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사(採紅使)/채홍준사(採紅駿使), 채청사(採靑使)/채청사(採靑女使)
서울에 있는 미녀와 기녀로는 만족하지 않은 연산군은 전국에서 미녀와 준마를
모으기 위해 지방에 관리를 파견한다.
이를 위해 파견한 관리를 채홍준사(採紅駿使) 또는 채홍사(採紅使)라고 한다.
‘홍(紅)’은 여자, ‘준(駿)’은 말을 가리킨다.
기생과 아녀자뿐만 아니라 시집가지 않은 여자들인 청녀(靑女)를 선발하기 위해
채청녀사(採靑女使) 또는 채청사(採靑使)라는 관리를 파견해 양반가의
미혼처녀들까지 뽑아 궁으러 데려 갔다.
채홍준사(採紅駿使)
조선 전기 연산군이 미녀와 준마(駿馬)를 궁중에 모아들이기 위해 지방에
파견하였던 벼슬아치.
‘홍(紅)’은 여자, ‘준(駿)’은 말을 가리키며, 채홍사(採紅使)라고도 하였다. 황음(荒淫)에
빠져 있던 연산군은 서울의 기녀 ·미녀로써는 성이 차지 않아 1505년(연산군 11)
우찬성(右贊成) 이계동(李季仝)을 전라도에, 장악원 제조(掌樂院提調) 임숭재(任崇載)를
충청 ·경상도에 채홍준사로 파견하여 미녀와 준마를 구해 오도록 명하였다. 그 뒤
연산군은 특히 백마가 양기에 좋다고 말고기를 즐겨 좋은 백마를 구해 오게 하였고,
시집가지 않은 여자들을 청녀(靑女)라 해서 사족(士族)의 미혼처녀들을 뽑기 위해
채청녀사(採靑女使:採靑使) ·채홍준 체찰사(體察使) ·채홍준 종사관(從事官) ·채홍준
순찰사(巡察使) 등을 8도에 파견하였다.
전국에서 뽑혀온 기생은 처음 300명 이었다가 1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성종의
부마인 남치원(南致元)의 집을 함방원(含芳院)이라고 이름지어 기생들이 머물게
하였으며 제안대군의 집은 뇌양원(雷陽院), 견성군의 집을 진향원(進香院)으로 이름을
지어 이곳에도 머물게 하였다. 또한 연산군을 사냥을 즐기기 위해 봉순사(奉順司)라는
관청을 설치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말을 기르는 운구(雲廐)를 두어 수천필의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연산군은 여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공신들의 공신전(功臣田)과
노비를 몰수하여 충당하려고 하였다. 위협을 느낀 훈구파들의 반감이 커져갔고
연산군을 폐위시키는 중종반정의 원인이 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채홍준사 [採紅駿使]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45965&cid=40942&categoryId=31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