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16:1
신자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지만 아직 이 땅에 속한 자입니다. 이중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주님의 도움과 함께 세상 영향력의 실제를 경험하며 살 수밖에 없고 갈등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크게 보고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면서 이스라엘 와 베가는 죽임을 당하고 그를 대신해서 친앗수르 인물인 호세아가 왕이 되었습니다.
Believers believe in Jesus and have become God's children, but they still belong to this land. Because they have a dual identity, they have no choice but to live with the help of the Lord and experience the reality of world influence, and it is a series of conflicts and choices. What does it look like to live in a bigger world than God and what should I be careful about? As Assur ruled Israel, Israel and Vega were killed, and Josea, the Athur figure who replaced him, became king.
-
이때까지만 해도 남 유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았는데, 요담 이후 왕이 된 아하스부터 악행의 길을 걷더니 서서히 어려움에 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하스가 왕이 된 나이는 20세이며 16년을 통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산당의 우상숭배를 묵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부터 우상숭배에 앞장섰습니다. 왕은 아들을 인신제사로 바치기까지 했고, 백성은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행을 저지르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Ahaz, who had become king after Jodam, was still in constant danger until this point in South Judah, but he began to suffer gradually after going through evil. Ahaz became king at the age of 20 and ruled for 16 years. Ahaz, on the other hand, did not only condone the idolatry of the mountain temple, but he also took the lead in idolatry himself. The king even offered his son as a human priest, and the people did not hesitate to commit obscene acts under the green trees.
-
물론 하나님께도 예배하면서 그런 짓을 했습니다. 탐욕스런 삶을 용인하는 복음이 진정한 복음일 리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세속 가치의 제물로 바치라는 시대에 나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고 있는가? 아하스 왕의 죄는 가증스러웠지만, 하나님은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의 공격에서 유다를 보호하십니다. 하지만 엘릿은 아람 왕 르신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때로 묵상과 삶을 해석하기 어려운 것은 모든 일이 깔끔한 인과응보의 공식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Of course, I did so while worshipping with God. The gospel that tolerates a greedy life cannot be the true gospel. How do I raise my children in an era of offering them as secular values? King Ahaz's sins were abominable, but God protects Judah from attacks by the combined forces of Aram and Israel. But Eliot was taken away by King Leishin of Aram. Sometimes meditation and life are difficult to interpret because not everything goes according to the formula of neat causal retribution.
-
불의가 제대 심판을 당하지 않고 도리어 더 잘되는 일이 세상에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들키지 않은 죄가 아니라, 아직 집행되지 않고 연기한 심판인 것입니다. 아하스가 의지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의 군사력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 왕의 신복이요 아들로 자청합니다. 그 앗수르의 힘으로 아람 세력을 격퇴할 수 있었지만, 아람에게 빼앗길 성전과 왕궁의 값진 것을 앗수르에게 뇌물로 갖다 받쳐야 했습니다.
There are many things in the world where injustice can do better without being discharged. But it is not a crime that has not been discovered, but a judgment that has not yet been carried out and has been postponed. Ahaz relied on the military might of Assur, not God. He volunteered to be King Assur's blessing and son, not God. That Assur was able to repel the Aram forces, but he had to bribe Assur with the value of the temple and the palace to be taken away by Aram.
-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자기 아들을 희생 시키면서 자기 백성을 살리는 왕은 없습니다. 아하스 왕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온통 앗수르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만들고 배치된 성전 기물들을 맘대로 변형하고 재배치 하였습니다. 초 강대국 앗수르의 제단이 기준이었습니다. 더 많은 제사를 드리도록 성전 공간을 확대하고 큰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앗수르 왕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입니다.
However, there is no king in the world who sacrifices his son and saves his people. King Ahaz's interest was not God, but King Athur. He arbitrarily transformed and rearranged the temple objects that God commanded. The altar of the superpower Athur was the standard. The temple space was expanded and a large altar was built to provide more sacrifices. It appears that he is trying not to go against King Athur's will.
-
본래 있던 놋 제단은 개인적인 용도로만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안전과 만족, 필요를 위해서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세속적인 성공을 기준으로 살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잊고 상황에 압도되면 어떤 모습일까? 내 아하스 식 삶을 언제 유턴할 것인가?
