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설악산의 장엄함과 수려(秀麗)한 비경(秘經)을 우리 같은 평범한 시정(市井)의 범부(凡夫)가 평한다는 것은 설악에 대한 불경(不敬)이다.
설악산의 평가는 산신령(山神靈)만의 고유한 권한이다.
설악산은 신성하고 숭고(崇高)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雪山)·설봉산(雪峰山)·설화산(雪華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 끝에 성불(成佛)한 히말라야산을
설산(雪山)이라고 한다.
산을 문학적으로 기록한 자료로서는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중에서 우리나라 명산을 기록한 글이 가장 기본이 된다고 생각하여 아래와 같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산(名山)기록 내용을
소개 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산(名山)은 어디를 말하는가?
옛날에 8 도 산맥의 조종(祖宗)이 되는 산이라 하여 12 종산(宗山)이라는 것을 정하니 다음과 같다.
삼각산-서울의 북방, 일명 북한산, 836 m, 오악의 중악
백두산-2744 m, 오악의 북악
금강산-1238 m, 오악의 동악
지리산-1915 m, 오악의 남악
오대산-강원도 정선과 평창 사이, 1563 m
속리산-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 사이, 1057 m
원산-함경북도 길주와 함남 단천, 2309 m
낭림산-평남 영원과 평북 희천 사이, 2014 m
두류산-평남 양덕과 함남 문천 사이, 1324 m
분수령-강원도 평강의 서북, 1128 m
태백산-강원도와 경북 사이, 1561 m
장안산-전북 장수, 1237 m 이다
위의 12 종산(宗山) 외의 산으로
묘향산-평북 영변과 희천 사이, 1909 m, 오악의 서악
한라산-1950 m
구월산-황해도 은율과 신천 사이, 954 m
설악산-1708 m
우리나라 4대 명산은 어디를 말하는가?
우리나라의 동서남북 사방에서 경치로써 대표되는 명산을 뽑아서
동쪽은 금강산(金剛山)
남쪽은 지리산(智異山)
서쪽은 구월산(九月山)
북쪽은 묘향산(妙香山)을 4대 명산이라고 일컬었다
이 4대산을 두루 보고서 마지막 묘향산에 들어가서 일생을 마친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이 4대산의 우월(優越)을 판정하기를
금강산은 秀而不壯(수이불장)-빼어나게 아름답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壯而不秀(장이부수)-웅장하되 빼어나게 아름답지 못하고
구월산은 不秀不壯(부수불장)-빼어나게 아름답지도 못하고
웅장하지도 못하고
묘향산은 亦秀亦壯(역수역장)-빼어나게 아름답고 또한 웅장함하니라
하였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사실 설악산은 아름다운 산이면서도 금강산 명성 때문에 소외당한 산이다. 일제 강점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쓰여진 산행(山行)의 기행문(紀行文) 가운데 가장 그 양(量)이 많은 곳이 금강산 기행이다. 명색이 글줄이나 읽었다는 사람으로 가정형편이 웬만한 사람은 금강산을 구경하고 그 기행을 자랑 했다.
금강산은 중국 사람들조차 원생고려국일견금강산(願生高麗國一見金剛山-원컨대 고려땅에 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고 싶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산이기에 역사도 시문(詩文)도 많은 명산이다. 설악산이 금강산의 명성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 역사나 시문(詩文)으로 봐도 금강과 비교가 되지 못한다. 이런 탓으로 옛 금강산은 자료가 많은데 설악산을 소개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남선(崔南善)전집이나 이광수(李光洙)전집에는 모두 장문의 금강산 기행문만 실려 있다. 설악산은 일제 때까지도 찾는 사람이 드물었다. 다만 조선왕조 때에는 김시습(金時習)과 김삼연(金三淵)이 한때 머물렀던 탓으로 이 두 선생을 만나러 왔던 사람이 설악산의 경승(景勝)에서 느낀 바를 글로 적어 세상에 알렸던 것이 고작이다. 그러다가 휴전선으로 금강산 길이 막히자 설악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우리에게 친근한 산이 된 것이다.
역사적 기록으로 설악산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것은 일제 때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선생이 10여 일에 걸쳐 설악을 샅샅이 뒤지고 쓴 글이 장문의 “설악행각(雪嶽行脚)”이라는 책이다.
1930년대에 노산 이은상 선생이 설악행각(雪嶽行脚)을 발표하여 세상에서 설악이라는 명산이 강원도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 이전은 금강산에 눌려 설악산은 천하의 설악이 되지 못하였다. 노산 선생이 설악행각을 쓸 때 설악산을 탐승하는데 소요된 날짜가 10일 간이라 하였다. 설악의 전모를 샅샅이 뒤진 끝에 설악이 금강산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마터면 동석(動石-흔들바위) 하나를 빠트릴 뻔 하였는데 끝내 계조암 앞에 이것마저 갖추었다고 할 정도로 설악산과 금강산은 비슷한데 가 많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필자가 독서의 범위가 넓지 못해서 인지는 몰라도 설악산에 관한 기행문은 노산의 “설악행각”이외는 설악산을 알리는 특별한 자료를 보지 못했다.
“설악행각”의 내용은 이곳에 소개 하기는 그 내용이 어려워 다음기회로 미룰 가 한다
다만 이글을 쓰면서 설악산에 관한 충분한 자료를 찾지 못하여 천년의 비경을 지닌 명산을 구경하고도 구체적으로 소개 못하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겨우 이름 모르는 나그네가 쓴 시 한수를 찾았을 뿐이다.
그래서 왕소군처럼 외면당한 설악산이 더욱 애착이 간다.
雪嶽山(설악산)
雪嶽之山高揷空(설악지산고삽공)-설악산 높아 높아 창공에 꽃혔으니
萬玉爭聳靑霞中(만옥쟁용청하중)-일만 玉이 다투어 푸른
놀메(천천히) 솟았구려
蜿蜒一脈作五峰(완연일맥작오봉)-한줄기 꿈틀거려 오봉을 지어내니
海上秀出金芙蓉(해상수출금부용)-바다 위에 금부용이 우뚝이 배어났네
靈圖暗與寶陀合(영도암여보타합)-영도(靈圖귀신상)는 암암리에
보타(寶陀)와 어울려라
작자미상
-농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