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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학회 등에서 집단상담 시연을 할 경우에 배포한 저의 집단상담의 이론적 개요입니다.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집단상담 시연: 현상학적 접근(인간중심·게슈탈트·현존중심·과정지향)
시연자: 김 명권(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 주요철학: 지도자는 자신의 지금·여기의 상태를 자각하고 개방하며 집단원들의 어떤 표현에도 수용적으로 대함으로써 집단(원)의 안전감과 허용성을 촉진한다. 일반적으로 지도자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해석이나 지시적 태도보다는 집단원과 정서적으로 함께 하며, 집단원 반응의 명료화와 개인내적 및 집단원 간 연결짓기 작업을 통해 점차 보다 높은 자기탐색과 자기자각으로 이끈다.
* 시연 관찰의 주의사항: 본 집단상담 시연은 시간적인 제약으로(약 80분) 인해 전형적인 집단상담의 전개과정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관찰자는 일반적인 언어적 비구조화 집단상담에서 기본적이고 결정적인 목표로 하는 깊은 신뢰, 친밀감, 응집성, 집단원들 간의 심도 있는 즉각적인 상호작용, 개인의 치료적 정서적 정화, 깊은 통찰 및 가족의 재경험, 개인적인 문제해결 등을 기대하지 않아야할 것입니다. 본 시연 관찰의 주된 초점은 촉진자의 집단상담 운영과정에 맞추기를 추천합니다. 즉 집단역동을 만들어가기 위한 집단원들을 격려하고 자극하며 상호 연결하는 방식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집단상담 시연에서 중점적으로 볼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촉진자 현존 및 진정성
촉진자는 집단원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를 더 치유하거나 발전시키는데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을 지금·여기에서 ‘드러나게’ 하는 데 더 관심을 갖는다. 그 이유는 우선 집단원은 자신의 처해있는 지금·여기에서만 언제나 자기탐색과 변화를 위한 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존재하기 혹은 현존은 자신의 경험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가능하면 자신의 경험을 평가하지 않고 경험하는(느껴지는) 대로 경험하는(느끼는) 것을 말한다. 알아차림이 관찰자와 관찰대상 간의 간격이 좀 더 있다면 현존은 그 간격이 좁다. 경험자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린 고통스러웠던 정서적 경험으로부터 즉각적으로 피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사실 고통은 원래의 부정적인 정서가 문제가 아니라 이 정서가 뭔가 두렵고 위험하다는 생각에 의해 더 커진다. 즉 이차적 고통이 더 문제가 된다. 원래의 고통을 그대로 만나도록 용기를 가지고 접촉한다면 억압하고 격리시켜왔던 고통을 만나는 아픔은 크겠지만 곧 이것도 자신의 의식 속에 통합되면서 종결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경험이던지 간에 그 감정을 판단 없이 만나는 것 자체가 치유로 이끈다. 접촉하여 만나면 본래 고통스러웠던 그 경험은 과거에 멈췄던 시점에서 다시 흘러 변화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매순간의 느낌(경험)에 초점을 맞춰 그가 매순간 느끼는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수용하고 허용해주는 태도와 접근을 해줘야 한다. 그렇게 느끼면 안 된다고 가르치기 시작하면 내담자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즉 그는 현재 어떤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불일치로 또 다른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운전할 때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과 같은 충돌로 내면에서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변화하고 싶으면서도 변화하지 못하는 이치다.
