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가 달력을 개정하려고 결심한 것은 이 차이(달력상의 계절과 실제 계절 사이에 석 달 가까운 차이)를 없앨 필요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확한 달력만 만들면 '로마 세계'의 어디에서나 받아들여질 테고, 그에 따라 생활 리듬도 어디서나 같아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마 세계는 로마의 군사적 패권이 미칠 뿐 아니라, 문화는 다양해도 문명은 공통이어야 한다.
나날의 생활을 재는 기구인 달력을 공유하는 것은 문명 통합의 첫걸음이었다.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알게 된 이집트인 천문학자와 그리스인 수학자들이 달력 만드는 작업을 맡았다.
카이사르의 초빙을 받고 로마에서 그 작업에 착수한 과학자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365일 6시간으로 계산했다.
따라서 365일이 1년이고, 이것은 다시 열두 달로 나뉜다. 그리고 1년마다 생겨나는 6시간의 오차는 4년에 한 번씩 2월 23일과 24일 사이에 하루를 끼워넣어 청산한다.
결국 그해의 2월은 29일이 된다.
이리하여 태양력이 탄생했다.
이 달력은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율리우스력'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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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율리우스력'은 서기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다시 개량할 때까지 1천 627년 동안 지중해 세계와 유럽 및 중근동에서 사용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율리우스력을 다시 개량한 이유는 16세기 후반에 천문학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365일 6시간이 아니라 365일 5시간 48분 46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계산을 토대로 한 '그레고리우스력'이 '율리우스력'을 대신하여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11분 14초의 오차를 판정하는 데 무려 1천 627년이나 걸렸으니까, '율리우스력'은 그것이 만들어졌을 당시로서는 경이적일 만큼 정확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레고리우스력'도 11분 14초만 정확해졌을 뿐, 달력의 개념은 '율리우스력'과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