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사업본부 주최로 열린 ‘보은의 달’ 편지쓰기 대회에서 일반부 대상작>
나를 키운 일곱 손가락 반의 아버님께
정문섭 고양우편집중국
아버지, 어느덧 이 봄도 다 가고 있습니다.
꽃향기 진한 봄이 지나면 어김없이 더운 여름이 오고 다시 가을 겨울이 오듯이 그렇게 수없는 계절이 흘러 아버지도 어느덧 마른 팔다리에 주름진 할아버지가 되셨군요.
아버지, 저 아주 어릴 적 아버지의 그 손길을 기억합니다.
손바닥에 유난히도 손금이 많아 보이던 아버지의 손, 거친 그 손으로 등을 긁어 주시면 저는 아주 시원해하곤 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실은 아버지의 그 시원하고 거친 손이 손금이 많아서가 아니라 험한 일로 손바닥에 수없이 상처가 터지고 아물고 하여 생긴 울퉁불퉁한 굳은살 덩이였다는 것을, 오래된 나무옹이와 같은 아버지의 그 손에서 어린 저는 그 상처와 아픔 대신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동네에서 자그마한 쌀가게를 하던 우리 가족에게는 쌀을 배달하는 짐차라 부르던 커다란 자전거가 있었지요. 어느 비 오는 날 밤 제가 몹시도 열병을 앓았나봅니다.
아버지는 저를 그 자전거에 태우고 빗속에서 병원을 향해 달리셨습니다. 자전거 뒷자리에서 아버지의 등에 기댄 채 몸에서 뿜어 나오는 뜨거운 열기에 연신 “얘야, 걱정 말아라”말씀하시던 아버지의 숨찬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나중에도 저는 가끔 아버지의 등에 업히면 부러 아버지의 등에 더운 입김을 후후 불어 마치 열이 올라 아픈 듯 장난을 치곤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이런, 이녀석 열이 있구나 하시곤 걸음을 빨리 하셨고 저는 그것을 재미있어 했지요.
그러던 제가 조금 자라 사춘기가 되자, 그 시원하던 아버지의 손과 넓고 따스하던 등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엔 그저 담배냄새 텁텁하고 시원하던 아버지의 손, 그 손에 손가락이 왼손엔 세 개 오른손엔 네 개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왼손 검지와 중지는 아예 밑동부터 잘려나가 엄지부터 약지까지 그저 밋밋하게 이어져 있고 오른손은 검지의 절반이 잘려나가 뭉툭한 못난이 손가락모양을 하고 있었지요.
술이라도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오시는 날엔 그 잘려나간 자리가 유난히도 발갛게 보였습니다. 주물공장에서 일하시다 유압으로 작동되는 프레스에 손가락을 다치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 그 손이 창피했습니다. 손가락이 일곱 개 반밖에 없는 아버지가 친구들 앞에 부끄러웠습니다.
늦둥이로 태어나 다른 친구들의 아버지에 비해 유달리 늙어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도 싫었습니다. 넥타이를 매고 다니던 다른 아버지들과 달리 민무늬 단색 셔츠에 넥타이 대신 땀자국이 못생긴 넥타이 모양으로 젖었던 아버지의 굽은 등이 싫었습니다.
중학교 때이던가요. 어느 날 수업도중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아버지가 나타나셨습니다. 또래의 젊은 아버지들 같지 않게 이미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일곱 개 반의 손가락에 맞추어 역시 일곱 개 반의 손가락으로 잘라 꿰맨 하얀 목장갑을 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의 그 하얀 일곱 개 반 손가락 목장갑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슬프도록 더 하얗게 눈에 띄었습니다. 수업 중인 선생님에게 누구 아버지인데 아들 녀석이 오늘 가져간 폐품 더미 속에 중요한 서류가 섞인 것 같아 찾으러 왔다고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에 저는 얼굴이 후끈거려 저를 찾으시느라 교실을 둘러보는 아버지의 눈길을 그만 피하고 말았습니다.
아~ 아버지, 그때 저를 보셨던가요.
집과 학교가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학교를 파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노라면 한여름에 무거운 쌀가마니를 등에 지고 배달하러 다니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쌀자루의 머리 아귀를 세 개의 손가락만 있는 아버지의 한손으로 틀어잡고 다른 한 손은 허리를 짚어 다시 쌀자루의 아래쪽을 받치고 땀 흘리며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전 당황스레 외면했고 멀리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면 애써 피해갔습니다.
아~ 아버지, 그때 멀리서 저를 보셨던가요.
그리도 못난 아들이 그래도 자라서 군대 가던 날, 아버지께서도 내내 밤잠을 뒤척였습니다. 군대에서 어느 날이었습니다. 흙더미를 지고 나르는 보수 작업이 하루 내내 있었는데 어깨와 허리에 통증을 느끼다가 문득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아~ 아버지 한평생 이렇게 등짐을 지고 사셨군요.
고작 몇 시간 등짐을 지고서도 힘들다 하는 저를 위해 아버지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도,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가 잘려나간 뼈마디를 시리디 시리게 할 때에도 그렇게 등짐을 지셨군요. 그때 갑자기 제 등에 맨 흙덩이 자루가 하나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가슴속에는 무언가 울컥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고 두 눈에선 참을 수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버지, 시간은 그렇게 흘러 어느덧 제 나이도 제가 아버지의 손길을 시원해하던 그때의 아버지 나이 즈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오늘 저는 퇴근길에 아버지와 함께 걸었습니다. 달은 밝고 비 내린 후라 봄바람이 시원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걸으시는 아버지를 보고 저는 말했지요.
“ 아버지 두 손을 쭉 펴고 앞뒤로 힘차게 흔들면서 걸으세요. 그래야, 혈액 순환도 잘 되고 건강에 좋대요.”
아버지, 이제야 저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일곱 손가락 반 그 두 손에서 저의 살과 뼈가 자라났음을.
지금 아버지의 마른 팔다리와 주름진 얼굴은 젊은 날 저를 위해 살과 뼈를 모두 저에게 주셨기때문임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 지금부터라도 제가 편히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건강하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이제 두 손을 쭉 펴고 힘차게 걸으세요.
2007년 5월 26일 새벽에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들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