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년 멕시코 월드컵.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무대를 연속으로 진출했던 한국축구는 그 성적과 무관하게 자만감으로 가득했다.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체험했지만, 그래도 아시아에선 한국이 최고라는 멍청한 자만감에 사로잡혀있는 와중에 <축구의 불모지>라는 미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될것으로 결정되었고 세계 최고의 제전이라는 월드컵을 아마츄어 수준에 불과한 미국이 어떻게 치룰수 있는지 세계의 눈이 미국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한국은 그런 일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우선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하는것이 급선무였다. 70년대 김정남 대한축구협회 전무와 최강 수비진을 구축했던 스타감독인 김호 감독은 94년 미국 월드컵 진출을 위한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그 출발은 매우 위험해보였다.
1992년, 대표팀을 이끌고 나선 김호사단의 첫 국제대회는 93년 북경 말보로 다이너스티컵 국제축구대회였다. 이 대회는 앞으로의 행진이 어떻게 될것인지 암시해주는 대회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서 벗어났다. 가볍게 우승을 차지할것이라는 예상은 첫 경기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숙적 일본과의 첫 게임은 무력한 플레이로 0-0으로 비기고 말았던 것이다. 더구나 일본 이란 상대는 카즈요시 미우라(Kazuyoshi Miura), 마사시 나카야마(Masasi Nakayama), 타구야 다까기(Takuya Takagi), 쯔요시 기타자와(Tsuyoshi Kitazawa)란 해외유학파가 제 기량을 철저하게 발휘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일본인이란 이유로 브라질 국적을 버리고 일본 국적을 취득한 루이 라모스(Rui Ramos)까지 거의 최근 일본축구의 전성기의 시발점이 되는 팀이니 한국은 절대 얕볼 상대가 아니었었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한 일본 축구의 실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2차전 대 북한전에서도 한국은 1-1의 무승부를 연출하는데 그쳤다. 다만 중국과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여 1승 2무로 결국 일본과 결승전을 벌였다. 항상 우리의 엉덩이만 보고 달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일본의 축구는 달랐다. 특유의 정보수집력과 추진력, 과감한 투자등으로 <한국 타도!>를 향해 달리던 일본축구가 어느 사이에 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던 것을 한국의 축구 고위관계자만 모르고 있었다.
1992년 8월 29일, 수중전이 되어버린 결승전에서 만난 일본의 경기에서 올림픽팀 출신 정재권이 기가 막힌 발리슛으로 1-0으로 앞서나갔으나 후반전에 나카야마와 다까기의 연속 골로 2-1로 역전되는 상황이었다. 다까기의 골이 터진뒤 1분 채 못되어서 김정혁이 동점골을 넣어 위험을 벗어난줄 알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최인영 골키퍼에게 국제대회에서 유일한 승부차기될 그 경기는 그 승부차기의 노하우 부족으로 더구나 고정운등의 실축으로 인해 4-2로 패하고 말았다. <일본에게 패배했다>
이건 엄청난 충격이었고 한국의 대표팀앞에 커다란 먹구름으로 작용했다. 여기저기서 전력이 불안하다, 감독이 좋지 못하다 란 비난성 여론이 극에 달했다.
이후 15차례의 평가전에서도 한국은 5승 5무 5패 득점 19점에 실점 21점이란 80년대에선 상상도 할수 없는 초라한 성적표를 쥔다.
2) 1차예선부터 노출된 취약한 전력
: 1993년 5월 9일, 불안한 전력이라고 평가되던 한국팀은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1차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날아갔다. 서정원과 황보관을 <투톱>으로 내세운 한국의 첫 경기인 바레인과의 시합을 위해 그라운드로 나섰다. 아시아에서 월드컵 예선전에 참가를 신청한 나라는 29개국. 모두 6개조로 나뉘어 1차예선을 갖고 6개조의 1위팀이 모여 다시 최종예선리그를 벌이는 예선전. 90년 월드컵 예선과 똑같았다. 한국이 1차예선에서 만나는 상대들은 바레인,홍콩,레바논,인도등 아시아에서 2류국가들이었다.(물론 당시 상황이었다.)
