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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7월 31일 수요일
[(백)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은 1491년 에스파냐 칸타브리아의 로욜라에서 태어났다. 군인이 된 그는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치료받다가 현세의 허무함을 깨닫고 깊은 신앙 체험을 하였다.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한 이냐시오는 마흔여섯 살에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예수회를 창설하여 오랫동안 총장직을 맡았다. 그는 『영신 수련』 등 많은 저술과 교육으로 사도직을 수행하였으며, 교회 개혁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1556년 로마에서 선종하였고, 1622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이 그를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모두 자신을 저주한다고 하소연하는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주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시며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시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고,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습니까?”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5,10.16-21
10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16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17 저는 웃고 떠드는 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가득 채운 당신의 분노 때문에 당신 손에 눌려 홀로 앉아 있습니다.
18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19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20 그러므로 이 백성에게 맞서 내가 너를 요새의 청동 벽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움을 걸겠지만 너를 이겨 내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건져 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21 내가 너를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무도한 자들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44-46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10,31―11,1)와 복음(루카 14,25-33)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는 ‘우연히’ 발견된 보물입니다. 다시 말하면 밭을 가는 사람은 보물을 ‘찾으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밭을 갈다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 보물을 찾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보물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만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보물을 차지하게 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의 소중함을 알아본 이들만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는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상인은 주도적으로 ‘좋은 진주’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좋은 진주를 발견하자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진주를 차지합니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찾고 열망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발견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로 좋은 진주를 찾고자 길을 나선 것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삶,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함께 그 말씀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삶, 주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삶, 미사 안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삶, 이 모든 것이 하느님 나라라는 좋은 진주를 찾아 나선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우연히 그 실체를 드러내기도 하고, 또 신앙생활로 우리 삶 안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이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것들을 차지한 것처럼, 하느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진 이들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사랑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2티모 3,16-17).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줄 수 있는 힘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한다면!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삼복더위에 70명, 80명의 식사를 준비하다 보니, 주방 온도가 40도를 훨씬 넘어섭니다. 하는 일은 언제나 단순 작업의 반복입니다. 다듬고 썰고, 지지고 볶고, 삶고 끓이고...
때로 이 나이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다가도 아이들이 깔깔대며 맛있게 먹는 광경을 생각하면 얼굴에는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요즘, 자주 생각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하고, 하느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로 생각하면, 그 작은 일들이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이끄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된다는 것을.
스페인 로욜라에 있는 이냐시오 성인의 생가를 들렀을 때였습니다. 고풍스런 성채 안에는 그분께서 탐독했던 책들부터 시작해서 그의 가족들이 쓰던 식기, 가구, 입던 옷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성 이냐시오 대성당 중앙 제대 뒤편에는 그분의 청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인의 손은 어떤 글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글귀는 예수회 회원들의 살아가는 이유이자 모토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
예수회 회원들은 창립자 이냐시오 성인의 영성과 정신에 따라 오직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릴 뿐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서원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창립자나 카리스마는 다르지만 ‘동종 업계 종사자’인 동료 수도자로서 생각할수록 멋진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오늘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혹시라도 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이 아니라 내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한 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생애는 풍파 많고 우여곡절 투성이인 우리네 삶에 큰 위안과 위로를 건네주고 계십니다. 하느님을 향해 걸어갔던 그의 여정은 참으로 파란만장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기사(騎士)로서의 큰 성공을 꿈꾸었습니다.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왕에 대한 대단한 충성심을 드러내며 목숨까지 걸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를 위한 하느님의 뜻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1521년 침략해온 프랑스군과 맞서 싸우던 그는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날아온 포탄에 맞아 한쪽 다리는 부러졌고, 다른 쪽 다리마저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던지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병자성사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은혜롭게도 이냐시오는 그 시점에서 자신의 인생 여정 안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 하나를 마련합니다. 주님의 자비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 그는 회복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인열전’이란 영성서적을 손에 듭니다.
