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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만나는 자연 예술품, 무지개 산
정 성 천
지구가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가 몸살을 하니 지구를 어머니 품처럼 여기고 사는 인간에게는 수많은 재앙이 닥친다. 예상치 못한 장기간의 가뭄 및 대형산불, 폭우와 장마 그리고 그것에 따른 대홍수, 초특급 태풍과 허리케인 그리고 토네이도 등 매스컴으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울하고 불쾌한 장면들뿐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현상 중에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유쾌한 현상도 발생할 수 있는가 보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자연 예술품이 안데스산맥 깊숙한 지점에 나타났다. 그동안 해발 5,200m 이상의 만년설로 덮여 그 실체를 모르고 있다가 지구온난화로 만년설이 녹아내려 2015년에 아름다운 무지개색으로 채색된 ‘비니꾼까(Vinicunca: 무지개산)’가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항시 양면성이 펼쳐지는‘파르마콘(pharmakon)’의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걸까?
국제적인 관광지인 ‘마추픽추’의 거점도시인 ‘쿠스코’의 여행 점포 관광 홍보사진 중 가장 화려하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관광지가 바로‘비니꾼까’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먹거리 장을 보기 위해 우리가 들려야 하는 ‘쿠스코’ 시내 여행사 광고 사진에서만 ‘비니꾼까’를 보다가 실제 가보기로 아내와 결심하였다. 하지만 그곳은 결심만 한다고 쉽게 오를 수 없는 해발 5,000m 이상의 고도가 발목을 잡는다. 우리가 아무런 지장 없이 사는 이곳 ‘이즈쿠차카’가 해발 3,400m이지만 1,600m 정도를 더 올라갔을 때 우리의 신체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던 ‘비니꾼까’의 매력이 너무 강렬하여 ‘쏘로치필(sorojchi pill:고산병 약)도 구매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예약한 ‘비니꾼까’행 관광 승합차는 새벽 05:00에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차로 1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쿠스코’의 위성 마을인 ‘이즈크차카’에서 살고 있다. 그 승합차를 타기 위해 3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4시 전에 ‘쿠스코’로 가는 차를 타야만 한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정기 노선 버스는 없다. 하지만 페루의 교통 환경은 불법 영업에 그렇게 엄격하지 않아 개인 자가용들이 영업허가도 없이 승객을 태울 수가 있다. ‘쿠스코’로 가는 승용차는 너나 할 것이 없이 누구나 빈자리만 있으면 승객을 태워주고 택시 요금으로 준하는 운임을 받을 수 있는 교통문화이다.
해발 3,400m의 고산 새벽 냉기는 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한다. 잔뜩 움츠린 자세로 ‘쿠스코’로 가는 간선도로로 나간다. 오늘따라 지나치는 승용차마다 만원이라 자리가 없는지 세우는 차가 없다. 간혹 세우는 차도 빈자리가 하나밖에 없어 그냥 보내야 했다. 한 참 만에 겨우 두 자리가 빈 승용차를 만나 아내와 나는‘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 05시 정각에‘쿠스코’를 출발한 18인승 승합차는 시가지를 벗어나더니 남동쪽으로 내달린다. 일 년 전 ‘모케과’에서 살 때 ‘마추픽추’를 보러 ‘쿠스코’로 여행 와서 들렀던 적이 있었던 ‘안다와이리야스(Andahuaylillas)’를 지난다. 아르마스 광장의 나무들과 교회 내부 천정의 바로크 문양이 매우 아름답고 유서 깊었던 게 생각난다. 다시 얼마간 가니 시내 중앙에 자리 잡은 천연 호수가 특이한‘우르코스(Urcos)’읍을 지나 ‘우루밤바’강의 원류인 ‘빌카노따’하천을 건넌다.
어느덧 날이 밝아 깊은 계곡 밑바닥까지 환한 밝음으로 주위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3,000m가 넘는 고산 계곡답게 키 큰 나무는 잘 보이지 않고 민둥한 능선이 계곡 아래까지 이어진다. 호주에서 수입 종인 유칼립투스 나무들만 군데군데 개울 옆에 쭉쭉 높게 솟아 있다. ‘우르코스’를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쿠스코에서 페루 남부 밀림의 거점도시 ‘뿌에르또 말도나도(Puerto Maldonado)’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난다. ‘뿌에르또 말도나도’는 페루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우루밤바’강과는 또 다른 아마존강의 지류인 ‘마드레스 데 디오스(Madres de Dios:신의 어머니)’강변 밀림에 세워진 페루 신흥 대도시이다. ‘마드레스 데 디오스’강은 페루 남부 안데스산맥에서 발원하여 볼리비아 북부 밀림을 지나 브라질의 서쪽 대밀림을 비스듬히 동북쪽으로 관통하여 아마존강 중하류에 위치된 브라질 대도시인‘마나우스(Manaus)’ 근교에서 원류와 합류하는 가장 큰 아마존강의 지류 중 하나이다.
