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사업소로 변경되고 나서 여러나라를 방문해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그중 미국과 중국에서 개최했던 전시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국에서는 윤한봉 선생을 만났던 LA외에도 여러 도시를 찾아갔다.
그중에서 워싱턴DC에서도 전시회를 가졌는데 그때 당시 부군수가 방문단은 인솔했다. 이때 도시내 한 박물관을 답사하게 됐다. 그곳에는 동양의 여러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중국도자기는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화려한 색깔을 가진 도자기 수십여점이 넓은 공간에 전시되고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중국에 비해 규모도 작았고 삼성문화재단에서 기증한 도자기만이 전시되고 있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중국 도자기는 사진을 촬영해도 아무런 제지가 없었지만 우리나라의 도자기만은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하게 했다. 실제 이유는 알수가 없지만 우리나라 도자기를 더 귀하게 여긴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워싱턴에 이어 뉴욕도 찾아갔다. 그곳에서도 박물관을 탐방하고 청자를 전시했는데 교민들이 운영하는 한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다. 나는 우리나라 방문단 대표로 인터뷰를 해서 미국에서 고려청자 전시를 하게 된 이유와 고려청자의 우수성 등을 상세히 설명하며 미국인들에게 강진 청자를 알리기도 했다.
미국에 이어 중국에서도 여러차례 전시를 하기 위해 방문했었다. 그중에서 중국 절강성을 가게 됐는데 이는 칠량 구로마을 출신 최한선 교수의 도움덕분이었다. 최 교수는 중국에서 유학을 했을 당시 절강성내에 많은 지인들이 있었다.
최 교수가 중간에서 역할을 해주면서 강진 방문단이 중국 절강성을 찾아가게 됐다. 그곳에서 중국 도자기와 함께 우리나라의 청자를 함께 전시하게 됐다. 물론 전시회와 함께 도시의 박물관을 둘러보기도 했고 도자기 산업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또 도시의 요지도 찾아가보기도 했다.
중국 사람들은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중국도자기와 우리나라 고려청자의 차이점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중국의 도자기는 빛깔이 화려한 것이 많은 데 반해 강진의 청자는 비취빛으로 담백한 색깔과 상감청자라는 기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특히 중국 사람들은 상감기법으로 제작된 고려청자에 관심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중에서 절강성내 한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수가 찾아온 적 있었다. 그 교수도 상감청자에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전시회가 끝난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적으로 강진을 찾아온 적 있었다. 강진을 찾아와 대구면의 청자요지를 살펴보고 청자를 제작하는 과정 등을 상세히 살펴보고 감탄을 했다. 이후 그 교수는 우리를 절강성으로 초청하게 됐다.
절강성의 한 도시에 위치한 남송관요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게 해주었는데 전시중이었던 중국도자기를 정리하고 별도의 한국도자기 특별전시관을 마련해주고 그곳에 전시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교수로부터 작품 전시 의뢰를 받고 고민 끝에 나 혼자 가는 것보다는 개인요를 창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윤도현 작가에게 함께 전시회가 가자고 이야기를 전했다. 이렇게 해서 나와 윤도현 작가 2명이서 박물관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이후에도 절강성과는 교류가 계속이어졌고 정양모 관장을 초청해 중국에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정리=오기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