처음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읽기 시작했던 그 책들이 그를 천천히 주님께로 안내했습니다. 그는 조금씩 세상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알아갔습니다. 그리고 보다 가치 있는 일, 보다 의미 있는 일, 보다 영양가 있는 인생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세속적인 성공하기 위해 아낌없이 쏟아 부었던 에너지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충직한 기사를 꿈꾸었던 그는 이제 하느님의 충성스러운 군사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나는 커다란 진주를 팔려고 이리저리 들고 다니는 거지 아이와 같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사람에게 가치가 있을까요? 그리고 나와 나의 삶에 가치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요? 진화론에서는 사람이나 아메바, 모기나 기생충의 가치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각자가 생존을 위해 진화한 최종단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 진화론자들에게는 인간에게 가치를 매기거나 윤리, 혹은 존엄성을 말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자신에게 느끼는 가치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왜 죽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그 마음 안에는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반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 여겨질 때 세상에서 살아갈 힘이 납니다.
사람이 이런 존재로 진화했다고 하는 것은 참 역설적입니다. 정말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여겨 우울증과 자살 시도를 한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그랬습니다.
실비아 플라스의 삶에 대해 알아볼까요? 실비아 플라스는 미국의 시인입니다. 그런데 이른 나이에 가수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비아는 미국 명문 여대를 졸업하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두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실비아는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잃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 같았으나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친구와 이야기하다 어느 날 친구 둘이 낄낄대며 자기들끼리 떠나버렸습니다. 실비아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없었던 것입니다.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았지만, 남편까지 외도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천재로 명성에 자자했지만, 자신은 가치 없는 존재라 스스로 여겼기에 살 의미를 잃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며 살고 그 측정한 가치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거나 잃기도 합니다. 그냥 그런 존재입니다. 이 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저절로 자기 삶의 가치를 측정하여 가치가 없다면 죽어버리는 존재로 진화했을까요? 진화의 이유가 생존인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필요합니다.
먼저 나의 가치를 알려면 누가 나의 가치를 평가하는가, 또 그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나 혼자서는 나의 가치를 알 수 없습니다. 타인의 평가를 믿는 것입니다.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대한항공으로부터 평균 2억 5천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으나 미국 정부를 상대로 미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던 피해자 14명은 1인당 평균 230만 달러(30억 원)를 받아 냈다. 2001년, 국내 법원에서는 조종사의 무모한 조종이 인정되어 7억여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항공사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국제조약에 의거 보상금은 1억 5천만 원 선이다.” [출처: ‘하기 싫은 일을 해야 몸값이 오른다’ 중에서, 『세이노의 가르침』]
여기서 특별했던 것은 이것입니다. 보통 1억 5천의 보상금을 주는데, 국내 항공사에서는 유가족들에게 평균 2억 5천을, 국내 법원에서는 7억 원을, 그리고 미국 정부에서는 30억 원을 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가치는 그 가치보다 ‘누가 측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가장 높게 평가해주는 이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를 믿기 위해서는 실제로 나를 평가한 가치가 나에게 주어져야 믿을 수 있습니다.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나를 온 우주보다 귀한 존재라고 말했다고 해서 내가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천재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평생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 말하며 자기 주머니에 돌을 가득 담아 집 근처 강에 몸을 던져 죽는 경우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이나 책 몇 권을 사 주는 정도로는 살아갈 용기를 주는 나의 가치를 믿기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가치를 가장 잘 알았던 존재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입니다.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면 그 아이는 커서도 다른 어떤 것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생명을 내어줄 만큼 자녀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니 자녀도 그런 부모 덕분으로 살 용기를 낼 수 있기에 부모가 자기 생명처럼 소중합니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가 나의 생명을 바쳐야 할 정도로 충분한 가치를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때가 사춘기입니다. 자녀는 이때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새로운 것들을 찾습니다. 친구도 있고 꿈도 있고 좋은 스마트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위해 내 목숨을 내어놓을 만큼 나의 가치가 존귀하다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나 자신을 맡겨야 할까요?