한 팀과 두 번씩 싸워서 승자를 가리는 1차예선은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홍콩에게 져서 이를 악물로 출전한 바레인에게 단 한골도 못뽑고 조직력을 상실한 플레이로 일관하여 0-0으로 끝내고 말았다. <조직력이 없다> <수비력이 떨어진다> <골결정력이 없다>라는 비난이 소나기처럼 한국팀에 쏟아졌다. 결국 레바논에게 1-0의 승리를 시작으로 인도,홍콩을 각각 3-0으로 격파하고 잠실에서 2차리그를 위해 귀국했지만 국내여론은 날카로웠다. 이기는 것도 시원치 않다는 것이었다.
잠실에서의 2차리그는 4전 4승, 16득점에 1실점이란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아무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지 못했다. 모두 약체팀을 상대로 거둔 성적은 필요없다는 성적이었다. 한국팀은 대안없는 비판에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총 8경기에서 6게임 연속득점을 기록한 하석주(그것도 왼발로) 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여기서 한가지 아쉬운 점을 꼽고 싶다. 당시 한국의 축구 국내리그는 위축이 될 정점이었다. 야구의 인기는 높아지고 김주성이 독일로 떠나버린 시점에서 아무도 축구장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야구장으로 가버린 축구팬들은 사랑도 주지 않으면서 팀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랬다는 것이다. 1차예선을 7승 1무로 통과, 최종예선을 위해 카타르 도하로 날아가는 대표팀에게는 격려가 아닌 주문만 이어지는 예전에 보지못한 사태들도 보였다. 아시아 1차예선을 통과해서 2차예선을 출전한 팀은 1차예선에서 만난 팀들이 아니었다. 전부 월드컵 본선에서도 그 실력이 먹힐 6개팀이 모였다. 어느 팀이든 상대하기 쉽다는 평가를 내릴수 없던 상태였다.
3) 카타르 도하에서 마주한 아시아의 강호들
: 기동력과 투지로 무장된 북한. 한국을 물리친 돈과 인재와 성원이 3박자된 <다이너스티 패자> 일본. 그리고 중동 삼총사 사우디 아라비아,이라크,이란. 그러나 한국팀에게도 히든 카드는 있었다. 서독 VFL 보훔에서 활약중인 <삼손> 김주성과 2부리그 득점랭킹 2위로 <황붐>을 일으키던 황선홍, <J-League>에서 한국인선수로 최고로 활약중인 <노테우스> 노정윤.
1993년 10월 16일, 카타르의 칼리프 스타디움에서 한국은 첫상대 이란과 맞붙었다. 전반전 18분, 왼쪽 코너킥을 얻은 한국팀은 노정윤을 키커로 내세웠다. 노정윤의 코너킥은 골문을 향해 날카롭게 휘어지며 들어왔다. 당황한 이란의 골키퍼 골람프라 는 오른손 주먹을 뻗어 볼을 때렸다. 그러나 골키퍼가 펀칭한 볼은 운좋게 박정배 발에 떨어져 박정배가 툭 밀어넣어 손쉽게 1-0으로 앞선다. 기세가 오른 한국팀은 1차 예선전의 골잡이 하석주의 발리슛팅과 고정운의 돌파에 의한 센스있는 골로 3골을 잡아내며 3-0으로 이란을 굴복시킨다.
