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29-31).
'피로'란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일을 과도하게 하여 육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보통 말하는 피로는 이보다 더 주관적인 개념이 포함되어 귄태감이나 지루함까지도 포함시켜 적당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피로의 종류에는 운동이나 식사 후 또는 주말을 보내고 난 후에 오는 생리적인 피로와, 질병개념으로서 충분한 휴식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피로감을 느끼는 증상이 6개월 미만으로 지속되는 급성피로와 6개월 이상 피로가 지속되는 만성 피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자주 보이는 만성피로의 증상은 피로감이 가장 많고, 약하게 체온이 올라가는 미열, 잠을 못 자는 수면장애, 정신집중이 잘 안되고, 두통이 오며, 목이 아프고, 목 주위의 임파선이 커지거나, 근육통 및 관절통 등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요? 혈기왕성한 우리 청소년에게는 이러한 피로가 남의 일 같았는데 이제는 어른들이 우리 청소년들을 보면 불쌍하다고 생각해 주십니다.
달리고 날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42.195㎞는 길고도 긴 거리입니다. 오죽했으면 1984년 미국 LA 올림픽대회 여자 마라톤 첫 우승자인 미국의 조안 베노이트는 “경기 도중 악몽을 꾸기도 했다”라고 말했을까요? 52년 헬싱키 대회 우승자 체코슬로바키아의 에밀 자토펙은 전력질주와 휴식을 반복하는 독특한 ‘인터벌 주법’으로 ‘본의 아니게’ 2등을 약올리며 금메달을 땄습니다. 자토펙은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지만 사람은 공중을 나는 꿈을 버린 적이 없었고 결국을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힘겹게 하늘을 나는 일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는 추락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신문 지상을 보면 날마다 추락하는 인생들에 대해 보고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시기하고, 질투하고, 약속을 어기고, 무정하고, 무지하고, 살인합니까?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 1:28-32).
목마름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시 40:1).
마치 콘센트에 플러그를 꼽아서 힘을 얻듯이 우리의 삶에 이러한 힘이 필요하다면 프러그를 꽂아야합니다.
무엇보다도 전기ㆍ전자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 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는 열이나 빛, 동력과 같은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쉽게 바꿀 수 있고,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빠르고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기 때문에,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기는 마치 물과 공기처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전기ㆍ전자는 우리 생활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다음 글은 전기ㆍ전자가 우리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 묘사한 글입니다.
매일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아침에는 전자식의 자명종 시계 소리를 듣고 일어나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아침의 몸단장을 한다. 이때 전기 면도나 헤어드라이어의 도움을 받는다. 아침 식사는 저녁에 준비한 것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전자 레인지도 데운다. 빵을 먹으면 토스터, 커피 메이커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신문을 읽고 외출하려고 할 때 오늘밤의 데이트 약속을 전화한다. 그 다음에 출근할 때는 전철, 버스, 자가용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리고....({전기와 자기} 현영창 역, 1997:3).
전기ㆍ전자 기술은 하루라도 이용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생활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고, 그에 따라 기술적 교양 수준에서 그것을 잘 알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막강한 힘을 활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습니다. 플러그(plug)는 전기기기 ·측정기 ·전화교환기 등의 회선·회로를 연결하는 기구를 말합니다.
우리는 무한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플러그인해야 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로 고백하는 것은 제일 큰 행복입니다.
비전을 소유한 사람은 많지만 비전을 성취한 사람은 적습니다. 비전을 소유한다는 것과 비전을 성취한다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소유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는 일이다. 전략이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꿈꾸는 사람(dreamer)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doer). 꿈꾸는 사람은 말하고, 생각하고, 꿈꾸며 희망합니다. 어떤 거창한 일을 해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실제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실천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원칙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원칙은 원리를 말하는 principle이 아니고 discipline입니다. 명제가 아니고 실천입니다.
에베소서 4:12은 우리에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바로 인격성장과 사역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은 양 날개라고 표현해야합니다. 성장과 사역의 두 날개로 하나님을 항하여 날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형성(현재의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을 참고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점검 받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계획을 세울 때 자신의 형성을 무시하면 지속할 수 없습니다. ‘SHAPE’라는 단어는 모양, 형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성하셨습니다. 특히 인격형성은 매우 중요한 준비입니다.