‘뿌에르또 말도나도’로 가는 길과는 헤어져‘우루밤바’강의 원류인 ‘빌카노따’하천이 만드는 계곡을 따라 차는 계속 남쪽으로 진행한다. 이 길은 ‘티티카카’호수 변의 국경도시 ‘뿌노(Puno)’그리고 볼리비아로 이어지는 길이다. 조금 가니 ‘비니꾼까’의 거점 마을인 ‘꾸시 빠따(Cusi Pata)’에 도달한다. ‘비니꾼까’에 등정하는 코스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서쪽 편에서 올라가는 ‘꾸시 빠따’코스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 더 남쪽으로 ‘체까꾸페(Checacupe)’까지 계속 가서 그곳에서 주 간선도로와 헤어져 동쪽으로 조금 들어간 ‘삐뚜마르까(Pitumarca)’거점 마을에서 차량으로 주차장까지 이동해서 ‘비니꾼까’의 동쪽 편으로 등정하는 방법이다. 오늘 여행은 서쪽 코스를 택한 듯 ‘꾸시 빠따’에서 승합차는 멈추어 선다.
간선 국도에서 동쪽으로 들어간 자그마한 마을의 도로변 ‘로카조(Locazo)’라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량은 개울의 오른쪽으로 난 비포장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간다. 간혹 개울 옆에 드문드문 집이 한 채씩 보이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산비탈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에서 개울을 건너 개울 왼편 급경사의 산 중턱으로 난 아슬아슬한 길을 따라간다. 오른쪽 차창 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너무 아찔해서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된다. 계곡 왼쪽 산 중턱의 길이 끝나자 다시 개울을 건너 이제는 계곡의 오른쪽 비탈을 가로지르는 길을 한참을 가더니 마지막엔 지그재그로 급격히 고도 높이 올라간다. 잠시 뒤 주차장에 차가 도착했는지 가이드가 모두 내리라고 안내한다. 주차장에 내려 보니 싸늘한 공기와 함께 바로 코앞에 검은 바위산이 골짜기마다 하얀 만년설을 품은 채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아래 검은 바위 절벽 계곡을 따라 만년설에서 녹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마치 하얀 은사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이 이곳이 해발 5,000m에 가까운 아주 높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듯하다.
주차장 옆 커다란 비탈에는 많은 말들이 메여 있다. 가이드가 안내하기를 여기서 약 3km 더 비스듬히 동쪽으로 걸어 올라가야만 ‘비니꾼까’를 볼 수 있으니 힘든 사람은 50솔씩 지불하고 현지인의 말을 이용하라고 권장한다. 그리고 주황색 칠을 한 지팡이를 하나씩 나누어 주며 등산할 때 스틱 대신으로 사용하고 주황색 색깔은 많은 관광객 중에 우리 팀을 알아보는 표시라고 일러준다. 살펴보니 여행사마다 다른 색깔의 막대기를 나누어 주고 있다.
알록달록 페루 전통 복장을 한 마부들이 말 한 마리씩 고삐를 잡고 길목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5,000m가 가까운 고산이고 또 나이를 고려하여 나와 아내는 말을 이용하기로 하고 말을 탔다. 염려와는 달리 아내는 생각보다 말을 잘 타고 빠르게 앞서가는데 나의 말은 자꾸 뒤처지는 것을 보니 늙은 말인 듯하다. 오늘 말을 잘못 선택한 느낌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걸어가다 말고 길옆에 주저앉아 쉬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늙은 말이지만 말을 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말에게 미안한 생각까지 들어 목덜미를 가볍게 토닥여 준다. 아무래도 5,000m 가까운 고도가 사람이나 동물을 쉽사리 지치게 하는 모양이다.
한참을 비스듬히 올라가니 오른쪽 멀리 붉은 산이 보이고 많은 사람이 올라가서 움직이는 산등성이가 앞에 우뚝 솟아 있다. 마지막 급경사는 말을 탈 수 없으니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단다. 먼저 온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둘이서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계단처럼 파 놓은 흙길을 한 계단씩 오른다. 마지막 능선에 오르니 오른쪽인 남쪽은 무지개 산등성이고 왼쪽인 북쪽은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관망의 산등성이다. 반대쪽은 ‘삐뚜마르까’에서 올라오는 동쪽 코스인 것 같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무지개 산 쪽인 오른쪽으로는 올라가지 못하게 돌담을 쌓아 막아 놓았다. 왼쪽 산등성이로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맞은편 무지개 산 조망이 더 좋을 것 같다. 이미 많은 사람이 왼쪽 관망의 산등성이에 올라가 무지개 산을 감상하느라 분주하다. 천천히 무지개 산을 등지고 우리도 관망의 능선에 오른다. 어느 정도 높이 올라왔다고 생각될 때 뒤로 돌아서서 무지개 산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놀랍다. 어떻게 선명한 여러 가지 색깔로 땅의 색이 구분되고 그것이 산등성이에 줄무늬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의 조화가 놀랍기만 하다. 하늘에서만 보던 무지개 문양을 산등성이에서 보다니 신기하고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듯 착각이 들 정도다.
