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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교회 / 20160925 주일오전예배 / 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
성경 | 골로새서 4:10-18 |
정리 | 성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골로새서 4:10-18)
10.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녹취자료 |
나는 왜 예수를 믿는가. 신앙생활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자신의 문제 해결과 세상의 수준의 축복을 받는 것이 내 신앙생활의 목적이라면 이것 때문에 내가 예배를 드리고 이것 때문에 헌금을 드리고 이것 때문에 봉사하고 헌신한다면 우리는 틀린 시작이 되는 겁니다. 어쩌면 나의 신앙생활의 목적도 그 뿌리가 창3,6,11장에 근거한 오직 나를 위하여 돈을 위하여서 성공를 위하여서 살아간다면 불교보다 사실 못한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불교는 자기를 버리라고 말을 합니다. 욕심을 버리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돈과 성공이 다 부질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노자 사상은 무소유의 개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주 물질만 밝히는 사실 이런 종교들 보다 못한 종교가 되고 마는 겁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그 복음의 능력으로 병들이 치유함을 받고 세상적인 축복을 받는 장면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질병의 예를 보면 나병환자가 낫고 12해 혈루증을 앓던 환자가 낫고 중풍환자가 낳고 소경이 눈을 뜨고 바른 손 마른 자가 치유가 되기도 하고 다리 저는 자가 장인이 맹인이 농아가 치유되는 장면들이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어요.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 모든 질병을 짊어지어 이루려 하심이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병든 자 특별히 불치병 자를 예수님 다 치유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이런 기적들이 사실 일어납니다. 그러면 내 병이 깨끗이 치유가 되면 예수가 그리스도고 병 안 나으면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전 한때 병원전도를 하면서 많은 암환자들에게 복음을 참 많이 전했어요. 했는데 제가 전한 암환자들 가운에서 99%다 죽었어요. 겨우 한둘만 치유 받고 살더라구요. 그럼 꼭 나아야만 예수가 그리스도입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암이 아니면 예수 안 믿을 건데 그것으로 예수 믿게 만들어서 구원받게 만들었단 그것도 하나님 계획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 믿음 좋은 크로스비 눈 못 떴어요. 종교개혁에서 가장 아름답게 사명을 감당했던 칼빈. 돌아다니는 종합병원이요. 바울도 자기병 안 나았어요.
만약에 예수 믿고서 경제적 축복 받는 것이 정말 예수님 목적이 되진다 그러면 성경에도 예수 믿고 복 받은 사람 많아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 그 시대 거부가 되었어요. 여호사밧 왕이나 히스기야 왕 얼마나 복을 많이 받았던지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도 예수 믿고 복 받은 사람 많이 나와요. 아굴라도 나오고 가이오도 나오고 다 나옵니다. 하나님께 사명 담당도록 만들기 위하여서 얼마든지 경제적 축복 주실수도 있습니다.
그럼 예수 믿으면 모두다 병 다 낫고 모두가다 성공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린 예수 믿고서도 질병이 낫지 않을 수도 있고 경제적 축복 못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예수 안 믿을 겁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건강한 사람 더 많습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 예수 믿나요. 예수 안 믿어도 우리보다 훨씬 더 돈 많은 사람 수두룩 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예수 믿는 목적이 돈이 목적이고 성공이 목적이고 내 병이 낫는 것이 목적이라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분 앞에 복음 못 전합니다. 수 조원 갖고 있는 앞에 가게 되면 주눅이 들어서 복음 못 전하는데요.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어디로 흘러가죠. 뭔가 성공해야한다 이쪽으로 흘러가는 겁니다. 예수를 우리 왜 믿나요. 벧전1:9 말씀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고 예수 믿는 참된 목적은 우리가 구원 받는 겁니다. 만약에 예수 믿는 것이 돈 잘 벌고 건강하는 것이 목적이 되진다 그러면 예수 믿다가 문제 해결 안되고 어려움 해결 안되면 그만 둬야 되잖아요.
우리는 예수 안에 모든 해답이 다 들었음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되집니다. 예수는 하나님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에 그분께 있습니다. 그분은 참 선지자요. 참 제사장. 참 왕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안에 다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내 문제 해결되든 안되든 우리는 그리스도 한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23:1 말씀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이 고백할 때에 상아 침대에 누워서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하룻밤 한 끼 음식 먹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던 망명생활 중에 하나님 앞에 고백했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셨을 때는 그 속에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들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복음과 함께 고난도 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는 겁니다.
