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외광고물법의 다섯 가지 문제점
이 글은 한국광고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월간 [POP SIGN] 제4권 제2호, 통권38호(1996년 4월)에 '현행 옥외광고물법을 진단한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글입니다.
정 석(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설계연구센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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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옥외광고물, 어떻게 볼 것인가?
똑같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고, 같은 사람이 볼 경우에도 그의 입장이나 처지에 따라 똑 같은 대상이 각기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옥외광고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옥외광고물을 대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제각기 다른 입장에서 볼 것이고, 좋고 나쁨을 비롯한 광고물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 평가 또한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도시설계(urban design)를 업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도시설계의 입장에서 옥외광고물을 보면서, 옥외광고물을 규제하고 있는 옥외광고물법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도시설계의 입장이란 어떤 것인가?
사람들은 흔히 도시설계란 '도시를 설계하고, 만드는 일'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요즘 같은 세상에 한 사람이, 또는 몇 사람이 도시를 설계하고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군가가 도시의 골격을 계획하고, 계획에 따라 도로나 공공시설 등을 건설하고, 각각의 대지에 건축주의 의뢰를 받아 건축가가 건축물을 설계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설계도에 따라 건물을 짓는 등 도시계획, 토목, 건축, 도시공학, 조경 등의 여러 분야의 협업을 통해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도시설계를 하는 사람들이 도시를 설계하고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도시설계란 무엇이란 말인가?
도시설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으나, 필자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시환경을 가꾸는 일'이라 생각한다. 건물이나 구조물 등이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고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도시경관(urban landscape)'을 가꾸고, 길이나 공원이 걷기 쉽고 쾌적하도록 '도시공간(urban space)'을 가꾸는 일이 바로 도시설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도시설계의 입장에서 보는 옥외광고물은 광고주나 광고업자, 건축주, 공무원, 주민, 시민의 입장과 어느 면에서는 같고, 또 어느 면에서는 다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설계의 입장에서는 옥외광고물을 어떻게 보는가?
첫째, 옥외광고물은 도시정보체계의 한 요소이다. 약을 사려는 사람은 빨간 '약'자 표시의 약국 간판을 보고 약국을 찾아가며, 아무개 곰탕집이라 적힌 간판을 보면, 그 곳이 곰탕을 파는 식당이라고 하는 정보를 금방 알 수 있다. 이렇듯 옥외광고물은 사람들에게 도시 삶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정보매체라 할 수 있고, 또한 이러한 점에서 옥외광고물은 도시설계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한 것이다.
< 사진1> 빨간 네온으로 표시된 '약'자는 약을 사려는 사람에게 약국의 위치를 알려주는 정보매체이다.
옥외광고물이 광고매체임과 동시에 정보매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신호등이나 도로표지판과 같은 공공성이 큰, 더욱 중요한 정보의 인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적절히 규제되어야 하며, 광고물이 범람하여 광고물을 통한 정보인식이 어려울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또한 적절히 통제될 필요가 있다. 요약하건대, 도시정보매체인 옥외광고물은 도시설계 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옥외광고물은 도시경관을 이루는 한 요소이다. 건물에 부착된 옥외광고물은 건물의 옷과 같다. 잘 디자인된 훌륭한 건물이 조잡한 광고물로 뒤덮여, 마치 잘 생긴 사람이 남루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볼썽 사나워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으며, 반대로 건물은 그저 그런데 산뜻한 광고물로 인해 더욱 눈길을 끄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옥외광고물은 도시경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도시경관의 형성을 위해 건물의 규모나 형태를 통제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도시경관을 이루는 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옥외광고물 역시 도시설계 차원에서 적절히 통제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요약하건대, 옥외광고물은 건물 바깥에(屋外) 게시하여 널리(廣) 알리는(告) 효과를 얻기 위한 '광고매체(advertising media)'임과 동시에, 도시 삶에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도시정보매체(urban information media)'이고, 도시경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도시경관요소(urban landscape element)'이므로, 단순히 광고물로만 보지 말고 도시설계 차원에서 보고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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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옥외광고물법, 무엇이 문제인가?
