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위령제 및 문화행사 개최
지난 8월 15일에는 문화관광부 후원 사업으로 “8.15 위령제 및 문화행사”가 각각 실시됐다. 이번 행사는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에서 후원하고 대한불교종단협의회와 우즈베키스탄 종교성에서 주최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자은사와 고려인문화협회에서 공동 주관하여 진행됐다. 특히 위령제에는 관련 권위자인 홍파스님(대한불교연합회 사무총장, 관음종 총무원장)과 사무국장인 능우(대한불교 조계종 사회국장)스님, 대한불교 조계종 타슈켄트 자은사 주지 조주 스님 등이 참석했다. 문화행사에서는 고려인문화협회 광장에서 한국무용, 합기도 무술시연, 한글로 이름 쓰기, 단청그리기, 연 만들기 등을 시연했다. 한편 이번 행사에는 교민을 비롯한 고려인 동포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취재 = 한인일보 편집국)
18년 서울 근무 펜 주한 대사 우즈벡 귀임
‘현직 최장수 주한 대사’ ‘서울 외교가의 마당발’로 불려온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귀임한다.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주지사로 근무하다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에게 발탁돼 1999년 11월 주한 대사로 부임한 지 13년9개월 만이다. 앞서 1995년 대리대사로 부임한 기간을 합치면 무려 17년8개월을 서울에서 일했다. 상주 공관을 갖고 있는 주한 공관 현직 대사 가운데 최장수 기록이다. 그는 2007년부터는 6년째 서울에 주재하는 외국대사들의 모임인 주한외교단 단장으로 봉사해왔다. 외교부 정기홍 유라시아과장은 “펜 대사는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외교관으로서 친화력이 대단했다”며 "현안을 풀기 위해 보드카를 들고 다니며 외교현장을 누빈 것으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펜 대사는 15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향 같은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어 매우 기뻤고 큰 보람으로 느낀다”며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모두 성취한 자랑스러운 나라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이 서로 도우며 함께 발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펜 대사는 러시아어뿐 아니라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배운 한국어가 유창하다. 서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의 하나다. 한국의 정·재계에서도 인맥이 넓은 그는 수백 명의 지인들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16일 낮 12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귀국 신고’를 겸한 대규모 오찬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규현 외교부 1차관도 참석했다. 다음은 펜 대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최장수 대사가 떠난다는 소식이 서울 외교가에 화제인데. “1995년 12월 대리대사로 서울에 부임한 지 벌써 17년 8개월이 지났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비롯해 그동안 한국에서 다섯 명의 대통령을 만났다.” - 한국 외교부에도 변화가 많았는데. “당시 공로명 외교부 장관을 시작으로 윤병세 현 장관까지 13명의 장관을 거쳤다. 한승수·반기문 장관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반기문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했을 때 주한 외교관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지지선언을 했다.(웃음)” - 17년 만에 귀국하는 소감은. “많은 한국인들이 나를 지지해줬고 도와줬다. 감사하다.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위성락씨가 지금은 러시아 주재 대사가 됐을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고 변화도 많았다. 이명박정부 때는 매년 양국 정상회담을 했다. 박근혜정부에서도 양국 관계가 계속 발전해가길 바란다.” - 많은 지인 중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중소기업중앙회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김용구씨다. 