을 도출할 방법이 없으면 그 숫자는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되고, 정치적 타협은 언제나 가장 낮은 숫자로 수렴한다. OECD 최저법인세가 15퍼센트에서 멈춘 것도 그래서다. 왜 15퍼센트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거기서 합의가 되었을 뿐이다.
지대본위 설계에는 세율이 도출된다. 연재에서 발행 방정식이라 부른 것이 그것이다. 숫자를 넣어 보이는 편이 빠르겠다.
앞에서 든 가게 자리로 돌아가자. 해마다 임대료 1천만원이 나오는 땅이다.
사람들이 이런 자산에 연 2.5퍼센트의 수익을 기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땅의 값은 1천만원을 0.025로 나눈 값, 곧 4억원이 된다. 4억을 넣어두면 해마다 1천만원이 나오니 수익률이 2.5퍼센트다.
여기에 보유세를 매기면 어떻게 되는가. 해마다 땅값의 1퍼센트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땅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손에 쥐는 수익률은 낮아진다. 그 자리를 사려는 사람은 세금까지 빼고도 2.5퍼센트가 남는 값에만 사려 할 것이다.
계산해보면 땅값은 1천만원을 0.025와 0.01의 합, 곧 0.035로 나눈 값이 된다. 약 2억 8,600만원이다. 4억이던 땅값이 29퍼센트 떨어진다.
세율을 2퍼센트로 올리면 1천만원을 0.045로 나누어 약 2억 2,200만원이 된다. 거의 반값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드러난다. 보유세율은 금리와 똑같이 작동한다. 금리가 오르면 자산 가격이 떨어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보유세율이 오르면 땅값이 떨어진다. 둘이 같은 자리에 들어가는 숫자인 것이다.
이제 식을 거꾸로 돌려보자. 여기가 핵심이다.
땅값을 2억 8,600만원 수준으로 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사회가 판단했다고 하자. 임대료는 1천만원이고 기대수익률은 2.5퍼센트다. 그러면 필요한 세율이 얼마인지 계산된다. 1천만원을 2억 8,600만원으로 나누면 3.5퍼센트, 거기서 기대수익률 2.5퍼센트를 빼면 1퍼센트다.
목표를 정하면 세율이 따라 나오는 것이다. 임의로 고르는 숫자가 아니라 계산되는 숫자다.
금리를 정할 때 쓰는 테일러 준칙과 비교하면 성격이 분명해진다. 테일러 준칙은 물가와 성장률을 보고 기준금리를 얼마로 할지 알려주는 공식이다. 그런데 그 공식에 들어가는 계수는 과거 미국 연준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관측해서 얻은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다"는 요약이다.
지대 쪽 준칙은 다르다. 땅값이 지대를 할인율로 나눈 값이라는 관계에서 수학적으로 도출된다. "왜 그 숫자인가"에 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재는 일도 가능한가. 가능하다.
실거래 임대료가 있고, 토지이용 자료가 있고, 위성 관측이 있고, 지적 체계가 있다. 이 넷을 교차하면 지대는 재어진다. 한국에는 30년에 걸쳐 쌓인 공시지가 체계가 있다. 전국의 모든 필지에 값을 매겨 매년 공표하고, 이의신청을 받아 고쳐온 기록이다. 세계 어디에도 흔하지 않은 축적이고, 세계 표준을 제안할 자격이 되는 자산이다.
셋을 관통하는 것
세 칸을 하나씩 짚었지만, 실은 그 셋을 관통하는 것이 하나 있다. 유인의 방향이다.
피케티의 구조에서는 모두가 내기 싫어한다. 등록도 싫고 평가는 낮게 받고 싶다. 그러니 설계가 저항에 맞서 작동해야 한다. 반대쪽이 힘을 쓰면 밀린다.
지대본위 구조에서는 등록하면 지분이 생기고 발행 몫이 생긴다. 다만 부풀려 올리면 교차검증에서 깎인다. 설계가 유인을 타고 작동하는 것이다.
제도는 저항에 맞서 작동하게 설계하면 거의 실패하고, 유인을 타게 설계하면 가능성이 생긴다.
해밀턴이 1790년에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독립전쟁을 치른 열세 개 주는 각자 빚더미에 앉아 있었고 서로를 믿지 않았다. 연방 정부라는 것은 종이 위에만 있었다. 그때 그는 각 주의 전쟁 부채를 연방이 떠안게 했다. 그러자 그 채권을 가진 사람들이 연방이 무너지면 자기 돈을 잃는 처지가 되었다. 연방을 지키는 것이 자기 이익이 된 것이다. 설득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재배치였다.