옥외광고물이 이처럼 광고매체임과 동시에 도시정보매체이고 도시경관요소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옥외광고물의 제작이나 게시를 단순히 광고주, 건축주, 제작업체 등에 방임해버리거나 시장경제의 논리에 맡겨둘 수는 없을 것이다. 시민 개개인이나 기업의 표현자유를 존중해주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옥외광고물로 인한 폐해로부터 주민과 도시환경을 또한 보호하기 위해 공공의 관점에서 적절히 통제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나라나 도시에서는 옥외광고물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 즉 옥외광고물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옥외광고물을 관리하기 위한 우리 나라의 옥외광고물법 연혁을 보면, 도로에 광고물을 설치할 경우 경찰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 일제시대의 [도로취체규제(道路取締規制)]와 해방 이후 각 도별로 제정된 [광고취체령(廣告取締令)]을 거쳐 1962년에는 [광고물등 단속법]이 최초로 제정되었으며, 1980년의 2차 개정 시에는 [광고물등 관리법]으로, 1990년의 3차 개정 시에는 [옥외광고물등 관리법]으로 명칭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법을 시행하기 위해 제정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의 연혁을 보면, 최초로법이 제정되었던 1962년에 지방별로 [광고물등 단속법 시행규칙]이 제정되어 수 차례의 개정을 거듭해오다가, 1991년에는 [옥외광고물등 관리법 시행령]이 내무부령으로 제정되고, 각 지방의 시행규칙 대신에 시도별로 [옥외광고물 관리조례]가 제정되어 현재의 [법-시행령-조례]의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30년이 넘는 역사를 갖는 우리의 옥외광고물법은 제정 이후 수 차례의 개정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광고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변신을 거듭해왔으나, 일본의 광고물법을 모방하여 만들었던 제정 당시의 법체계나 규제내용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 문제조항들을 부분적으로 개정하는 정도에 그쳐, 재료나 표현방식 및 광고물의 수준 등이 법이 제정되었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격히 달라져버린 오늘날의 광고물을 관리하는데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법광고물을 양산하는 문제법규'라든가 '신세대 광고물을 통제할 수 없는 쉰세대 법규'라는 지적과 비아냥거림까지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의 옥외광고물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대단히 많다. 이 가운데에는 어떤 종류의 광고물의 크기나 개수를 늘일 것인가, 줄일 것인가 하는 등의 세부적인 문제도 있고, 법의 목적이나 분류체계, 규제권한 등과 같은 근본적이고 골격이 되는 문제 또한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 가운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시급히 고쳐야 할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법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
모든 법은 그 첫머리에 법이 무엇을 위해 규제나 간섭을 하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법의 목적이 분명해야 그 법의 규제를 받는 사람들이 법의 정신은 물론 규제의 이유와 규제내용 및 방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러한 이해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법의 집행 또한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옥외광고물법은 그 목적부터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어 문제다.
