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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4(수)은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된 지방선거로 임시공휴일이었습니다. 거기에 우리 직장은 샌드위치인 다음날을 재량휴업일로 하여 현충일을 낀 3일 연휴와 이어졌기에 5일 연휴라는, 아주 드문 경우가 만들어졌습니다. 해외여행? 언감생심! 대신에 직장에서 의기투합한 10명이 일행이 되어 영월 동강 일원으로 1박2일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일 이른 아침이나 지난 주말에 있었던 2일간의 사전투표를 통해 투표에는 모두 참여하여 국민주권은 당연히 행사했지요. 평촌분당팀(정양O-운전, 고권O, 지용O, 이상O, 권기O, 송효O)과 서울팀(이정O-운전, 변재O, 정문O, 문복O)으로 나누어 출발은 따로 하였습니다.
1. 일시 : 2014. 06. 04(수) ~ 06. 05(목), 10명
2. 일정과 시간 :
1) 6/04(수) : 서울공고(07:33) → 여주휴게소(08:43, 17분) → 중앙고속국도 제천IC → 38번국도 예미(신동읍, 10:38, 물품구입, 30분) → 동강가는길 → 거북이민박(11:45) → 점심
2) 백운산 산행 : 민박 출발(13:05) → 하늘벽구름다리 → 칠족령전망대 → 연속되는 뼝대 릿지 → 백운산정상(15:40, 5분) → 원점복귀(16:55) (3시간 50분 소요)
3) 6/05(목) : 민박 출발(09:10) → 김영O 샘 댁(김삿갓면 외룡리, 10:30, 40분) → 단양 향산삼거리(12:00, 점심, 70분) → 임회O 샘 고향집(가곡면 보발리, 13:35, 40분) → 남제천IC → 여주휴게소(16:16, 11분) → 서울공고(18:40)
3. 여행 둘러보기 :
전날 이틀이나 비가 꾸준히 내려 날씨에 대한 걱정이 약간 있었지만 당일 비 예보가 없었기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해가 들락거리며 맑음과 흐림이 되풀이되었으나 기온이 낮아져 오히려 쾌적한 상태였다고나 할까요. 혼자 간단히 아침을 흉내내고 준비물도 없는 배낭을 꾸려 학교에 가니 약속시간인 7:30이 막 되려 하였습니다. 잠시 후에 떠나 올림픽대로, 중부고속국도를 거쳐 여주휴게소에는 평촌팀보다 먼저 도착. 합류하여 서로를 확인하고 5명씩 승차한 뒤 다시 출발. 만종IC에서 중앙고속국도로 들어가 제천IC에서 빠졌고 38번 국도를 타고 예미(신동읍)에 도착하였습니다. 평일 이른 시간이라 고속국도는 거의 소통이 잘 됐고 국도는 한가한 정도였습니다. 무슨 일인지 예미의 하나로마트는 문을 닫았더군요. 다른 작은 가게에세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교차로를 질러 '동강가는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지형을 따라 오르내리는 구불거리는 길은 그래도 고성보건진료소를 지나 왼쪽의 갈림길로 접어들 때까지는 양반이었습니다. 이곳부터는 승용차 한 대가 어렵게 지날 정도로 좁아진 데다가 노면상태도 달라졌습니다. TV에서 보던 오지탐험길 그대로였습니다. 굳이 동남아나 중국의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이 아니어도 우리나라에도 이런 지역이 있음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동강이 보이는 곳에서부터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기분! 바세마을, 연포마을을 거쳐 드디어 거북이마을의 민박집에 도착. 이곳은 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마지막 지역이고 이 민박집 한 채만 있습니다. 백룡동굴을 볼 수 있는 문희마을을 가려면 등산로를 따라 산을 넘든지 차를 타고 다른 길로 멀리 돌아야 합니다. 절경과 청정함에 감탄하며 잠시 후 예약한 토종닭백숙으로 점심을 먹었지요. 이 집은 노모를 모신 두 아들이 운영을 합니다. 묵은 김치와 묵은 백김치 외에 몇 가지 나물과 엄나무순피클 등이 맛있고 담백했습니다.
동강은 영월읍에서 정선읍 사이의 남한강 상류 이름이고 지역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릅니다. 나전에서 골지천과 오대천이 만나며 이곳에서 정선읍 사이는 조양강이라 합니다. 그 위로는 각 골짜기에서 나오는 여러 지천들이 모여들고요. 한편 서강은 평창강과 주천강이 한반도면에서 만나는데 이곳부터 영월읍 사이에 붙여진 이름이고, 동강에 대한 상대적인 이름이지만 그냥 평창강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러니 동강과 서강이 영월읍에서 만나서 남한강이 되어 단양쪽으로 흘러갑니다.