한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인생의 가치에 관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돌 하나를 주며 먼저 시장에 가서 팔고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값을 물어보거든 손가락 두 개만 펼쳐 보이라고 했습니다. 시장에서는 그 돌을 자기 집에 장식하겠다고 하며 아이의 손가락 두 개를 보고 2달러에 사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를 다시 박물관으로 보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2천 달러에 산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석 채굴장에 가서 팔아보라고 합니다. 책임자는 그 귀한 돌을 20만 달러에 사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세상에서 내 인생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내가 그를 위해 무엇까지 지불할 수 있는지를 알면 됩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나에게 가장 많은 값을 치러주는 이를 위해 내어놓을 것입니다. 그 보물을 발견하는 게 하늘 나라 행복의 핵심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팔아도 될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 보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나의 가치를 알려주시기 위해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내어주는 가치는 얼마일까요? 온 우주보다도 큽니다. 이것을 믿는다는 말은 나도 그 가치를 주시는 분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 행복의 가치를 아는 이의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내가 목숨을 내어줄 부모가 있는 존재가 없는 아이보다 더 행복한 것과 같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어느덧 7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는 유명한 카지노가 있습니다.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기도 하고, 공연을 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카지노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박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노다지가 묻혀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즐기면서, 공연을 보는 건 좋지만, 노다지를 찾겠다고 올인하면 자칫 몸도 상하고, 가진 재산도 모두 날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매일 복권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박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노다지가 묻혀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즐기면 좋지만 복권에 올인하면 역시 몸도 상하고, 영적으로 메마르게 됩니다.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박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노다지가 묻혀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처럼 투자는 분산해서 하면 좋다고 합니다. 적당한 투자는 좋지만, 주식에 올인하면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카지노, 복권, 주식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할 줄도 모르고, 일단 겁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밭은 ‘카지노’가 아닙니다. ‘복권’도 아닙니다. ‘주식’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밭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밭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밭은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부른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들어간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나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오늘은 이냐시오 성인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이라는 보물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영신수련은 4주간에 걸쳐서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는 길잡이입니다. 준비기도, 구할 은총, 주어진 성서말씀 묵상, 마침기도, 묵상내용 정리의 순서로 30일 동안 하루에 5시간 정도 기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10년 동안 신학생들과 함께 30일 피정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미국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30일 피정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신수련은 그 내용이 모두 좋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원리와 기초’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믿고 따름으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 세상 모든 걸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 유익하면 그것을 사용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고, 부유함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도 있고, 오래 사는 것보다, 단명함을 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삶의 기준은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다미안 신부님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병환자가 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스스로 가난한 이가 되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순교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되기도 합니다.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손에 작은 가시가 박혀있으면 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영혼에도 많은 가시가 박혀있습니다. ‘분노와 원망, 시기와 질투, 욕심과 교만’의 가시들입니다. 이런 가시가 박혀있으면 우리는 참된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지 못합니다. 내 영혼의 쓰레기를 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영신수련의 시작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이냐시오(Ignatius)
신분 신부, 설립자
활동지역 : 로욜라(Loyola)
활동연도 : 1491-1556년
같은이름 : 이그나티오, 이그나티우스, 이냐시우스, 이니고
성 이냐시오는 1491년에 에스파냐 기푸스코아(Guipuzcoa) 지방의 아스페이티아(Azpeitia) 읍 위쪽의 로욜라 성에서 아버지 벨트랑 아녜스 데 오네스 이 로욜라와 어머니 마리아 사엔스 데 리코나 이 발다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이니고이다. 그는 1506년에 당시 귀족 집안의 관습대로 에스파냐의 왕실 재무상인 후안 벨라스케스 데 쿠에야르의 집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다. 그는 후에 이때부터 자신이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했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명예를 얻으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머리와 옷 등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며 허영과 사치를 일삼았다. 벨라스케스가 사망한 후인 1517년에 성 이냐시오는 군에 입대하였다.
