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거절받은 돌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들어 높은 곳에 앉히시는 분이십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받은 머릿돌은 그 누구보다도 귀한 아들이십니다. 우리도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쓰임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쓰임받는 데서 그친다면 발람과 그 나귀처럼 또는 사울의 죽음을 알린 소년처럼 기능이 다하면 버림받습니다. 주님도 기적과 치유와 축귀를 행한 자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기능에서 끝나면 가치를 상실합니다. 문제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무가치하게 버림받습니다. 에덴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탐욕과 사망의 길로 치닫는 인류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공생애 사역을 위해 부름받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올라오실 때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대리자나 메시야의 명칭대신 사랑받는 아들의 관계를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산돌로 부름받아 성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능적 연결을 넘어서서 관계의 연결을 설명합니다. 자녀라 부르시고 우리를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여정은 정확하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버림받은 돌에서 모퉁이 돌로 그리고 보배로운 산돌로 변화되어 갑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자에서 택한자로 아버지의 소중한 자녀로 변화되어 갑니다. 씨가 싹을 내고 자라서 열매를 맺듯 우리는 말씀의 씨앗을 품고 자라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인생입니다. 자라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바로 사모함입니다. 아이가 어머니를 열망하듯 말씀을 사모하고 흡수하면 자라나고 구원에 이르기까지 성장합니다. 구원은 단회적 획득의 개념보다 이루어나가는 전생애를 통한 성화의 과정입니다. 성숙하고 분별있게 자라서 구원의 영광스런 형상으로 빚어져 가는 것이 우리의 생명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산돌이시니 우리도 산돌입니다. 예수님께서 대 제사장이시니 우리도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제사로 드리셨으니 우리도 영적인 희생제사를 삶으로 드립니다. 감사와 찬양과 화목의 제사를 어린 양의 공로를 힘입어 아버지께 밤낮으로 쉬지않고 올려드려야 합니다. 호흡하듯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드리며 주를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생명과 거룩입니다. 우리를 어두움가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인도하신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댓가없는 희생안에서 우리는 감사와 감격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한 제사로 항상 올려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