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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일본총리 신사참배 관련기사 모음
고이즈미, 야스쿠니 神社 전격 참배
8.15대신 어제(8.13) 강행... 총리론 16년만에
'영령들 희생위에 日 평화-번영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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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패전기념일(종전일·8월15일)을 피해 13일 오후 4시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들의 위패가 보관돼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일본 총리가 재임 중에 8·15를 맞아 공개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이후 16년 만의 일이다. 96년 7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당시 총리가 참배했으나 이는 자신의 생일에 개인자격으로 한 비공개 행사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하면서 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이라고 서명했으나 신도(神道)의식을 따르지 않고 공식참배인지 사적참배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그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전진(戰陣)에서 사라져간 여러 영령들 앞에서 오늘날 일본의 평화와 번영이 그들의 희생 위에서 세워졌음을 생각하며 매년 평화에 대한 맹서를 새롭게 해 왔다”며 “이 같은 내 신념을 설명하면 우리 국민과 근린제국의 여러분도 이해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는 취지를 설명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듯 “가능한 한 빨리 중국과 한국의 요인들과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와 평화 발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가 끝난 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도 “한국 중국 등 이웃나라와 우호관계를 꾀하고 싶다”며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자료:동아일보.2001.08. 14, 화요일, 제24902호, A1)
당당한 고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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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가 제2차세계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보관돼 있는 도쿄 시내의 야스쿠니신사를 13일 오후 참배한 뒤 신사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본전을 나서고 있다.
<도쿄=김경제 기자> (자료:동아일보.2001.08. 14, 화요일, 제24902호, A1)
정부, 日총리 참배강행 비난…여야도 일제히 규탄
정부는 1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가 우리의 거듭된 우려 표명과 일본 국내의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근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신정승(辛正承) 외교통상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우리로서는 일본 총리가 세계 평화를 파괴하고 인근 국가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피해를 끼친 전쟁범죄자들에 대해서까지 참배한 사실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성명은 또 “우리는 고이즈미 총리가 인근 국가들과 진정한 선린 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면 앞으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관련 국가의 처지와 국민감정 등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국 등 주변국과 일본 내 동향 등을 면밀히 분석한 뒤 추가 대응 여부와 방법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한편 여야도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일제히 규탄했다.
민주당 전용학(田溶鶴)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오늘로 일본의 양심은 조종이 울렸다”며 “우리는 아시아 각국과 연대해 부활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악령을 규탄하고 저지하는 데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는)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우둔한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일관되고 뼈대있는 대일 외교정책을 펼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자민련 변웅전(邊雄田)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라며 한일 파트너십의 근본적인 재검토와 함께 강력한 대응책 강구를 정부에 촉구했다.
<부형권·윤종구기자>bookum90@donga.com
(자료:동아일보.2001.08. 14, 화요일, 제24902호, A1)
'주변국 눈치 안본다' 고개세운 日
[右로…右로 고이즈미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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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3일 국내외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2차세계대전 당시 전범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 우려하던 일본의 우경화 경향이 다시 한번 분명히 드러났다.
그가 일본의 패전일인 8월 15일을 피하는 편법을 쓰기는 했으나 총리가 공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총리 이후 16년만의 일이어서 국내외에서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강행은 일본 사회의 내셔널리즘과 본인의 고집스런 정치적 신념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우려를 자아낸다.
우선 한중일 3국 관계가 당분간 냉각될 것이 틀림없다.
한일간에는 이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남쿠릴열도의 꽁치잡이 문제로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 여기에 야스쿠니 참배가 겹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측이 자신들이 원인을 제공한 이들 현안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사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의 논리와 분위기만을 앞세우고 있을뿐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한국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도 교과서문제와 무역마찰, 리덩후이(李登輝)전대만총통의 일본 방문 허용 등으로 인해 삐걱거리고 있다. 중국은 특히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72년 중국은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배상을 포기했다. 중국은 당시 일본 국민 전체가 아니라 일부 군국주의자가 문제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일본 현직 총리가 일부 군국주의자, 즉 A급 전범 위패에 머리를 숙이는 것은 이같은 국교정상화의 논거를 무너뜨린 것으로 중국은 풀이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 성격을 공식인지, 사적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참배후 기자회견에서 총리의 마음을 담아 참배했다 며 사실상 공식참배였음을 인정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 전 담화와 참배 후 기자회견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한중 인사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다한 뒤에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그의 제안에 한국이나 중국이 선뜻 응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 국내에서도 계속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당 의원중 상당수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실현시키는 모임 을 만들어 압력을 가했다. 이들은 총리가 8월 15일을 피한데 대해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들과 우익세력은 앞으로 총리가 외압에 굴복했다 며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외교문제 등을 고려해 8월 15일 참배를 단념하도록 요청했던 측근들은 이번 결정을 최선의 선택 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소수다. 무관심한 척하는 대다수 일본인도 내심 참배가 나쁠 것이야 없지 않느냐 고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면 할수록 고이즈미 총리의 국내기반은 더욱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는 일부 비판은 감수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야스쿠니 참배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굳히는데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겉으로는 밑지지만 안으로는 남는 장사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기자>ksshim@donga.com
▼야스쿠니신사란
1869년 메이지(明治) 천황 시절 일본군인들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도쿄(東京) 쇼콘샤(招魂社)’가 전신이다. 1879년 야스쿠니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침략전쟁 제2차세계대전 등에서 숨진 군인과 군속 246만6000여명의 위패가 보관돼 있다. 부지가 3만평이나 되며 ‘일본 육군의 아버지’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의 동상, 가미카제 돌격대원의 동상, 유슈칸(遊就館)이라는 일종의 전쟁박물관 등이 함께 있다.