옥외광고물법 제1조에 명기되어 있는 목적을 보면 옥외광고물을 규제하는 이유로 '미관풍치'와 '미풍양속'의 유지 및 '공중에의 위해방지' 등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미관풍치란 아름다움과 멋을 의미하고, 미풍양속이란 고유의 풍속이나 문화를 의미하는 말로 요즘 시대에는 잘 쓰이지 않는 용어일 뿐만 아니라, 옥외광고물을 규제하는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한 가지 측면, 즉 아름다움과 전해져 내려오는 고유의 풍속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옥외광고물을 규제하는 또 다른 근본적인 이유나 목적이 빠져있다. 또한 이러한 규제 목적에 근거한 규제내용을 들여다보아도 한글을 사용하게 하거나 광고내용 가운데 범죄행위나 퇴폐적인 내용을 표현하지 못하게 한 점등의 몇 가지 내용을 빼면, 목적에 부응하는 아름다운 광고물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규제내용은 거의 없어 규제목적과 규제내용이 서로 다르고, 그래서 더욱 혼란스럽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우리와는 다른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의 예를 들면, 샌프란시스코시의 경우 광고물법의 목적으로 독특한 도시경관의 보전, 불쾌한 광고물 경쟁의 방지, 방문객에게 대한 매력의 제공, 보행자 및 운전자의 안전에 대한 위험요소 방지, 주거지역의 보호, 기업발전의 환경 제공 등을 명기하고 있으며, 시애틀시는 매력 있는 광고물의 장려, 광고물의 범람 억제, 도시의 시각환경 강화, 주변경관과의 조화, 시민의 이익과 안전 보호, 상업의 강화, 선전 및 사업의 권리 보호 등을 법의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들의 경우 법을 통한 광고물 규제의 이유를 미관이나 풍속의 유지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 대신에 도시경관이나 주변환경에 대한 고려, 광고물 범람의 방지, 좋은 광고물의 장려, 주민에 대한 침해 방지, 기업의 발전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옥외광고물은 광고매체임과 동시에 정보매체이며 또한 도시경관을 이루는 요소이므로 법의 목적에서부터 이러한 점이 분명히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법은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도시마다의 독특한 여건과 특성을 고려하여 법의 목적이 구체적이고 특색 있게 제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국 어느 곳이나 똑같이 적용되는 법에만 목적이 언급되어 있고, 각 시도조례에는 법과 시행령으로부터 위임받은 사항을 규정한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언급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의 법은 그 법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 또 무엇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지가 분명하지 않은 채 한 가지 측면에만 편중되어 있으며, 옥외광고물의 규제 목적이 지역별로, 도시별로 독특하게 천명되지 않은 채 상위 법에서 제시하는 목적이 모든 지역, 모든 도시에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둘째, 광고물의 분류체계가 단순 나열형이다.
나무나 함석판에 글씨를 써서 게시하여 통상 간판이라 불렸던 옛날의 옥외광고물과는 달리 요즘의 옥외광고물은 형태, 재료, 표현방식 등에 있어 매우 다양해졌다. 이처럼 다양한 옥외광고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규제하기 위해서는 옥외광고물의 분류체계가 잘 짜여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행 옥외광고물법의 분류방식을 보면 분류기준이 뒤섞인 채 열일곱가지 종류를 단순 나열형으로 열거하고 있다.
즉, 형태의 차이에 따른 분류(가로형간판, 세로형간판), 광고내용에 따른 분류(공연간판), 광고물의 설치위치나 게시방식에 따른 분류(옥상간판, 지주이용간판, 돌출간판, 창문이용 광고물, 공공시설물이용 광고물, 교통수단이용 광고물, 교통시설물이용 광고물), 재료 등 그 밖의 기준에 따른 분류(현수막, 애드벌룬, 벽보, 전단, 선전탑, 아취광고물)가 뒤섞여 있어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류방식에 포함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광고물이 등장할 때마다 광고물의 종류를 늘이기 위해 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분류방식은 광고물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던 옛날의 광고물을 염두에 둔 분류방식으로, 나날이 새로워지는 요즘의 광고물을 분류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은 구시대적 분류방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벽면에 부착하는 판류형 광고물을 가로형과 세로형으로 구분하고 있는 현재의 분류방식으로는 정방형, 원형, 타원형의 형태를 갖는 광고물을 구분하기 어렵고, 캐노피나 차양을 이용한 광고물 역시 현재의 분류체계에 포함시키기 어려워 광고물 관리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는 형편이며, 공연간판만을 유독 별개의 종류로 구분한다든지, 전단과 같은 유동형 광고물을 옥외광고물로 보는 것 등도 대단한 난센스라 여겨진다.
< 사진2> 거리를 걷다 보면 가로형간판인지 세로형간판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옥외광고물을 흔히 볼 수 있다.
