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의 추억
정영란
신학기가 시작되는 날은 파스텔 색이다.
담임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짝꿍은, 나는 몇 번일까? 키가 작아 앞으로 하면 1번 아니면 2번이고, 뒤로하면 62번이나 63번이다. 시골의 초등학교는 초임의 젊은 선생님이 많으셨다.
5학년 신학기, 운동장에서 조회를 했다. 5학년은 2반으로 각반에 63명이다. 교장선생님이 소개한 5학년 1반 선생님은 긴 머리에 치마를 입은 송명숙 선생님이다. 앞에 서 계시는 선생님 중에 제일 예쁜 분이 나의 담임이 되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번호를 정할 때 조금이라도 커 보이도록 뒤꿈치를 세워서 중간쯤 줄에 있어도 앞으로 끌려와 도토리 키재기의 짝궁은 5년 지기다. 친구와 나는 맨 앞줄 책상에 고정으로 앉았다. 1학년 때부터 반 친구들은 그대로 올라오고 선생님만 바뀌었다.
키가 여자 중에는 내가 제일 작고 남자 중에는 H다.
여자 친구와는 싸운 기억이 없는데 남자 친구와는 많이 싸웠다. 여자와 남자가 편이 갈려서 싸우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기억은 없지만 그날도 학교 우물가에서 친구들이 H와 내게 싸움을 붙였다. 꼬맹이 둘에게 싸움을 붙여놓고 친구들은 주위에 몰려서 남 녀 응원을 했다. H가 발로 나를 차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발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는 그대로 넘어지면서 코에 피가 나자 울었다. 나는 당당하게 남자 친구를 이겼지만, 선생님에게 불려 가서 꾸중을 들었다. 단체로 책상 위에 꿇어앉아 벌을 받은 뒤부터는 남자아이와 싸운 기억이 없다.
5학년 겨울 방학을 하는 날, 선생님은 종례를 마치고 나에게 집에 가지 말고 교실에 남으라고 하셨다. 교실에는 남자 친구c도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는 보라색 줄무늬 스웨터를 입혀주시고 남자 친구에게는 밤색 줄무늬 스웨터를 입혀 놓고 예쁘다면서 활짝 웃었다. 엄마 품처럼 포근한 줄무늬 스웨터를 입으니, 선생님이 엄마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얼굴도 예쁜 선생님이 옷도 사주시고, 평소에도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셔서 방학동안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에 집으로 오는 내내 눈물이 났다. 2남 6녀 중 막내딸이라 언니들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었고 엄마가 주는대로 입었다. 내 옷이라고 특별히 사준 기억은 없다.
책보자기에 옷을 말아 허리춤에 묶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날아 갈까 봐, 가로수 나무를 끌어안고 있었다. 가방을 메고 다닌 친구도 없었고 예쁜 옷을 입고 다닌 친구도 없었다. 여자아이는 단발머리에 책보자기를 허리에 매고 다녔고, 남자아이들은 빡빡이 머리에 책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못 먹어 얼굴에는 버짐이 허옇게 일어나고, 머리에는 잘 씻지 않아 소위 소똥이 붙어 있었다.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는데 보리쌀도 없어서 밀로 만든 밥을 도시락으로 사 온 친구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우리 집은 먹을 것이 있어서 부러운 친구가 없었다. 내 생각에는 우리 집이나 이웃이나 사는 게 비슷비슷했다. 다만 우리 집은 아버지가 무서웠다.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은 산수유다. 꽃을 꺾어서 일찍 학교에 가서 선생님 책상 위에 꽃을 올려놓았다. 산수유를 시작해 목련, 황매화 벚꽃 연꽃 우리 집에서 피는 꽃은 선생님 책상 위에서 더욱 예쁘게 피었다. 아버지가 꽃을 좋아하셔서 아버지 몰래 꺾어다가 논둑에 숨겨 놓았다가 학교에 가져갔다. 특히 연꽃은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꽃이라 들키면 혼이나 아버지가 저녁을 드실 때 몰래 꺾어 벼논에 담가 두었다가 이튿날 아침 진땀을 빼며 학교에 가져갔다. 선생님 책상 위에 꽃을 꽂아 놓는 일은 중학교까지 이어졌다.
나는 보라색을 참 좋아한다. 아마도 송명숙 선생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고향이 김해라는 것과, 1년만 계셨던 그것밖에는 기억이 없어 안타깝다. 제자를 사랑하셨던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있다.건강하게 잘 계시라 믿어본다. 요즘은 교권이 무너져 선생님의 자리가 조심스럽다. 좋은 선생님도 많이 계시는데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의 사회는 무채색이었을지라도 내 가슴속에는 아직도 파스텔 색조로 가슴에 기억이 살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