1521년 나바라(Navarra)의 팜플로나(Pamplona)에서 프랑스군과의 교전 중에 다리 부상을 입고 그의 생애에 있어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성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그를 치료해 주었고, 로욜라의 가족들에게 후송해 주었다. 부상으로 인한 치료를 마치고 회복기에 접어들자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그는 평소 즐기던 낭만적인 기사 이야기를 실은 책을 읽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성 안에 그러한 책은 없었고, 대신 가족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삶에 관한 책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책을 읽어 가면서 기사로서의 공상들이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하는 반면,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는 삶 속에 참된 기쁨과 평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내면적인 체험을 할 즈음에 그는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 이 환시에서 그는 크나큰 위안을 받았고 지난날의 생활 전체, 특히 육을 따르던 행실에 대해 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이후 그는 회심의 길로 들어섰다. 회심 후 로욜라를 떠난 성 이냐시오는 1522년 3월 25일 몬세라트(Monserrat) 산에서 약 15km 떨어진 만레사(Manresa) 마을 근처의 동굴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기도와 극기와 명상에 몰입하였으며, 구걸로 생계를 꾸려갔다. 평화를 얻으려던 그는 오히려 자신의 지난 죄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고행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 유명한 “영성수련”(Exercitia Spiritualis)은 바로 이 시기에 기본 골격이 형성되었다. 이 당시 성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기도와 보속을 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1523년 2월에 시작된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은 그가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예루살렘 순례 후 1524년 3월에 바르셀로나(Barcelona)로 되돌아왔다. 회심 이후 약 11년 간 그는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526년에는 알칼라 대학, 1527년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1528년 여름에 파리(Paris)로 학교를 옮겼다. 그곳에서 1535년 3월 14일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건강의 악화로 1535년 봄 에스파냐로 돌아가 요양하였다.
성 이냐시오의 연학 시기는 수많은 단련도 있었지만 동시에 동료들을 규합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뜻을 따르는 동료들을 파리에서 만났다. 즉 사부아 출신인 성 베드로 파브르(Petrus Faber, 8월 2일), 나바라(Navarra) 출신인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anciscus Xaverius, 12월 3일), 에스파냐 사람인 라이네스(J. Laynez)와 살메론(A. Salmeron)과 보바디야(N. Bobadilla), 포르투갈인 로드리게스(S. Rodriguez) 등이다. 이들은 성 이냐시오처럼 외적 고행, 구걸, 단식, 맨달로 다니기 등으로 단련하였다. 1534년 8월 15일 그들은 몽마르트르(Montmartre) 수도원의 순교자 성당에서 가난과 정결 그리고 공부가 끝나는 대로 예루살렘으로 가겠다는 세 가지 서약을 하였다. 하지만 건강의 악화로 고향으로 돌아온 성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1537년 1월 베네치아(Venezia)에서 9명의 동료들과 모였으나, 당시 터키와의 전쟁으로 가지 못하고 1537년 6월 24일 동료들과 함께 그곳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537년 겨울 성 이냐시오는 동료 성 베드로 파브르와 라이네스와 함께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Roma)로 갔다. 로마 근교의 라스토르타(La Storta)라는 마을의 경당에서 성 이냐시오는 환시를 체험하였다고 한다. 그는 성부께서 그를 예수 그리스도와 한 자리에 있게 해주시는 환시를 보았는데, “내가 로마에서 너희에게 호의를 보여주리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성 이냐시오와 동료들은 자신들을 ‘예수회’(예수의 동반자라는 뜻)라 불렀으며,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는 이들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사실 그때까지 장상, 규칙, 전통 없이 열심히 생활하던 성 이냐시오와 그의 동료들은 1540년 9월 27일 예수회 창립을 확인하는 교황의 교서를 통해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 4월 성 이냐시오는 초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4월 22일에 그와 동료들은 로마의 바오로 대성전에서 장엄서원을 하였다.
