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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마음챙김 수행의 가르침
수행하는 곳으로 가는 마음자세
맛지마 니까야: 4 바야베라와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브라흐민 자눗소니가 부처님께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고따마 존자님, 인적이 없는 외딴 곳이나 숲 속 정글에 머무는 것은 어렵습니다. 인적이 없는 외딴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렵고 홀로 있음을 즐기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이 숲의 두려움으로 사로잡힐 것 같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브라흐민이여, 그대의 말과 같습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 나 또한 이와 같이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이나 숲 속 밀림에 머무는 것은 어렵다. 외딴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렵고 홀로 있음을 즐기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이 숲의 두려움으로 사로잡힐 것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문이 행동을 깨끗이 함이 없이.
사문이 말을 깨끗이 함이 없이.
사문이 생각을 깨끗이 함이 없이,
멀리 떨어진 외딴 숲이나 밀림의 숲의 수행처로 간다면, 그 깨끗지 못한 행동과 말과 생각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가 옵니다. 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깨끗이 하지 않고는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숲이나 밀림의 숲의 수행처로 가지 않습니다. 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깨끗하게 합니다. 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깨끗하게 합니다. 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깨끗이 하고 밀림의 숲의 수행처로 가는, 훌륭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 속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온전히 깨끗함을 보았기 때문에 숲에 머무는 것에 커다란 확신을 얻었습니다.
어떤 수행자들은 탐욕과 강한 감각적 쾌락에 집착된 채 멀리 떨어진 밀림의 숲으로 갑니다. 그러나 이들은 탐욕과 감각적 쾌락의 집착으로 인하여 두려움과 공포가 옵니다. 또 어떤 수행자들은 악의, 나태와 무기력, 침착하지 못함, 의심과 갈등, 자신은 칭찬하고 남은 비방함 두려움,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대한 열망, 게으름과 정진의 부족, 마음집중과 선명한 알아차림의 부족, 안주하지 못하고 들떠있는 마음, 지혜의 부족과 우둔함, 이와 같은 성향을 가진 채로 멀리 떨어진 밀림의 숲으로 갑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나쁜 성향으로 인하여 두려움과 공포가 옵니다.
나는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나쁜 성향을 극복하여 깨끗이 함이 없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숲의 수행처로 가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나쁜 성향들을 깨끗이 합니다. 나는 이런 나쁜 성향들을 극복하여 깨끗이 하고 밀림의 숲의 수행처로 가는 훌륭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 속에서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 극복되어 온전히 깨끗해짐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숲에 머무는 것에 커다란 확신을 얻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힘이 내 안에서 솟았습니다. 선명한 마음챙김이 확고히 세워졌습니다. 내 몸의 평온하고 흔들림이 없고 마음은 통일되어 하나로 집중되었습니다.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사유와 숙고가 있으며, 홀로 명상함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사유와 숙고를 멈추고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됨이 있으며, 사유와 숙고가 없이 삼매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두 번째 선전에 머뭅니다.
환희가 사라진 후 평정한 마음과 분명한 알아차림과 육신의 행복을 느끼며 머뭅니다.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평정과 마음챙김에 머무는 사람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고통도 쾌락도 버리고 전에 있던 행복도 불행도 버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에 의하여 도달한 마음챙김의 순수함이 있는 네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을 때 나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났고, 존재의 번뇌에서 벗어났고 어리석음의 번뇌에서 벗어났습니다.
브라흐민이여, 내가 숲 속 수행처로 가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 자신을 위한 해아복과 다음 사람들을 위한 자비심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브라흐민 자눗소니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재가신자가 되었다.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 수행을 하면
쌍윳따 니까야 54 아나빠나 쌍윳따20
비구들이여,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수행법]의 삼매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면,
속박을 버리는 도움이 되며,
좋지 않은 경향을 뿌리째 뽑는 데 도움이 되며,
가르침을 철저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번뇌를 부수는 데 도움이 된다.
중요한 명사주제들
쌍윳따 니까야 46 붓장가 쌍윳따 57-73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해골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46:57)
시체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46:58)
자애, 자비, 기쁨, 평정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46:62:64)
호흡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46:66)
더러움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46:67)
죽음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46:68)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46:71:73)
버림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46:74)
이탐(離貪:탐욕에서 벗어남)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46:75)
소멸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46:76)
많은 열매와 이익을 얻는다.
이와 같은 명상을 발전시키고 성숙시키면 지금 현재의 생애에서 완전한 지혜를 얻거나, 아직 집착이 남아 있다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위에 도달한다. 이런 명상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면, 커다란 이익을 얻으며, 속박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으며, 안락한 삶으로 이끈다.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수행법
쌍윳따 니까야 54 아나빤 쌍웃따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그대들이 수행을 발전시키고 연마할 때 좋은 결실과 이익을 가져오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이다.
그러면 어떻게 좋은 결실과 이익을 얻기 위하여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는가? 숲이나, 나무 아래나, 빈 오두막으로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몸을 바로 세우고, 마음챙김을 앞에 세운 후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숨을 길게 들이쉴 때는 ‘숨을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채고, 숨을 길게 내쉴 때는 ‘숨을 길게 내쉰다.’고 알아챈다.
숨을 짧게 들이쉴 때에 ‘숨을 짮게 들이쉰다.’고 알아채고, 숨을 짧게 내쉴 때는 ‘숨을 짧게 내쉰다.’고 알아챈다.