초반 이란,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 중동세를 견뎌야 하는 한국으로썬 첫 출발이 상큼했다. 승점 2점 확보. 그러나 리그전으로 치뤄지는 최종예선에서 최소한 승점 6점을 확보해야 했다. 특히 다른 팀들의 성적 여하에 따라 본선 진출을 위한 승점은 7점 이상되는 수도 했기 때문에 안심은 금물이었다.같은 날 펼쳐진 다른 팀들의 경기도 모두 우리의 본선 진출에 유리한 결과를 보이고 있었다. 북한이 이번 대회 최강이라고 지목되던 이라크를 0-2로 뒤지고 있다 3-2로 역전하는 신화를 창출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역시 사우디와 0-0으로 무승부를 기록, 남북한이 1승씩 거두며 쾌속행진의 선두를 잡았다. 언론에서는 남북한이 1-2위를 차지한다면 동반진출내지 단일팀구성도 문제없다는 장미빛 예상을 화려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승리한 한국팀 선수들에게 1인당 3백만원씩 승리수당을 지급하며 축제분위기를 유도했다. 그렇지만 <돈>이 모든것을 해결할수는 없었다.
4) 마의 5분
: 북한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라크는 대회중 감독을 교체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새로운 감독은 86년 월드컵에 이라크를 진출시킨 바바감독. 이번 대회 가장 안정된 전력을 가지고있던 이라크가 첫 경기에서 패한 것은 최대의 파란이었다. 더구나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에게 참패한 조국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미국을 꼭 가야한다는 정신력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감독이 대회 중간에 교체되었기때문에 아무리 최강 전력이 라고 해도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할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강팀>의 두번째 상대는 한국이었다. 한국팀은 황선홍 혼자만을 최전방에 배치하고 발 빠른 김주성과 서정원을 양쪽 윙에 활용하는 공격방법을 택했다. 이 작전은 그런대로 먹혔다. 전반 5분, 황선홍이 이라크 골키퍼와 1-1로 맞붙는 기회를 잡은 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파상적인 공격만이 이어졌다.
그러나 소득없이 뛰어다니는 한국의 공격은 이라크에게 역습을 허용 전반 31분, 이라크의 스트라이커 제부르 알라(Jebur Ara)에게 골을 허용하고 만다. 황선홍,서정원,김주성으로 이어지는 공격라인은 점점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줬다. 그러나 서정원을 대신해 그라운드에 뛰어들은 <노테우스>노정윤이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공격적인 플레이로 나서던 한국의 전반전에 노정윤이 경기리딩을 아주 잘하고 있었다. 노정윤의 백헤딩패스를 김판근이 그대로 논스톱 슛팅한 것이 그대로 이라크 골네트를 흔들고 만다. 동점을 이룬 한국은 후반 19분, 다시 결정적인 찬스를 잡는다. 센터링을 이어받은 노정윤이 수비수들을 제치고 쏜살같이 이라크의 페널티 에어리를 뚫었다. 놀란 이라크 수비수는 발로 노정윤의 얼굴을 차버렸고 주심의 호각소리가 페널티킥을 알렸다. 노정윤 혼자서 11명의 이라크 팀을 싸우고 있었다. 리베로 홍명보가 키커로 나선 페널티킥은 당연히 성공되었다. 2-1로 한국의 2연승 쾌속 항진이 분명해보였다. 그러나 후반 42분 승리를 확신한 한국의 수비진의 누군가(알지만 말하지 않겠음) 이라크의 공격수는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켰고 2-2로 경기는 끝났다. 통한의 실수가 한국의 가슴을 때렸다. 최종예선전에서 물고 물리는 혼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세번째 경기는 사우디 아라비아전, 새로운 별로 부각되는 신홍기가 화려하게 떠오르는 한판이었다. 믿었던 김주성이 초라한 플레이로 일관하자 한국팀을 구원한건 신홍기와 노정윤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경기 후반 20분, 신홍기의 오른쪽 사이드 를 번개같이 돌파하여 수비수 한명을 제치고 사각에서 슛팅했다. 거의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 사우디 골키퍼 알 데이야의 가랑이 사이로 뚫고 지나가 (흔이 알깠다 하는 표현이 어울림) 골문으로 빨려들어갔다. 아무런 변화없이 시간은 흘러 남은 시간은 이제 30초, 2승 1무로 승점 5점, 다음 경기에서 1무이상만 하면 미국간다는 복잡한 계산을 하고있던 한국팀에게 <동점골의 악마>가 다시 한국에게 도전장을 내주고 말았다.
