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5.10:03 月. 흐림
나도 처음에는 정말 도를 트려고 했단 말이야, 허허허...
나주곰탕, 대구 따로국밥, 부산 돼지국밥, 춘천 닭곰탕, 병천 순대국밥, 전주 콩나물국밥, 제주도 굴국밥 등이 다 잘 알려진 향토음식들이지만 해미읍내의 소머리곰탕이 유명하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새벽에는 눈이, 오후에는 비가, 한나절 시차를 두고 엇갈려가며 살살 뿌려대는 스산한 겨울날씨에다 철정순례단鐵鼎巡禮團과 저녁식사를 함께하기 위해 근 1시간 이상 지방 국도를 내리 달려왔기 때문에 뜨끈한 국물에 새큼한 석박지가 시장기를 은근히 부추기는 저녁시간이 되어있었다. 이미 날은 주위가 어둠직하게 땅거미가 내려앉았고, 젖어있는 길바닥은 가로등불빛이 반사되어 혼탁한 수면처럼 몇 가지 색깔들이 불규칙하게 번져나고 있었다. 차를 길 가장자리에 주차시키고 거대한 풍뎅이 같은 차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서산 시내를 통과해오면서 커다란 화물트럭 뒤를 잠시 따라갔을 적에 아무래도 차에 흙탕물이 어지럽게 튀어있을 것 같아서였다. 일요일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어제 밤늦게 주유注油를 하면서 모처럼 세차洗車까지 해놓았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흙탕물 정도야 관심도 없으련만 새삼스레 차 외관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투자와 관심의 상관관계相關關係를 흙탕물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셈이었다. 벌써 어두워진 시각인데 까만 차의 까만 흙탕물을 쳐다본다고 잘 보일 리 없지만 뭐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일행들의 뒤를 따라 조붓한 대문으로 들어섰다. 일반 가옥 내부를 식당으로 개조하여 쓰고 있어서 안으로 들어서야만 내부가 넓어 보이는 음식점이었다. 좁은 통로 옆에서는 두 개의 가마솥에서 무언가가 끓고 있었고, 방안도 훈훈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오늘은 순례단 규모로는 수가 가장 많은 열세 명이었으니 식탁을 나란히 붙인 자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마침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다른 일행들이 있어서 순례단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종업원의 은근한 식사주문 독촉을 두어 번 받은 뒤에야 순례단 숫자를 확인하고 난 다음 일괄적으로 주문을 했다. 음식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던 주지스님께서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불쑥 방안에 나타나셨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궁금한 스님의 거취에 대해 일행들 간의 의견이 분분했었는데, 몇 가지 유력한 예상을 뒤집고 소머리곰탕집에서 시켜놓은 음식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순례단을 위해 김밥을 사들고 나타나신 것이었다. 꼬마김밥을 보면 왠지 사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스님의 해명이 있었지만 일행들은 아마 추운 겨울밤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김밥을 파는 모습이 안쓰러워 사주신 거라고 생각을 하는 눈치들이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갑자기 에피타이저가 돼버린 꼬마김밥은 기름 발라 고소한 게 맛이 있었다. 고향 부근을 갈 적마다 나주곰탕을 자주 먹게 되는 나는 원래 경기도 음식이라는 소머리곰탕 맛을 기대하면서 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탁위에 맛과 멋에 관한 이야기 탑을 자꾸만 쌓아보았다. 여름에는 음식 맛에 더하여 냉기冷氣를 요구하지만 겨울날에는 음식 맛에 추가하여 온기溫氣를 바라게 된다. 냉기는 더위와의 일체감 없는 단절斷絶을 뜻하나 온기는 추위를 끌어안는 포용包容이라는 점에서 가슴의 표면적을 훨씬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온기는 항상 그리움을 우리들의 속 깊은 안으로 함께 끌어와 깊숙하게 들여놓는다. 그래서 여름날의 추억보다 겨울날의 추억이 매번 더 날카롭고 생생한 까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소머리곰탕이 뚝배기에 그득 담겨 나왔고, 우리들은 뜨끈한 온기가 가슴 밑바닥까지 싸아~ 하게 퍼질 때까지 말없이 숟가락질만 열심히 했다. 침묵의 시간이 지나자 여기저기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식사가 마저 끝나고 난 뒤에도 우리들은 가슴 속 온기의 힘을 빌려 더 많은 이야기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순례 차 들려보았던 태을암太乙庵과 태국사泰國寺 두 절들의 곡절 많았을 사연들을 되짚어보기도 했다. 태을암의 주지스님은 20여 년, 태국사 주지스님께서는 31년 동안 한 자리에서 주지소임을 맡아오면서 불사와 포교의 최 일선에서 겪었을 수많았던 고난들을 헛헛한 웃음을 섞어가면서 해주신 이야기들이 한국불교의 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마스 엘바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를 켜보기 전의 1972년도 운문사 강원에서 학인으로서 공부를 7년여 동안이나 했다는 비구니 청우스님께서는 31년 전 처음으로 태안의 시골 막막한 바닷가인 태국사에 오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처음에는 정말 도를 트려고 했단 말이야, 허허허...” 활달하고 소탈한 성격의 스님께서는 웬만한 비구스님 보다 더 솔직하고 시원스럽게 옛날 이야기들과 요즘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그것은 어느 고고한 스님의 도를 튼 이야기가 아니라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가야만 하는 생활과 살림살이 이야기였었다. “나도 처음에는 정말 도를 트려고 했단 말이야, 허허허...” 스님의 말씀이 자꾸만 귓가에 울려 퍼졌다. 가슴 밑바닥의 다순 온기가 전생前生의 그리움과 추억까지 안으로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어서인지 얼굴 모르는 슬픔들이 내게로 밀려드는 것 같았다.
따뜻한 저녁을 먹고 훈훈한 이야기를 하면서 삶의 온기溫氣를 충분히 맛본 뒤에야 우리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작별인사를 하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몰아 달려갔다. 일요일 저녁에 서울을 향해 올라갈 때는 점점 짙은 어둠이 깔려오는 것에 반해 이른 아침에 고북면을 향해 내려갈 때는 점차 주위가 밝아져 온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 그 기대감이나 충만감은 별로 다르지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것들은 똑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랬다.
(- 나도 처음에는 정말 도를 트려고 했단 말이야, 허허허... -)
첫댓글 이번 순례는 태국사나 태을암 보다도 사실은 청우스님 소개시켜드리는게 목적이었습니다.
그냥 만나서 이야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스님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로부터 느껴지는 훈훈한 온기.....
힘든세상살이를 견디게 하는 큰힘이죠~
청우스님의 엄마같은 푸근함이 또한번 오고싶다,스님또 보고싶다,이렇게 만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