예수회는 즉시 선교 지역으로 나갔고, 수도원과 학교, 대학교, 신학교 등을 전 유럽에 세웠으며, 교육과 지적인 분야에서 그들의 탁월한 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 성 이냐시오와 동료들이 세운 세 가지 목표는 교육과 자주 성사를 받음으로써 교회를 개혁하고, 선교지에서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며 이단과 싸운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예수회 활동의 뿌리가 되었다. 성 이냐시오는 1555년 여름 로마에서 열병에 걸려 7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는 1609년 12월 3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하여 시복되었고, 1622년 3월 12일에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함께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그의 시신은 로마에 있는 예수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피정과 영성수련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성 유스티노 데 야코비스(Justin de Jacobis)
신분 : 선교사, 주교
활동지역 : 에티오피아(Ethiopia)
활동연도 :1800-1860년
같은이름 : 유스띠노, 유스띠누스, 유스티누스, 저스틴
유스티누스 데 야코비스(Justinus de Jacobis, 또는 유스티노)는 이탈리아 루치아나의 산 펠레(San Fele)에서 17명의 자녀 가운데 14번째 아들로 태어나 나폴리(Napoli)에서 성장하였다. 1818년 선교 수도회에 입회하였으며, 1824년 6월 12일 브린디시(Brindisi)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에티오피아 선교단(빈첸시오회)의 일원으로 1839년에 에티오피아에 도착하였다. 2명의 동료 사제와 함께 그는 서서히 그 지방의 문화를 익히며 주민들의 친구도 되고 종도 되면서 온갖 장애들을 극복하며 선교를 개시하였다. 그러나 이 선교활동은 주민들의 무지와 중상모략으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미래를 위하여 방인 사제 양성에 주력하여 3명의 방인 사제를 배출하고 자신은 명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주 대중적인 선교를 실시하였다. 1853년경 에티오피아의 교세는 20명의 방인 사제와 5천명의 신자가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곤다르(Gondar)에서 체포되어 7개월간 감옥생활을 하다가 추방되었다. 그 후 그는 재차 입국에 성공하였으나 또 다시 감옥에 갇혔고, 프랑스군의 도움으로 석방되었지만 1860년 7월 31일 열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에티오피아 교회의 재건자였던 그는 1939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5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제르마노 (Germanus)
활동년도 : 378?-448년
신분 : 주교
지역 : 오세르(Auxerre)
같은 이름 : 게르마노, 게르마누스, 제르마누스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는 378년경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 있는 오세르의 좋은 가문에서 출생하여 갈리아(Gallia)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후 로마(Roma)에 가서 법학을 공부하여 로마 시의 변호사가 되었다. 황제 호노리우스로부터 갈리아 지역을 다스리는 6명의 고위 관리 중 하나로 임명받아 지방 장관으로 재직하였다. 내적 회개를 체험한 성 게르마누스는 관직에서 물러나 사제가 되었다.
오세르의 주교였던 성 아마토르(Amator, 5월 1일)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였고, 그가 사망하자 즉시 선출되어 418년 7월 7일 주교품을 받았다. 이때 그는 자신의 부인(로마에서 결혼한 에우스타키아)과 헤어져 엄격한 고행을 택하여 수도자로 생활하였다. 그는 투르(Tours)의 마르티누스(Martinus, 11월 11일)와 더불어 갈리아에 공동체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이 당시 영국에는 이단인 펠라기우스주의가 퍼져 교회가 동요하고 있었다. 영국 주교들의 도움을 요청하자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1세(Coelestinus I, 4월 6일)는 429년 성 게르마누스에게 영국으로 가도록 지시하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영국으로 가는 도중 후에 성녀가 된 어린 시절의 제노베파(Genovefa, 1월 3일)를 만나 신앙 성숙을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는 영국의 이단들을 평정하고, 영국 군대로 하여금 픽트족과 색슨족의 연합 공격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승리는 ‘알렐루야 승리’라고 기록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성 알바누스(Albanus) 무덤 앞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승리의 기쁨을 하느님께 돌렸다. 그는 448년 7월 31일 라벤나(Ravenna)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 게르마누스는 여러 세기 동안 투르의 마르티누스 다음으로 가장 사랑받고 공경을 받는 프랑스 성인이다. 말과 행동과 기적의 능력이 뛰어난 성인으로서,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은 그를 일컬어 ‘갈리아의 기적의 게르마누스’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