그러나 대체는 아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면 지대본위화폐가 세계자본세를 대신한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쓰면 과장이다. 피케티가 반박할 대목이 넷 남는다.
첫째, 이미 쌓인 재산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세금은 지금 가진 것에 매년 매겨진다. 반면 지대본위는 앞으로 땅값이 부풀지 않게 하는 구조다. 열매를 거두는 것과 열매가 애초에 그만큼 맺히지 않게 하는 것은 다르다. 뒤쪽이 더 근본적이지만, 예방은 새로 생기는 것에만 작동한다. 이미 쌓인 것은 그대로 남는다.
둘째, 땅만으로는 자본의 전부를 잡지 못한다.
플랫폼 기업의 가치와 특허와 금융자산은 땅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다만 두 가지를 덧붙일 수 있다. 피케티가 측정한 자본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실은 주택이었다는 점은 그의 책이 나온 뒤 여러 경제학자가 지적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은행 대출의 담보 상당 부분이 부동산이다. 그러니 땅을 잡으면 자본의 큰 몫은 잡힌다. 전부는 아니다.
셋째, 한 나라 안의 불평등은 건드리지 못한다. 이것이 가장 아프다.
정산이 국가 단위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가 자기 지대를 성실히 평가해 올리고 몫을 받아도, 그 나라 안에서 땅이 소수에게 몰려 있는 상황은 그대로다. 그래서 국내에는 기본지대 제도가 따로 필요하다.
다만 간접 효과가 하나 있다. 지대를 정확히 평가하려면 토지대장과 공시지가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체계가 정비되면 국내 보유세 과세도 가능해진다. 지금 많은 개발도상국이 보유세를 제대로 매기지 못하는 이유가 세율이 낮아서가 아니라 땅을 누가 얼마나 가졌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구가 각국의 조세 역량을 키우는 셈이다.
넷째, 누진성이 없다.
지분이 지대에 비례해 산정되는 한 발행 구조는 비례적이다. 비례는 누진이 아니다. 많이 가진 쪽에 더 무겁게 매긴다는 피케티의 핵심 장치가 빠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답이 있다. 분배 쪽에 있다.
가령 어떤 나라가 세계 전체 지대의 5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인구는 0.3퍼센트라고 하자. 땅은 넓고 사람은 적은 나라다. 반대로 어떤 나라는 지대가 1퍼센트인데 인구는 2퍼센트라고 하자. 땅은 좁고 사람은 많다.
지분은 지대로 산정하고 분배는 인구로 하면 어떻게 되는가. 앞의 나라는 5를 내고 0.3을 받는다. 뒤의 나라는 1을 내고 2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땅을 많이 쓰는 쪽에서 사람이 많은 쪽으로 순이전이 생긴다.
세율표를 만들지 않고도 누진의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발행은 비례로 하고 분배는 인구로 하는 것, 그 둘의 차이가 누진을 만든다.
걷는 일과 재는 일
연재 제1부에서 걷는 것과 재는 것은 다르다고 썼다. 데이터와 탄소와 궤도 사용료는 걷을 수 있으나 그것으로 재는 기준을 세울 수는 없고, 지대만이 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문장이 여기서 의미를 하나 더 얻는다.
걷는 일은 주권이고 재는 일은 기술이다. 걷으려면 각국이 권한을 내놓아야 하고, 재는 데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하나는 요원하고 하나는 가능하다.
다만 정직하게 덧붙인다. 재는 일도 순전히 기술은 아니다. 어느 토지이용을 지대로 셀 것인가, 자연을 훼손한 몫을 어떻게 빼낼 것인가는 끝내 정치적 다툼이 된다. 그러니 기술이라는 말은 주권을 내놓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만 한정해야 한다. 가능하다는 것이 쉽다는 뜻도 아니다. 먼저 시작할 나라들을 모으는 일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도 이 말은 할 수 있겠다. 피케티는 자본에 세금을 매기려 했고,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지는 통로에 기준을 세우려 한다. 전자는 걷을 사람이 필요하고 후자는 잴 사람만 필요하다.
그가 유용한 유토피아라고 부른 것을, 세금 없이 이룰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