‘온몸을 통하여 호습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
고 수련하고, ‘온몸을 통하여 호습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몸의 형성[호흡]을 고요히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수련하고, ‘몸의 형성[호흡]을 고요히 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환희심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수련하고, ‘환희심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행복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수련하고, ‘행복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마음의 형성[느낌이나 지각]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마음의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의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 고 수련한다.
‘마음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마음을 집중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마음을 해탈케 하리라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을 해탈케 하리라 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무산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수련하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수련하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포기함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수련하고, ‘포기함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수련한다.
이와 같이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면 커다란 결실과 이익을 얻는다.”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의 삼매
쌍윳따 니까야 54 아나빠나 쌍윳따 7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띠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마하갑삐나 존자는 부처님이 계신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다리를 가부좌하고, 몸을 바로하고, 마음챙김을 앞에 세우고 앉아 있었다. 부처님은 앉아 있는 그를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마하깝삐나가 몸을 흔드는 것을 보았느냐?”
“부처님, 그가 대중 가운데 앉아 있을 때나 또는 홀로 앉아 있을 때에도 우리들은 그가 몸을 흔들거나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 저 비구는 삼매를 발전시키고 연마해서 어려움 없이 자기의 의지대로 몸과 마음을 흔들지 않으며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무슨 삼매를 닦고 연마하면 몸과 마음을 흔들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면 몸과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둥을 발전시키고 연마하여, 몸과 마음을 흔들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가?’숲이나, 나무 아래나, 빈 오두막으로 가서 가부좌를 하고, 몸을 바로하고, 마음챙김을 앞에 세우고, 주의를 집중하여 숨을 들이쉴 때에는 숨을 들이쉰다고 알아채고, 숨을 내쉴 때에는 숨을 내쉰다고 알아챈다.”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의 삼매 수행
쌍윳따 니까야 54 아나빠나 쌍윳따 8
사왓티에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셨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을 발전시키고 연마할 때 큰 결실과 이익을 얻는다.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 아직 보디삿따였을 때 나는 보통 이 방법으로 수행을 하였다. 내가 이런 방법으로 수행하며 머무는 동안 내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았고 눈도 피로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집착을 놓음으로써 번뇌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만일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고 눈도 피로해지지 않고 집착에서 떠나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가정생활과 연관된 기억과 생각을 버리고 싶다면,
만일 싫어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싶다면,
만일 싫어한다든지 싫어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두 가지를 다 피하는 마음을 내고 싶다면,
그리고 평정에 머물고, 주의 깊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마음을 내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사유와 숙고가 있으며, 홀로 명상함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머물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사유와 숙고를 멈추고, 안으로의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됨이 있으며, 사유와 수고가 없이 삼매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머물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환희가 사라진 후 평정한 마음과 분명한 알아차림과 육신의 행복을 느끼며 머물고,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평정과 마음챙김에 머무는 사람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머물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고통도 쾌락도 버리고 전에 있던 행복도 불행도 버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에 의하여 도달한 온전히 순수한 마음챙김이 있는 네 번째 선정에 머물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수행]이 이와 같이 발전되고 연마되었을 때, 만일 기분 좋은 느낌을 느끼더라도 ‘이것은 무상한 것이고 집착할 것이 아니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라고 알아차린다. 만일 괴로운 느낌을 느끼더라도 ‘이것은 무상한 것이고 집착할 것이 아니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라고 알아차린다. 만일 기분 좋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더라도 ‘이것은 무상한 것이고 집착할 것이 아니며 기뻐할 일이 아니다.’라고 알아차린다.”
네 가지 마음챙김으 확립
쌍윳따 니까야 47 사띠빳타나 상윳따 1-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웨살리의 암바빨리 숲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여기에 유일한 길이 있다. 그 유일한 길은 사람들 청정한 삶의 길로 인도하고, 슬픔과 한탄을 이겨내게 하고, 괴로움과 불쾌감을 없애며, 바른길을 얻게 하며, 열반에 이르게 한다. 그것은 곧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 이다 무엇이 넷인가?
수행자는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열성적으로, 선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가지고,
몸에 대하여 몸을 [있는 그대로]관찰하고,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있는 그대로]관찰하고,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있는 그대로]관찰하고,
담마에 대하여 담마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이것이 유일한 길로써 그 유일한 길은 사람들을 청정한 삶의 길로 인도하고, 슬픔과 한탄을 이겨내게 하고, 괴로움과 불쾌감을 없애며, 바른길을 얻게 하며, 열반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곧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선명한 알아차림인가?
앞으로 갈 때에도 돌아 설 때에도, 앞을 볼 때에도 옆을 볼 때에도, 팔다리를 굽힐 때에도 펼 때에도, 가사를 입거나 들고 갈 때에도, 발우를 메고 갈 때에도, 음식을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에도, 대변과 소변을 볼 때에도, 걷고, 서고, 앉고, 잠들 때에도, 잠깰 때에도, 말할 때에도 그리고 침묵할 때에도 선명한 알아차림을 가지고 행동한다.
이와 같이 선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에 머물러야 한다.”
건전한 가르침의 시작점은 계행과 바른 견해
쌍윳따 니까야 47 사띠빳타나 쌍윳따 3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께 와서 가르침을 청하였다. 부처님을 말씀하셨다.
“건전한 가르침의 바로 그 시작점을 깨끗하게 하라.
건전한 가르침의 시작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청정한 계행과 바른 견해이다.