자신의 형성 즉 영적 은사(Spiritual Gift), 마음(Heart), 능력(Abilities), 개성(Personality), 경험(Experiences)을 살펴보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 있다. 계획에 들어가기 앞서 자신을 점검하라.
스티븐 코비는 {본질적으로 가는 길}에서 인간적 욕구 충족에 중요한 네가지 L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To Live, to Love, to Learn, to Leave a Legacy"(살고 사랑하고 배우고 유산을 남기는 것). 이러한 욕구 중의 하나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의 질을 떨어드립니다.
이러한 삶의 형성을 통하여 하나님과 세상을 향한 나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균형과 기쁨 속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고, 유산을 남기는 우리의 능력 안에 있는 평화. 우리에게 선택의 순간에 성품과 역량을 부여해 주는 인간 천부의 능력들을 개발하는 데서 오는 평화. 우리의 역할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을 하여, 시너지적이고 살아 있는 전체의 부분들이 되면서 오는 평화. 양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배우고 양심에 따라 사는 데서 오는 초월적 평화. 우리의 기대가 바른 방향의 현실에 기초를 두지 않을 때, 우리는 당연히 좌절을 겪고 평화를 잃게 됩니다.
엘리야는 구약의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다. 그는 하나님의 귀한 일군으로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불려간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그러한 인정이 가능하였을까요?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왕상 19:10). 엘리야는 열심이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열심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계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의 두 아들은 아주 대조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야곱은 부엌에서 어머니와 친했던 소극적인 사람이었으나 훗날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였습니다. 삶을 진지하고 열심히 살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에서는 활동적인 사냥꾼이었으나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생을 죽이려고 얍복강에 나갔으나 결국은 동생의 태도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이 형제의 태도를 변하게 하였는가요? 그것은 훈련이었습니다.
열심히 살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일을 준비하는 마음은 오늘을 열심히 살게 합니다. 내일의 꿈을 가진 사람은 그 꿈으로 인해 열심히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피아노를 잘 연주하고 싶으면 결코 서둘러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이를 잊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둘째, 집중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어디서나 햇빛이 있지만 돋보기로 모아질 때만 종이를 태울 수 있듯이, 조그마한 빗물방울이 바위를 패이게 하듯이 집중이 필요합니다.
셋째, 탁월한 마음의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적당히 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학업의 성취는 오기에서 시작됩니다. 남보다 뛰어난 헌신에 대한 기준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사는 삶입니다.
넷째, 성령을 의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 3:5). 우리가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을 하려면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될 수가 없고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만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빌 4:13)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열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고 싶으십니까? 옆의 그림을 보십시오.
누구의 발인지 짐작이나 하시겠습니까?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발이 아닙니다. 사람의 발을 닮은 나무뿌리도 아니고 사람들 놀래켜 주자고 조작한 엽기사진 따위도 아닙니다.
명실공히 세계 발레계의 정상이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입니다.
그 세련되고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세계 각국의 내노라 하는 발레리나들이 그녀의 파트너가 되기를 열망하는 강수진 말입니다.
처음 이 사진을 보았을 때 심장이 어찌나 격렬히 뛰는지 한동안 두 손으로 심장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답니다. 하마터면 또 눈물을 툭툭 떨굴 뻔하였지요. 감동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생각하면서요.
그녀의 발은, 그녀의 성공이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진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의 매니저나 스승들은 인터뷰에서 그녀의 노력하는 모습을 증언했습니다. 일년에 토슈즈를 250켤레를 닳게 만들고, 공연이 있을 때는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없을 때도 대개 밤 8시까지 연습한답니다. 중1때 시작한 후로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녀가 사용한 토슈즈는 수천 개에 이른답니다.. 말짱하던 발이 저 지경이 되도록 그야말로 노력한 만큼 얻어낸 마땅한 결과일 뿐입니다.
강수진씨는 언론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발레의 테크닉은 두 번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장르의 예술을 하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는 인내심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낮선 타향에서의 생활에 외로웠어도 그녀는 뼈가 부러진 것도 모른 채 연습을 했었고, 발레를 사랑했기에 이런 발을 부끄러워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의 준비된 헌신을 통하여 2005년 내 생활과 내 주변에 혁명이 일어나길 기도합시다. 내 가정, 내 교회, 내 학교, 내 조국, 하나님의 세계가. 그리고 앞장서 실행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