The original Not Altar was intended for personal use only. He was a man who came in and out of the temple only for his own safety, satisfaction, and needs, not for the glory of God. I lived on the basis of worldly success, not the word of God. What would it look like to forget about God and be overwhelmed by the situation? When will I make a U-turn on my Ahas-style life?
-
유다 왕 아하스의 등극(1-4)
아람과의 전쟁에서 앗수르의 도움을 청한 아하스(5-9)
예루살렘 성전에 새로운 제단을 만든 아하스(10-16)
아하스가 예루살렘 구조를 옮김(17-20)
-
르말랴의 아들(1a)
베가 십 칠년에(1b)
유다 왕(1c)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1d)
왕이 되니(1e)
-
아하스가(2a)
위에 나아갈 때에(2b)
나이 이십 세라(2c)
예루살렘에서(2d)
십 육년을 치리하였으나(2e)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2f)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2g)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2h)
-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3a)
또 여호와께서(3b)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3c)
쫓아내신(3d)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3e)
자기 아들을(3f)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3g)
-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4a)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4b)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4c)
-
이때에 아람 왕 르신과(5a)
이스라엘 왕(5b)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5c)
예루살렘에 올라와서(5d)
싸우려 하여(5e)
아하스를 에워쌌으나(5f)
이기지 못하니라(5g)
-
당시에 아람 왕 르신이(6a)
엘랏을 회복하여(6b)
아람에 돌리고(6c)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6d)
아람 사람이(6e)
엘랏에 이르러 거하여(6f)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6g)
-
아하스가(7a)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7b)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7c)
나는 왕의 신복이요(7d)
왕의 아들이라(7e)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7f)
나를 치니(7g)
청컨대 올라와서(7h)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7i)
-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8a)
는 은금을 취하여(8b)
앗수르 왕에게(8c)
예물로 보내었더니(8d)
-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9a)
곧 올라와서(9b)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9c)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9d)
또 르신을 죽였더라(9e)
-
아하스왕이)10a)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10b)
다메섹에 갔다가(10c)
거기 있는 단을 보고(10d)
드디어 그 구조와(10e)
제도의 식양을 그려(10f)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10g)
-
아하스왕이(11a)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11b)
제사장 우리야가(11c)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11d)
모든 것대로(11e)
단을 만든 지라(11f)
-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12a)
단을 보고 단 앞에 나아가(12b)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12c)
-
자기의 번제와(13a)
소제를 불사르고(13b)
또 전제를 붓고(13c)
수은제 짐승의 피를 단에 뿌리고(13d)
-
또 여호와의 앞(14a)
곧 전 앞에 있던 놋 단을 옮기되(14b)
새 단과(14c)
여호와의 전 사이에서(14d)
옮겨다가(14e)
그 단 북편에 두니라)14f)
-
아하스 왕이(15a)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하여(15b)
가로되 아침 번제와(15c)
저녁 소제와 왕의 번제와(15d)
그 소제와 모든 국민의 번제와(15e)
그 소제와 전제를(15f)
다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15g)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15h)
다 그 위에 뿌리고(15i)
오직 놋 단은(15j)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하매(15k)
-
제사장 우리야가(16a)
아하스 왕의(16b)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16c)
-
아하스 왕이(17a)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17b)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17c)
또 놋 바다를(17d)
놋 소위에서 내려다가(17e)
돌판 위에 두며(17f)
-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18a)
성전에 건축한 낭 실과(18b)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 실을(18c)
앗수르 왕을 인하여(18d)
여호와의 전에 옮겨 세웠더라(18e)
-
아하스의 그 남은 사적(19a)
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19b)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19c)
-
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20a)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20b)
그 아들 히스기야가(20c)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20d)
-
자기 이익의 극대화 추구_the pursuit of maximizing one's own interests_
힘의 논리 추구_the pursuit of the logic of power_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_a break in one's relationship with God_
-
주님, 아하스 왕이 하나님 앞에 있었던 놋 제단을 성전에서 머리 치워버린 역사를 보았나이다. 제단이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고 볼 때,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포기한 반역이며 배신입니다. 결국 외세를 의존하다가 앗수르에 망하는 이스라엘 아하스의 전철을 밟지 말게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Lord, have you seen the history of King Ahaz removing the Not Altar before God from the temple? Considering that the altar means God's presence, this is a rebellion and betrayal that gave up God's presence. Help us not to follow the footsteps of Ahaz, Israel, who was eventually ruined by Assur while relying on foreign powers.
2024.10.1.tue.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