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迷宮]
4-1. 여기 있는 이유.
그동안 그녀의 행방을 물어보기 위하여 몇 번인가 경찰이 방문하였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결국 그녀의 부모가 아래층 전세 계약을 중도 해지하기 위하여 다녀갔다.
그녀의 부모는 내게 여전히 그녀는 행방불명 중이며, 그녀의 자동차가 발견된 곳이 그녀의 마지막 흔적이 남겨진 곳이라 하였다. 여전히 경황이 없었던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극히 일부 짐 만을 챙겨 가지고 떠났고, 그녀의 부모를 대신하여 나머지의 짐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 주기로 하였다.
이후로 대략 1년여의 시간이 지나 갔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그녀의 방을 정리하지 않고 당시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가끔씩 무엇인가 해 보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는 그저 한동안을 가만히 선채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국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되돌아오곤 하였다. 정말로 그녀는 연쇄 실종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였던 것일까? 그녀가 사라진 이후로 더 이상의 실종사건은 발생하지 않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둥 세상은 온전히 평화롭게 때론 또 다른 사건으로 시끄럽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 조차 이제 와서는 아무런 의미 없이 느껴졌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연쇄 실종사건의 첫번째 희생자가 사체로 발견 되었다. (는 뉴스가 바로 어제 보도 되었다.) 그랬다. 그렇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 또한 살해당했다 거나 이미 사망해 있을 수 있다는 아주 처참한 소식이었다. 그런 저런 상념에 빠져 버린 나는 이런 저런 생각 끝에 그녀의 마지막 흔적이 발견된 장소를 찾아가 보기로 하였고,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였다.
4-2. 숲 속에 숲 뿐인 숲.
낙엽이 모두 떨어져 내린 메마른 나무 가지와 바닥에 떨어진 지 한참이나 오래되어 바짝 말라붙은 낙엽들을 모조리 쓸어내 버리려는 듯 늦가을 차가운 바람이 온 숲을 헤집으며 매섭게 불어오고 있었다. 적막함 만이 가득한 아무런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이 깊은 숲 속을 그녀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찾아 왔던 것일까? 애초부터 여기는 쥐도 새도 모르게 뭔가를 처리하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인 곳이 아닌가!!! 주위를 둘러 보아도 온통 숲 외에는 아무런 것도 보이지가 않는 곳. 우리나라에 이런 깊은 숲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움만이 가득해 질 뿐인 그냥 숲 속의 숲 뿐인 숲. 이곳이 바로 그녀의 마지막 흔적이 남겨진 곳 이었다. 그리고,
이미 길은 끝나고 없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야 그저 숲 속의 숲만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산짐승이나 지나다닐 법한 산 위로 이어지는 좁다란 오솔길이 하나 있기는 하였는데, 길 위로 덤불이 심하게 우거져 있어 도저히 뚫고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뒤 큰 고민 없이 뒤돌아 서려 하는데, 야호 하고 어느 한 여성의 메아리 소리가 어렴풋이 산 위에서 들려왔다. (아니, 들려온 것 같았다. 가 더욱 정확한 표현 같지만,)
돌아섰던 발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인 채로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어보았지만 메아리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그 목소리가 자꾸만 그녀의 목소리였던 것만 같이 여겨져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산 위에서 약하게 메아리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신호로 나는 마치 뭔가에 씐 것처럼 빠르게 오솔길을 헤치며 올라가기 시작 하였다. 그런 나의 몸은 꽤나 날렵한 편 이어서(40대인 점을 감안 한다면) 메아리의 진원지를 향하여 제법 빠르게 나아갔고, 다행히도 나아가는 동안 메아리 소리는 계속 들려 오고 있었다.
돌만이 가득한 매우 경사진 오르막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라는 누구나 한번쯤은 소리 높여 외쳐 불러 보고 싶었던 영화 속 그 대사가 분명한 목소리로 가까이에서 들려왔고, 그 목소리의 주인이 그녀일 것이라는 생각에 나의 심장은 크게 요동치며 떨려왔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정신없이 급 경사지를 오르고 있는데 거친 돌 틈 사이로 하이힐 뒷굽이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앗! 이것은!!! 그녀의 하이힐이 아닌가??!! 그녀가 지닌 유일한 명품이었던, 그래서 늘 뽐내며 신었던, 단 한 켤레의 바로 그 하이힐. 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냥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건 마치, 어쩌면 이 분명한 확신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바래 왔기에 올 수 있었던 기적적인 순간 이었다 랄까?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논리적 설명이 필요 없는) 이건 부인할 수 없는 그녀의 하이힐 뒷굽이다!! 하고 나는 확신하였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안고 정상... 아니 정확히는 산 중턱 오르막 끝에 다다르자 거짓말처럼 정말로 그곳에 그녀가 서 있었다. 비록 그 모습이 꽤나 망가져 있었지만,(머리에는 허옇게 풀이 돋아 나 있었고, 엉덩이는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하얀 블라우스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까진 무릎에 한쪽 신발 뒷굽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그녀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종된 당일 모습 그대로인 것만 같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그 모든 것이 신기해 보이기는 하였지만, 나는 한쪽 신발 뒷굽을 반갑게 흔들어 보이며 미소 띈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 갔다. 그런데,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4-3. 그날의 기억보다 더욱 믿을 수 없는 일
그런데 딱!! 거기까지 였다. 순식간에 안개가 눈 앞을 가로 막으며 그녀의 모습이 빠르게 희미해 지더니 거짓말처럼 그녀가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의 시야는 끔찍하게 짙어진 안개의 벽에 가로 막혀 한치 앞도 분간해 내기가 어려워 졌고, 다급해진 나는 단지 그녀의 이름만을 소리 높여 외쳐 불러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내게 되돌아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안개의 벽에 가로막혀 그녀와의 만남을 이뤄 보지도 못하고,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았던 그녀의 슬픈 눈빛 만을 간직한 채로 그곳을 떠나야만 하였다. 그런 그날의 기억은 마치 꿈과 같았던 일이었기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고, 이후로도 몇 번인가 그곳을 다시 찾아가 보기는 하였지만 그날과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세상은 온전히 평화롭게 때론 또 다른 사건으로 시끄럽게 흘러가고 있었고, 가끔씩 여전히 무엇인가 해 보려고 방치된 아래층에 내려가 늘 그랬던 것처럼 그저 한동안을 가만히 선채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국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되돌아오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다 정확히 두번째의 실종자가 사체로 발견 되어 진 그날 밤.
그날의 기억보다 더욱 믿을 수 없는 일이 나에게 벌어 지고야 말았다.
그날 밤. 거짓말처럼 그녀가 (내 기억 속에 있던 그날의 그 모습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혹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