문제 해결적인 사고방식은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온전히 함께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극히 제한적이다. 교정을 하기 위해 애쓰거나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어떤 곳으로 가기 위해 애쓸 때마다 존재의 직접성(immediacy of being)으로부터 단절된다. 존재의 직접성이야말로 치유와 변용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매개체다. 현재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만 우린 존재에 다가갈 수 있다. 현재의 경험만이 진정한 치유가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무엇보다 지금-여기 우리가 있는 자리에 온전히 있지 않는 한 여기에서 그곳으로, 치유로 나아갈 수 없다···영적 맥락 안에서 심리치료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현존이 가진 치유의 힘이다. 지금 경험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경험을 하려 애쓰지 말고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허용하고, 그것에 자신을 열어 탐구하는 것이다. 내담자와 상담자 모두 현존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에 이를 ‘현존 중심 상담(presence-centered counseling)이라고 부른다.(Welwood, 2000)
그 어떤 치료적 접근보다도 인간중심접근에서는 촉진자의 개인적 자질 즉 삶에서 ‘존재하는 방식’이 요구된다. 인간중심접근에서 촉진자는 자기 자신을 집단의 변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촉진자의 역할은 촉진자가 어떤 사람인지(즉, 촉진자의 개인적 가치관, 생활양식, 경험, 삶에 대한 철학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치료자의 태도와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의사소통이 일어나는 수용적 집단분위기를 만드는 강력한 결정요소라고 할 수 있다(Boy & Pine, 1999).
2. 집단원 수용과 자각 촉진
촉진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아마도 ‘지금 무엇을 느낍니까?’일 것이다. 집단원들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생리적 심리적 상태를 자각하고 수용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특히 부정적인 상태가 자각되면 더 이상 그것을 억압하거나 그것에 저항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멈추기 시작한다. 현재의 상태가 아닌 것을 행하려고 할 때 내담자는 서로 상반되는 행위를 동시에 함으로써 오는 혼란과 부작용으로 문제해결과 반대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현재의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도 못하고 현재를 부인하면서 현재와는 다른 상태로 변화하려는 것이 가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변화는 현재를 알아차리고 수용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를 위해서 촉진자는 먼저 집단의 허용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노력한다. 그것이 노골적인 폭력이 아닌 한 무엇이든 허용하고 수용하려는 자세를 견지한다. 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뢰와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며 집단원들은 자율적이 되어 자신의 마음껏 실험하게 된다.
촉진자는 집단원의 생각이나 느낌을 주의 깊게 경청하여 그것을 아주 조금씩 더 깊이 탐색할 수 있도록 명료화하는 반응을 한다. 집단원이 수용할 수 있는 깊이만큼 하되 그가 수용할 없는 선까지 넘어서지 않도록 주의한다. 빠른 변화나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집단원 혹은 집단을 변화시키려는 촉진자의 의도나 과욕은 집단원 내면에서 저항을 불러일으키거나 단지 교육적인 효과밖에는 가져올 수 없다. 거기에서 집단원 개인의 치유적 창조성과 자발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점에서 집단원을 향한 조언과 해석은 특히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답은 집단원 자신에게 있으므로 지금 하는 집단원의 이 말을(느낌과 생각 등)을 수용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아주 조금씩 함께 탐색해 들어감으로써(명료화) 집단원 스스로 답을(핵심 문제와 접촉) 찾도록 돕는다. Rogers(1970)는 해석을 다음과 같이 특히 경계했다.
나는 그룹 집단원의 행동에서 보이는 동기나 원인에 대하여 자주 해석하는 사람을 촉진자로 후대하지 않는다. 그가 내린 해석이 부정확하다면 그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고, 설령 매우 정확했다 하더라도 극단적인 방어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보다 낭패스러운 경우는 그 사람의 방어막을 제거함으로써 그룹의 장이 끝난 뒤 그로 하여금 한 개인으로서의 약점을 노출시키게 되어 상처받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당신은 극심한 적개심을 숨겨두고 있음이 틀림없어요.” 라든가 “당신은 남자다움이 결여되어 있는데 그 점을 보상받으려는 것 같아요.”하는 식의 발언은 어떤 사람을 수개월 동안 괴롭게 하고 자기 이해 능력에 자신감을 잃게 할 수도 있다.
