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격투
공교롭게도 1월 1일 이른 아침, 평소에 옷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한 갑선(74세) 할아버지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바지를 찾고 돌아다녔다. 자신의 농을 다 뒤져보아도 옷이 보이질 않자 병두(77세) 할아버지의 방을 급습, 다짜고짜 농문을 열고 자기 것으로 보이는 바지를 들고 “이 도둑놈 새끼가….” 하며 씩씩거리다가 아침식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원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이~, 이거 내 옷이니까 내 이름 좀 적어줘.”
“이거 ‘병두’ 어르신이라고 이름이 적어져 있는데 왜 ‘갑선’ 어르신의 이름을 적어 달라고 하셔요?”
“아니여. 이거 내 옷이여. 잔말 말고 내 이름이나 크게 써주란 말이오. 내 이 도둑놈의 새끼를 그냥….”
“어허이~참, 내껏인디 그러네.”
세수하다 말고 나온 병두 할아버지는 심신이 지친 듯 이 한마디만 할 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직원은 병두 할아버지의 바지를 돌려 드리게끔 하고 나서 갑선 할아버지의 바지는 식사 후 꼭 찾아 드리겠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분은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다가 눈 깜짝할 사이 몸싸움까지 벌리게 되었다. 급보를 전해 듣고 달려온 직원들이 가까스로 뜯어 말려 다행히 사태는 진정이 되었으나 그렇지 않아도 갑선 할아버지에게 유감이 많던 병두 할아버지는 분을 삭일 수 없어 억울한 심정을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갑선이 저 섀끼가 내가 지보다 세살이나 더 많은디 성(형)이라고 안해도 여태까지 참았는디 저놈 섀끼가 또 때릴라 하고 시비를 거네. 내가 영 못 살겄어. 오매, 못 살어.”
직원은 린넨실에서 갑선 할아버지의 바지를 찾아 드리고 난 후 어서 빨리 먼저 사과를 하도록 권고하였다. 다행히 갑선 할아버지는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정중히 두 손을 내밀었다.
“내가 잘못했소.”
“…….”
“앞으로는 성님이라고 부를랍니다. 성님, 내가 잘못했소.”
원래 누군가로부터 ‘형님’으로 불리우기를 무척 갈망하던 병두 할아버지는 그제서야 이렇게 대꾸했다.
“허허~ 나 참, 잘못 했단디 어찌것이여. 사과를 받아 줘야제.”
바로 며칠 후 병두 할아버지의 생신일이었다.
“갑선 할아버지, 병두 형님을 위해 노래 한자리 불러주실래요?”
직원이 요청을 하자마자 갑선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곡명은 ‘비 내리는 호남선’ 이었는데 마침 병두 할아버지의 애창곡이어서인지 생일상 앞에 엄숙히 폼을 잡고 앉아있던 병두 할아버지도 끝까지 따라 불렀다.
♪ 목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
무슨 깊은 뜻이 있어서 곡을 선택한 것 같지는 않았고, 생일축하곡으로 어울린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으나 아무튼 분위기만큼은 화기애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