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호 '샴푸의 요정 기억하세요?' - 기사입력 200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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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녹음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장기호는 '실험과 독창성을 무기로 한국대중음악에 좌표를 설정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지난 1988년 11월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샴푸의 요정’이란 드라마를 떠올리는 이들이라면 내용은 가물가물해도 동명 주제곡은 선명히 기억할 것이다.
당시 이 노래는 유려하고 세련된 고품격 멜로디로 평범한 코드를 구사해 온 기존 대중음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룹 '빛과 소금' 출신...4인조밴드 결성
펑키한 리듬과신시사이저의 풍성한 사운드는 음악을 하는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중음악계의 안일한 자세를 '질타'하는 듯 보였다.
이처럼 선진적 사운드를 바탕으로 실험적 음악을 구현하는 데는 장기호(42-베이시스트)라는 걸쭉한 뮤지션이 있었다. 그룹 '사랑과 평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을 두루 거치며 각종 장르를섭렵한 그가 최근 쿼텟(4인조 밴드)을 결성,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잡는 상큼한 느낌의 앨범 발매를 추진 중이어서 또 한 번 대중음악계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15년전 인기드라마 주제곡 대중음악계 파란
본업 이외에 라디오 DJ, 대학교수(동덕여대 서울예대) 등 외도(?)에 쫓겨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운 그를 21일 오후 서울 목동 녹음실에서 만났다.
-이번 앨범의 특징과 발매시기 등이 궁금한데.
▲아직 정확하게 발매시기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르면 내년 초쯤이 될예정이다. 지난해 2월 솔로앨범 ‘기호스 라디오(Keeho's Radio)’ 이후만 2년이 되는 셈이다. 솔로앨범은 ‘원맨밴드(혼자서 기타, 드럼, 베이스 등을 연주한다)’ 형식이어서 대중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이번 앨범은 고품질의 사운드를 입히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멜로디를 담았다.
-앨범에는 어떤 곡들이 담겼나.
▲창작곡이 8개, 찬송가 1개, 흑인영가를 편곡한 곡이 1개 등 모두 10곡을 수록했다. 창작곡 중 ‘샴푸의 요정’은 2003년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대부분 재즈 형식으로 출발했지만 그 안에서도 팝, 솔, 블루스,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색깔이 묻어나도록 4명의 연주자들이 혼을 다해 연주했다.
인터뷰 도중 들려준 수록곡 가운데 3곡은 감탄사를 연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펑키리듬에 반복 후렴구가 돋보이는 ‘웬 아이 싱크 오브 유(When I Think Of You)’, 4인조 밴드가 일궈내는 사운드의 미학이 충실하게 반영된 ‘턴 유어 페이스(Turn Your Face)’ 등에선 외국 유명 밴드의 앨범을 듣는 듯 기교와 구성이 탄탄했다.
美버클리음대 유학후 최근 실험적 음반 준비
-이번 앨범 작업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앨범을 만들었다. 내년이면일본 음악이 한국에 들어오는데 솔직히 경쟁할 만한 한국 음악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쉽게 샘플링해서 대중을 속이는 음악이 판치는 세상에서 경쟁력 있고 지적 사운드로 무장한 고급 음악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싶었다. ‘연예인’은 많은데 ‘아티스트’가 없는 한국 대중음악의 빈속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장씨는 지난 95년 ‘빛과 소금’ 시절 4집 ‘오래된 친구’를 끝으로 미국 버클리음대로 유학길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재즈 작곡과 편곡을공부하고 99년 말 한국에 돌아왔다. 유학길에 오르기 전 그는 이문세, 권인하, 김현철, 이승환 등 실력 있는 뮤지션들의 앨범 제작에 참여해 연주 및 편곡을 담당한 바 있다.
-새 앨범이 음반 불황의 타개책으로 매개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가.
▲음반 불황 극복의 주역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음악적인 지각 변동은 분명히 일어날 것이다. 이번 앨범이 많이 판매될 수 있는가라는 흥행성보다 새로운 음악적 좌표가 될 수 있는 근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요즘 학생들은 ‘(교수에게) 가르칠 만한 실력이있다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럴 경우 교수는 반드시 실력을 보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만들어가는 대중음악의 지각변동. 이제 출발점에 놓여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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