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스승의 날. (칼럼)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곳곳마다 장미가 화려 하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는 스승의 날이 없었다. 그때는 스승의 날이 없어도 선생님은 하늘같았고 우러러 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꿈도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 만큼 선생님은 우리의 꿈이요 희망이었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키울 때는 스승의 날이 있었다. 아이가 넷이나 되는 스승의 날은 곤혹스러웠다. 무슨 선물을 어떻게 해야 실례가 되지 않을 지 서로 물어보고 의논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이유로 보니 스승의 날을 변하게 만든 것은 학부형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선생님들도 책임이 있다. 선생님은 우러러 보는 분인데 스스로 노동자를 자처하니 말이 아니다.
많은 세월이 흘려 주변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이들뿐이 아니라 학부모나 선생님이나 모두가 변했다. 우리의 교육을 입시위주로 바꾸어 놓은 학교의 풍경은, 그리고 부모님의 지나친 학교생활의 간섭은 아이나 학교도 망치고 있다. 더구나 성적만 가지고 학교나 아이를 평가하는 이 사회도 문제다. 스승의 의미와 교육의 의미를 다시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요즈음 아이들은 임시와 관련이 없으면 모든 것을 하지 않는, 모든 것에 의미와 관심이 없는 학생과 학교로 변해 가는 것이다. 이번 스승의 날에도 선생님들은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한 모양이다. 스승의 날만 되면 선생님들이 곤혹스럽다고 한다. 부정 청탁금지법이 생기면서 스승의 날을 없애 달라는 선생님들의 요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요사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교권 침해 때문이란다. 나도 간혹 TV나 신문을 통해 학교에서 일어나는 실망스러운 사건을 보고 놀란다. 학부형이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경제적으로 돈이 많다고 해도 선생님에게 갑 질은 안 된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남편의 직위에 따라 부인도 남편같이 행동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갑질은 있었던 것 같다.
더구나 요사이는 아이가 귀하다보니 내 집이나, 남의 집 할 것 없이 아이들이 버릇이 없고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많이 본다. 자식을 잘 못 키우면 아이를 망치는 것은 물론 남에게 까지 페를 끼친다. 그래서 학교 교육은 실력도 중요 하지만 인격과 교양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교육이다. 그래서 교육은 백년대계란 말이 있다. 아이 하나 만들기가 그만큼 중요하고 어렵단 말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스승의 날은 있어야 한다. 지금의 교육에 문제가 많지만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주춧돌이 될 수 있는 바른 제자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라고 싶다. 교육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잠재능력을 일깨우고 원만한 인격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고 그 역할을 할 사람은 부모도 아닌 선생님뿐이다.
학창시절에 나에게 감동을 주신 스승을 찾아뵙고 꽃 한 송이 달아드리고 큰 절 올리는 스승이 많기를 바란다. 앞으로 아이들의 교육은 선생님께 맡기고 학교나 부모도 아이들의 입시에만 목숨을 걸지 말고 좋은 재목이될 제자를 만들수 있도록 부모와 학교는 선생님을 밀어드리고 있는 힘을 다 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수고 하시는 선생님께 스승의 날을 축하드립니다.
올해는 학교 앞에 축하 현수막 하나 걸려 있지 않다. 쓸쓸한 스승의 날이다. 학교가 더욱 허전해 보인다. 실버기자 이 홍자. (사진은 몇년 전에 찍은 것임)
첫댓글 스승의 날이 예전같지 않은 건 사실이네요~그래도 저희 복지관은 작은 선물과 큰 기쁨을 드리고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