1. 복음과 함께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문제 해결자, 해답 맞습니까? 서론에서 제가 말씀 드린 것은 예수 믿어도 내 병이 안나을 수 있어요. 예수 믿어도 내 문제 해결 안 될 수도 있어요. 예수 믿어도 경제문제가 인생가운데 심각하게 올 수도 있어요. 한걸음더 나아가서 세상의 주권은 커녕, 예수 믿고 사명감당하다가 큰 위험과 위기도 올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에 예수 믿는 목적이 이 땅에서 건강하게 장수하고 부귀영화 누리면서 사는 것이라고 하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할까요? 위기가 닥치면 우리가 다 그만둬야 되는 겁니까?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 가는 겁니다. 이 땅에 아무리 우리가 오래 살아도 100살 산다고 칩시다. 그러면 건강하게 사는 것은 70,80까지지 그 이후는 차라리 자식들 고생 시키지 말고 빨리 가시는게 훨씬 나을만큼 힘들어요.
옛날 어른들이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그러더라고요. 나는 욕했어요. 미친 소리라고. 젊어서 일해야지 뭘 노냐고. 근데 제가 나이들어 보니까요 노는 것도 젊어서 놀아야 되더라고요. 나이 드니까 하룻밤 노는 것도 못 놀겠더라고요. 공장로님 제 얘기가 맞죠? 하루 야근하고 나면 힘들어요. 노는 것도 힘들어진다고요. 결국은 우리가 열심히 살아봐야 100살도 못살아요. 예수님을 왜 믿냐. 영혼구원이 궁극적인 목적들입니다. 우리가 가야된 그 영원한 나라, 영광스런 나라에서 영원토록영원토록 주님과 왕노릇 할 그 나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입니다. 그러면 예수 안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영원한 지옥의 저주가운데서 영원토록 고통 속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내가 예수 믿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영원한 나라의 영원한 축복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진다면 이 땅에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비록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할지라도 능히 감수할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 행함대로 우리는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에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의 심판이 있으리니. 여기 안 돌아가실 분 혹시 있나요? 다 가요. 그의 뭐가 있다고요? 심판이 있으리니. 로마서 14장 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 행한 것을 직고한다고 말씀합니다. 왜 우리가 믿음 지키며 전도자의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인가? 천당 갔을때 여러분들이 예수님 나는 이땅에서 돈 10억 벌고 살다가 왔어요. 예수님 나는 국회의원도 하고요 장관도 하고 다하고 왔는데요? 하나님 앞에서 섰을 때는 아무가치가 없어요. 평가기준에 안든다고요. 유일한 평가기준은 네가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하나님 이름에 영광을 내며 살아왔냐. 얼마나 전도자의 삶을 살면서 이 땅에 재앙 속에 빠져서 지옥갈 생명들을 건져 구원한 일에 얼마나 쓰임 받았냐? 평가기준이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그럼 우리가 목적이 달라져야 되잖아요. 내 문제해결? 사실 이것은 목적이 아닙니다. 내가 부자되는 것? 예수님 진짜 목적은 아닙니다. 내 자식잘되는거? 궁극적인 진짜 목적은 어디에 있는겁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왜 날 이땅에 존재하게 만들었을까요, 나를 통해 이루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계획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의 천명을 찾고 하나님이 날 부르신 이유를 찾아서 소명을 내가 찾고 거기서 사명 감당하기 위해서.. 이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내가 손해도 감수하고 희생도 감수 할 수 있는 것.. 왜요? 심판대 앞에 나가 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메세지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 말씀을 보면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이하에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가복음 10장 29절에서 30절은 보면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복음의 참된 가치를 아는 자들은 전도와 선교의 참된 가치를 아는 자들은, 이 가치있는 것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겁니다. 왜요? 참 가치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왜 재앙 속에 빠지고, 왜 전쟁 속에 빠지는 겁니까? 복음 한가지가 없어서 전부 고통 중에 재앙 속에 빠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 복음이 없게 될 때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요. 복음만이 가정을 살리고 시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비밀이 어디에 들어있다는 이야기입니까? 복음만이 해답인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았던 히브리서 11장의 의인들이 어떻게 살아갔죠? 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다고 성경이 표현합니다. 이들은 복음 때문에 조롱당하고 채찍에 맞고 감옥에도 갇히고 돌에 맞고 톱으로 켜이고 궁핍하고 환란을 당하고 학대를 당하고 유리방황 하기도 했어요. 무엇 때문에? 참된 가치 있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무조건 희생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우리 민족이 독립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정말 헐벗고 굶주리면서 고통당했어요. 6.25때 수많은 순국선열들이 흘렸던 피를 우리가 기억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귀하기 때문에? 나라의 독립이 귀하고, 공산주의에서 이 민족을 구하는 것이 너무나 귀한 일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영적의미로서 정말 복음이 귀하다면, 오직 예수가 정말 해답이 길이라면, 흑암을 꺾고 재앙을 막는 길이 정말 그 분이라면... 복음을 위해서 우리는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는 것이에요. 복음의 참된 가치를 깨달은 사람의 삶이 아닌가 말씀하고 있는겁니다.