제국주의 시절에는 군국주의 확대정책을 종교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으며 천황숭배와 군국이념을 조장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에 진주한 미국의 맥아더 사령부는 야스쿠니신사와 국가와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국영 신사라는 특권적 지위를 박탈했다.
78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제2차세계대전의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合祀)되면서 총리나 각료의 참배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일제의 침략을 당한 국가들은 일본 총리가 전범 위패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비난하고 있으나 일본의 보수우익세력과 유족회 등은 총리의 공식참배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공식 참배하자 한국 중국이 거세게 항의했으며 이후 총리의 공식 참배는 없었다.
<김성규기자>kimsk@donga.com
(자료:동아일보.2001.08. 14, 화요일, 제24902호, A3)
정부, 야스쿠니 변칙 참배에 당혹 '허찔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휴가 중 야스쿠니(靖國)신사를 ‘기습 참배’한 데 대해 정부는 당혹해 하면서도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반발을 우려해 어쩌면 참배를 안 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가 한 순간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열린 긴급 대책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격앙된 표정이었다.
한 참석자는 “고이즈미 총리의 행태는 앞에서는 선린 우호를 말하고 돌아서서는 군국주의의 부활을 기원하는 전형적인 이중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응 방법을 놓고 숙의를 거듭했다. 진행 중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달리 신사참배는 이미 끝나버린 행위여서 성명이나 논평을 통한 유감 표명 외에 달리 이렇다 할 대응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민 끝에 당국자 논평보다는 훨씬 강한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측에 유감과 항의의 뜻을 표명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성명 외에 추가 대응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른 나라 총리의 행동을 외교부 대변인 성명으로 비판하는 것은 매우 강한 대응책”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주한 일본대사를 부르거나 주일 한국대사를 소환하는 방안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이날의 유감 성명은 과거 두 차례의 일본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 때 정부가 취했던 대응에 비해 강도가 센 것이 사실.
문제는 국민의 대일 감정과 여론의 흐름. 여론이 나빠지면 보다 강경한 대응을 검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월 교과서 문제가 처음 제기됐을 때도 정부는 “신중히 대응하겠다”고 했으나 반일감정이 불처럼 타오르자 초강경으로 선회했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역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한국정부의 대응▼
시기 |
일본 |
신사 참배 형태 |
한국 정부의 대응 |
1985.8 |
나카소네 야스히로 |
일본 총리의 첫 ‘8·15’ 공식 참배 |
-공식 논평이나 성명 없음 |
1996.7 |
하시모토 류타로 |
자신의 생일날, 개인 자격 참배 |
-외무부 당국자 논평을 통해 ‘86년 이래 중단된 일본 총리의 참배가 다시 행해 진 사실에 주목한다’고 경고 |
2001.8 |
고이즈미 준이치로 |
‘8·15’를 피해 휴가중인 13일 참배 |
-외교통상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명 |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자료:동아일보.2001.08. 14, 화요일, 제24902호, A3)
일본 주요방송 일제히 고이즈미 신사참배 생중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자 일본은 물론 세계의 관심이 야스쿠니신사에 쏠렸다.
○…고이즈미 총리는 13일 오후 4시30분경 신사에 도착해 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썼다. 안내인의 인도로 경호원 두 명과 함께 본전(本殿)에 올라선 고이즈미 총리는 한 차례 깊이 고개 숙여 참배했다. 이는 일본 종교인 신도(神道)의 참배 형식과 다른 것으로 이번 참배에 종교적 의미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신사 본전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이날 오전에 보낸 꽃이 놓여 있었다. 약 30초간의 참배를 마치고 나온 그는 신사 내 대기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참배를 전후해 그는 줄곧 굳은 표정이었다.