계행을 근본으로 하고 계행을 바탕르로 하여
그대들의 계행이 진정으로 청정하고 견해가 바를 때
세 가지 면에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발전시켜야 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열성적으로, 선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가지고
몸에 대하여 몸을,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담마에 대하여 담마를,
내적으로 외적으로 내외적으로 세 가지 면에서 관찰하며 머문다.
이와 같이 계행을 근본으로 하고 계행을 바탕으로 하여 세 가지 면에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발전시키면, 밤낮으로 건전한 법은 늘어나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바른 법이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
쌍윳따 니까야 47 사띠빳타나 쌍윳따 2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아난다 존자와 밧다 존자가 빠딸리뿟따의 꾹꾸따 승원에 있었다. 빳다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벗 아난다여, 여래가 마지막 열반에 드신 후 바른 법이 오래가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또 바른 법이 오래간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좋습니다. 벗 밧다여, 여래가 마지막 열반에 드신 후 참된 법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발전시키고 연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래가 마지막 열반에 드신 후 참된 법이 오래가는 것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발전시키고 연마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챙김의 확립’이란?
쌍윳따 니까야 47 사띠빳타나 쌍윳따 40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무엇이 ‘마음챙김의 확립’인가?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열성적으로, 선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가지고,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몸에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느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느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느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담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담마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담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이것을 ‘마음챙김의 확립’이라고 부른다.
육신의 고통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 이유
쌍윳따 니까야 52 아누룻다 쌍윳따 10
어느 때 아누룻다 존자는 사왓티의 안다 숲에 있었다. 그때 그는 병이 들어 괴로워하였는데 중병이었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그를 방문하였는데 그들은 아누릇다 존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누릇다 존자님, 육체적 고통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게 하기 위하여 존자님은 어떻게 머무십니까?”
“벗이여, 나의 마음을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잘 세워서 머물기 때문에 육처적 고통의 느낌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습니다.”
마음챙김의 확립에 대한 가르침
맛지마 니까야 10 사띠빳타나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꾸루국의 R마마사담마라고 부르는 꾸루족의 마을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①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정화를 위한 하나의 유일한 길이다.
② 이것은 슬픔과 한탄을 극복하게 하며,
③ [육체적]고통과[정신적] 고뇌를 완전히 부수어 버리며,
④ 바른길[팔정도]를 성취하게 하며,
⑤ 열반을 실현하게 한다.
이 유일한 길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무엇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인가?)
무엇이 네 가지인가?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열성을 다하여, 분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가지고,
①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열성을 다하여, 분명한 알아 차람과 마음챙김을 가
② 느낌을 느낌으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열성을 다하여, 분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가지고
③ 마음을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열성을 다하여, 분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가지고
④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머문다.
Ⅰ 몸에 대한 관찰
어떻게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머무는가? 숲이나, 나무 아래, 또는 빈 오두막으로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몸을 바로 세우고 마음챙김을 앞에 세운다. 온전한 마음챙김을 가지고 숨을 들이쉬고 온전한 마음챙김을 가지고 숨을 내쉰다.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 ‘숨을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숨을 길게 내쉬면서 ‘숨을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쉬면서‘숨을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쉬면서 ‘숨을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나는 들이쉬는 숨의 처음부터 중간과 끝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면서 숨을 들이쉴 것이며, 내쉬는 숨의 처음서부터 중간과 끝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알아차리면서 숨을 내쉴 것이다.’라고 수련한다.
‘나는 강하게 들이쉬는 숨을 고요히 하며 숨을 들이쉴 것이며, 강하게 내쉬는 숨을 고요히 하면서 숨을 내쉴 것이다.’라고 수련한다.
마치 숙련된 선방공이나 그의 견습공이 길게 돌릴 때는 길게 돌린다고 알며, 짧게 돌릴 때는 짧게 돌린다고 아는 것처럼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 ‘숨을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숨을 길게 내쉬면서 ‘숨을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 쉬면서 ‘숨을 짧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쉬면서 ‘숨을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 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도착함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2. 몸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
걸어갈 때는 ‘나는 걷고 있다.’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서 있을 때는 ‘나는 서 있다.’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앉아 있을 때는 ‘나는 앉아 있다.’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누워있을 때는 ‘나는 누워있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떤 몸의 동작이라도 하더라도 그 동작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앞으로 갈 때에도 되돌아 올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
앞을 볼 때에도 둘러볼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
앞을 볼 때에도 둘러볼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 굽힐 때에도 팔다리를 펼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갈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 먹을 때에도, 마실 때에도, 음식을 씹을 때에도, 맛볼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 대소변을 볼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 가고, 서고, 앉고, 잠들 때에도, 깨어날 때에도, 말 할 때에도, 침묵할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함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3. 몸의 내부 기관에 대한 관찰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끝에서부터 아래로 이 몸은 피부로 덮여져 있으며,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몸 속에는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 발톱, 이빨,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신장, 심장, 간장, 늑막, 비장, 폐, 대장, 소장, 위장, 똥,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임파액, 침, 점액, 관절액, 오줌등이 들어있다고 관찰한다.
그것은 마치 양쪽 입구가 다 터진 자루 속에 여러 가지 종류의 둔덕 쌀, 벼, 강낭콩, 완두콩, 참깨, 쌀 등과 같은 여러 종류의 곡물이 있는데, 눈이 좋은 사람이 자루를 열고 ‘이것이 둔덕 쌀, 이것은 벼, 이것은 강낭콩, 하고 살펴보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우리의 몸도 이와 같음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윗빠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 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4. 몸의 네 가지 요소에 대한 관찰
이 몸이 어떻게 놓여져 있건 어떻게 처해져 있건 요소의 관점에서 고찰하기를, ‘이 몸에는 땅의 요소[물질적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더운기운],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관찰한다.
