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술년(甲戌年) 8월부터 바둑의 묘수풀이를 기록한 기보(碁譜)로 갑술년은 1814년, 1874년 또는 1934년에 해당하나 책을 제작한 사람의 수결(手決), 한지(漢紙)의 재질, 묵(墨)의 농도(濃度), 편철(編綴)방식 등을 종합하여 보면 조선시대인 1874년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기보(碁譜)는 세필(細筆)로 바둑 칸을 그렸으며 흑색(黑色)과 적색(赤色) 먹을 이용하여 세(勢)에 대하여 바둑돌이 놓여있는 곳을 그렸으며 세(勢)의 종류는 상여대집벽세(相如大集壁勢), 팔왕자세(八王子勢), 대망세(大望勢), 대교세(大巧勢), 은성(銀城勢) 등 다양한 세(勢)의 옆으로 하여 백선승(白先勝), 흑선승(黑先勝)과 숫자를 표시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바둑은 개인적인 소일거리였고 다수가 모이는 경우에도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벗어나지 않았으나 일제강점기에 이르면서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바둑을 상품으로 하는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913년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발행인 육당 최남선이 우리나라 최초로 바둑책인 기보(碁譜)를 발행하였다 한다.
1918년 6월 7일자 매일신보 ‘사고(社告)’는 총독부의 일본어 기관지인 경성일보 주최 바둑대회를 홍보하면서 “9일 부터 경성 매가(梅家)에서 위기대회를 개최할 터인데, 조선인으로 내지(內地)식 기(碁)에 난숙한 이는 참가하기를 희망한다.” 고 적고 있으며 1934년에는 바둑 전문잡지이자 유일한 순장바둑 교재인 신정기보(新訂碁譜)도 출간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근대 바둑은 폭넓은 대중을 얻었고 신문이나 바둑대회를 비롯하여 바둑을 배울 수 있는 장소나 바둑을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원(碁院) 같은 공간이 생기면서 기사(碁師)들은 전문화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고유 바둑 방식인 순장바둑은 점차 사라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