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지난 8일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 수녀원에서 강우일 주교(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제주교구장)를 만나 현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강우일 주교는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으로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을 덮으려는 태도는 국민의 지적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앞서 열린 힐데가르트의 날 기념 미사에서 강 주교는 이석기 의원 등은 “자신이 만든 정신적인 감옥으로부터 해방되고 깨어나도록 함께 고민하고 설득하고 치유해야 할 대상이지, 단순히 국가보안법적인 사고의 틀 안에서 반국가사범으로 처단하고 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강우일 주교는 천주교 사제들과 수도자, 평신도들이 시국선언에 나서는 행위는 민주화를 역행하는 정부의 근본적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
|
|
▲ 강우일 주교는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천주교회의 움직임을 ‘성령’의 작용이라며, 정부와 국정원이 진실을 감추지 말고 잘못은 시인하면서 개혁되기를 바랐다. 한편 진실을 전하지 않는 주류 언론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한상봉 기자 |
- 최근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사건으로 각 교구마다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있으며,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님도 시국미사를 봉헌한 바 있습니다. 오는 12일에는 광주대교구에서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주례로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거리 행진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내란음모’로 수사하고 있어서 이런저런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정치평론가들도 저마다 의견을 피력하고 있지만, 교회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교님께서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시지만, 주교회의 차원이 아니더라도 주교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강우일 주교 : 국정원 댓글 의혹사건은 검찰 등 공식 수사기관에서 조사하고 있는 사안이고, 경찰 안에서도 권은희 수사과장 등 실무자들과 윗선의 소리가 다른데, 국정원이 대선 당시 취한 행동이 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두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이제 와서 그 모든 문제를 이석기 의원 문제로 둔갑시켜서 문제의 핵심을 희석시키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런 일은 과거에도 있어 왔던 일입니다. 이 시대에 그런 패턴으로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것은 우리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우산 장사를 한참 하다가 나막신 장사를 하는 격입니다.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 사건으로 자신들이 우산 장사를 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잊게 만들려고 하는데, 국민들의 지적 수준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기가 막힐 뿐입니다.
-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린 이석기 의원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식 언론에서 이 문제에 대해 연일 보도하는데, 이 문제가 발생한 배경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더군요. 한참 이 문제를 관망하면서 지켜보았는데,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경기동부연합 사람들의 지난날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학창시절부터 경기도 광주와 성남 등지에 살았는데, 이 지역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낙후된 곳이었습니다. 정부가 도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도시 철거민들을 다 이곳으로 몰아내서, 이 사람들은 천막을 치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도시 기반시설이 전혀 없는 이곳에 집단수용된 것이지요. 정부는 거기 사는 사람들이 서울로 출퇴근할 수 없게끔 걸어놓았더라고요. 그래서 이곳 광주대단지에서 민중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그러니 그들이 오죽했으면 그런 짓을 했을까 묻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 때 수출주도형 산업정책을 쓰면서, 산업단지의 기반은 영남에서 다 가져가고, 호남 지역은 저곡가 정책으로 타지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산업구조 개편으로 호남 사람들은 곳간이 떨어져서 먹고 살기 힘드니까 공장 일을 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많이 왔지요. 그전까지는 지금처럼 영남이 호남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청계천에 판자촌이 많이 늘어났는데, 서울의 철거민이라는 게 여기서 쫓겨나면 저리로 가고, 저기서 철거당하면 이리로 가고 했죠. 그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광주로 가게 되었는데, 도로 포장도 안 해 주고 정부가 그리로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쏟아 부은 것이지요. 그들은 정부로부터 배제와 차단을 당한 셈입니다.