2. 복음의 능력과 전도와 선교의 참된 가치를 아는 자.
복음의 능력과 전도와 선교의 참된 가치를 아는 자들은 얼마든지 희생하고 양보할 수 있는 겁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사도바울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바울은 잘나가던 인생입니다. 바리새인으로서는 당시 최고의 선두주자입니다. 바리새인 사회에서 차기의 선두주자로서 촉망받던 인물입니다. 로마가 유대나라를 정복했을 때 로마가 당시의 명망있는 가문들을 선택해서 로마시민권을 주었어요.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졌던 명문가문입니다. 거기다가 큰 부자요, 다소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던 정말 촉망받는 젊은이었어요. 세상적으로 봤을 때는 정말 성공한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천명을 깨닫게 되었을 때 바울은 즉시 누구를 증거했나요?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했어요. 복음 증거하는 것 때문에 바울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 압니까? 그리고는 뭐라고 빌립보서 3장에서 고백합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해서 과거에 내가 좋아보였던 돈, 성공이 배설물로 보여진다고! 왜 예수 믿는 목적으로 자꾸 돈과 성공에 집착하죠? 바울은 그것을 뭐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여러분 가끔 새벽에 길가다 보시면 지난 밤에 술 많이 드시고 길바닥에 해 놓은 거 보시죠? 그것 보시면 여러분 기분이 어떠세요? 그게 바로 배설물이에요.바울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배설물로 여겼대요. 나는 그게 너무 좋은데 바울은 그걸 배설물로 여겼대요. 왜 그런지 압니까? 복음의 참된 가치를 진짜 깨닫게 되면 사람의 가치관이 바뀌게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께 발견되기를 원한다, 이제는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의 상을 쫒아가길 원한다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압니다. 예수 핍박자였던 자기 자신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믿고 난 후에 나같이 멸망 받아 마땅하고 저주받아 지옥가야 할 나 같은 놈이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고 전도자가 된 것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자기 생명까지 드리는 모습을 우리가 보는 거죠. 바울이 고백하기를 사도행전 20:24절을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뭘 본지 압니까? 그 나라를 본 겁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도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내가 당하는 환란의 이 극히 작은 부분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최고 영광의 시간으로 바라볼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그 고통을 감수했어요.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를 보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했어요. 왜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39번 맞았는지 압니까? 율법이 40번 치지 말라고 했는데 혹시 잘못 쳐서 마흔 한 대 칠까 싶어서..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을 당했다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무엇 때문에요? 복음 때문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 바울의 관심은 이 복음이 증거되는 일에 대하여서는 어떤 환란이 와도 개의치 않고 복음 증거하는 것에 관심 갖고 오히려 늘 교회를 생각했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왜 복음 전하면 어려운 일들이 올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마귀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면 마귀의 나라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마귀는 발악을 하면서 공격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숨겨져 있는 더 놀라운 비밀들이 있습니다. 고난 당하면 우리가 누구를 바라봅니까? 여호와를 앙망하게 되고, 더욱더 바라보게 만들고, 세 번째로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더욱더 복음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목사님, 그러면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면 안됩니까?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복음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것? 하나님의 분명한 뜻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여러분들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기준이 되면, 우리가 사단에게 속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보다도 나도 모르게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면, 이것이 사단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의 재물을 줄 때, 우리가 어디에 쌓으라고요? 하나님의 나라에 쌓으라고 말씀을 합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 이하를 보면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두라고..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한 사람이 두 신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요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누구에게 진짜 물질의 축복을 주는 것인가? 물질을 맡겨 줬을 때에 거기에 콕 빠지지 않고 하나님과 설 수 있는 자에게 하니님이 맡기는 겁니다. 물질 축복을 주면 거기에 빠져가지고 하나님을 잊어버릴 사람한테 주면은 , 하나님 편에 손해가 나겠죠? 하나님이 없어서 부족해서 안 주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관심은 우리의 행복이에요. 그래서 정말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복음의 가치를 정말 깨닫는다면 하나님이 내게 뭐하겠다고요? 다 주시겠다고..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다 더해 주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안 주는 겁니까? 주머니에 돈만 들어가면, 여자 밝히고 바람 피고 술 마시고 할 남자가 있으면은, 그 남자는 출근할 때 토큰 두놈만 주고 다니라고 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거 돈 들어가면 안되거든요 그놈은.. 사고친단 말이에요. 바꾸어서 같은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 축복해 놓으면 그 돈 가지고 뭐하죠? 엉뚱한 짓 할까 싶어서 여러분들에게 안 주는 것이지, 아까워서 안 주는 것도 아니에요.