마치 숙련된 백정이나 그의 견습생이 소를 도살하여 조각으로 잘라서 사거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다만 조각난 고기만 보일 뿐 소는 보이지 않는다.] 이 몸이 어떻게 놓여져 있건 어떻게 처해져 있건, 요소의 관점에서 고찰하기를, ‘이 몸에는 땅의 요소[물질적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더운 기운],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관찰한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이 있다. 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5 시체에 대한 아홉 가지 관찰
첫 번째 관찰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 부풀어 오르고, 검푸르게 되고,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보듯이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진실로 나의 몸도 또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도 저와 같이 될 것이며 저와 같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라고 관찰한다.
두 번째 관찰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까마귀에 먹히고, 매에 막히고, 독수리에 먹히고, 개에 먹히고, 재클에 먹히고, 여러 가지 벌레에 먹히는 것을 보듯이,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진실로 나의 몸도 또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도 저와 같이 될 것이며 저와 같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라고 관찰한다.
세 번째 관찰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에 힘줄이 붙어 있고, 살점과 칫자국잉 남아 있는 것을 보듯이,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진실로 나의 몸도 또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도 저와 같이 될 것이며 저와 같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라고 관찰한다.
네 번째 관찰 : 마치 모제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에 힘줄이 붙어 있고, 살점은 없고 핏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보듯이,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ㅎ나다. ‘신실로 나의 몸도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도 저와 같이 될 것이며 저와 같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라고 관찰한다.
다섯 번째 관찰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에 힘줄은 붙어 있고, 살점이나 핏자국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듯이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진실로 나의 몸도 또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도 저와 같이 될 것이며 저와 같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라고 관찰한다.
여섯 번째 관찰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갈비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뼈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듯이,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진실로 나의 몸도 또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도 저와 같이 될 것이며 저와 같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라고 관찰한다.
일곱 번째 관찰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뼈가 조개껍질의 색처럼 하얗게 변한 것을 보듯이,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진실로 나의 몸도 또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도 저와 같이 될 것이며 저와 같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라고 관찰한다.
여덟 번째 관찰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뼈가 일 년이 더 되어 무더기로 쌓여 잇는 것을 보듯이,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신실로 나의 몸도 또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도 저와 같이 될 것이며 저와 같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라고 관찰한다.
아홉 번째 관찰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뼈마저 썩어 가루로 변해있는 것을 보듯이,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진실로 나의 몸도 또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도 저와 같이 될 것이며 저와 같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라고 관찰한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일어나고 사라지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이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Ⅱ 느낌에 대한 관찰
어떻게 느낌을 느낌으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무는가?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나는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 ‘나는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세속적인[감각적 쾌락의]즐거움을 느낄 때 ‘나는 세속적인 [감각적 쾌락의]즐거움을 느낀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세속적이 아닌 즐거움을 느낄 때 ‘나는 세속적이 아닌 즐거움을 느낀다.’분명히 알아차린다.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 ‘나는 세속적인 괴로움을 느낌을 느낀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세속적이 아닌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 ‘나는 세속적이 아닌 느낌을 느낀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세속적인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 ‘나는 세속적인 괴로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세속적인 아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 ‘나는 세속적이 안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느낌을 느낌으로[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느낌에서 일어나는 형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느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느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느낌 현상만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함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느낌을 느낌으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Ⅲ 마음에 대한 관찰
어떻게 마음을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무는가?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탐욕이 없는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게으르고 무기력한 마음을 게으르고 무기력한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게으르고 무기력하지 않은 마음을 게으르고 무기력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산만한 마음을 산만한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산만하지 않은 마음을 산만하지 않은 마음을 산만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숭고한 마음을 숭고한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숭고하지 못한 마음을 숭고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저열한 마음을 저열한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저열하지 않은 마음을 저열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최상의 마음을 최상의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최상이 아닌 마음을 최상의 아닌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삼매에 들지 못한 마음을 삼매에 들지 못한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마음을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도직 마음의 현상만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 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함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마음을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Ⅳ 담마에 대한 관찰
어떻게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며 머무는가?
1. ‘다섯 가지 장애’에 대한 관찰
‘다섯 가지 장애’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어떻게 다섯 가지 장애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머무는가?
①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감각적 욕망이 내 안에 있다.’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감각적 욕망이 없으면 ‘감각적 욕망이 내 안에 없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분명히 알아차리며,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버려지는지 분명히 알아차리며,
버려진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를 분명히 알아차린다.
② 악의가 있으면 ‘악의가 내 안에 있다.’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악의가 없으면 ‘악의가 내안에 없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악의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분명히 알아차리며,
악의가 어떻게 버려지는가를 분명히 알아차리며,
버려진 악의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분명히 알아차리며,
③ 게으름과 무기력이 있으면 ‘게으름과 무기력이 내 안에 있다.’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게으름과 무기력함이 없으면 ‘게으름과 무기력함이 내 안에 없다. 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④ 들뜸과 회한이 있으면 ‘들뜸과 회한이 내 안에 있다.’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들뜸과 회한이 어떻게 버려지는지 분명히 알아차리며, 버려진 들뜸과 회한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를 분명히 알아차린다.