< 사진3> 차양막을 이용한 광고물 역시 현재의 분류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광고물 가운데 하나이다.
옥외광고물의 종류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단순 나열형 분류방식으로 광고물을 분류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더구나 현재의 법처럼 광고물의 표시방법에 대한 규제를 이러한 분류방식에 따라 하나하나 규정하고 있는 것도 대단히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규제내용이 복잡해져 이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나열형 분류체계 대신에 가장 중요한 분류기준에 따라 광고물을 크게 나누고 여기에 광고내용이나 표현방식에 따른 분류가 겹쳐지는 '조합형 분류체계'로 바꾸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대부분의 외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것처럼 '부지내 업소광고물(on-site business sign)'과 '부지외 선전광고물(off-site advertising sign)'을 구분하여 규제를 차별화하고, 게시기간이 길지 않은 '임시 광고물(temporary sign)'을 별도로 구분하는 것 등도 광고물의 분류체계 개편에 고려되어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셋째, 규제내용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법은 쉬울수록 좋다. 간단명료해야 법을 집행하는 사람을 물론, 법의 규제를 받는 사람 역시 법을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또한 법을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옥외광고물법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옥외광고물법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뿐만 아니라, 법을 접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필자 역시 이 법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옥외광고물법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우선,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법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고, 분류체계 역시 명쾌하지 않은 단순 나열형이며, 이러한 분류체계를 골격으로 표시방법을 규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결국, 이 법이 권장하는 광고물이 무엇이고, 이 법이 금지하는 광고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법 정신에 맞게 광고물을 만들고 게시할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수하면 될 것인지에 대해 쉽고도 분명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매우 복잡한 법의 구성체계를 들 수 있다. 법과 시행령에서 다루고 있는 법령의 구성이 복잡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광고물의 표시방법에 대한 조항들 중 서로 관련이 있는 유사한 내용들이 각기 다른 조항으로 떨어져 있어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는 광고물을 설치할 수 없으며, 또 어느 지역에 광고물을 설치할 경우 허가나 신고를 받아야 하는가와 같은 광고물의 표시지역에 관한 조항의 경우를 보면, 광고물의 허가 또는 신고지역(법 제3조, 시행령 제6조)과 광고물의 표시금지지역 또는 장소(시행령 제10조) 등이 서로 동떨어져 있으며, 표시제한 또는 완화를 위한 특정구역의 지정에 관한 조항의 경우를 보아도, 표시제한 특정구역은 시행령 제12조에, 표시완화 특정구역은 시행령 제32조에 있어 대단히 혼란스럽다. 또한 광고물이 일반적으로 준수해야 할 일반적 표시방법에 관한 조항을 보면, 광고물 등의 표시금지 물건(시행령 제11조), 광고물 등의 일반적 표시방법(시행령 제13조), 벽면이용 광고물의 일반적 표시방법(시행령 제14조), 전기이용 광고물의 표시방법(시행령 제31조) 등이 여기저기 뒤섞여 있어 복잡해 보인다.
이 밖에도 건물 측벽의 가로형간판과 옥상간판 최상단의 높이를 52미터로 규제하는 점, 유독 공연간판만을 건물의 폭과 높이에 대한 비율로 규모규제를 하는 점, '간판'과 '광고물' 또는 가로형/세로형간판에서의 '입체형'과 옥상간판의 '입체형'과 같이 용어정의가 불명확하거나 동명이의(同名異意)격인 용어를 혼용하고 있는 점 또한 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로 들 수 있다.
넷째, 광고물구역(Sign Zone)의 개념이 거의 없다.
