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는 참선을 정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단이다.
예컨대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에 있어서 나룻배와 같은 것이다.
참선을 화두를 들고서 앉아있는 것으로만 생각한 나머지 현대인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흥미롭고 유쾌하며 명쾌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옛 선사들이 서로 주고받았던 선문답을 뒤로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을 먼저 연습하게 한다.
선도회에서는 이를 찰측이라고도 하는데.. 화두에만 의심을 일으킬 수 있는 간소화된 화두다.
화두 붙드는 연습을 시키는 것이다.
마치 태권도 선수의 체력단련이 수식관이라면, 찰칙은 연습게임인 셈이다.
여기서는 선도회 (사)성찰과 나눔회 지도법사이신 법경 박영재선생님의 책자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 이 그것이다.
(박영재 저 '두문을 동시에 투과한다')
1) ‘無’字
처음부터 무자를 들으라고 하면 좀 어렵게 생각되기도 한다.
수식관이 거의 완성되어갔으면 그냥 무자를 화두로 주는데..
여기서는 그냥 무자를 들고 잡녑없이 앉아있는 정도로 해두고, 나중에 본격적으로 무와 한바탕 겨루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15)번에서 다시 다룸
2) 날아가는 비행기를 멈춤!
화두하면 옛날 선사들과 연관해서 태어난 옛날 물건인데,
아니 요즘에사 있는 비행기가 나온다.
그래도 화두라고 하니 들어보라! 화두는 점잔빼며 조용히 참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난다느니 멈춘다느니 하는 분별에서 자유로운 때인가?
날아가거나 멈추거나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한 마음으로 철저히 화두와 하나가 되어 경계를 제시하면 답이 나온다.
3) 외짝손소리 隻手聲
한 손으로 내는 박수소리? 정말로 소리가 날 수 있을까?
힘차게 휘둘러야하나? 그래야 그 소리를 만날 수 있는가?.
온갖 수모를 견뎌내며,
남의 자식을 3년 동안 맡아 기른 묘심사의 제1좌이면서
일본의 근대 일본선의 중흥조인 백은혜학白隱慧鶴 선사가 개발한 화두이다.
박수의 원리를 머리로 헤아리려는 이해 하려하거나.. 이리저리 일어나는 분별심을 끊어버리고,
오직 힘차게 내둘러 쳐 보라!
그 근처에 외짝손소리가 있다.
4) 동쪽 산이 물위로 간다. 東山水上行
한 스님이 운문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이 모든 부처님의 나온 출신처(出身處) 입니까?'
운문 선사 말씀하셨다. '동산이 물 위로 가느니라.(東山水上行)'
‘흐르는 강물에 동산의 모습이 비쳐 보이는 것이겠지만, 운문 스님에게는 동산이 스님 자신이신 것이 아닐까.
이 물음에 대해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 선사는,
'훈풍이 스스로 남쪽에서 불어오니 전각이 서늘하다 (薰風自南來 展閣微凉生)' 라고 하셨다."
5) 손을 쓰지 않고 호미를 쥔다. 空手把鋤頭
밭에서 일 할때.. 호미를 쥐고 열씸히 일해보라!
처음에는 호미를 손에 쥐고 일하기 시작하겠지만.. 손도 호미도 없어지고 만다.
자 어떻게 손을 쓰지 않고 호미를 쥘 수 있겠는가
부대사傳大士의 시다.
空手把鋤頭 빈손으로 호미 자루를 잡고
步行騎水牛 걸으면서 물소를 탄다!
人從橋上過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는데
橋流水不流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구나!
6) 이천 소가 밥 먹으니 제주 말이 배부르다. 懷州牛喫禾 益州馬腹脹
김 서방이 술 마시니 이 서방이 취하네! 金公喫酒李公醉
화엄종의 초조 두순화상(杜順和尙)의 법신송法身頌이다.
懷州牛喫禾 益州馬腹脹 회주의 소가 여물을 먹는데, 익주 말이 배가 부르다.
天下覓醫人 炙猪左膊上 천하에 가장 뛰어난 의사를 찾아, 돼지의 어깨 위에 뜸을 뜨네.
스승과 제자가 길을 가다가 스승이 물었다.
‘회주라는 곳의 소가 벼를 먹었는데 남쪽 지방인 익주의 말이 배탈이 났다.’
그러니 너는 이때 어떻게 하겠느냐. 그랬더니 제자의 대답이 걸작이다.
