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와 밀양의 여중생
원문출처 : 스트라이크테러
누구를 지지하면 선진국이 된다고들 한다.
누구를 지지하는 사람은
머리가 어떻다는 식의 심한 말도 서슴없이 오간다.

어느 당이 집권하는
것만은 반드시 막아야한다는 식의 반민주적 주장은 어느 시장 선술집에서
무학(無學)의 촌로들이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진보'나 '개혁'
이라고 부르는 자칭 똑똑한 사람들에게서 더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래도 한때는 이런 공식 같지 않은 공식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군사독재세력 = 무능 = 권위주의 = 억압 = 부패 = 사대 = 반통일 = 수구
민주화세력 = 유능 = 합리주의 = 자유 = 청렴 = 자주 = 통일 = 개혁
하지만 민주투사 대통령 3기 혹은 2기를 겪고 있는 지금, 과연 이런
공식에 아직도 묶여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군인들이 쿠데타에 공헌한 공로에 따라 공직을 나눠먹듯, 선거에서 각종
흑색선전 대행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납 대리인으로 활동한 공로에 따라
공직을 나눠먹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도리어 뭐가 문제냐며
큰소리를 친다.
총만 쏘던 군인이 뭘 알고 무슨 자리에서 일을 하냐던
그 사람들 역시 아무 것도 모르는 시민단체 사람들을 요직에 앉힌다.
'자주'를 큰 소리로 외칠 수록 한반도가 처한 국제적 현실에 어둡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고 본다.
결국 누가 집권한다고 해서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정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즘처럼 정치인의 팬클럽을
자처하고, 상대의 약점 폭로에 열광하는 것이 과연' 정치'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것이다.
누가 되기만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식의 맹목적
주장이 판치는 오늘 날, 나는 두 여중생의 경우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한 쌍의 여중생은 의정부에서 군사훈련중이었던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
한 여중생은 밀양에서 40 여명의 미성년자들에게 오랫동안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사람들은 어느 한 사건에만
'올인'했다. 그들은 늘 '약자'를 대변하는 척했다.
아예 대한민국 자체가
약자인 것처럼 최대한 여론을 조작하려고 했다
(오마이뉴스 자작 기사 사건을 기억하라).

반면 아직도 피해자로 살고 있는 한 여중생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 고통을 겪고 도리어 가해자들이 당당하게 살고 있다.
이 두 사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인데,
정치적 이용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오직 그것이다.
반미감정을 자극해 선거에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두 여중생의 죽음은 '정치인'과 '정치 주변의 선동가들'에게 너무도
사랑받는 소재가 되었다.
반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담아낸
밀양 여중생 사건은,
이미 이 사회에서 특권층이 되어버린 정치인들에게
너무도 귀찮고 번거로우면서도 뭐 하나 생기는 것 없는 일일 뿐인 것이다.

'한나라당 vs 열린우리당' 혹은 '이명박 vs 박근혜' 식의 대립구도보다도
'특권을 누리는 정치인 vs 힘 없는 서민'의 대립구도가 더 중요하다.
어느 정치인이나 정파의 뒤에 줄을 서면 혹시 '힘 있는 서민'(?)이 될 수도
있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정치인들의 권력놀음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어리석은 대리만족이 횡횡한 요즘,
이 글을 쓴 나나 읽고 있는 당신도
밀양 여중생처럼 이 사회에서 완벽하게 피해자로 살아가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 시대에 정치는 누구를 권좌에 앉히기 위해 국민들이 팬클럽이
되어 정적의 비리 폭로와 그 선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된 국민이 살고 있는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정말 노력할 만한 자질과 의지가 있는 사람을 추려내는 것이 선거이고,
그런 일이 제대로 되게 하는 것이 정치 아닐까?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용 가치에 따라 국민을 동원하기도 하고, 어떤
국민이 당한 비극을 최대한 이용하기도 하는 동시에 어떤 국민이 당한
비극에는 철저하게 침묵하는 이런 세상에서,
고작 누구 팬클럽 운운하는
한심한 국민들,
누가 되면 개혁이고 누가 되면 수구라고 아직도 공식을
읊고 있는 한심한 국민들...
과연 정말 민심은 天心일까? 아니면 淺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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