옥외광고물을 규제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설치되는 광고물이 어떤 것인가(광고내용, 크기, 모양, 개수, 재료 등)이고, 둘째는 광고물이 설치되는 곳이 어디인가(주거지역, 상업지역 등)이며, 셋째는 광고물의 표현방식(전기이용, 점멸, 애니메이션 등)이 어떠하며, 그래서 주변에 어느 정도의 영향(주거환경 침해, 운전자나 보행자의 안전 위협 등)을 주는가 하는 점이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광고물이 설치되는 곳이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같은 크기와 같은 표현방식의 광고물일지라도 그것이 설치되는 곳이 어디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나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치장된 대형 광고물이 불빛을 번쩍이며 명동거리에 설치될 경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활기와 생동감을 줄 수 있을 지 모르나, 그것이 주택가나 고속도로변에 설치된다면 주거환경이나 도로를 지나는 운전자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진4> 고속도로상의 터널 위에 설치된 광고물은 운전자의 주의를 빼앗을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따라서 옥외광고물의 규제는 광고물이 설치되는 곳이 어딘가에 따라, 다시 말해 자연경관이나 주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광고물 규제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큰 곳인가, 아니면 상업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광고물 규제를 완화해 줄 필요성이 큰 곳인가에 따라 옥외광고물 규제를 달리 하는, '광고물구역(sign zone)'의 개념에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필수적이며 또한 효율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옥외광고물법 체계를 보면 허가 및 신고지역(시행령 제6조), 광고물 등의 표시금지지역 및 장소(시행령 제10조), 표시제한 특정구역(시행령 제12조), 표시완화 특정구역(시행령 제32조) 등을 제외하면, 이러한 광고물구역(sign zone)의 개념이 거의 없고, 규제의 골격이 '광고물구역'이 아닌 '광고물 종류'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의 법이 갖는 한계란 광고물이 설치되는 곳이 어디인가(한 도시 안에서도)에 따라 광고물의 종류나 표현방식에 대한 규제가 달라질 수 있고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채, 가로형간판의 크기는 어떠해야 하고, 세로형 간판의 개수는 어떠해야 하는 가와 같은, 광고물의 종류별 규제의 모범답안(전국에 적용되는)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외국 도시들은 광고물구역을 중심으로 광고물 규제를 하고 있으며, 옥외광고물법의 구성 역시 광고물구역의 구분을 근간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광고물구역의 구분은 대부분 도시계획법체계상의 용도지역(zoning) 구분을 기초로 하여 설정하고 있으며, 나라나 도시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주거환경 보호, 공공의 가치, 안전등의 이유로 광고물 규제를 강화할 지역(주거지역, 공공용도지역, 오픈스페이스 지역, 고속도로변 등)과 상업활동의 장려 등을 이유로 광고물 규제를 완화할 지역(상업지역, 공업지역, 도심지역 등)을 크게 구분하고, 특별한 목적의 광고물 관리가 필요할 경우 '특별구역(special sign district)'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최근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사 전광판이나 고정식 애드벌룬의 문제를 푸는 실마리 역시 '광고물 구역(sign zone)'의 개념에 대한 이해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광판이나 고정식 애드벌룬의 경우 모두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큰 유형의 광고물이다. 따라서 광고물의 크기나, 거리제한, 설치 가능한 건물의 높이, 설치 가능한 건물의 분포 등에 관한 논의에 앞서, TV나 영화와 다를 바 없는 정도의 풀 컬러 애니메이션(full color animation)이나 자유로운 형상의 고정식 애드벌룬과 같은 종류의 옥외광고물이 설치되어도 무방한 곳은 어디이고, 설치될 경우 그 영향이나 폐해가 우려되어 설치를 금지해야 할 될 곳은 어디인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물론 현재처럼 상업지역 전체에서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상업지역 안에서도 제한적으로 허용범위를 지정하여 허용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며, 광고물의 영향을 직접 받게될 주민과 일반 시민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반드시 거치면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 사진5> 설치경쟁이 치열해진 언론사 전광판, TV와 다를 바 없는 화질을 자랑하는 애니메이션 전광판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감안하여 설치를 허용해야 할 것이다.
< 사진6> 최근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고정식 애드벌룬
다섯째, 광고물의 규제권한이 중앙정부에 있다.