‘천하에 가장 뛰어난 의사를 찾아서 돼지 왼쪽 어깨에 뜸을 뜨겠습니다.’
특별 힌트 : 우리는 하나다!
7) 찬찬히 살펴 날아가는 새 발자국을 그린다. 縱觀寫出飛禽跡
8) 천천히 걸으면서 흐르는 물 소리를 밟아 끊는다. 徐行踏斷流水聲
같이 날아보라! 그리고 천천히 살펴보라 무엇이 새 발자국인가?
천천히 걸어보라!
上下四維無等匹. 온 천지 사방에 견줄 것이 없다.
徐行踏斷流水聲. 천천히 걸으면서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버리고,
縱觀寫出飛禽跡. 찬찬히 살펴 날아가는 새 발자국을 그린다.
9)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날 때 다리는 흐르는데 물은 흐르지 않는다.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무심히 정말 무심히 다리를 건너보라!
10) 남산 꼭대기의 외짝손! 南山絶頂隻手
남산에 올라보라 남산타워에도 올라보라! 남산이 멀면 가까운 산이라도! 도시라면 빌딩 위 옥상이라도!
11)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은 모두 이 경에서 나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아’는 ‘없다’
뇩다라’는 ‘최고’,
‘삼’은 ‘바르다’,
‘먁’은 ‘같다’의 뜻이며, 보리는 ‘깨달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최고로 위없는 도를 깨달았다는 말이다.
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법이 어느 경에서 올것이다.
그런데 그부처는 불상인가 석가시대의 역사적인 부처인가?
범성불이凡聖不二, 범부와 성인이 둘이 아니고,
불여중생불이佛與衆生不二, 부처와 중생도 둘이 아니다.
도대체 '이 경'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12)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家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인데 어느 心에 떡을 먹겠는가!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은
금강경 제18분에 나오는 말로 우리의 마음자리를 밝힌 유명한 게송이다.
덕산선사(덕산선감德山宣鑑, 780-865)가
남방에 가서 교리 밖에 특별히 전했다는 뜻을 쓸어 없애 버리려고 예주 땅에 이르렀을 때였다.
점심이 되어 길가의 떡집 노파에게 점심을 사 먹으려고 하니 노파가 물었다.
"스님의 바랑 속에는 무슨 책이 들어 있습니까?"
"금강경소초요."
"금강경에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으로 점심을 드시렵니까?”
이 물음에 덕산 선사는 입이 콱 막혀 버렸다.
자 어떻게 대응해야 떡을 얻을 수 있겠는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어떻게 해야 떡을 입에 넣을 수 있겠는가.
13) 천길 속의 돌 자갈을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끄집어내는 솜씨!
천 길이나 만길이나 매한가지 깊이에 걸리지 마라!
14) 만산萬山에 눈이 가득 쌓였는데 한 봉우리孤峰만 왜 검은고!
밤새 눈이 많이 왔나 보다! 무심히 않아 세상을 바라보라
이 과정을 마치면 참선에 입문하여 제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새로운 이름을 하나 부여받게 되는데 .. 거사 호를 받는다고 말한다.
*본 광명의락 카페에서도 틈틈히 이 화두들을 드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부연해 다루어 볼 생각이다.
15) 무 (無)
조주선사의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 는 질문에~ '無' 즉 '없다.' 라고 답한데서 시작된 화두이다.
붓다는 모든 사물에 불성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조주선사께서는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가 핵심이다.
여기서는 있다 없다의 무가 아니다. '무'와 하나가 되는 경계를 참구해야 투과한다.
있다를 인식할때 우리는 보이는 것을 말할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더 큰 세계도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즉 눈에 보이는 보다 그 보이지 않는것 수학의 여집합과 같은 세계가 있기에..
이 세계를 잘 아는 방법 중이헤나가 부정의 방법이다.
이를 via negativa 즉 부정의 길을 말한다.
그 길에는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가 아니라 절대 긍정과 절대 부정이 아닌 무의 다이나믹이 있다.
시작하는 사람들의 화두에서 이 무자는 무문관이라는 본격적인 화두 참구에 입문하게 된다.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첫 문 ‘무’자 화두처럼,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무’자 화두는 모든 화두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무~' 하면서 한동안 앉아보라. 절대절명의 궁함에 이르르면 확연히 얻으리라.
첫댓글 화두하면 어렵게만 생각되었는데.. 친숙한 것들도 있군요.. 호 호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님도 곧 아시게 될테니.. 화두라는 말 자체가 화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