‘쿠스코’ 관광청의 설명에 의하면 무지개 산의 색깔들은 흙에 함유된 광물질들의 조합이 달라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 흰색은 석영 질 사암과 탄산칼슘이 함유된 이회토, 핑크 빛깔은 붉은 점토에 모래가 섞인 것이고, 붉은색은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된 철분이 다량 함유된 점토암, 갈색은 신생대 제4기에 형성된 마그네슘이 함유된 선상지 역암, 겨자색은 유황 광물질이 함유된 석회질 사암, 녹색은 녹니석, 석영, 운모가 함유된 천매암, 그리고 검은색은 망간이 함유되어 나타나는 것이라는 상세한 설명이 책자에 적혀 있다. 이런 다양한 광물질이 한곳에 밀집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매우 희귀한 현상이라고 한다.
관망의 능선에서 무지개 산을 찬찬히 살펴보니 동쪽 비탈에는 군데군데 푸른 생명의 기운이 보인다. 지구온난화가 아니었으면 만년설로 덮여 있을 곳인데 2015년에 눈이 녹아 무지개 문양이 드러났다고 하니 머지않아 이 무지개 산도 식물로 덮여 인간이 그 무늬를 볼 수 없는 평범한 산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 50년이 ‘비니꾼까’를 눈으로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의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나는 것은 장소 인연 못지않게 시절 인연도 딱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페루와 맺은 인연이 새삼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무지개 산 능선을 따라 계속 남쪽으로 올라가면 무지개 산의 주 정상인 ‘아뚠 리띠욕(Hatun Ritiyuq)’산이 나오고 그 너머 계곡은 온통 붉은 래드 밸리(Red Vally)가 나온다고 한다. 아직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관망대까지는 여기서 걸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데 고도와 거리를 생각하면 우리가 그곳까지 답파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서쪽 우리가 올라왔던 길 중간에서 붉은 계곡으로 가는 길이 마치 실처럼 가느다랗게 이어진다. 반대편 북쪽을 보니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페루에서 3번째로 높은 ‘아우상가떼(Ausangate: 6,372m) 산’의 하얀 설산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아우상가떼’산은 멀리 쿠스코에서도 볼 수 있는 산이다. 잉카 시대에는 가장 중요한 ‘아푸(Apu)’산신으로 섬기고 잉카 왕이 직접 집전하는 제사를 국가의 중요 행사로 지냈던 산 중의 하나이다.
‘비니꾼까’를 다시 한번 눈에 새기고 서서히 내려간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 내려가는 길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올라 올 때 말을 타고 오느라 보지 못했던 산비탈의 식생들을 천천히 걸어가며 살펴본다. 5,000m의 고산이라 그런지 식물들의 생육이 풍성치 못하고 겨우 생명만 유지하는 양상이지만 생명력의 끈질김 하나만은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모습들이다.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도 꽃이 핀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푸석한 땅바닥 위에나 융단과 같은 이끼류 위에 노란, 하얀, 보라색 꽃 그리고 별사탕처럼 작은 꽃 등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마치 누가 꽃만 따서 버린 듯이 잎이나 줄기도 없이 꽃만 땅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피어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한곳에는 커다란 양털 방석처럼 섬모들이 엉켜 있는 곳에 제법 큰 노란 꽃들이 피어 있다. 꽃의 형태로 보아 선인장의 일종인 것 같은 데 양털보다 더 긴 섬모들만 보이고 줄기나 가지는 보이지 않는 희귀한 모습이다.
내려오다가 말발굽으로 땅의 표피가 허물어져 벗겨진 곳에서 움직이는 아주 작은 동물을 발견했다. 다가가 보니 우리나라 들쥐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몸통의 길이가 더 짤막한 동물이다. 해발 5,000m에서 서식하는 야생 동물을 만나다니 운이 좋은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도 무서운 기색도 없이 자기 일에 열중이다. 벗겨져 드러난 식물들의 뿌리를 갉아 먹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언제 다시 해발 5,000m에 올라와서 이런 생명체들을 만날 기회가 또 올까? 아주 소중한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어느새 우리를 기다리는 관광 승합차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고산병으로 등반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육체적인 괴로움으로 고생하는 몇 명의 젊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보기에도 무척 안타깝다. 새삼 아무 탈 없이 동반한 아내가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해발 5,000m 이상에서도 아무 탈 없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체질을 주신 우리의 부모님과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 준 인연에 소중한 감사를 보낼 뿐이다.
첫댓글 경험을 사고 싶소. 그럴 수 있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