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 무술도장을 다니는 것은 일종의 학원개념으로 바뀐지 오래되었다. 대개의 학부모들은 태권도, 합기도 등 무술도장에 아이들을 보내는 이유는, 등하교 차량이용, 하교후 아이들을 돌보는 베이비시터 역할, 공부에서 받은 스트레스 해소, 학교체육 선행학습효과, 자신감 업, 그리고 더불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호신술을 배울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무술의 주목적이 실제로는 가장 하위의 곁가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국가의 공권력이 모든 국민을 보호해 줄거라는 기대, 2011년 학생체벌금지법, 학생인권향상, 자유로운 개인주의 확산 등으로 싸움과 폭력을 우리들 시야에서 지워버린 것이 큰 이유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학부모들이 본인 자녀는 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절대 되지 않을거라는 근거없는 확신에 있다. 또한 자녀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도 크겠지만, 자녀를 바라보는 눈은 이미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패턴을 이해할 수는 없다.
어떠한 근거의 데이터, 통계자료를 보여줄 필요도 없이, 폭력은 계속 존재하고 누구나 그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분담을 한다. 요즘아이들은 정말 무서울 것이 없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훈계도 못하고, 학교 선생님도 회초리가 없으니 무서워하지 않는다. 예의범절과 어른 공경의 의미가 사라진 시대에, 폭력적인 드라마와 게임에 빠진 아이들은 맞아서 아프다는 의미를 잘 모른다. 그래서 다른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한다. 물론 자신은 그 고통의 의미를 모르고 강자의 착각속에 쾌락을 느낄 뿐이다. 그 아이들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것이 폭력서클의 언니, 오빠들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술도장도 별다른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무술은 힘들고 고된 수련과 호신술을 배우면서 자신도 꺾이고 내동댕이쳐서 쓰러지고, 겨루기를 통해서 맞아보면서 온몸에 멍과 근육통을 겪는 것이 최소한의 단계이지만 어느 도장에서도 선뜻 그렇게 못한다. 그렇게 하면, 관원들이 빠져나가고, 학부모가 바로 당장 '자신의 자식이 왜 맞았냐고 하면서' 난리가 난다.
내가 꺾이고 맞아보지 않고서 다른 사람을 때리고 던질 수는 없다. 역설적으로 이런 고된 수련을 한 자들만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서 함부로 주먹을 쓰지 않는다. 흰띠, 파란띠, 빨간띠 등의 단계를 제대로 지나온 관원들은 색깔이 변함에 따라 행동도 달라진다.
국가공권력의 보호정도나 학교 교육정책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관심두고 싶지 않다. 변해야 하는 것은 학부모와 도장이다.
나 또한 초등학교때 고등학교 불량배한테 이유없이 폭력을 당해서 멍들고 입술이 터져 피를 흘린 적이 있다.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거울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소리없는 흐느낌과 눈물을 흘리면 다시는 누구한테도 맞지않으리라 결심하고 시작한 것이 합기도이다. 그리고 인생의 반평생을 넘은 나이가 되었다. 돌아보면 아쉽고 후회스러운 순간들도 많지만 그래도 합기도를 통한 고된 수련으로 배운 인내심과 자신감, 그리고 당당함으로 누구한테 머리를 숙이거나 굴종하는 삶은 살지 않았다.
도장은 무술을 하자. 그리고 학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무술을 가르치자. 도장에서 편의시설과 놀이방을 찾지말고, 수련과정과 사부님의 인품을 보고 평가하자. 자녀들이 몇년 도장을 다닌다고 그리고 2~3단을 취득한다고 무술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무술인은 없다. 다만,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삶을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