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이리도 속절없이 흐르는가.
지리산학교 구례/곡성 한국화반의 자보선생이 떠난 지 벌써 47일째가 되었다.
구례에서 혹은 지리산 기슭에서 그와 인연을 맺은 분들이 어제 함께 모였다.
비록 기나긴 세월은 아니었지만, 필경 그와 함께 했던 강렬한 날들을 쉬 잊지 못하는 이들이었으리라.
유족들께서 49재를 지내지는 않으신다고 하였다.
요즘은 거개가 3일 발인에 5일 삼우제로 탈상하고 마는 것이지만,
그렇게 그를 떠나 보내기엔 우리들 가슴 한켠에 아쉬움이 많았던가 보다.
한 분 두 분... 지리산 왕시루봉 아래 섬진강가에 있는 봉소정에 모였다.
구례군지에 따르면, 오봉산에서 놀던 봉황이 해가 지면 섬진강을 건너 봉소(봉황둥지)에서 쉬었다 한다. 거기 다소곳이 자리잡은 정자다.
이 옆엔 봉소마을이 있고, 난 그 마을 분들과 자주 뵈었고 가끔 정을 나누었다.
그 연으로 작년 겨울 두번째 '마실가세' 행사도 이 마을에서 치렀던 기억이 있다.
<위로부터...>
담양에서 농사짓는 정문철님과 정령치 밑 고기리에 손수 집짓고 있는 이윤성님.
남원 송동에 살면서 악양에서 '평사리 8번지'라는 카페를 운영중인 일파만파 보컬 김영란님.
황선재선배님의 부탁으로 서울 유작전의 기획을 맡고계신 김영규 감독님.
구례 간전면 중대리에서 섬진강아라리학교를 운영중이신 김소현 명창(판소리반 박정선명창의 옆지기)님.
고등학교 시절 태권도대회에서 이름이 같은 인연으로 사귄 구례 태권도협회 육정렬 전 지회장님.
중앙대 미대 교수를 역임하신 배명수선생님.
구례에서 농사 지으며 농민회 화엄사매장도 돌보시는 강수정님.
영화사 북극곰의 대표이신 임정하님.
우리는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었다.
탈상 후 제사라 간단히 준비하자 했지만, 제사음식이라도 정성껏 준비하고 싶었다 하였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듯 하다 하였다. 음식준비를 맡았던 김영란님은...
모두 정갈한 마음으로 몸을 세웠다.
우선 영가를 모셔야 했으므로 유족대표로 여주에서 내려오신 부인 최유경님이 초헌을 올리었다.
그녀는 아직도 조금씩 흐느꼈다. 추모제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울었다.
사회를 맡았던 나는 그동안의 경과와 오늘 행사의 취지를 설명드렸다.
자보선생의 발인 후 그의 뜻을 기리는 행사를 도모하자고 의견을 나누었던 일.
그의 유작전을 10월 1일~7일까지 서울에 있는 자인제노화랑에서 열기로 한 일.
그리고... 오늘 추모제를 갖는 취지.
우린 함께 놀기로 하였다. 아직 천상으로 오르지 못한 그의 혼백과 함께.
김소현 명창이 북채를 잡았다. 그는 밝은 음성으로 목을 열었다.
봄은 찾어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구나.
나도 어제는 청춘이더니 오날 백발 한심쿠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사철가였다.
봄에 떠난 그를 기리며, 여름 가운데 앉아 우리는 김명창의 밝은 소리를 들었다.
여기 봉소정에 찾아온 자보선생도 흥겨웠으리라.
송태웅시인이 추모시를 낭독하였다.
김영란님이 추모곡을 불렀다.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 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 민들레처럼...
모두 함께 그 시를 듣고, 모두 함께 그 노래를 들었다.
마음은 한없이 추념에 잠겨갔다.
송태웅시인이 제문을 읽었다.
이제는 모셨던 혼백을 다시 보내드리기로 한다.
송시인의 싯구처럼, 눈부터 웃던 그.
체온이 높아 한겨울에도 홑이불 한 장으로 견뎌내던 그.
하기로 한 일은 당장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린다던 그.
약간은 과장된 몸짓으로 지리산을 바라보며, 난 이 풍광이 정말 좋아라고 외치던 그.
이제 핸드폰 액정에 그의 이름이 뜨는 전화를 우린 받지 못하리라.
동아집에서 가야식당에서 그와 마주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이지도 못하리라.
이런 젠장, 이젠 그의 솔직담백한 붓놀림도 다시는 다시는 목도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우린 믿기로 한다.
그가 좋은 곳에서 편히 쉴 것을.
부디 영면하기를.
섬진은 말없이 흐른다.
다시 한 번 자보선생의 명복을 빈다.
* 함께 해 주신 분들(이하 無順)
최유경님, 배명수 선생님, 김흔수 선생, 이종주 선생, 황선재 선생, 김영규 감독님, 김소현 명창, 육정렬 회장님, 송태웅 시인, 지우님, 윤주옥 처장님, 강민경 간사님, 김민정 간사님, 정문철님, 김영란님, 이윤성님, 임정하 대표님, 강수정님.
* 정리 - 정태연 / 사진 - 강민경, 김민정 간사(국시모 지리산사람들)
첫댓글 대숲선생님
고인 자보 선생님을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셨네요 .......
저는 어제도 장거리 출타중이라 고인의 추모제도 참석을 못하였습니다
그저 고인께 죄송스런 마음 일뿐입니다
오랜세월을 알고 지낸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따뜻한 성품을
조금은 알수 있었기에 이아침에도 마음이 아려오는듯합니다 ......
추모제에 참석 하신분들 정성에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10월에 있을 유작 전시회 때에는
꼭, 참석하려는 마음의 다짐을 한번더 해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물꽃각시님이시군요. 잘 지내시지요?
추모제는..그저 살아남은 이들의 도리를 조금이나마 하고 싶었습니다만...
유작전 때나, 혹은 그 전에라도 연락 함 주십시오. ^ ^*
가서 함께 했어야 했는데 사정으로 인해 함께 하지를 못했습니다.
고인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네요.
준비하시고 진행해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사의를 전하며, 자보 선생님께서 좋은 곳에서 영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위로가 함께 하시길 또한 기도합니다.
노아 성님껜 제가 외려 죄송하네요. 연락도 못 드리고..
오늘도 구례병원쪽 '소문'을 지나치는데, 자보형을 첨 만났던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사람의 빈 자취가 이리도 여운이 많았던 것인가 생각해보는 요즘입니다... -_- ;;;;
우체국에 갈때면 늘 만날 수 있었지요.
자식처럼 결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주던 마음씀.. 감사하고 그립니다.
그래요... 결이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셨었지요. 허허~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