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로큰롤 시대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두 인물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엘비스프레슬리와 록 기타리스트 척베리다.
엘비스가 대중에게 어필했던 인기 가수였다면 척베리는 기타연주를 통해 로큰롤의 참맛을 느끼게 한 뮤지션이다.
대중의 인지도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나지만 두사람 모두 현대 팝 음악이 탄생하기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록기타 연주의 효시격이 되는 척베리는 비틀즈의 존레논과 롤링스톤즈의 키스리차드등 수많은 록기타리스트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키스리차드는 "마치 내머리위에 수소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라며 어린시절 처음으로 척베리의 연주를 들었을 당시를 회상한다.
"그때부터 그의 연주 기법을 배우는 게 내 생애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아마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록기타리스트들도 그의 영향으로 음악인이 되기로 결심했을 겁니다"
척베리 열풍이 처음으로 예견되었던 것은 1955년 5월 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maybellene>이라는 곡을 녹음 했을 때였다. 블르스와 컨츄리 음악을 넘나들며 그가 튕겨내는 기타 선율은 너무나 신선했다. 당시 녹음실에 함께 있었던 이들은 마치 완전히 새로운 음악 장르를 창조하고 있는 듯한 흥분에 휩싸여 어쩔줄을 몰라했다.
녹음실에서의 이런 열기는 그대로 레코드에 담아졌다. 그해 여름, <maybellene>이 정식으로 발표되고 연주곡으로는 드물게 ㅇ니기 차트 5위까지 오르자 그는 팝음악계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엘비스가 아직까지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 그의 등장과 음악은 더욱 더 충격적이었다.
다음해 크게 히트한 <Roll over Beethoven(56년)>, <School days(57년)>, <Rock & roll music(57년)>, <Sweet little sixteen(58년)>등이 가장 유명한 그의 연주곡 들이다.
그는 철저히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뭉쳐 탄생된 스타였다.
1926년 10월 18일, 평범한 흑인 집안에서 태어난 척베리는 어린시절부터 유일한 취미가 기타를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음악'과 '사랑'을 인생읠 최고의 목표로한 몸상가였던 그는 어린 나이에 덜컥 결혼을 해버렸다. 두 아이의 아빠까지 되었지만 그의 큰 문제는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계속 음악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미용사로 일을 하면서도 밤이면 클럽에 나가 기타를 연주하던 그는 급기야 아예 본업을 팽개치고 음악에만 몰두하게 된다. 결국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사랑을 잃고 시름에 잠겨 있던 그는 시카고로 음악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는데, 이 여행이 그의 음악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시카고에서 만난 블르스 싱어 무디워터스가 척베리를 체스 레코드사의 사장 레오나드 체스에게 소개 시켜줬던 것이다.
척베리의 기타 연주에 홀딱 빠진 레오나르드가 레코드 계약을 제의한 것은 물론이다.
"록이건 블르스이건 R&B이건 우리의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 진정한 음악이다" 척베리가 말하는 음악의 정의다.
청중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록 음악사를 개척했던 그는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기록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