⑤ 의심이 있으면 ‘의심이 내안에 있다.’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의심이 없으면 ‘의심이 내안에 없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의심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분명히 알아차리며, 의심이 어떻게 버려지는지 분명히 알아차리며,
버려진 의심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를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담마를 담마로[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고나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담마의 현상만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 도 집착함이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갗이 ‘다섯 가지 장애’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2. ‘다섯가지 무더기’에 대한 관찰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어떻게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가지 무더기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무는가?
① ‘물질은 이와 같다.’물질의 일어남은 이와 같다. 물질의 사라짐은 이와 같다. 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② ‘느낌은 이와 같다. 느낌의 일어남은 이와 같다. 느낌의 사라짐은 이와 같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③ ‘지각은 이와 같다. 느낌의 일어남은 이와 같다. 지각의 사라짐은 이와 같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④ ‘형성은 이와 같다. 형성의 일어남은 이와 같다. 형성의 사라짐은 이와 같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⑤ ‘의식은 이와 같다. 의식의 일어남은 이와 같다. 의식의 사라짐은 이와 같다.’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담마의 현상만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 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집착의 대상이 되는ㄴ ‘다섯 가지 무더기’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3.‘여섯 가지 감가기관’에 대한 관찰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기관’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어떻게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기관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무는가?
① 눈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눈과 대상으로 인하여 생기는 속박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일어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버려지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미 버려진 속박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② 귀를 분명히 알아차린다.
귀와 소리로 인하여 생기는 속박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일어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버려지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미 버려진 속박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③ 코를 분명히 알아차린다.
코와 냄새를 분명히 알아차린다.
코와 냄새로 인하여 생기는 속박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일어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버려지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미 버려진 속박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④ 혀를 분명히 알아차린다.
느끼는 맛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혀와 맛으로 인하여 생기는 속박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일어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버려지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미 버려진 속박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⑤ 몸을 알아차린다.
만져지는 촉감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몸과 촉감으로 인하여 생기는 속박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일어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버려지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미 버려진 속박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⑥ 마음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마음의 대상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마음과 대상으로 인하여 생가는 속박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일어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속박이 버려지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미 버려진 속박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담마를 담마로[있는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담마의 현상만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 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함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집착의 대상이 되는 여서서 가지 안팎의 감각기관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4.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어떻게 ‘일고 가지 깨달음의 요소’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무는가?
①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자기 안에 있으면 있는 줄 분명히 알아차리며, 없으면 없는 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성취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② ‘탐구의 깨달음의 요소’가 자기 안에 있으면 있는 줄 분명히 알아차리며, 없으면 없는 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탐구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성취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③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자기 안에 있으면 있는 줄 분명히 알아차리며, 없으면 없는 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성취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④ ‘환희의 깨달음의 요소’가 자기 안에 있으면 있는 줄 분명히 알아차리며 없으면 없는 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환희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성취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⑤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자기 안에 있으면 있는 줄 분명히 알아차리며, 없으면 없는 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성취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⑥ ‘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자기 안에 있으면 있는 줄 분명히 알아차리며, 없으면 없는 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성취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⑦ ‘평정의 깨달음의 요소’가 자기 안에 있으면 있는 줄 분명히 알아차리며, 없으면 없는 줄 분명히 알아차린다. 어떻게 평정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성취되는지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담마의 현상만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 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함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5.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한 관찰
어떻게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무는가?
①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아차린다.
②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아차린다.
③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아차린다.
④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이쓴ㄴ 그대로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담마를 담마로 [있는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담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또는 ‘오직 담마의 현상만 있다.’는 사실에 굳건하게 마음챙기며 머문다. 마음챙김은 오직 점차적으로 위빳사나를 얻기 위한 것이며 오직 단계적으로 좀더 높은 차원의 마음챙김을 얻기 위함이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함 없이 갈애와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 머문다. 이와 같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의 관점에서 담마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관찰하면서 머문다.
(결론)
만일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을 7년동안 같이 수행한다면 두 가지 결과 중 한 가지를 얻는다.
지금, 현재 최상의 지혜를 얻는다.
아직 집착이 남아 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계’를 얻는다.
7년은 그만두고라도 만일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6년이나 5년, 4년, 3년, 2년 단지 1년 동안이라도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두 가지 결과 중 한 가지를 얻는다.
지금, 현재 최상의 지혜를 얻는다.
이직 집착이 남이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계’를 얻는다.
1년은 그만두고라도 만일 누구라도 이 ‘네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7개월이나, 6개월, 4개월, 2개월이나 단지 15일 동안만이라도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두 가지 결과 중 한 가지를 얻는다
지금, 현재 최상의 지혜를 얻는다.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계’를 얻는다.
이런 이로움의 결실이 있기 때문에 이 경의 제일 처음에 말하기를,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정화를 위한 하나의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슬픔과 한탄을 극복하게 하며,[육체적]고통과 [정신적]고뇌를 완전히 부수어 버리며, 바른 길[팔정도]를 성취하게 하며, 열반을 실현하게 한다. 이 유일한 길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라고 하였다.
공부가 안 된다면 그곳을 떠나라.
맛지마 니까야17 와나빳타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그대들에게 숲에서의 수행에 대하여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귀를 기울여 잘 듣도록 하여라.
불결함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불결함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어떤 집착도 버려진다.
무상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무상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나다’라는 교만을 마음이 버려진다.
