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짜장면을 시키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된 후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에서 자신들의 시간을 가졌지만 저는 방학이었음에도 계속 학교를 나와야 했습니다. 문예부원 이었기에 학교의 얼굴인 '교지 편집을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학교의 교지는 해마다 발행을 하였고 전국 교지 컨테스트 대회에서 편집상을 받을 정도로 상당히 실력 있는 교지로 알려졌었습니다.
세상이 꽁꽁 얼어있는 아침, 겨울방학 내내 막내인 제가 가장 먼저 편집실로 나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제 쓰다만 원고지가 주변에 널려있었고 온갖 잡동사니가 여기저기 뒹굴었습니다. 선배들이 오기전에 난로를 피워놓아야 하였기에 얼른 운동장 끝에 있는 창고에 가서 톱밥 난로를 낑낑대고 들고 왔습니다.
그리곤 난로에 불을 붙이는데 한 번에 성공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몇 번인가 검게 그을음이 일어나고 연기가 편집실 안을 매콤하게 채웠을 때쯤 그때야 겨우 불이 붙었습니다.
그렇게 불을 붙이곤 혼자서 편집실 안을 청소하고 원고들을 정리하고 있으면 하나 둘, 2, 3학년 선배들이 편집실을 들어왔고 지도교사인 국어 선생님도 나오셨습니다.
그렇게 함께 모인 우리는 오전 내내 원고정리와 글을 쓰고 편집과 퇴고, 교정을 보면서 오전 편집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배꼽시계가 꼬르륵 점심을 알렸고 시장한 선배들은 저에게 점심을 시켰습니다.
아마도, 그 시절 교지 편집을 하면서 최고로 즐거웠던 것은 평상시 먹고 싶었던 짜장면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아무 날이나 짜장면을 먹던 시절이 아니라 졸업식 날이나, 생일 등 정말로 특별한 날 먹는 특식이었습니다.
평상시처럼 선생님은 '볶음밥' 3학년, 2학년 선배들은 각자 취향대로 짜장면, 짬뽕, 우동 등을 불렀고 저 역시 짜장면 곱빼기를 종이에 적었습니다. 그렇게 무심히 선배들이 불러준 메뉴들을 적고 있는데 편집실 창문 밖으로 커다란 트럭 한 대가 운동장을 향해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트럭에는 책이 가득히 쌓여 있었고 아마도 신학기 교과서인 듯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느 선배가 저에게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너 절대 교무실에 내려가서 우리를 찾으면 한 명도 없다고 해라, 편집부원 찾으면 아무도 없다고 해! 알았지?"
그 당시 편집실엔 전화기가 없었고 유일하게 교무실에 있었습니다. 음식을 배달시키려면 꼭 막내인 제가 당직 선생님들 사이로 걸어가 눈치를 보면서 전화로 음식 주문을 했었습니다. 그러니 미리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선배는 혹시라도 선생님들이 이 추운 날 자신들에게 책 나르는 일을 시킬까 봐 아무도 없다 하라는 것이었지요.
“네. 알았어요. 형.”
그리곤 바삐 교무실로 내려갔습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평상시와 다르게 심각한 표정들을 하고계신 선생님들이 앉아 계셨고 더군다나 교감 선생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교감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편집은 잘 돼 가니?"
“네. 모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 사이를 지나가며 전화기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수화기를 막 드는 순간, 교감 선생님께서 소리쳤습니다.
“야, 너희 편집부원 몇이나 있어?"
선배의 말이 적중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네, 저하고 선생님하고 둘입니다."
"그래? 이거 큰일 났네. 저 많은 책을 어찌 나르나?"
교감 선생님의 난감한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면서 수화기를 들고는 단골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팔각' 수화기가 울렸습니다.
"중국집입니다."
. 여기 ○○고등학교 편집실인데요. 음식 주문을 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장면 3개, 곱빼기 1개, 짬뽕 2개, 우동 2개, 그리고 볶음밥 1개입니다. 빨리 보내주세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날카롭게 뒤통수를 때리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야, 너 혼자 그걸 다 먹나?"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너무나 황당한 표정을 지은 교감 선생님께서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 저... 저...."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릴 뿐 어떤 말도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의 선생님들이 껄껄대고 웃었고 그날, 편집부원들은 모두 한겨울에 땀이 나도록 새 책을 옮겨야 했습니다.
"야, 아무도 없다 하라니까 이게 뭐야?"
“처음엔 없다고 했는데, 음식 주문하다가 그만…"
"야, 그러니까 조그맣게 말을 했어야지."
하늘 같은 선배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교과서를 나르던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그날, 점심은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채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워놨지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 곱빼기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참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 순간 선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감 선생님께 거짓말을 한 것을 들켰을 때는 정말 머리가 쭈뼛하고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지요.
그 교감 선생님께서 졸업식 날, 3년 동안 교지 편집을 잘했다고 저에게 공로상을 주셨습니다. 그때 편집을 지도하시던 국어 선생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인쇄소에서 그러더라. 도대체 김재윤이 누구냐고. 이렇게 많은 원고를 혼자 다 썼냐고…”
그 당시, 이름은 다른 사람으로 나갔지만 혼자서 서간문, 수필문, 감상문, 소설에 이르기까지 교지에 들어가는 원고들을 선생님께서 쓰라면 써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글을 쓰는 기계였지요.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에 별을 보고 들어가는…. 그 당시 그렇게 수많은 원고를 읽고 쓰다 보니 어느새 글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정말 어느 순간과도 바꿀 수 없는 눈부신 젊은 날이었습니다.
새벽 별을 보기 위해선
새벽에 깨어있어야 한다.
세상을 굽어보기 위해선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
세상을 밝히기 위해선
그대가 먼저 등불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별이 되고,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미소가 되어도 좋으나
그대가 빛나는 건
오직 자신이 되었을 때이다.
그것이 가장
부끄럽지 않은 때이다.
새벽 별을 보기 위해선
새벽에 깨어있어야 한다.
세상을 굽어보기 위해선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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