○…이날 야스쿠니신사에는 1만여명이 몰려 신사측이 나눠준 일장기를 흔들며 “고이즈미 총리 야스쿠니 참배 만세”를 외쳤다. 고이즈미 총리의 개인적 인기까지 겹쳐 참배소 입구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후 3시경 총리가 참배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무라 야스히코(木村康彦·41·자영업)는 “참배일을 바꿔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 한 것은 다행”이라며 “총리의 판단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한편 야스쿠니신사측은 “총리로서는 16년 만의 참배였기 때문에 일장기 5000개를 배포했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를 전후해 야스쿠니신사 경내에서는 참배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단체 등의 집회도 열렸다. 한국의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는 총리 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오후에 총리의 신사 참배 소식이 전해지자 급히 신사로 시위 장소를 옮겼다. 한편 확성기를 이용해 “총리는 한국과 중국의 말을 듣지 말고 8월 15일에 참배해야 했다”고 외치는 우익 성향의 사람도 보였다. 우익단체의 조직적 시위는 경찰이 사전에 단속한 탓인지 보이지 않았다.
○…총리의 참배 현장에는 내외신 기자 300여명이 몰렸다. NHK 니혼TV 등 일본의 주요방송사는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모습을 현장 중계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2시반경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 계획이 알려지자 대부분의 방송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긴급뉴스로 이를 보도했다. 특히 NHK방송은 총리 참배에 앞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이 대독한 담화 발표 장면과 일문일답도 생방송으로 전했다. 또 고이즈미 총리를 태운 차량이 총리 관저를 떠나 신사로 향하는 모습을 헬기를 동원해 방송했다.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은 총리의 13일 참배에 대해 “이웃국가와의 우호관계를 고려한 결단이며 결코 외압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본유족회 부회장인 모리타 쓰구오(森田次夫) 참의원은 “8월 15일 참배를 기대했으나 국제정세를 고려해 오늘 참배한 것 같다”며 “총리가 국가를 위해 숨진 사람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일본은 지금까지 과거 역사를 애매하게 처리해 아시아의 신뢰를 잃어왔다”며 “이번에 똑같은 일이 벌어진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일본 평화유족회 전국연락회 오가와 다케미쓰(小川武滿) 회장은 “날짜를 바꾸었다고 본질적인 문제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야스쿠니의 존재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재일 한국민단은 “식민지시대 민족 말살의 위기를 맞은 재일한국인을 격분케 했다”며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각국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필리핀의 군위안부 지원단체인 ‘릴라 필리피나’는 “이는 필리핀에서 강간을 자행한 일본 군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또 말레이시아의 반일단체 소속 회원인 로케 투 상은 “한 손으로는 천사와 악수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악마의 손을 잡는 행위”라며 “말로는 평화를 얘기하면서 살인자들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호주 최대의 재향군인단체인 귀환병모임(RSL) 회장인 피터 필립스 예비역 소장은 “총리가 8월 15일을 피했다 하더라도 전범 위패가 있는 신사를 참배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참전자들은 그의 신사 참배를 국수주의적 행동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14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 강행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으며 ‘혼령들을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일본의 외교적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으며 10월로 예정된 고이즈미 총리의 중국 방문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분석. AP는 또 일본의 한 TV방송사 여론조사를 인용해 “50% 이상이 총리의 신사 참배를 찬성하고 있으며 반대자는 40% 미만”이라고 소개.
▼고이즈미 담화 요지▼
우리나라는 8월15일에 56회 종전기념일을 맞이한다. 21세기의 초입에서 대전(大戰·태평양전쟁)을 회고할 때 숙연한 마음가짐이 우러나오는 것을 금할 길이 없다.
대전에서 일본은, 우리 국민을 포함해서 세계의 많은 사람에 대해 많은 참화를 안겨주었다. 결국 아시아 근린제국에 대해 과거의 한순간에 잘못된 국책(國策)에 바탕을 두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일으켜 계량할 수 없는 참해(慘害)와 고통을 주었다. 그것은 지금도 타국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치유되기 어려운 상흔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런 상흔의 역사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 전쟁희생자 여러분 모두에 대해 깊은 반성과 함께 애도의 뜻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 같은 나의 신념을 설명하면 우리 국민과 근린제국의 여러분에게도 반드시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총리 취임 후에도 8월15일 야스쿠니 참배를 하겠다는 취지를 표명해 왔다.
내외에서 나의 신사참배에 대한 찬반론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참배 자체의 중지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 국내외 상황을 진지하게 수용해 나 자신의 결단으로 참배를 행하기로 한 것이다.
총리로서 일단 행한 발언을 철회하는 것은 참괴(慘愧)한 일이다.
그러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나의 지론은 지론으로 하고, 광범위한 국익을 포함해 일신을 던지는 내각총리대신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해 모든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있다.