후반 종료 30초전, 사우디 아라비아의 코너킥을 얻었고 코너킥은 한국의 문전으로 날아왔고 골키퍼 최인영의 펀칭을 오버하며 최인영의 팔은 허공을 찌르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공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스위퍼 마다니의 머리를 맞고 한국 골문으로 빨려들어갔고 심판의 경기종료 휘슬이 나왔다. 흥분한 사우디 관중은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어올정도로 사우디로선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이라크,사우디 아라비아전. 다 잡은 경기를 <경기 종료 5분 징크스>라는 악마가 한국을 괴롭힌 것이다.
5)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심판 로비설
: 한국은 1승 2무 승점 4점으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탈락이 예상되었던 일본은 북한을 3-0으로 유린하며 부활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승점 4점을 기록하며 한국을 위협했다. 소문이 최종예선전을 벌인 카타르에 유령처럼 퍼지고 있었다. <미국 월드컵 본선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진출한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오일 달러로, 일본은 미국 월드컵에 엄청난 광고주로 들어갔다는 물기를 들고 심판과 국제축구연맹(FIFA)를 매수했다> 멋지게 포장된 소문이 유령처럼 번지고 있을때, 최종예선전은 혼란스러운 순위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3차전이 끝나고 난 뒤의 아시아 최종예선전 순위
한국 1승 2무 0패 +3 승점 4점
사우디 1승 2무 0패 +1 승점 4점
일본 1승 1무 1패 +3 승점 3점
이라크 1승 1무 1패 +2 승점 3점
북한 1승 2패 -3 승점 2점
이란 1승 2패 -3 승점 2점
남은경기는 모두 2경기, 모두 승리를 이끌경우 6팀 모두 승점 6점을 확보할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네번재 상대는 일본이었다. 월드컵 진출을 보장받았다고 호언장담하는 일본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강한 조직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경기시작전 한국팀은 최악의 조건이었다. 황선홍의 경고누적으로 출장이 금지되었고 선수들의 부상등으로 고정운이 수비수로 내려가야 할 판이었다. 더구나 황선홍의 공백을 단신 172cm의 노정윤이 메꾸고 있었다. 경기시작할때도 뭔가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준 한국팀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일본의 요시다가 한국 진영을 돌파하며 회심의 센터링을 날렸고 일본의 간판스타 가즈요시 미우라(Kazuyoshi Miura)가 왼발슛을 날렸고 그 순간...
한국에서 즐겁게(?) 한일전을 지켜보던 한국축구팬들은 일제히 TV 수상기를 부수거나 TV 리모컨을 집어던졌다.(필자는 그때 부친과 라면을 먹으며 있다가 골이 들어가는 순간 라면을 뒤엎고... 젓가락 던지고..) 1-0.
미우라의 슛팅으로 볼은 한국 골문에 박혀있었다. 한국은 전술도 작전도 없이 허둥되었고 모두들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었다. 경기는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일본의 열광적인 축구팬들은 비행기를 타고 카타르 까지 날아와 응원을 펼쳤고 일본의 1-0으로 승리하자 한국을 조롱하듯 <니뽕! 니뽕!>을 외쳤다. 더구나 경기 끝난후 우리모두 알았던 사실은 <KOREA>를 잘못표기한 것처럼 해서 <KEROA>로 바꿨다. 그건 노예라는 뜻이었다. 경기에 진 한국 팬들은 져서 화나 죽겠는데 섬나라 왜족이 지난 아픔을 감정적으로 건드리자 이게 외교문제로 번질뻔했다. 그리고 한국팀의 완패였다. 그것도 지난 92년 다이너스티컵 결승전에 이은 두번째의 패배였다. 한국은 늪에 빠져버렸다.