호흡에 대한 마음 챙김의 명상을 닦아라.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의 명상을 닦으면 커다란 이익과 결실을 가져온다.”
수행의 점차적인 순서와 단계
맛지마 니까야 107 가나까목갈라나 경 1-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동쪽 승원 미가라마뚜 강당에 계셨다. 그때 브라흐민 가나까 목갈라나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고따마 존자님. 이 미가라마뚜 강당을 지을 때도 점차적으로 훈련과, 점차적인 실행과, 점차적인 발전의 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즉 계단의 마지막 단까지입니다. 마찬가지로 브라흐민에 있어서도 점차적인 훈련과, 점차적인 실행과, 점차적인 발전의 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마지막 단계인] 베다의 학습까지 갑니다. 회계로 생계를 유지하는 우리와 같은 회계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점차적인 훈련과, 점차적인 실행과, 점차적인 발전의 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마지막 단계인]회계까지 갑니다.
고따마 존자님,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도 점차적인 훈련과, 점차적인 실행과, 점차적인 발전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브라흐민, 마치 현명한 말 조련사가 훌륭한 경주용 말을 얻으면 우선 말이 재갈을 물리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합니다. 그 후에 말을 더 길들이게 됩니다. 이처럼 여래는 길들여야 할 사람을 얻으면 이와 같이 수련합니다.
(첫 번째 단계 : 계행을 지킴)
‘오너라 비구여, 계행을 지키고, 빠띠목차[계본]의 규율에 따라 절제하여라. 행동을 바르게 하고, 아주 작은 잘못에서도 두려움을 보며, 수련의 규칙 속에서 그대 자신을 단련하라.’고 가르칩니다.
(두 번째 단계 : 감각기관을 절제함)
여래는 그를 좀 더 수행하도록 이끕니다.
‘감각기관의 문을 절제하여라.
눈으로 형상을 볼 때 나타난 모양에 집착하지 말아라.
귀로 소리를 들을 때 들리는 소리에 집착하지 말아라.
코로 냄새를 맡을 때 맡아지는 냄새에 집착하지 말아라.
혀로 맛볼 때 그 맛에 집착하지 말아라.
몸으로 촉감을 느낄 때 그 촉감에 집착하지 말아라.
마음으로 대상을 인식할 때 마음의 움직임에 집착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만일 눈.귀.코.혀.몸.마음을 절제하지 않으면 탐욕과 낙담과 그리고 사악한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 침입할 것이다. 그러므로 감각기관을 절제하고, 지키고, 이것의 절제를 성취하여라.’고 가르칩니다.
(세 번째 단계 : 음식을 절제함)
그런 다음 여래는 그를 좀 더 수행하도록 이끕니다.
‘먹는 것에 적당량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주의 깊게 살피면서 음식을 취하여야 한다. 음식을 먹는 것은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며, 취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육신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을 위해서도 아니며, 다만 이 육신을 계속적으로 지탱하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서 청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라고 가르칩니다.
(네 번째 단계 : 명상으로 번뇌를 맑힘)
그런 다음 여래는 그를 좀 더 수행하도록 이끕니다.
‘깨어있음에 전념하라. 낮 동안의 경행[걷기 명상]하는 동안과 앉아 명상하는 동안에 장애[번뇌]로부터 마음을 깨끗이하라. 밤의 초야에는 경행과 앉아 명상하고 있는 동안에 장애로부터 마음을 깨끗이하라. 밤의 중에에서 오른쪽으로 사자처럼 누워 발을 포개고 다시 일어날 것을 생각하며 마음챙김으로 온전히 알아차린다. 밤의 후야에는 경행과 앉아 명상하고 있는 동안 장애로부터 마음을 깨끗이하라.’고 가르칩니다.
(다섯 번째 단계 : 마음챙김과 선명한 알아차림에 머문다)
그런 다음 여래는 그를 좀더 수행하도록 이끕니다.
‘마음챙김과 선명한 알아차림에 머물러야 한다. 앞으로 갈 때에도 뒤로 돌 때에도, 앞을 볼 때에도 귀를 볼 때에도, 팔다리를 굽힐 때에도 펼 때에도, 가사를 입을 때에도 가사와 발우를 가져 갈 때에도, 먹을 때에도, 먹을 때에도, 마실 때에도, 맛볼 때에도, 대소변을 볼 때에도, 걸을 때에도, 서 있을 때에도, 앉아있을 때에도, 졸음이 올 때에도, 잠을 깰 때에도, 말할 때에도, 침묵할 때에도 온전히 알아차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섯 번째 단계 : 다섯 가지 장애를 정화함)
그런 다음 여래는 그를 좀 더 수행하도록 이끕니다.
‘명상하기 좋은 한적한 곳으로 가라. 숲이나, 나무 밑, 산비탈, 계곡, 언덕의 동굴, 울창한 숲, 노지 등으로 가라.’ 이런 곳으로 가서 탁발에서 돌아와 공양 후 가부좌하고 앉아서 허리를 곧게 세우고 마음챙김을 앞에 세웁니다.
-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 없는 마음에 머뭅니다. 그는 탐욕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합니다.
- 악의와 증오를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에 머뭅니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머뭅니다. 그는 악의로부터 마음을 정화합니다.
- 게으름과 무기력을 버리고 게으름과 무기력 없이 머뭅니다. 그는 마음챙김과 선명한 알아차림에 머뭅니다. 그는 게으름과 무기력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합니다.