정말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서 복음 때문에 쓰임 받겠다고 결단하게 되면,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축복을 왜 받았나요? 이것 때문에.. 요셉과 히스기야가 왜? 부의 영광이 극에 달하도록 왜 주셨나요? 왜 하나님이 다윗을 축복하셨나요? 줘도 거기에 안 빠질 것이니까.. 우리가 왜 복음을 누려야 합니까? 복음의 참된 가치를 우리가 왜 깨달아야 합니까? 이것을 깨닫는 자에게 주님께서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참된 가치를 아는 자는 물질을 맡겨도 그 물질 가지고 뭐하는 겁니까? 교회를 위하여서 선교를 위하여서 쓰임 받는 그 사람에게 맡기는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무엇을 준비하는 겁니까? 내 마음을 준비하는 겁니다.
지금은 초대교회처럼 핍박시대가 아닙니다. 지금 예수 믿는다고 여러분들 감옥에 가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무엇이 순교입니까? 헌금 드리는 것이 순교입니다. 지금 순교가.. 왜요? 돈을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여기잖아요. 가장 사랑하는 돈 그것을 못 드리는 것 자체는, 그것 진짜 드릴 수 있는 자가 진짜 순교적 신앙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누구한테 맡길까요? “하나님 주세요.” 하고 아무리 소리 질러도 이것 안 주십니다. 방향에 맞도록 여러분들이 정말 복음을 누리면서 내 천명을 깨닫고서 절대 헌신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지금도 쏟아부어 주시는 겁니다.
3.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감옥에 매인 나를 생각하라 하였다.
바울이 오늘 고백을 합니다.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고..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1차로 갇혔을 때 기록한 내용이고 오늘은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죠. 로마의 감옥이 바울을 좌절시키지 못했어요. 감옥에 갇혀서 빌립보서 1장 21절을 보면은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죽어도 좋데요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3절 말씀을 보면, 나는 속히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싶다고.. 왜요? 그 나라를 보았거든요. 그러면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밖에 있는 사람들 보고 “항상 기뻐하라. 내가 말하노니 다시 기뻐하라.” 라고.. 누가 누구한테 기뻐하라고 이야기하는 겁니까? 감옥에 갇혀 있어도 바울은 행복했어요.
오늘 골로새 교회에 마지막 문안 인상를 하면서 오늘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 오늘 몇 명만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가 “마가”입니다. 바나바의 생질인데.. 자, 마가를 바울이 뭐라고 설명을 했죠? 10절에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토가와 바나바의 생질인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니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그런데 바울이 첫 번째 전도여행을 갈 때에 마가가 같이 따라 갔다가, 그브로 섬에서 고생을 되게 했어요. 그러고 서아시아 넘어오면서 도망가 버려요. 선교가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중도하차 했어요. 힘들다고.. 그래서 2차 전도여행을 갈 때에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을 때에, 저 형편없는 놈 데려가면 안된다고 거절했어요. 그런데 그 마가가 나중에 베드로를 만나고 거기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마가복음을 마가가 기록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1차 감옥에 갔을 때에, 이 때에 바울이 그 마가가 멋있는 친구다.. 마가가 가거든 영접하라고 골로새 교회에 편지까지 보냅니다. 그리고 나중에 디모데후서를 보게 되면,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 때는 2차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입니다. 네가 올 때에 그 마가 좀 내게 데려오라.. 마가가 내게 참 유익하다.. 참, 마가가 고생을 피해서 도망갔던 그 마가가 이렇게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어요.