지금도 우즈베키스탄에서 활동하는 그는 나의 영원한 친구다.” -‘한사모(한국을 사랑하는 대사들의 모임)’ 대표를 맡아왔는데. “10여 년 전에 시작된 이 모임엔 성김 주한 미국대사 등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6~7명의 대사들이 참석하고 있다. 명예회장을 맡아온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나에겐 큰 형님 같은 분이다.” - 한국과의 인연은. “나의 뿌리는 경주 편(片)가다. 대중가요 ‘찬찬찬’으로 유명한 가수 편승엽씨와 일가다. 그런 인연으로 우리 대사관 행사에 와서 공연도 했다. 나의 조부 때 북한을 거쳐 소련으로 이주했다.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 이후 우즈베키스탄으로 옮겨갔고 1947년 내가 태어났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2006년 3월 카리모프 대통령이 방한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만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양국 관계 발전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 1992년 수교 이후 한·우즈베키스탄 양국 관계를 돌아보면. “우즈베키스탄에는 20여 만 명의 동포(고려인)가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은 모두 땅에서 일어난 민족이라서 문화적으로도 아주 가깝다. 실제로 양국은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됐다.” - 자원외교를 비롯해 경제 교류 및 협력이 긴밀한데. “90년대 초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이 우즈베키스탄에 자동차 공장 투자를 결정한 것을 잊을 수 없다. 96년부터 시작해 지금도 차를 생산하고 있다. 95년 약 10억 달러였던 양국 교역량은 최근 20억 달러를 넘었다.” - 한국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남북한이 조속히 통일되길 진심으로 빈다. 우즈베키스탄에도 계속 관심을 갖고 도와주길 바란다.” - 귀국 이후 활동 계획은. “당분간 쉬고 싶다. 아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손자들도 한국에서 유학 중이다. 앞으로도 오갈 기회가 있을 것이다.” (출처 = jungang daily)
K-FOOD 월드 페스티벌 우즈벡은 3등 차지
한식의 글로벌 확산을 위해 외교부, 전라북도, MBC가 공동으로 주최한 외국인 대상 한식경연대회인 ‘K-FOOD 월드 페스티벌’의 최종 결승전이 지난 16일 전라북도 국제한식조리학교(CCIK)에서 개최됐다.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참가한 이스칸드르 칼리물린(Iska nder Kalimullin, 만 28세)씨는 3등상(상금 3천불)을 차지했고 우승 상금 만불이 걸린 최종 우승은 미국의 로사 가브리엘라 리(Rosa Gabriela Lee, 만 32세)씨에게 돌아갔다. 2등상(상금 오천불)은 중국의 옌 펑타오(Yan Pengtao, 만 32세)씨가 거머줬다. 우즈벡의 칼리물린씨는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한 전문 요리사이다. 칼리물린씨는 특히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현재 우즈베키스탄 니자미 사범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지난 6~7월간 10개 재외공관에서 개최한 예선전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에 모인 10명의 결승 참가자들은 8.11(일)~8.17(토) 6박 7일간 한국을 방문, 전라북도 곳곳에서 한국 고유의 맛을 탐방한 후 최종 결승전에서 경합을 벌였다. 외교부는 앞으로도 외국인 대상 한식경연대회인 ‘K-FOOD 월드 페스티벌’을 매년 확대 추진하여, 보다 많은 세계인들이 한식을 통해 한국의 매력을 발견하고 한국을 친근한 국가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K-FOOD 월드 페스티벌’ 예선전, K-FOOD 캠프, 그리고 결승전에서 있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은 오는 9월 MBC 추석 특집으로 만나볼 수 있다. (출처 = 외교부)
‘할랄푸드’가 뜬다
전세계 이슬람교도들은 할랄푸드가 아닌 음식들에 대한 수용을 허락하지 않는다. 할랄푸드(halal food)란 이슬람교 의식을 거쳐 도살한 닭고기, 양고기, 소고기 등을 말한다. 