- 흥분과 회한을 버리고 안으로 고요한 마음으로 들뜨지 않고 머뭅니다. 그는 흥분과 회한을 버리고 안으로 고요한 마음으로 들뜨지 않고 머뭅니다. 그는 흥분과 회한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합니다.
-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초월하여 머뭅니다. 거전한 것에 대한 의혹을 버리고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합니다.
(일곱 번째 단계 : 네 가지 선정에 머문다.)
이와 같이 지혜를 약하게 만드는 마음의 번뇌인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린 후에, 감각적 쾌락에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사유와 숙고가 있으며, 홀로 명상함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사유와 숙고를 멈추고 안으로의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됨이 있으며, 사유와 숙고가 없이 삼매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환희가 사라진 후 평정한 마음과 분명한 알아차림과 육신의 행복을 느끼며 머뭅니다. 거룩한 아들이 말하는 ‘평정과 마음 챙김에 머무는 사람은 행복하게 머문자.’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고통도 쾌락 버리고 전에 있던 행복도 불행ㅇ도 버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에 의하여 도달한 마음챙김의 순수함이 있는 네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브라흐민이여, 이것이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지만 속박에서 벗어나 최상의 안온을 열망하는 좀 더 높은 수련의 단계에 있는 비구들에게 주는 나의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들은 지금 여기에서의 즐거운 삶에 도움이 되며 또한 번뇌가 부서진 아라한이 마음챙김과 선명한 알아차림에 머무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잘못하는 명상의 다섯 가지
맛지마 니까야 108 고빠까목갈라나 경 25-2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아난다 존자는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있었다. 그때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아난다 존자는 브라흐민 고빠까목갈라나의 작업장에서 그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가다국의 대신인 브라흐민 왓사까라가라자가하에서 공사를 감독하다가 아난다 존자를 찾아왔다. 그는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아 여러 가지를 질문한 후 다시 이렇게 물었다.
“아난다 존자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 죽림정사에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님, 그 대나무 숲은 쾌적하고, 조용하고, 인가와 떨어져 있고, 외따로 명상 수행하기에 적합한 곳이지요?”
“그렇습니다. 브라흐민, [더구나] 그대와 같은 관리인과 보호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난다 존자님, 그리고 그곳은 명상가인 훌륭한 분들과 명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대나무 숲은 쾌적하고, 조용하고, 인가와 떨어져 있고, 외따로 명상 수행하기 적합한 곳입니다. 그전에 고따마 존자님이 웨살리의 큰 숲에 있는 중각강당에서 계실 때였습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저에게 명상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명상가였고, 명상을 수련하셨고, 어떤 형태의 명상이든 찬탄하셨습니다.”
“브라흐민이여, 부처님은 명상을 어떻게 하든지를 막론하고 무조건 찬탄하지 않았고, 무조건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처님이 찬탄하지 않은 명상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장애를 경계하심)
여기 어떤 사람이 감각적 쾌락에 붙잡혀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감각적 쾌락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이 못합니다. 감각적 쾌락을 마음속에 가지고 명상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악한 마음에 붙잡혀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악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극서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명상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게으름과 무기력에 사로잡혔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서 명상을 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들뜸과 회한에 붙잡혀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들뜸과 회한에 사로잡혔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들뜸과 회한에 빠져서 명상을 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심으로 가득 차서 의심을 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의심에 사로잡혔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이 의심에 빠져서 명상을 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브라흐민이여, 부처님은 이런 종류의 명상을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어떤 종류의 명상을 찬탄하셨을까요?
(4선정을 찬탄하심)
브라흐민이여,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사유와 숙고가 있으며 홀로 명상함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사유와 숙고를 멈추고 안으로의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됨이 있으며, 사유과 숙고가 없이 삼매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두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환희가 사라진 후 평정한 마음과 분명한 알아차림과 육신의 행복을 느끼며 머뭅니다.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평정과 마음챙김에 머무는 사람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고통도 쾌락도 버리고 전에 있던 행복도 불행도 버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에 의하여 도달한 마음챙김의 순수함이 있는 네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부처님은 이런 종류의 명상을 찬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아난다 존자는 말하였다.
마음챙김은 어떻게 하는가?
디가 니까야 :16 마하빠리닙바나 경 2 :11-13
부처님은 많은 무리의 비구들과 함께 웨살리로 가셔서 암바빨리 숲에 머무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대들은 분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간곡한 당부이다.
어떻게 마음을 챙기는가? 열성을 다하여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마음챙김으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무상하고, 불안전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느낌을 느낌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마음을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담마[가르침]을 담마로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이것이 ‘어떻게 마음을 챙기는가’이다.
그러면 어떻게 분명히 알아차리는가?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갈 때에도, 앞을 보거나 옆을 볼 때에도, 몸을 굽히거나 펼 때에도, 가사나 발우를 가져 갈 때에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 먹거나, 마시거나, 씹거나. 맛보거나, 대소변을 볼 때에도, 걸을 때에도, 서 있을 때에도, 앉아 있을 때에도, 잠이 들 때에도, 잠을 깰 때에도, 말할 때에도, 묵묵할 때에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분명히 알아차리는가’이다.
이와 같이 마음챙김과 분명한 알아차림 속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간곡한 당부이다.”
마음챙김을 부지런히 해야 하는 이유
앙굿따라 니까야 4부 117
비구들이여, 네 가지 경우에서 그대들 자신을 위하여 부지럼함과 마음챙김과 마음의 지킴과 마음의 지킴을 발휘하여야 한다.