부모들이 그렇게 당한 걸 보고 자란 사람들이 가슴에 얼마나 한이 맺혀 있겠어요? 경기동부연합 사람들이 대부분 거기서 고등학교 다니고 대학교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경기동부연합에 가담한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졌을지 짐작할 만합니다. 국가는 국민을 밟아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평생에 걸쳐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반국가적인 이데올로기로 흐를 수밖에 없는 단초를 우리나라 전체가 제공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
|
▲ 강우일 주교는 이석기 의원의 시대착오적 사고를 단죄하기에 앞서 그 사람이 그렇게 된 연유를 먼저 캐어물었다. 가난한 삶 속에서 국가에 의한 차별과 배제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 국가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고 폐쇄된 사고에 갇혀 지내왔던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우리 모두가 져야 할 부채라고 보았다. ⓒ한상봉 기자 |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이들은 국민을 앞장서서 짓밟은 게 정부라는 경험만 있었고, 그러니 이런 국가는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결론이 아니겠습니까? 이들은 결국 사회적 배제와 차별 속에서 결국 그들만의 고유한 이데올로기와 국가관을 형성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들은 나라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변화될 수 없다면 혁명적 방법을 써서라도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확신을 지녔던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시대와 현실에서 동떨어진 고착된 사고들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정치인들처럼 그들을 ‘공산주의 종북세력’으로 밑줄 그어 버릴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태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벗어난 세속의 판단과 시각을 답습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이들을 바라보시면서 뭐라 하셨을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며칠 전에 읽은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세리였던 레위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시대의 지도층인 랍비들이 공인된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문제 삼자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시던 것처럼 답변하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남들이 죄인이라고 간주하고, 딱지를 붙인 사람들의 아픔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세리가 아니라면 알 수 없었던 사정을 꿰뚫어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은 그들을 세리밖에는 해먹을 게 없도록 몰아넣고, 그 다음에는 그들을 세리라고 단죄하고 차별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짓입니다.
‘사람을 왜 그렇게 보느냐?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로 봐라.’ 그게 예수님의 시각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시대착오적 언동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이렇게 된 배경과 과정을 좀 더 깊이 알고, 예수의 마음으로, 이해와 연민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
|
|
▲ 강우일 주교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부와 국정원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동료 주교들과 사제, 수도자, 평신도뿐 아니라 지각 있는 국민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이 촛불을 켜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상봉 기자 |
- 사제들뿐 아니라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천주교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지면서, 어떤 신문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지속적인 ‘저온화상’을 입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최근 이석기 의원과 관련한 내란음모 사건을 국정원에서 터뜨렸지만, 이와 상관없이 시국선언과 시국미사가 이어지면서 정부와 국정원이 매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주교 사제들과 수도자, 평신도들이 국정원 개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성직자들이 시국선언에 나서는 것은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부가 근본적으로 잘못을 시인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염원하는 민주화의 여정을 정부가 앞으로 끌고 나가야 하는데, 역사의 바퀴를 거꾸로 돌린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때문에 이구동성으로 정부와 국정원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정원 불법 댓글 의혹사건은 지엽적으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이번에 사제들이 시국선언에 나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사의 흐름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국가가 엉뚱한 방향으로 국민을 몰고 가는 것을 국민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라 운영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것이지요. 천주교 신부들은 모두 고집이 있어서 주교가 하라고 해도 잘 안 하는 사람들인데, 이번 국정원 사태에 모든 교구의 천주교 신부들이 들고 일어난 것을 보면, 이것은 하늘이 시키신 일이라고 봅니다.
- 끝으로 교회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씀 한 마디 해주십시오.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모든 사건과 현실을 언론을 통해서 보고 듣고 판단합니다. 공영방송 등 우리나라 언론은 현실에 대한 식별능력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시청 앞 광장에 몇 만 명이 모여서 촛불을 들어도 그걸 한두 줄로 써버리거나 한 컷의 영상도 내보내지 않습니다. 공중파나 그런 방송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가치판단을 하지만, 그것은 진실과 대단히 거리가 멉니다.
젊은이들은 인터넷 등 다른 매체를 통해 진실을 접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살다보니 그냥 손에 잡히는 신문이나 공중파 방송을 보고 사태를 파악합니다. 그러나 좀 더 진실을 알려면 주류언론이 내보내지 않는 사실을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국민의 의식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공무원은 심부름꾼입니다. 심부름꾼을 잘 부리려면 주인이 뭘 제대로 알아야 하고,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심부름꾼이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추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국민들이 주관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주류언론에 절대로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공식언론에서도 시국 문제나 사회적 사안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다루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언론사마다 제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교구에서 운영하는 언론이든 교회에서 인준 받지 않은 독립언론이든 상관없이 교회가 세상 안에서 자신의 예언자적 역할을 다하려면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대로 교회 울타리 바깥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신학자들도 자기만족적인 학문연구나 학자들끼리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만족하지 말고 사회적 현안에 대한 식별과 신학적 해석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갑작스런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전해 주신 말씀이 시대의 아픔으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