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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2.21 03:30
갯민숭달팽이
▲ 갯민숭달팽이의 한 종류인 '푸른갯민숭달팽이'. 독이 있어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해요. /플리커(Sylke Rohrlach)
요즘 미국 텍사스주(州)의 한 바닷가에서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대요. 몸길이는 2㎝ 정도이고 푸른색과 하늘색 몸뚱어리에 꽃 모양의 지느러미 같은 것이 달린 바다 동물들이 밀려오고 있거든요. 강력한 독에 쏘일 수 있으니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도 이어지고 있죠.
생김새 때문에 푸른 용(blue dragon)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이 동물은 갯민숭달팽이의 한 종류랍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뜻하는 '개'와, 털이 있어야 할 부분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민숭민숭하다'가 합쳐진 이름이에요.
갯민숭달팽이는 육지에 사는 달팽이·민달팽이와 친척뻘인 연체동물인데요, 먼 옛날에는 갯민숭달팽이도 육지의 달팽이처럼 껍데기를 갖고 있었지만, 점차 퇴화해서 지금은 사라졌대요. 갯민숭달팽이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집을 포기하는 대신 화학물질을 분비하거나 다른 종의 독을 이용하는 등 다양한 기술로 자신을 방어하게 된 것이죠. 일부 갯민숭달팽이에게는 껍데기의 흔적도 남아있어요.
갯민숭달팽이는 전 세계 바다에 3000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 바다에도 400여 종이 서식해요. 수온이 아주 낮은 남극 바다에까지 살고 있고요. 인도네시아·팔라우·솔로몬제도 등의 섬나라에는 민물에 사는 종류도 있대요. 대부분 몸길이 2~3㎝ 정도의 몸집이지만, 40㎝가 넘는 종류도 있어요.
갯민숭달팽이의 특징 중 하나는 아름다운 생김새랍니다. 파랑·노랑·빨강 등 화려한 천연색을 띠거나 현란한 무늬를 하고 있어요. 물고기나 거북·게 등 포식자에게 '나를 잡아먹으면 큰일 날 수 있다'고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해요. 몸에는 뾰족한 바늘 같은 것이 돋아있기도 하고, 머리 쪽에 큼지막한 더듬이 비슷한 게 나있는 종류도 있죠.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갯민숭달팽이들이 몸을 펄럭이며 물속을 이동하는 모습은 수중 다이버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장면이기도 하대요.
갯민숭달팽이는 종류에 따라 먹잇감이 제각각이에요. 해조류를 먹는 초식성도 있고, 산호·해면·히드라 등을 먹는 육식성도 있어요. 육상의 달팽이·민달팽이처럼 이빨이 촘촘하게 돋은 혀(치설)로 먹잇감을 갉아 먹기도 하고, 동그란 입으로 흐물흐물한 먹잇감을 쪽쪽 빨아 먹기도 해요. 어떤 종류는 입 부분을 크게 펼쳐서 먹잇감을 감싼 다음 소화시키기도 하지요.
일부는 먹잇감을 단순히 소화만 시키는 게 아니라 생존에 아주 유용하게 활용하기도 한답니다. 가령 일부 초식성 종류는 해조류의 엽록소를 몸속에 저장해두고 있다가 식물처럼 광합성을 해서 에너지를 얻어요. 일부 육식성 종류는 해파리 등 독성분이 있는 먹잇감을 잡아먹은 다음 몸속에 독을 농축해요. 이렇게 저장해 둔 독은 천적에게 위협을 당할 때 쏘는 방어 무기로 써요.
이런 독특한 생존법은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죠. 갯민숭달팽이의 독성분으로 항암제나 진통제를 개발하는 연구 등이 진행 중이래요. 아름다운 생김새 때문에 수족관 전시 생물로도 인기가 많아 인공 양식도 시도되고 있지만 쉽지는 않대요. 자연에 서식하는 먹이를 알아내고 먹이기가 어려워서라고 하네요.
정지섭 기자 도움말=국립생물자원관 길현종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