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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흔들며 다가온 아가씨가 갑자기 수류탄을 던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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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무공훈장 받은 김종철씨의 40년전 월남전 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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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플래툰의 한장면 | | 정글을 누비며 용맹을 떨친 화랑무공훈장에 빛나는 역전의 용사를 전화로 만났다. 몇 번 시도한 끝에 이루어진 통화여서인지 무척이나 반가웠다.
지방(전북전주)에 거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업으로 늘 자리를 비우고 있었기에 그만큼 연결하기가 힘이 들었다. 마침 지난 일요일(1일) 저녁 출장에서 돌아와 잠시 짬을 내 사무실에 들렀다는 예비역 육군중사 김종철씨와 통화하면서 실감나는 전투얘기를 듣게 되었다.
김씨와 통화를 하며 기자의 머릿속으로는 월남전을 배경으로 했던 영화 '플래툰'의 장면이 선연하게 떠오르고, 군대시절 온 몸이 흙먼지와 땀으로 뒤범벅 된 채 공포탄을 쏘아대며 '돌격 앞으로'를 감행하던 때가 떠오르고 있었다.
비록 전화로 듣는 음성이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20대와도 같이 우렁차고 카랑카랑해 마치 지금도 전장에서 적진을 향해 달려가며 투혼을 불사르는 전사의 기개가 넘치는 듯 힘이 있었다.
김종철 사장은 지금 벌이고있는 사업으로 매우 바쁘지만 지난 30여년 전 젊음을 바쳐 피 흘렸던 베트남을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지난 해 12월부터는 베트남 선교사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통화에서 여느 참전용사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가 생사가 오가는 전장터를 좋아서 가겠는가? 군인은 명령에 의해서, 또 명령에 순응하는 집단인데 개인의 마음대로 좋다고 가고 싫다고 가지 않는 그런 존재가 아니지 않는가?" 며 "한 때 국가를 위해 젊음을 바친 참전용사들이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가"를 반문하고 "이제는 정부가 적극 나서서 참전용사를 위해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이제 우리나라도 그럴 정도의 수준에 와있다고 본다"며 참전용사의 유공자 화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잊지 않았다.
그는 또 "최근 우리사회는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처럼 자유의 소중함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하면서 "한미동맹의 이완이나 미군철수를 부르짖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보면 오늘의 상황이 마치 패망직전 혼란의 극을 달리던 월남 상황과도 비슷하게 보인다"며 "주사파출신들이 국회에 버젓이 들어앉아 국정을 논하고 있으니 할말 다 한 것 아니냐"고 현재의 안보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김 사장은 지난 65년 입대, 67년 4월 공수특전 하사로 베트남에 파병되어 2년 6개월 동안 분대장으로 전장을 누비며 숱한 전투로 사선을 넘나들었으며, 특히 69년 5월 실시된 9사단 30연대의 '동보7호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현지에서 주월사령관으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수여 받기도 했다.
다음은 김종철씨와의 전화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임.
- 월남전 참전당시를 한번 돌아봐 주시죠?
벌써 40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65년 군에 입대했으니 말입니다. 67년 4월 분대장으로 참전했습니다. 월남에서의 2년 6개월 간 참으로 많은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렇게 온전한 것도 다 하나님 덕분이겠죠. 차출되어서 갔습니다.
군인은 국가의 부름에 의해, 명령에 따라 행동하기에 처음 다소의 갈등도 있었지만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것이 군인 아닙니까? 내가 하고싶다고 해서, 또 하기 싫다고 해서 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 전쟁은 생명을 담보로 하기에 그만큼 무섭고 어려운 것이며, 특히 베트남은 정글지대이기에 전투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정글지대입니다.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온갖 독충이 우글거리고 한번 물리면 1분내에 사망하는 독사나 벌레 등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곳이 바로 정글지대입니다.
모기는 또 얼마나 큰지 좀 과장하면 매미 크기만 합니다. 작전을 나가면 아예 온몸에 모기 약을 바르고 나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전을 할 수가 없어요. 거기에 베트콩이 설치한 각종 부비츄랩에 함정, 쇠꼬챙이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고 쇠똥을 발라 한번 찔리면 그것으로 치명적인 상황이 됩니다.