북한도 같은 날, 이란에게 일격을 당해 2-1로 패배, 사상 최초로 남북한 동반진출이라는 꿈은 남북한 동반탈락이란 악몽으로 바뀌었다. 단 한게임만을 남긴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1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한국과 이란,이라크가 승점 4점으로 2위, 북한은 승점 2점으로 탈락이 확정되었다.
소문은 결과적으로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선두로 나타나고 있었다.
6) 한국, 지옥의 18초를 다녀오다
: 이제 남은 건 한국과 북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 뿐 이었다.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1,2위가 달라지는 상황이었다. 다만 일본과 사우디 아라비아 둘중에서 한팀이 패배나 무승부가 나오길 바랄수밖에 없었다. 만약 두 팀이 모두 승리한다면 우리가 북한에게 10000000골을 넣어도 그저 <꿈>으로 끝날수 밖에 없었다. <심판 로비설>,<사전 담합설>등 각종 루머가 떠돌자 대회조직위원회는 3경기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3경기는 각각 다른 경기장에서 똑같은 시간에 경기를 시작했다. 아무리 큰 점수차라도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승리하면 월드컵은 좌절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세 경기장으로 분산되었다.
드디어 경기 시작,. 한국과 북한은 0의 행진을 계속했다. 전반전이 끝난 상황에서 한국은 지옥의 문앞에 서있었다. 한국 0 - 0 북한. 일본 1 - 0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2 - 1 이란.
일본과 사우디가 모두 이기고 있었다. 한국은 최악의 상황만이 연출되었다. 후반 4분, 김현석의 센터링을 고정운이 다이빙헤딩 슛으로 1-0으로 북한에게 이기고 있었다. 순간 다른 구장의 상황도 급변했다. 2-1에서 3-1로 뒤지던 이란이 3-2로 따라붙었고 이라크가 1-1로 일본과 동점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라크가 힘을 되찾는 순간, 한국의 힘도 살아났다. 황선홍이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자 한국은 2-0으로 달려나갔다. 일본이 무승부를 기록하면 골득실차로 한국이 나가는 것이었다. 모두가 들뜬 마음에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후반 2분, 루이 라모스의 패스를 받은 히사시 나카야마가 완벽한 오프사이드 지역에서 터닝슛을 성공시켜 2-1로 앞서나갔다 정말로 일본을 위한 심판과 시나리오 같았다. 한국은 하석주가 3번째 골을 성공시켰지만 흥이 나지 않았다. 후반 45분 경기가 모두 끝나고 한국은 경기가 끝났다. 3-0으로 이겻지만 우리는 예선탈락이란 생각이 선수도 감독도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도 고국의 국민들도 같았다. 사우디 승점 7점, 일본 7점, 한국 6점..... 한국팀 탈락...
고국의 축구 팬들중 급한 성격의 분들은 경기종료 휘슬울리기전에 그대로 자버렸고 멍하게 TV만 지켜본 팬들은 갑자기 환호를 올렸다. 그리고 현지의 관계자들도 환호를 올렸다. 머리를 숙이며 나오는 선수에게 벤치에서 누군가 소리치며 선수들에게 달려나왔다. "이라크가 골을 넣었다!"
이라크와 일본의 경기는 끝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심판이 루스타임을 적용한 것이었다. 정확히 일본:이라크 전 후반 45분 루스타임 18초.