동강은 그 뛰어난 원시자연경관으로 이곳을 어렵게 다녀간 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만 알려지다가 80년대 중후반 언론의 피서지 소개로 일반인들에게 다가왔고 발길이 잦아졌습니다. 이때는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우리의 소득수준이 높아졌으며 여행과 여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확산된 시기와 일치합니다. 주택난으로 신도시가 여러 곳에 세워지고 자가용이 폭증하며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중산층 삶의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진 때입니다. 한 마디로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문화생활과 삶에서 질이 좋아진 것이죠. 이에 건설족들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전국을 뒤집으며 도로를 거미줄처럼 이어 왔습니다. 막대한 국가예산을 쏟아부으며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하여 사람 발길이 닿지 않던 오지에도 중장비가 들어와 길을 만들거나 넓히고 포장을 했습니다. 물론 국가개발과 경제발전이라는 명분이 항상 앞에 있었고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밀어붙이니 그저 구경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 동강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동강이 일반에게 더욱 알려진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동강댐(정부에서는 영월댐) 건설계획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크게 일면서입니다. 정부 내부적으로 이 지역에 대한 댐 건설계획은 그 전부터 있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90년 영월일원에 내린 비로 큰 홍수가 생겨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핑계가 생긴 정부는 관계중앙부처와 산하기관의 타당성 조사와 검토를 거쳐 97년에 댐을 건설하기로 공식화했습니다. 이후로 각종 언론을 통해 사회 각층의 찬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었고 그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와중에 지상파방송에서 동강의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방영하여 관심은 더욱 커지고 반대의 여론이 거세졌지요. 환경과 자연생태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댐의 부작용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선례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것입니다. 더구나 동강은 동굴이 많은 석회암지형을 흐르는 등 문제가 많았고 무엇보다 천혜의 자연환경은 한 번 파괴되면 영원히 복구 불가능하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거대한 논란은 2000년 김대중정부에서 댐건설 백지화로 귀결되었고, 시민들이 승리한 중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강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시름시름 앓고 파괴되고 있었습니다. 트레킹이나 래프팅의 명목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폭증하면서 이를 상대로 한 상혼이 판을 쳐 각종 음식숙박업 등이 덩달아 늘어났습니다. 쓰레기와 오염물질의 증가는 무공해 청정지역의 기억을 그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긴 시간 동안이지만 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역시 동강의 자연은 환상이었습니다. 거북이마을은 정선군의 서쪽 끝이지만 영월군과 평창군의 경계점에 해당합니다. 동강은 산을 만나 수 없이 굽이치며 곳곳에 절경을 만들었습니다. 아마존의 거대한 늪지나 나일강의 드넓은 삼각주가 아니라도 아주 깊은 산속의 사행천도 아주 심한 굴곡을 남겼습니다. 권 샘이 누가 한 말을 인용하였지요.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한다' ...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점심을 먹고 드디어 산행에 나섰습니다. 물이 좋다는 3명을 빼고 7명이었지요. 완만한 오르막을 지나 은근히 가다가 하늘벽구름다리에 이르자 상황이 돌변했습니다. 갑자기 동강이 나타났는데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 누워있어 내가 하늘에 매달린 느낌이었습니다. 지나온 길은 그 절벽을 살짝 벗어나 있었지만 모르고 그곳에 이른 것입니다. 환상의 풍광은 말문을 막고 가슴을 벌떡이게 했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높은 직벽(뼝대)이 강물과 나란히 이어졌습니다. 굽이마다 물살을 맞는 쪽은 어김없이 산을 세로로 쪼갠듯 수직의 단애를 이루었고 맞은편은 하얀 모래톱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위험한 길이라 추락경고 표지판이 곳곳에 서 있고 정말로 오줌을 지릴 정도더군요. 비슷하지만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에 빠져 사진을 찍느라 맨 뒤에 쳐져서 갔습니다. 나중엔 핸드폰으로 일행의 위치를 확인하기도 했는데 길은 외길이었습니다. 다만 릿지 옆으로 안전한 길이 따로 있기도 하였고 대부분의 길은 안전을 위해 굵은 로프가 쳐져 있었습니다.