내 마음이 탐욕을 일으키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탐욕을 품지 않기를,
내 마음이 어리석음을 일으키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어리석음이 빠지지 않기를
내 마음이 열광을 일으키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열광하지 않기를,
이런 이유로 네 가지 경우에서 그대들 자신을 위하여 부지런함과 마음챙김과 마음의 지킴을 발휘하여야 한다.
수행생활에 기쁨이 없는 이유
앙굿따라 니까야 5부 56
어떤 비구가 그의 스승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님, 제 몸은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하고 천지사방도 선명하지 않습니다. 가르침도 저에게 선명하지 앟고 게으름과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수행생활을 하지만 즐거움도 없도 가르침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승은 그 제자를 데리고 부처님께 가서 제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말씀드렸다. 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정말 그렇구나. 수행자가 감각기관을 단속하지 않고, 먹는 데에 적당한 양을 모르고, 깨어있지 못하고, 바른 가르침을 추구하지 않고, 매일 매일 수행이 깨달음을로 이끄는 삶을 아니라면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하고 천지사방도 선명하지 않고, 가르침도 선명하지 한고, 게으름과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수행생활을 하지만 즐거움이 없고 가르침에 대한 의심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렇게 자신을 단련하여야 한다. ‘나는 감각기관을 잘 단속할 것이며, 먹는 것에 적당량을 알며, 늘 깨어있고, 바른 가르침을 추구하고, 매일 매일 깨달음으로 이끄는 그런 수행을 할 것이다.’ 이렇게 그대들은 자신을 단련하여라.”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수련
앙굿따라 니까야 8부 74
어느 때 부처님은 나다까에서 벽돌강당(승원)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라. 만일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면 크나큰 결실과 이익을 가져온다.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발전시키는가?
날이 저물어 밤이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성찰하여야 한다. ‘여러 가지 것들이 나의 죽음을 가져올 수도 있다. 뱀, 전갈, 지네 등에 물려서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나에게 강애가 될지도 모른다. 걸려서 넘어질 수도 있고, 먹은 음식이 탈이 날 수도 있고, 담즙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가래가 나와 괴롭히든가, 궤 찌르는 것과 같은 몸 안의 바람 기운이 나의 건강에 불편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사람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좀더 깊이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오늘 밤 내가 죽는다면 나에게 장애가 될 만한 아직도 버리지 못한 바람직하지 않은 악함이라도 품고 있지 않는가?’ 만일 자신에게서 아직도 버리지 못한 바람직하지 않은 악함을 찾아냈다면, 이것들을 버리기 위하여 마음챙김과, 선명한 알아차림과, 강한 결단심과, 모든 노력과 힘을 기울여야 한다.
마치 머리에 불이 붙은 사람이 그 불을 끄기 위하여 온갖 노력과 힘을 기울이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나쁜 자질을 버리도록 온갖 노력과 힘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성찰해 보아도 자신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어떤 악함도 발전하지 못하였다면, 그는 밤이고 낮이고 무엇이든지 선하고 바람직한 것들을 실천하도록 노력하면서 기쁨 속에 머물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는 사람은 크나큰 결실과 이익을 얻는다.”
자신을 성찰함
앙굿따라 니까야 10부 51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자제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만일 다른 사람의 마음의 작용을 아는데 능속하지 못하다면, 적어도 ‘나는 내 마음의 작용을 아는데는 능숙할 것이다.’라고 단련하여야 한다.
어떻게 자기 자신의 마음의 작용을 아는데 능숙하게 되는가?
그것은 마치 장식을 좋아하는 여자나 남자 또는 젊은이들이 깨끗한 거울이나 깨끗한 물에 그들의 얼굴을 비추어보고 흠이나 얼룩이 없으면 기쁘고 그것을 지우기 위하여 애쓰게 된다. 만일 흠이나 얼룩이 없으면 기쁘고 만족하여 ‘좋구나. 나는 깨끗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성찰하는 것은 훌륭한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매우 도움이 된다.
‘나는 일반적으로 탐욕스러운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일반적으로 마음속에 악의를 품고 있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일반적으로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 있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들떠 있는 사람 가운데서 주의 깊고
조는 사람 가운데서 깨어있는 현자는
빠른 말이 약한 말을 앞지르듯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29)
깨어있음을 기뻐하고
깨어있지 못함의 두려움을 보는 수행자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를 태우면서
불처럼 앞으로 나아간다.(31)
깨어있음을 기뻐하고
깨어있지 못함의 두려움을 보는 수행자는
이미 열반에 다가섰기 때문에
결코 물러나는 일이 없다.(32)
계행을 지키고, 깨어있으며
바른 지혜로 해탈한 사람에게는
악마도 근접을 하지 못한다.(57)
고따마의 제자들은 항상 깨어있고
밤이나 낮이나 항상 육신의 무상함을 관찰한다.
고따마의 제자들은 항상 깨어있고
밤이나 낮이나 항상 명상수행을 즐거워한다.(299, 301)
테라가타
장로 비구의 시
마음을 절제하고 못하고
이 나라 저 나라 행각한다.
만일 마음을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런 행각이 도움이 되겠는가.
성급하고 들뜬 마음을 몰아내고
마음을 흩뜨리지 말고 명상하라.
빗물이 땅위로 쏟아져 내리고
바람이 휘몰아치고
번개가 하늘에서 번쩍여도
나의 사유는 가라앉아 고요하고
나의 마음은 잘 집중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