이라크의 미드필더 옴만살람 자파르가 일본의 골문에 멋진 헤딩슛을 꽂아 넣었고, 그 뒤에 호각소리가 울린 것이다. 일본 주장 하시라타니를 비롯, 미우라, 나카야마 등등은 주저앉으며 울어버렸고 일본으로 귀화한 라모스 역시 얼굴이 정신나간 사람같았다. 일본의 관중들은 울어버렸고 일본의 캐스터 역시 침묵을 지키다가 곧이어 <네.. 매우 아쉽습니다>라는 멘트를 말했다. <아메리카의 금문교가 보입니다>라고 흥분한 캐스터의 멘트가 저렇게 바뀐 것이었다. 경기는 끝났다. 한국의 월드컵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일본은 2승 2무 1패로 탈락, 한국도 똑같이 2승 2무 1패 승점 6점. 일본은 7득점에 4실점, 한국은 9득점에 4실점이라 2골이 앞서 본선에 진출한 것이었다.
지옥의 문앞에서 서성거린 18초.
월드컵 3연속 진출이란 아시아에서 대기록을 세운 한국팀과 비슷한 처지가 이미 각 지역 예선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플레이오프 끝에 호주를 물리치고 올라온 것과 유럽챔피언이라는 덴마크가 스페인에게 덜미잡혀 진출하지 못한 점, 전대회 4위 '축구종가' 잉글랜드 역시 자국 리그에서 활약중인 선수가 태반인 노르웨이와 라이벌 네덜란드에 밀려 탈락, 98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프랑스가 이스라엘에게 일격을 당하고 불가리아에게 무승부로 탈락.... 각종 이변이 속출했다.
한국은 이 이변의 물결에서 겨우 살아남은 불쌍한 오리새끼나 다름없었다. 한국은 재정비하고 본선무대를 바라보았다.
: 승점 1을 챙긴 한국팀은 보스턴으로 옮겼다.
비록 더위를 이용한 공격을 첫승상대 볼리비아에게 할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길수 잇는 상대라는 자신감에 볼리비아와의 사생 결단전에 뛰어든 태극전사는 잘 싸웠다. 용감했다. 고정운,홍명보,이영진,노정윤,서정원 모두 제몫은 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골을 얻어야 잘했다고 평을 듣는 원톱 황선홍은 계속되는 찬스를 모두 허공에 날려버리는 아쉬운 순간만 연출했다. 그런데 여기서 독자들은 한가지 생각해야 할께 있다. 물론 동료가 힘들게 만들어준 찬스도 있었지만 그가 만든 찬스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너무 편중된 공격을 했다는 점과 홍명보등 2선 공격수에게 제 자리만 지키라고 지시하고 그리고 당시 조진호를 투입하지 못한 약간 이해하지 못하는 김호감독의 작전이 문제가 있었다.
어쨌든 이 경기는 김주성이 제대로 게임메이킹을 해줬다. 그가 최대로 잘뛰어준 경기였다. 김주성의 스루패스는 볼리비아 2-3명의 수비를 무색하게 했다. 한국선수들은 최선을 다했었다. 수비진도 탄탄했고 <돌배> 박정배는 상대 골게터 윌리암 라마요(William Ramallo)를 교체퇴장시키는 개가를 올렸고 에르윈 산체스(Erwin Sanchez)의 거의 골과 다름없는 프리킥을 선방한 최인영 역시 수훈값이었다. 후반 55분까지 가는 대 혈전. 한국의 마지막 찬스는 하석주의 왼발 에 걸렸었다. 황선홍의 절묘한 힐킥이 볼리비아수비들을 완전히 제꼈고 하석주가 회심의 슛팅을 날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카를로스 트루코(Carlos Trucco) 골키퍼의 손을 맞고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곧 게임종료...
<월드컵 최초 무실점 경기>라는 개가를 올렸음에도 한국 선수들은 얼굴이 굳어져있었다. 이길수잇었는데 하는 생각들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게 아니라 <숙원 16강>을 갈려면 전대회 우승국 독일에게 최소한 무승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7) 통한의 패배, 눈물의 홍명보
: 다음 상대는 전대회 우승국 독일이었다. 독일은 그렇지만 약간 흔들리는 모습과 체력문제, 더구나 감독 불화설까지 겹친 최악의 상태였다. 그나마 견딜수 잇었던 것은 <게르만 폭격기> 유르겐 클린스만(Jurgen Klinsmann)덕택이었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굉장한 부담감을 느꼈다. 물론 경기는 시작해봐야 아는거지만 선수들은 <우리가 독일에게 어떻게 이길수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잇었다.