3. 상호작용
집단상담의 최대 장점은 집단원들 간의 상호작용이다. 본 집단상담 시연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상호작용을 관찰하기는 어렵지만 그 전형적인 양상은 맛볼 수 있으리라고 본다. 상호작용은 집단원들 간에 서로가 느끼고 지각한 것을 교류(피드백,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의사소통에서는 다양한 금기로 인해서 충분한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른 집단원들에 의해 지각된 내 모습에 대해 진솔하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이것도 치료적이지만 상호작용으로 인한 갈등은 일종의 전이(투사)를 일으켜 결국 자신의 밑바닥의 감정(핵심적인 문제)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집단원 개인에게는 희귀하고 소중한 것으로써 대인관계에서 갖는 자신의 투사를 통해, 즉 다른 집단원들과 관계하는 방식의 이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과 그들에 대한 표상이 변화하고 치유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상호작용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격려함으로써 활성화시킬 수 있다.
1) 대인간 발생하는 지금·여기의 느낌을 즉각적으로 표현하도록 한다.
2) 사회적으로 많이 억압되어 있는 부정적인 느낌 표현일수록 용기를 내어 표현하도록 한다.
3) 다른 집단원에 대해 언급할 때는 기술하듯이 건조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직접화법으로 대화체를 쓰도록 한다.
4) 개인적인 느낌은 물론 집단과정 및 집단전체에 대한 느낌도 표현한다.
5) 촉진자는 그것이 과도하게 공격적이지 않는 한 어떤 표현도 수용함으로써 대인간 표현을 촉진한다.
6) 촉진자는 집단원들 간의 미세한 갈등조차 집단 안으로 표현하도록 도움으로써 상호작용을 촉진한다.
4. 과정 중심과 지금·여기
집단에서 다룰 소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수직적인 것으로써 개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개인의 아픔, 상처, 미해결된 과거 및 현재의 문제 등이다. 다른 하나는 수평적인 것으로써 지금·여기에서 순수하게 느껴지는 내 자신의 마음(느낌, 생각, 소망 등)이다. 전자 중심의 작업일수록 개인상담에 가깝고 문제해결 중심이 된다. 반대로 후자 중심의 작업은 언제나 전체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개인의 역동도 중요하지만 집단원들 관계에서 발생하는 역동과 전체 역동 속에서의 내 자신의 마음이 주요 초점이 된다. 후자를 다룰 때 비로소 진정한 집단상담의 묘미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자는 대체로 촉진자와 한 개인집단원 간의 작업이 중심일 것이나, 후자는 집단원 전체가 빚어내는 강력한 역동 위에서 개인의 마음을 다루기 때문에 개인에게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들이 훨씬 더 역동적일 수 밖에서 없다. 인간의 문제에 핵심에는 대인관계가 있는데, 자신의 대인관계 패턴을 체험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기에는 전체 집단원들이 함께 상호작용하는 집단상담보다 좋은 도구는 없을 것이다. 개인상담자와 개인적으로 상담할 때에는 자신을 비춰줄 수 있는 거울이 하나 밖에 없어 매우 제한된 시각으로 밖에는 자신을 돌아볼 수 없지만 10명의 집단원과 촉진자가 있다면 자신을 제외한 9개의 거울이 자신의 모습을 그것도 그들만의 독특한 거울로써 비춰주고 또한 각 집단원과 해당 집단원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의 내 자신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다양한 각도로 체험할 수 있는 폭은 대단히 넓어진다. 진정한 집단상담이란 집단원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강력한 역동을 체험하고 그 속에서 자기정화와 통찰을 이룩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여기에서의 자신을 숨기는 데 매우 익숙하게 학습되어 왔고 그것은 나름대로의 생존적 가치를 지녔지만 필요 이상의 자기은폐는 자기 억압과 고립 그리고 소외라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생생하고 솔직한 느낌을 지금·여기에서 서로 나누는 것은 자기발견과 참만남이라는 놀라운 사건의 연속을 낳는다. 촉진자는 지금·여기를 중심으로 집단을 활성화하도록 늘 깨어있어야 하며 그것만이 집단을 지속적으로 생동감 있고 역동적인 장으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유능한 집단촉진자는 집단을 지금·여기에 있게 하는 동시에 지금·여기의 작업을 집단원 모두에게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되도록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집단상담은 그 어떤 치료보다도 대인관계의 양상을 깨닫고, 개선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자신의 대인지각, 대인왜곡, 투사, 전이, 자기 충족적 예언으로 발생하는 악순환적인 지각, 합의적 검증 등을 가장 효율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장면이 집단상담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Yalom, 2005)
지금-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축소된 사회를 발전시키고 그것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준다. 또한 피드백, 정화, 의미 있는 자기개방, 사회화 기술 습득을 수월하게 한다. 그 집단은 보다 활기차게 되고(정서적 몰입, 강렬한 체험 유발), 그리고 집단원 모두는 그 모임에 열의를 가지고 개입하게 된다(Yalom, 2005).