전세계 할랄푸드 산업의 규모는 정확한 통계가 잡혀져 있지 않지만 이 세상 종교인 중 이슬람교도들이 제일 많다는 점만 생각해 봐도 그 규모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이 가운데 80%가 중동지역(Gulf Cooperation Council) 국가들이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할랄푸드라는 로고를 승인받기 위한 각국 식품업체들의 노력도 치열한데 이는 할랄푸드 시장의 규모가 큰데다 할랄로고 승인제품은 위생적으로도 뛰어났다는 보증받는 효과가 있어 비이슬람교도들에게도 우수 식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지역은 약 3,000만명의 이슬람교도들이 거주하는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 제외)와 유럽국가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느린 편이며 대다수의 아랍국가들은 그들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할랄푸드가 보편화되어 있는 중동 국가들보다 여러 종교가 혼합된 동남아시아 지역의 회사들이 할랄푸드에 대한 표준이 잘 정리되어 있어 주요 수요처들은 이러한 검증받은 할랄푸드를 이들 국가에서 수입하려 하고 있다. 할랄푸드 생산은 이슬람 기업들이 할랄푸드가 아닌 음식들에 대한 수용을 허락하지 않는 이슬람 신도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후에 이슬람 인구는 점차 더욱 성장하여 할랄푸드에 대한 수요 역시 이에따라 커지게 되어 비이슬람권 기업들까지 이슬람 공동체에서의 할랄푸드 제품에 대한 잠재적인 시장을 확인하려는 자극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이들 생산품이 「할랄」이란 것을 알게 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가들은 할랄제품이라는 로고를 승인받기 위해 검사를 실시하는 기관의 Chularatchamontri(이슬람의 영적지도자)에게 물어보아야만 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이슬람교도인 터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란, 이라크 등의 할랄푸드 생산국가들은 할랄푸드 기준마련의 필요성조차도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특별히 할랄기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어느 상점을 가도 할랄음식들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종교나 다문화 사회에서는 보다 더 검증받은 할랄음식을 찾게 마련인데 특히 말레이지아와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등의 국가에서는 할랄음식의 세계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유럽과 남아프리카 그리고 동남아시아 생산국들이 이슬람교 국가들에 할랄푸드를 수출하기 위해 좀 더 엄격한 표준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중동지역 이슬람교도들에게 할랄푸드의 투명성을 높여 그간 할랄푸드 표준에 등한시 한 중동지역 할랄푸드 업체에게는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할랄푸드의 표준 등장은 할랄푸드를 운송할 해운업체와 물류·유통업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은 세계의 주방으로서 자국의 식품산업을 촉진시키기 위해 정부와 정책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이슬람적인 행정업무에 목표를 맞춘 할랄푸드표준협회를 갖고 있다. 이 협회는 정부로부터 예산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특히 중동 아랍 국가들에 대한 수출을 겨냥하여 할랄푸드의 수출촉진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 saladTV)
[기행 연재] 실크로드 대탐험 2 (1부)
(기행작가 = 김연수 / 작가) ‘옛날 페르시아에 사산이라는 이름의 왕조가 있었다’라고 시작하는, 1000개의 밤하고도 하룻밤 더 계속되는 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가 있어서 내게 사마르칸트는 특별한 도시다. 이 왕조의 술탄인 형 샤리아는 지난날의 군주로서는 드물게(이 지역은 칭기즈칸의 아들들끼리 골육상쟁을 벌인 곳이다) 우애의 정이 넘쳐 동생인 샤즈난에게 타타르왕국을 하사했다. 그리하여 샤즈난이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사마르칸트다. 좀더 얘기하자면, 동생이 그리워진 형이 그를 초대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두 형제는 모두 아내의 부정을 발견하게 된다. 분노한 술탄이 더 이상 여자를 믿지 못해 매일 밤 한 명의 여자와 결혼해 잠들되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죽여버려 온 나라에 딸을 잃은 자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게 됐는데, 이때 스스로 술탄에게 시집가겠다고 나선 용감한 아가씨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이 바로 셰메라자드…. 셰메라자드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 결국 동 트고 난 뒤에도 술탄이 그녀를 죽일 수 없었듯이 사마르칸트와 인근 부하라에 대해서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와 노래들이 있었다. 