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이런 건 모눈종이(그래프 용지)를 이용해서 수치를 표시하고 측정값을 알 수 있도록 했다.
X축과 Y축 그리고 함수값을 이용하여 좌표를 찍고 점을 연결하면 직선이 되기도 하고 포물선이 되기도 했다.
1차 함수 그래프는 중학교 초 그리고 2차 함수 그래프는 중반에 그렸는데 당시엔 이런 걸 왜 하는지 그리고 왜 배우는 지 몰랐다.
모눈종이가 있으면 이걸 이용해 오목을 두거나 모자이크 처럼 처리하여 그림을 그리는데 이용을 했었다.
그러다 군대를 갔고 훈련소를 마치고 후반기 교육을 갔다.
일반적으로 훈련소만 마치면 짝대기 하나를 달고 실무부대로 가는 줄 알았는데 당시 신원조회를 한 50여명의 동기들이 바로 퇴소를 하지 않고 하루밤을 훈련소에서 더 보내게 된다.
'재광병력'이란 말만 하고 별다는 이야기도 없이 점호도 간단히 하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더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궁금하기도 해서 인솔하는 조교에게 물어보니 안타까운 얼굴로 우리들을 걱정하듯 쳐다보며 겁을 주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들은 훈련소밖을 휴가나 외출 아니면 훈련병 교육시킬 때 훈련장 이동밖에 안했기 때문에 훈련병이 후반기 교육을 가서 뭘 하는지 실무에 가서 어떤 업무를 하는지 잘 몰랐을 것이고 재미 삼아 농담을 진지하게 이야기 하니 퇴소한 이등병들의 얼굴은 흑빛이 되었다.
"니들 얼마전 신원조회 했지 ?"
"넵"
"그거 있잖아 전경(전투경찰) 아니면 어디 특수훈련 받으로 가는겨!"
아마 그래서 니들 바로 안보내고 하룻밤 쉬게 하고 보내는겨!"
훈련소 마치고 짝대기 하나 달자 마자 산넘어 산이구나...
특히 전경이라는 말에 기가막혔고 당시 전경은 시위진압과 함께 구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러나 다음날 강경역에서 기차를 탄 동기들과 나는 광주로 향했다.
북쪽으로 가는 기차는 연무대역으로 가서 특별열차를 탔지만 우린 일반열차를 타야 했기에 바로 갈 수 없었던 거였다.
또한 통일호를 타고 갔기에 일반 승객을 태웠고 분위기가 좋았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전투경찰도 아니고 특수부대도 아니었으며 상무대라고 말하던 육군전투병과학교에 소속된 포병학부였고 얼마 있어 보병학교,포병학교,기갑학교,화학학교가 분리 되는데 이곳에는 포술학을 더 자세히 교육하는 특기병과정이 있었고 땅을 정밀하게 측량하는 특기병과정이 있었다.
전투병과학교니 살벌하고 무서운 곳이 아닐까? 겁을 먹었는데 살벌하고 무서운 건 임관을 한 장교들 이야기 였고 우리는 버스에 승차를 하여 먼곳으로 학과 출장을 갔고 소총 조차 지급이 안 되었고 훈련장 대신 교실과 식당만 왔다 갔다 하고 가끔 연병장에서 풀을 뽑거나 작업을 했었다.
그 당시 병역을 미루고 미루다 대학원 졸업하고 석사장교에 응시했다 탈락한 나이먹은 사람도 있었고 대학졸업하고 학사장교 응시했거나 가끔은 고시에 탈락한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학교를 휴학한 사람들로 전공도 다양했고 일부는 부산이나 마산 진주에서 공고나 상고를 다닌 사람들이었다.
신원조회니 특수훈련이니 해 겁을 먹었지만 우리들에게 나눠준건 다양한 교범들과 학용품 그리고 수업을 하기 위해 쓰는 자료들이었다.
가끔 장비관람이나 교도대 조교들의 시범을 보고 한 두번 해봤을 뿐 대부분 시간은 과학시간에 나온 수학시간에 나온 지리시간에 나온 그런데 사회에 나왔을 땐 크게 쓸모가 없는 그런 내용의 것을 수업하고 매일 매일 시험을 봤다.
그때 나눠준 것 중 모눈 종이 비슷한 것이 있었고 별거 아닌 것 같은 것을 가지고 좌표를 찍고 거리를 알아내고 틀려서 혼나고 다시 시험을 보고 나중에는 초시계를 이용해 반응속도를 측정하기도 했었다.
공부하는 걸 싫어했고 적성에 맞지 않은 것을 하려니 어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중고교 시절의 공부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고 군대가 힘과 깡으로만 형성되는 곳이 아님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신원조회는 왜 했던 걸까? 그건 군대에사 사용되는 지도나 수치정보는 대부분 군사비밀이며 특히 통신병이나 정보병은 이런 걸 많이 취급하다 보니 조사를 했던 것 같다.
군사정보라는게 크게 대단한 것도 있지만 위치정보나 통화하는 내용은 사소한 것이라도 주의해야 하는 사안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