현재의 옥외광고물법 체계는 법(옥외광고물등 관리법)과 시행령(옥외광고물등 관리법 시행령) 및 조례(옥외광고물등 관리조례)로 이루어져 있는데, 광고물의 표시방법 등에 관한 규제내용은 대부분 시행령(내무부 관장)에서 다루고 있고, 시도조례는 시행령에서 위임받은 사항만을 다루고 있으며, 시군구조례는 현재 제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결국 우리 나라의 옥외광고물 규제 주체는 중앙정부이고, 중앙정부가 정한 규제내용이 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 할 것 없이 전국 어느 곳이나 거의 같이 적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 지역의 특성 및 도시경관을 고려하여 옥외광고물을 관리해야할 각 지방자치단체는 자율적인 광고물 관리를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최근 내무부의 옥외광고물등 관리법 시행령 개정(3차)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개정안의 내용에 대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광고사업업체와 행정기관, 또는 광고사업업체간에 첨예한 대립이 표출되는 것 역시 규제권한이 중앙정부에 있는 우리의 법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행령에서 한 번 정해지면 그 것이 한 동안 전국에 적용될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각자의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행령이 개정되도록 사활을 걸고 다투게되며, 시행령 개정의 주체인 내무부 또한 상반된 여러 입장을 고려하면서 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일반해'를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옥상광고물의 고도나 거리제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또는 새로운 유형의 옥상광고물을 어떻게 규제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는 중앙정부에서 '일반해'를 제시해주기 쉽지 않은 문제일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전국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모범답안을 찾느라 애쓰는 것 또한 대단한 난센스이다. 이러한 문제는 도시마다의 특성을 감안하고,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광고물의 설치 허용여부, 허용할 경우 설치 가능한 구역의 범위, 광고물의 크기, 거리제한, 표시방법 등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옥외광고물법 체계를 보면 모두 지방정부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미국의 경우 각 지방도시의 도시계획법체계(zoning code)내에서 자체적으로 옥외광고물 관리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는 중앙정부의 옥외광고물법으로부터 지방의 도도부현(都道府縣)의 조례로 옥외광고물의 규제에 관한 대부분의 사항이 위임되어 있어, 지방의 특성을 살린 옥외광고물의 관리가 확실히 보장되는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도 이제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현재의 중앙정부 권한 아래에 있는 법과 시행령 중심의 옥외광고물 관리체계를 시도조례 중심으로 바꾸어가야 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시군구조례를 제정하여 기초자치단체 중심의 옥외광고물 관리체계로 정착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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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옥외광고물법,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앞에서 우리의 옥외광고물법이 지니는 여러 가지 문제점 가운데 시급히 고쳐야할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 다섯 가지를 지적한 바 있다. 요약하건대, 우리의 법은 우선 그 목적부터 분명하지 않고, 규제의 골격이 되는 옥외광고물의 분류체계가 새롭게 등장하는 광고물을 담을 수 없을 만큼 구시대적이며, 법의 규제내용이 복잡하여 이해하기 어려운데다, 규제방식 또한 '광고물구역(sign zone)' 중심이 아닌 '광고물 종류' 중심으로 되어 있어 광고물의 범람이나 과대표현으로부터 주거환경 등이 효과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광고물의 규제권한을 중앙정부가 쥐고 있어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의 특성은 물론, 도시내 각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여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광고물 관리행정을 펼치기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등이 한시바삐 고치고 바꾸어야 할 중요한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우리의 옥외광고물법을 무엇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가? 법을 새롭게 바꾸기 위해서는 법 개정의 골격은 물론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다만 이 중에서도 법을 바꾸는 데 있어 중요한 골격이 되는 다음의 세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시대에 맞지않는 낡은 법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1960년대에 일본의 법을 모방하여 제정되어 현재까지도 그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법을 이제는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채, 지금까지처럼 그때 그때의 문제조항 위주로 지엽적인 법령개정을 한다면, 부분적인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될 지 모르나 우리 법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비효율적이고 비능률적인 법령개정을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새롭게 바꾸어야 하는가? 우선은, 분명하지 않고 모호한 법의 목적을 바꾸고, 혼란스러운 용어를 새롭게 정리해야 하며, 광고물의 분류체계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행령은 물론 법의 개정이 필요하며, 차제에 법의 구성체계 개편 및 규제권한의 이양까지를 포함한 대폭적인 법령개정 작업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법의 목적이나 용어정의, 그리고 분류체계 등을 바꾸는 데 있어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법이나 시행령에 모범답안을 담으려 애 쓸 필요도 없고, 또한 그래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목적이나, 독자적인 광고물 관리행정에 필요한 용어정의 또는 분류체계 등을 설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방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과 시행령에는 모든 지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가장 본질적이고 근간이 되는 사항만이 담겨야 할 것이며, 또한 자치와 자율행정의 경험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가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선택적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메뉴나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짜여져야 할 것이다.