<독일에게 얼어버린> 한국 선수들은 무거운 몸으로 달라스 코튼 볼 스타디움에 들어선다. 달라스의 그 뜨거운 더위도 한국선수들의 <독일동상>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한국이 얼어있는 동안 클린스만과 해슬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2골을 뽑고 수비실책과 운으로 칼 하인츠 리들레(Karl-Heinz Riedle)가 추가골을 뽑아 3-0으로 완벽히 달아났다. 독일의 작전은 이것이었다. 체력적으론 한국에게 뒤지니까 전반전에 기량으로 승부하고 후반은 견딘다는 것. 그렇지만 후반전에선 <동양 최고의 리베로> 홍명보의 리딩에 독일은 그 작전이 얼마나 무모했는가를 깨닫는다. 박정배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이 일그너와 1-1 찬스를 맞아 손쉽게 1골을 만회했다. 황선홍 자신으론 2차전 대 볼리비아전에서의 큰 실수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는 듯 깨끗히 성공시켰다. 자신의 기량을 키워준 독일에게....
일단 <동상>에서 빠져나온 한국팀은 물러설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챔피언 독일에게 거센 반항을 시작했다. 그 반항의 축은 홍명보였다. 홍명보를 축으로한 공격은 원래 한국의 공격력의 배가 되었다. 확실한 게임메이킹을 해주는 홍명보가 있었기에 그런것이 가능했다. 좌우 윙의 활약도 대단했다. 서정원,고정운은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다. 고정운의 센터링을 콜러가 다이빙 헤딩으로 걷어냈고 볼은 홍명보에게 갔다. 홍명보가 슬쩍 한번 치고 그대로 중거리슛. 볼은 일그너 손맞고 그대로 빨려들어갔고 스코어는 3-2 가 되었다. 한국은 더욱 강력한 공격으로 독일의 숨통을 조여왔다. 계속되는 한국의 공격은 2골이나 실점한 보도 일그너의 분발에 모두 무위로 끝나고 만다. 고정운의 완벽한 1-1 찬스를 일그너가 발로 처낸것이다. 또한 헨들링 반칙까지 얻어냈다. 김주성이 얻어낸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주심 조엘 퀴에노 씨는 인정하지 않았고 김주성은 항의하다 경고만 먹었다. 관중들은 마구마구 야유를 퍼부었다.
결국 일그너의 <신들린 선방(?)>에 한국은 3-2로 좌초하고 만다. 경기가 끝난후 한국팀의 최고 수훈갑 홍명보의 눈물의 인터뷰는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4년후엔 노련미까지 갖춰서 16강에 오르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한 그의 눈물은 4년뒤의 성공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한국의 예선전이 끝나고 예선탈락이 확정되었어도 한국팀에 대해 세계언론들은 극찬했다. 상대 골게터 클린스만은 <후반전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라고 고백했고 독일 감독 포크츠 는 <한국은 절대 약팀이 아니다>라고 말했으며 스페인 감독 클레멘테 는 <우리를 얕본 독일은 우리가 왜 한국에게 고전햇는지 알았을것이다>라고 했으며 16강전에서 사우디와 맞붙었던 스웨덴의 감독 토미 스벤손 감독 역시 <우린 독일:한국전을 보며 독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한국의 최고 스타플레이어로 올라선 홍명보에겐 <동양의 베켄바워>라는 명예로운 별명이 붙었으며 이탈리아 기자는 당시 홍명보의 연봉인 5,300만원이 터무니 없이 작다고 그는 <20억의 가치가 되는 선수>라고 추켜세웠다. 모든 칭찬을 받고 돌아가는 한국 팀의 어깨엔 서운함이 서려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