정글지역에서 베트콩은 손바닥 보듯 훤히 들여다보면서 작전을 하는데 우리는 한발한발 내 딛으면서 하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딱쿵' 하고 총소리 한번 울리면 아군 한명이 나가떨어집니다. 그만큼 그들은 정확하게 아군을 보면서 사격을 가했습니다.
- 한국군이 베트남전에서 매우 용맹하다고 전해졌는데요?
군인은 승리하기 위해서 싸웁니다. 그것은 곧 지휘관의 능력과도 결부된다고 봅니다. 지휘관은 전장에서의 승패를 좌우하고 승리를 위해 부대를 지휘한다면 병사는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전장에서의 생사는 한 순간입니다. 네가 죽느냐 아니면 내가 사느냐 하는 갈림길이지요.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겠지만 당시 우리는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란 소책자를 휴대하고 다녔습니다. 내용은 '적을 먼저 발견한다. 적을 쏘아 죽이고, 때려죽이고 물어뜯어 죽이고, 최후의 한 명이라도 죽이고 나서 죽는다. 그리고 살아서 꿈에도 그리던 고국산천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섬뜻한 말 같지만 그게 전쟁입니다.
-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훈장 받았던 전투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시죠.
69년 여름으로 기억됩니다. '동보 7호' 작전이었습니다. 당시 연대의 작전지역은 캄란만에서 나트랑, 판랑까지가 책임지역이었습니다. 사단의 책임지역은 166마일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 휴전선 155마일을 몇 개 군단이 지키고있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넓은 지역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월맹군과 베트콩은 이 지역 일대에서 밤마다 주민을 괴롭히고 아군부대를 습격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보급로가 길었기에 작전에도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연대 작전이었는데 우리소대는 참 용감히 싸웠습니다. 적 사살 38명에 박격포 등 당시로서는 엄청난 무기와 장비를 노획했습니다. 그 때 월남 신문에서도 한국군이 월맹군의 무기고를 폭파하는 대전과를 올렸다고 보도된 것으로 기억납니다.
작전이 종료되고 주월사령관이 직접 부대로 오셔서 소대원 16명에게 훈장을 수여해 주셨습니다. 미국 동성 및 월남 동성무공훈장도 함께 받았지요.
- 혹시 작전을 하다 역 매복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까?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작전을 나갔는데 야간 어느 지점에서 등불이 5개가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말하자면 화집점 이죠. 그래서 그 지점을 화력으로 때리자고 했으나 혹시나 해서 그냥 두었습니다. 결국은 적이었습니다.
아군의 기도가 노출되고 그때부터 전투가 전개되었습니다. 새벽까지 처절하리만큼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졌는데 안타깝게도 그 작전에서 아군 2명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 최근 베트남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여러 가지 얘기들이 나오는데 한 말씀하신다면?
저도 간혹 그런 얘기를 듣습니다. 군인은 작전을 할 때 최선을 다해서 양민을 피하고자 합니다. 아무리 작전이라 하지만 누가 양민을 해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때 보면 순진하게만 보이는 어린아이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군에게 수류탄을 터뜨리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고, 곱게 단장한 아가씨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아군을 반기다가도 수류탄을 던지고 사라지는 예도 있었습니다. 이게 월남전입니다.
그러므로 작전을 벌일 때 아군이 사전에 반드시 경고를 하지만 이를 무시 할 때면 움직이는 것을 적으로 간주하고 작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장에서의 전투상황은 평시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김종철 사장은 현재 하는 사업이 매우 바쁘지만 지나간 월남전을 생각하면 많은 것이 떠오른다고 했다. 바쁘지만 지난해 12월 뜻을 함께 하는 지인 들과 베트남 선교회를 조직해서 베트남에 복음을 전파하고자 선교사업을 위해서도 열심히 뛰고 있다고 했다.
아직 한번 가지는 못했지만 베트남에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라면서 <코나스>에서도 베트남전에 대한 잘못된 시각과 오도된 안보관을 갖고있는 젊은이들에게 안보의식을 일깨워주는데 힘써달라는 당부의 말을 맺으면서 인터뷰를 마쳤다.(Kon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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