땀을 제법 흘리며 올라 칠족령전망대에서 일행을 만났습니다. 변, 문 샘 두 분은 백운산 정상을 향해 먼저 가셨더군요. 이곳에서는 조감도같이 주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늘벽, 연포·수산·바세·제장마을 등이 잡혔고, 이정표가 곳곳에 세워져 산행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왼쪽 절벽에 있는 백룡동굴은 문희마을로 내려갔다가 정해진 탐방로를 따라 갈 수 있습니다. 맞은편에서는 산악회에서 온 일행 수십명이 따로 또 같이 지나쳐 갔습니다. 백운산까지는 여러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데 길은 대부분 절벽의 릿지를 따라 있어 조심해야 하고 경사가 급한 곳도 많고 철계단도 있습니다. 추모비가 세워진 곳도 있더군요. 아쉬운 점은 동강과 백운산에 대하여 미리 공부를 하고 지도를 뽑아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지도와 현지를 비교하면 실감도 나고 기억도 오래 남거늘 제 불찰이 컸습니다.
바로 앞에 있을 것 같던 백운산은 마지막에 급한 비탈을 한참이나 올라야 했습니다. 미끄러운 흙길도 있어 불편했지만 스틱을 가져가 잘 써먹었네요. 중간에 먼저 간 두 분을 마주쳤습니다. 흐려진 날씨 속에 드디어 15:40에 정상에 도착. 짙은 나뭇잎으로 전망이 가려 아쉬움이 컸는데 여유있게 사위를 살피지 않은 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5분을 머물다가 하산길에 나섰습니다. 좀 서둘렀더니 무릎에 약간의 신호가 오기도 하였고 30분 정도 왔을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였지만 곧 그쳤습니다. 오면서 봉우리를 세어보니 뚜렷히 오르내리는 것은 칠족령까지 4개로 파악했습니다. 다른 산행기나 제장쪽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6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작은 것은 그런 느낌이 없었거든요. 칠족령에서 내리꽂아 제일 낮어진 곳에서 오르던 것과는 다른 길을 택하여 민박을 향했습니다. 길이 좀 흐리기는 하였지만 제대로 내려갔고 민박 직전에 앞서 간 두 분과 합류하였습니다. 백운산 정상을 다녀온 사람은 3명이었습니다.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만만한 산행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곧 하루를 마무리하며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 운전하느라 고생한 정 샘이 전담으로 고기를 구웠고 덕분에 우리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백반은 인원의 절반 분량만 주문. 빗방울이 조금씩 오락가락했지만 큰 지장은 없어 자리를 이어가다가 약간 더해져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저는 마지막 정리 전에 방에 가니 21시경. 이날 지방선거의 개표방송 중. 얼마 뒤에 재작년인가에 영월군 김삿갓면 외룡리에 귀농한 김영O 샘이 왔습니다. 전에 같이 근무한 분들이 여럿이라 아는 처지이고 저와는 92년 10월 초에 덕유산 종주를 같이 한 사이입니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건만 밤에 찾아주다니 성의가 대단했습니다. 직접 농사 지은 포도즙을 가져와서 맛을 보였지요. 저는 30분 정도 있다가 큰 방으로 왔고 문을 계속 열어두고 불이 밝다보니 하루살이들이 엄청나게 들어와 귀찮게 하더이다. 아무튼 첫날이 이렇게 갔습니다.
다음 날. 저는 잠을 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보일러 가동을 확인했으면 따뜻한 잠자리가 되었을 것이건만 춥다고만 하고 그냥 두어 잠이 오지 않더군요. 사서 생고생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안 잔 것은 아니겠지요. 하여간 일찍 눈을 뜨고 있다가 기상. 스트레칭. 강가에 나갔습니다. 주변이 새롭고 어제 다녀온 산 줄기가 선명했습니다. 된장찌개와 청국장찌개로 아침을 먹은 후 9:10에 거북이민박을 떠났습니다. 가까운 곳에 건너편 가정마을로 건너는 조각배와 줄이 매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바세고개를 오르고 내려오면서 상당히 길다고 새삼 느꼈습니다. 그 주변에서 건너편의 백운산 줄기가 잘 들어왔습니다. 고성의 2차선 도로 합류지점에서 잠시 쉬면서 길 옆의 오디를 열심히 따서 먹었습니다. 고성터널을 통과하였고요.
석항리에서 좌회전하여 김삿갓면 외룡리의 김영O 샘 댁에 들렀습니다. 새벽 5시에 거북이민박을 떠났다네요. 900평의 포도밭에 300주가 심어져 있다고 하더군요. 시설이 잘 돼 있는 걸 보니 투자비가 상당히 들어간 것 같습니다. 콘크리트로 바닥을 만들고 사각 쇠기둥에 지붕을 얹은 창고건물에 컨테이너를 두 개 놓고 살림과 창고로 사용 중입니다. 올 가을에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새로 짓는다고 했습니다. 자유롭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부럽습니다. 전혀 연고도 없이 그곳까지 갔으니... 몇 가지 차와 견과류를 잘 먹고 마지막에는 그 동네 포도로 만든 포도주도 맛을 보았습니다.