상황이 허락하면 가능한 한 빠른 기회에 중국과 한국 요로의 인물들과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와 평화, 발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동시에 나의 신념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자료:동아일보.2001.08.14, 화요일, 제24902호, A12)
-해설 :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일본 도쿄의 도심지역인 구단사카우에(九段坂上)에 위치하며 중일전쟁에서부터 2차대전까지 전장에서 희생된 250여만명의 위령이 안치돼 있다.
신사참배는 일본 토속종교인 신도(神道)의 중요한 의식이므로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신앙행위일 뿐이다.
그러나 전쟁과의 연관성 때문에 과거 일본의 지배나 점령을 당한 경험이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일왕과 총리를 비롯한 정부인사의 신사참배를 군국주의 부활의 조짐으로 여겨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해마다 `8·15종전기념일'이 되면 야스쿠니 신사에는 수많은 참배객이 줄을 잇는다.
(자료:동아일보.2001.08. 14, 화요일, 제24902호, A12)
中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아시아 국가에 도전행위'
중국 외교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3일 오후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A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강한 불만과 더불어 분노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장치웨(章啓月) 대변인은 “일본 지도자들의 이 같은 잘못된 행위는 중국 및 광범한 아시아 인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며 “중국은 앞으로 외교채널을 통해 엄중 항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고이즈미 총리는 국내외 압력에 부닥치자 8월15일 방문하려던 계획을 바꿨다”고 비난했다.
관영 신화통신도 참배 소식을 전하며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는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부터 격렬한 항의에 직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자료:동아일보.2001.08. 14, 화요일, 제24902호, A1)
'참회는 못할망정...'
전국 고이즈미 신사참배 규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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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참배 강행을 규탄하는 항의집회가 서울과 부산 등에서 잇따라 열렸다.
전국연합과 한총련 등이 주축이 된 통일연대(공동대표 한상렬·韓相烈)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2가 젊음의 거리에서 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일본 총리 신사참배 항의와 역사 왜곡 규탄대회’를 갖고 주한 일본대사관 근처인 종로구 수송동 거양빌딩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집회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는 군국주의 부활의 전조로 유럽 정상이 히틀러 묘를 참배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 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 저지를 위해 앞으로 아시아 각국 시민단체와 연대해 나갈 것 등을 결의했다.
또 일제강제연행한국생존자협회(회장 선태수·宣胎守)와 과소비추방범국민운동본부(사무총장 박찬성·朴讚星)는 이날 오후 서울 탑골공원 정문 앞에서 집회를 갖고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 사과’와 ‘왜곡 교과서 재수정’ 등을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에서 온 일제징용 피해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강원 춘천에서 왔다는 이응수(李應洙·72)씨는 “1943년 일본 홋카이도로 끌려가 탄광에서 2년간 죽을 고생을 했다”며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전범들의 묘를 참배하다니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집회에서는고이즈미총리의 초상과일장기모형,일본산인마일드세븐 담뱃갑등이불태워지기도했다.
한편 부산지역 58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저지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부산역 광장에서 200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 총리 신사참배 규탄 및 역사교과서 왜곡 저지 범시민궐기대회를 가졌다.
대책위는 이날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일본 총리가 참배한 것은 일본내 극우세력을 충동질해 군국주의를 부활하려는 음모”라며 “이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민중에 대한 모욕이며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집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그림과 일장기, 일본상품 등에 대한 화형식을 가진 뒤 인근 일본총영사관으로 몰려가 규탄시위를 벌였다.
광복절인 15일에도 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 주최로 ‘신사참배 규탄 한일 연대 평화시위’가 탑골공원에서 열리는 등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를 규탄하는 집회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영아·김창원기자·부산〓조용휘기자>sya@donga.com
(자료:동아일보.2001.08. 15, 수요일, 제24903호, A23)
고이즈미 '기습 신사참배' 한국일보 2002년4월21일
작년 이어 두번째…公-私 여부는 얼버무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로 21일 도쿄(東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봄 대제를 하루 앞둔 이날 오전 9시 태평양전쟁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한 뒤 “8월 참배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을 참배일로 선택한 데 대해 “내외에 불안과 경계를 안겨주지 않고, 진정을 담아 참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참배가 한국 중국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서는 “월드컵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한일ㆍ중일 교류도 순조롭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 성격에 대해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참배했다”고 말해 공적인지, 사적인지 여부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는 헌화료 3만엔을 개인 돈으로 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해에는 8월 15일 야스쿠니 참배를 공약했으나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로 8월 13일로 앞당겨 참배한 바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고이즈미 총리가 개인의 신조에 따라 참배한 것”이라며 “22일 시작인 봄 대제에 정식으로 참배한 것도 아니다”는 견해를 밝혔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