둘째, 옥외광고물의 규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광고물 종류별로 표시방법을 규제하고 있는 현재의 법을 '광고물구역(sign zone)'별로 규제하도록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종류의 광고물인가에 앞서 그것이 설치되는 곳이 어디인가에 따라 법의 체계가 재구성될 수 있고, 그래야만 법이 간단해지고 또한 이해하기 쉬워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도시계획법체계상의 용도지역(zoning)을 감안하여 광고물구역을 구분, 지정하고 각 구역별로 허용하는 광고물의 종류와 표현방식 등을 규정하면 된다.
또 한 가지는 '부지내 업소광고물(on-site business sign)'과 '부지외 선전광고물(off-site advertising sign)'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고 이를 차별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옥외광고물은 도시정보매체라고 하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 대부분의 도시들이 가로명이나 지번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주소나 가로명을 통해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얻을 수 있는 장소나 지점을 찾는데 큰 도움을 주는 옥외광고물의 정보매체로서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광고매체의 기능 위주로 설치되는 '부지외 선전광고물'과 광고매체의 기능과 정보매체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부지내 업소광고물'은 차별적으로 규제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 사진7> 부지내 업소광고물은 광고매체의 기능 이외에도 정보매체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 사진8> 부지외 선전광고물은 도시정보매체의 기능보다는 광고매체의 기능 위주로 설치된다. 선전광고물이 설치된 곳에 찾아가 물건이나 상품을 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광고물이 주변환경에 주는 영향의 정도에 따라 규제를 차별화 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주변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형광고물, 옥상광고물, 전기이용 광고물(특히 점멸, 애니메이션 등) 등은 주거환경이나 운전자의 주의 등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규제권한을 지방에 넘겨야 한다.
각 도시나 농어촌에 설치되는 옥외광고물을 관리하고 규제하기 위한 대부분의 규정이 내무부 소관의 옥외광고물등 관리법 시행령에 담겨있다는 점은 대단한 난센스이다. 이것은 아마도 옥외광고물을 도시정보매체나 도시경관요소로 보지 않고, 단순히 경찰의 단속대상으로 보고 광고물을 경찰의 허가를 받아 설치하도록 규정했던 일제시대와, 1960-70년대의 광고물 단속위주의 관행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지방자치시대 이후에도 이러한 관행이 계속된다면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의 정착은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마다의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옥외광고물 관리행정은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옥외광고물의 규제권한을 지방에 이관하는 데 있어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지금과 같이 법과 시행령에서 대부분의 사항을 결정하고 단지 일부조항만을 시도조례로 위임하는 형식에서 탈피하여, 대부분의 사항을 시도조례에서 결정하도록 하고 가장 중요하고 빠뜨릴 수 없는 제한된 사항만을 법과 시행령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광고물 규제의 주체는 지방이고 중앙정부는 이를 돕는 역할 구도를 전제로, 법과 시행령의 개정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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