영춘을 거쳐 단양의 향산삼거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일이 있어 일행에 함께 하지 못한 임회O 샘이 갑자기 이날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고향집에 내려왔답니다. 보발리 그의 고향집으로 가는 중에 잠시 길을 잘못 들기도 했지만 그 덕에 '산위의 마을'로 가는 안내판을 보기도 했습니다. 깊은 골짜기의 맨 위쪽이 목적지였습니다. 부친께 인사드리고, 소주 한 잔씩 한 팀과는 다르게 저를 포함한 셋은 앞의 개울에 나갔습니다. 천연의 목욕탕이더군요. 워낙 오지라 깨끗했습니다. 주변의 바위에 퍼져있는 산딸기나무에는 열매가 지천으로 달려 있어 흥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그대로 있어 고맙기만. 열심히 따 먹었더니 배가 부를 정도였습니다. 새까맣게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한 뽕나무도 있었지만 보는 것으로 만족. 또 굵은 보리수 열매가 엄청나게 달린 것도 확인. 이제 상경하는 귀로.
남제천IC로 들어가 내려오던 길을 되짚었고 여주휴게소에 20분 이상 먼저 도착한 일행과 조우. 각자 갈 길로 나뉘어 다시 4명 승차. 잘 오던 차는 양재IC를 앞두고 심하게 막혔고 그곳에서 빠져 우면터널을 지난 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좌회전. 그러나 이수교차로에서 순간의 실수로 동작대교를 건넜고 다시 한강대교를 거쳤으니 시간 손해가 제법 발생. 출발지인 학교에 18:40 도착!
일행을 위해 희생정신으로 운전한 두 분 고생이 많았고 감사합니다. 또 이 여행을 준비하고 일정을 짜 진행한 권 샘, 참말로 수고가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아주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참가한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거북이민박 본채
민박 뜰에 세워진 주변 개념도
지 샘! 죄송! 얼굴이 일부만 나오다니...
하늘벽에 걸려있는 구름다리. 바닥이 투명하여 유리다리라고도 하네요.
멀리 보이는 다리를 오른쪽으로 건너면 연포마을. 왼쪽으로 보이는 곳은 바세마을
바로 옆이 아니라 절벽 까마득히 아래에 있습니다.
귀로는 오른쪽으로 잡아 내려왔습니다.
하늘벽이 좀 제대로 보입니다.
제장마을
이번 여행을 주선한 권 샘
맏 형님인 고 샘
왼쪽이 가메소. 왼쪽에서 투~욱 튀어나온 굽이의 오른쪽 앞 봉우리에 가린 곳은 나래소와 바지소가 있습니다.
저 절벽 위 릿지를 따라 등산로가 나 있습니다.
소동마을. 왼쪽 위의 앞이 바지소이고 뒤가 나래소입니다.
백운산
지나온 길. 거북이마을은 오른쪽 봉우리 뒤에 가려 있습니다. 뒤의 절벽이 하늘벽
이런 나무가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백운산 정상
이른 저녁식사. 고기 굽는 일은 밀집모자를 쓴 정 샘이 많이 했고 후반은 저분께서 애를 쓰셨습니다.
둘째 날 아침. 밤꽃 전성시대
민박 원경
민박 뒤쪽 능선. 오른쪽 나오지 않은 부분에 하늘벽구름다리가 있고 왼쪽 봉우리 오른쪽 조금 아래에 칠족령 전망대가 있습니다.
우리가 머문 숙소. 방 4개
김삿갓면 외룡리 2차선변의 포도밭
단양 보발리 임 샘 고향집 앞의 개울가에 지천인 산딸기. 따 먹다가 찍어 일부는 노란 꼭지만 보입니다.
천연의 노천목욕탕. 건너편 바위 위가 산딸기 나무
오디
보리수 열매
[사족] 지도는 '생활속에 멋과 여유를 찾아서'라는 블로그에 올라있는 것을 복사했음을 밝히며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운영자 '쏠 로'님은 반더룽산악회에 관계하시는 분 같은데 많은 발전과 번창을 기원합니다.('생활속에'는 '생활 속의'로 해야 맞는 듯함)
201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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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업이 가장 적은 월요일(6/09)에 내내 글씨기에 매달려 마무리하고 18:20 퇴근.
다음날 오전 쉬는 시간에 사진을 선별하여 올리는 것으로 끄~ㅌ!
남은 참가비로 수욜 점심을 외식하는 것으로 정산 완료.
감사합니다...
(이건 수욜에 쓴 것인데 일부 수정했더니 날짜가 따라가네요)
동강에 대한 좋은(?) 여행기를 올렸지만
글이 길어 재미가 없는지 인기가 없구만!
나도 지도를 다른 곳에서 실례했지만 참고는 될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