5. 정서적 자극과 수용 간의 균형
수용과 공감 중심의 집단상담에서는 자칫 부정적인 반응이 억제되거나 지나치게 긍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는 부작용을 보게 된다. 진솔성과 수용, 이 둘 간의 적절히 균형을 이루면서 촉진자가 진행할 때 집단은 생기를 잃지 않는다. 수용 일변도라면 집단원들은 촉진자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느끼는 지 알 수가 없으며 집단원 자신들도 이것을 모방하여 솔직한 부정적인 표현은 상대적으로 억압할 수 있다. 따라서 부정적인 표현을 의도적으로 할 것이야 없지만 아주 인간적인 작은 부정적 느낌이라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집단원들로부터 감지되는 부정적인 느낌은 표현할 수 있도록 촉진자가 격려해야 한다. 적당한 스트레스나 불안이 일에 대한 동력을 더 불러일으키듯이 상담에서도 적절한 정서적 자극이 주어질 때, 즉 촉진자의 진솔한 지금·여기에서 일어난 느낌의 자기개방이 이루어질 때 집단은 더욱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축소판으로 여겨지며 집단원들도 안심하고 자신을 개방하게 될 것이다.
특히 매우 짧은 시간의 집단에서는 단지 수용과 공감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집단원들의 자기개방을 이끌어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촉진자가 적절한 자극을 줌으로써 집단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서적 자극과 수용, 구조화와 비구조화, 지시와 비지시 간의 비율은 촉진자의 개인적 스타일 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보며 촉진자가 경험을 더해감에 따라 자기 방식의 비율을 찾아갈 것이다. 다만 이 둘 간의 비율이 집단의 역동에 미치는 영향을 촉진자는 인식하고 있어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데서 오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Yalom(2005) 의하면 효율적인 집단리더십 넷 중 둘이 정서적 자극(도전, 직면, 개인적 위험감수, 자기개방 등)과 돌봄(수용, 지지, 온정 등)이었다. 촉진자의 정서적 자극이 너무 적으면 집단이 가라앉고 느슨해진다. 그러나 자극이 너무 많으면 집단원들이 감당하고 통합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참고문헌
Corey, G.(2011). The Theory and Practice of Group Counseling. [집단상담의 이론과 실제, 김명권, 감창대,, 방기연, 이동훈, 이영순, 전종국, 천성문 역. (2015). 학지사]
Rogers, C.(1970). Encounter Group. [엔카운터 그룹한국인성개발연구원. 김명권, 장성숙, 황화성 역]
Welwood, J.(2000). Buddhism and Psychotherapy. [깨달음의 심리학, 김명권, 주혜명 역(2008), 학지사]
Yalom, I. & Lescz, M.(2005). The Theory and Practice of Group Psychotherapy. 5th. ed. [최신집단정신치료의 이론과 실제, 제5판, 최해림, 장성숙 ·역(2008). 하나의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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