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이 광개토대왕릉 까지 둘러보고 들른 다음 유적은 광개토대왕비를 세운 장본인이자
고구려의 영토를 한반도의 중원까지 넓힌 남진정책의 추진자인 장수왕릉과 그의 애첩의 무덤
이었습니다.
다 아시는진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은 장수왕릉을 [장군총]이라 부릅니다.
- 중국인들은 장수왕릉을 장군총 이라 부른다 - (사진속 시간은 당시 실제시간과 다름)
장수왕릉이 처음 발견됐을 때 그안에 들어 있는 여러 유물들과 무덤형태등을 보고는
이정도면 높은장군의 무덤일 것이다.. 라고 추측해 [장군총]이라 이름 지었다는 군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발굴된 유물들에 대한 조사가 행해 장수왕릉임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장수왕릉 - (사진속 시간은 당시 실제시간과 다름)
크기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더 작지만 22km 가 넘게 떨어진 산에서 돌을 날라와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전혀 뒤지지 않는 정교함과 정성으로 만들어낸 장수왕릉은 가히 동방의 피라미드로
불립니다.
한가지 안타까운건 장수왕릉 역시 광개토대왕릉과 마찬가지로 처음 발견돼었을 때 이미 도굴의
흔적이 있었고 이에 현재 발굴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은 무덤의 크기에 비해 그리 많은
양이 아니며 무덤내 벽화 역시 세월이 지나면서 지워져 왔다는 것입니다.
이 중국놈들이 고구려 유적들을 일부러 그렇게 관리한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 마져 들더군요.
- 돌들이 잘 다듬어져 세워진 당시 고구려의 축성기술을 알 수 있는 사진 -
(사진속 시간은 당시 실제시간과 다름)
왕릉 속엔 왕과 왕비의 석관이 나란히 놓여져 있었고 얼마 떨어진 곳에 애첩의 무덤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 애첩의 무덤이라는 능 역시 발견되기 전 이미 많은 도굴이 행해져 발굴조사단이 건진
유물은 자기 조각 등 그리 많은 양이 아니라더군요.
- 장수왕 애첩의 무덤이라는 릉 - (사진속 시간은 당시 실제시간과 다름)
그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우리 고구려 유적들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의 필요성과 안타까움을
속으로 곰씹으면서 잘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럼 20000...
FORZA C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