일찍이 매슈 아널드는 사마르칸트를 ‘여름이면 태양이 파미르 고원의 눈을 녹여/홍수가 지는 그곳’이라고 노래했다. 오스카 와일드 역시 이 이국적인 도시에 대한 작품을 남겼다. ‘사마르칸트의 아몬드밭,/ 붉은 백합이 흩날리는 부하라,/ 그리고 옥수스 강(현재 아무다리아 강)의 누런 모래를 따라/흰 터번을 의젓하게 두른 상인들이 나아간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이스파한까지,/태양의 황금빛 정원으로부터/먼지투성이 카라반 행렬이/개잎갈나무와 단사(丹砂)를 가져온다.’ 이 풍요와 환락, 때로 타락의 이미지는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의 오리엔트에 대해 유럽인들이 지녔던 환상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환상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결과, 이 도시의 지배자는 수없이 바뀌었다. 사마르칸트는 강력한 군주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하지만 누구도 영원히 갖지는 못한, 아름답고도 도도한 여인을 닮았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사마르칸트가 영영 기억하는 남자는 있다. 그의 이름은 ‘절름발이 티무르’, 즉 사마르칸트가 낳은 위대한 지배자 아미르 티무르다. 14세기 티무르의 제국은 동서로는 흑해에서 델리까지, 남북으로는 타슈켄트에서 페르시아만까지 광대하게 펼쳐졌는데, 그 중심지가 바로 사마르칸트였다. 칭기즈칸 가문의 사위인 티무르는 처가 못지않게 점령지를 잔인하게 파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절름발이 티무르(Timur Leng)라는 별명이 유럽까지 태멀레인(Tamerlane)으로 와전되면서 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곡 ‘탬벌레인 대왕(Tamburlaine the Great)’, 헨델의 오페라 ‘타메를라노(Tamerlano)’ 등의 작품을 낳았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위대한 작품을 남긴 건 티무르 자신이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두개골 탑을 쌓았던 그가 사마르칸트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원들을 지어 이 도시를 ‘동방의 로마’로 역사에 길이 남겼다. 가장 잔인한 파괴자만이 가장 위대한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이 아이러니. 그중 하나가 바로 비비하눔 사원이다. 인도 원정을 다녀온 뒤인 1399년부터 짓기 시작한 이 대건축에는 여러 나라에서 끌고 온 건축가, 예술가, 공예가 등이 참여했다. 인도 원정에서 데려온 코끼리들도 한몫 거들어 기중기가 담당했을 무거운 돌들을 날랐다. 이 사원 건축에 꽤 공을 들였던 티무르는 터키와 이집트 원정을 마치고 돌아왔는데도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데 격노해 책임자들을 처형한 뒤, 직접 공사를 지휘했다. 그 일은 엔리케 3세의 사신인 루이 곤살레스 데 클리비호의 기록에 남아 있다. 1403년 그의 사행록을 보면, 티무르는 서 있기조차 힘든 노쇠한 몸을 이끌고 공사를 감독하면서 ‘마치 구덩이에 있는 개들에게 뼈다귀를 던져주듯’ 일꾼들에게 동전과 고기를 던졌다고 한다. (출처 = jungang sunday)
타지크, ‘수자원 갈등’ 속 댐 증축 강행
타지키스탄이 지역 내 ‘수자원 갈등’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댐의 증축을 시작했다.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크 대통령은 최근 “3천320만 달러를 들여 자국 내 바크쉬 강에 있는 대규모 수력발전소인 누렉 댐의 증축공사를 시작한다”고 말했다고 현지언론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중앙아시아에서는 풍부한 수자원 외에 딱히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산악국가인 타지크와 키르기스스탄이 대규모 댐 건설과 증축을 통해 전력생산 확대는 물론 하류지역인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물장사에 나서며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갈등을 풀고자 6월 카자흐와 우즈벡은 “수력발전소 건설을 유엔의 중재하에 재검토하자”며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타지키스탄이 공사를 강행함에 따라 지역 내 수자원 갈등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카자흐와 우즈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1960년대 건설된 누렉 댐은 현재 타지크 발전량의 80%를 맡고 있으며 우즈벡, 카자흐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