그런가 하면 또 한 인물이 누가 나오는 것인가 하면, 4장 14절 말씀을 보면 사랑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여기에 데마 이름이 나오서, 1차 감옥에 있을 때까지 데마가 바울을 수종들면서 했어요. 그런데 2차 감옥에 갇혔을 때는 데마가 변질을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말씀을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이제 두 인물입니다. 마가는 고통스럽기 싫어가지고 도망갔다가 회복해서 다시 돌아왔고, 데마는 처음에는 고통을 견디다가 너무 힘드니까 세상을 사랑해서 도망가 버렸어요.
사실 바울의 감옥 생활 자체가 정말 비참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3절 말씀을 보면, 디모데에 편지를 보내니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 양털로 겉옷을 주로 짭니다. 염소털로도 짜기도 하고.. 그 겉옷을 짜는 것은, 겉옷이 뭐하는 것인가 하면 추울 때 그냥 걸치고 나가는 옷도 되고, 밤에는 잠 잘 때 이불도 되고 하는 것이 겉옷입니다. 그런데 지하 감옥 속에서 음습한 지하감옥 속에서 뼈 속까지 한기는 들어오는데, 추워서 바울이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디모데 보고 “야, 네가 올 때, 내가 가보 집에 겉옷 벗언놓은 것이 있는데, 제발 그것좀 가지고 와라.”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가슴에 그냥 막.. 전도자 바울이 복음 때문에.. 이렇게 참 고생을 하면서도 이 복음을 증거한 것이로구나.. 데마가 왜 도망간지 알아요? 도저히 못견디겠거든.. 그전까지는 감옥에 같이 있었다니까요 데마가.. 1차 감옥때에는.. 2차때는 뭐했어요? 도저히 못견뎌서 도망가버린 것이에요. 디모데후서 4장 16절에서 바울이 고백을 합니다. 내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변명할 때는 나하고 함께 하던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복음이 온전히 선포되기를 원하는 바울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유스도, 에바브라, 누가가 등장하는데, 제 2차 감옥에 끝까지 동행하는 사람이 의사 누가입니다. 그 디모데후서 4장 11절 말씀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을 하나님의 절대목표를 위하여서 절대사명을 깨닫고 절대헌신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사도바울이 있었던 시대처럼 핍박시대는 사실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신앙생활의 참된 목적이 내 문제의 해결과 돈이 목적이 되고, 내 자식이 잘 되는 것이 목적이 된다고 그러면은, 우리는 쉽사리 사단에게 속아 넘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의 참된 가치와 전도와 선교의 참된 가치를 안다면은, 환란과 핍박도 감수할 수 있는, 복음을 위하여서 희생도 할 수 있는 이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10-11절 말씀을 보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어려움 당하거든 뭐하라고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왜요? 초대교회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예수 이름으로 능욕 당하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살아가는데 사단이 안 건드리죠? 그러면 할렐루야입니까? 그게 사단 말대로 살아가니까, 그 놈이 사단하고 짝 지어서 한 패로 살아가니까 사단이 여러분들을 건딘 이유 자체가 없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우리가 거짓 행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복음 언약 붙들고서 전도와 선교 하겠다고 결단하는 그 순간부터 사단은 그냥 긴장하고 발악하고 반대해요. 그러면 내 인생의 문제가 안 생겨난다? 내가 누구랑 화친 맺고 있는 것이죠? 어쩌면 내게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겁니다. 그래서 복음과 함께 핍박도 겸하여 받는다고 말씀하는 겁니다. 정말 복 받기를 원합니까? 복음의 참된 가치를 깨닫고서 방향을 맞출 때 하나님께서 복음과 함께 뭐도 주신다고요? 핍박도 겸하여 받도록 만들어서, 나로 하여금 온전케 만들어서 이 복음의 증인 되도록 만드시겠다고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사람들은 대체로 다 고난을 싫어합니다. 나의 예수 믿는 목적이 어디에 있나요? 내 건강하고 내가 돈 잘벌고 내 자식이 잘되고.. 오로지 목적 자체가 창세기 3장, 6장, 11장에 근거한 이 복을 받기 위해서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닌가요? 실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도 받으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합니다. 복음의 참된 가치를 아는 자들은, 전도와 선교의 참된 가치를 아는 자들은, 내세의 참된 축복의 의미를 정말 아는 자들은, 복음 때문에 희생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정말 이 비밀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 분께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겠다고 주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참된 축복을 어떻게 누릴 것인지 정말 바르게 알고 인생의 참된 방향을 맞출 수 있는 인생이 되기까지, 주께서 저희를 권고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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