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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十七回 玉泉山关公显圣 洛阳城曹操感神
제77회: 옥천산에 관우의 혼이 나타나고 낙양성에서 조조가 귀신에 홀리다
却说孙权求计于吕蒙。蒙曰:“吾料关某兵少,必不从大路而逃,麦城正北有险峻小路,必从此路而去。可令朱然引精兵五千,伏于麦城之北二十里;彼军至,不可与敌,只可随后掩杀。彼军定无战心,必奔临沮。却令潘璋引精兵五百,伏于临沮山僻小路,关某可擒矣。今遣将士各门攻打,只空北门,待其出走。”权闻计,令吕范再卜之。卦成,范告曰:“此卦主敌人投西北而走,今夜亥时必然就擒。”权大喜,遂令朱然、潘璋领两枝精兵,各依军令埋伏去讫。
각설, 손권이 여몽에게 계책을 구하자 여몽이 말하기를,“제가 헤아려보니, 관우의 병력이 적어서 틀림없이 큰 길을 따라서 달아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맥성 정북 쪽에 험준한 작은 길이 있는데 반드시 이 길을 따라 갈 것입니다. 주연을 시켜 정예병 5천을 이끌고 맥성 북쪽 2십 리에 매복하라고 하십시오. 저들 군사가 오면 맞붙어 싸우지 말고 다만 뒤쫓아 습격해야 합니다. 저들 군사는 정녕코 싸울 뜻이 없어 틀림없이 임저로 달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반장을 시켜 정예병 5백을 이끌고 임저의 외진 산속 좁은 길에 매복하면 관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 장사들을 보내서 성문마다 공격하되 오로지 북문을 비워두고 그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했다. 손권이 계책을 듣고 여범에게 다시 점치도록 했다. 점괘가 나오자 여범이 고하기를,“이 점괘에 따르면 적군이 서북쪽으로 달아날 것이라 합니다. 오늘밤 해시(밤10시쯤)에 반드시 사로잡히겠습니다.”했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곧 주연과 반장에게 명하여 두 무리 정예병을 이끌고 제각기 군령대로 가서 매복하게 했다.
且说关公在麦城,计点马步军兵,止剩三百余人;粮草又尽。是夜,城外吴兵招唤各军姓名,越城而去者甚多。救兵又不见到。心中无计,谓王甫曰:“吾悔昔日不用公言!今日危急,将复何如?”甫哭告曰:“今日之事,虽子牙复生,亦无计可施也。”赵累曰:“上庸救兵不至,乃刘封、孟达按兵不动之故。何不弃此孤城,奔入西川,再整兵来,以图恢复?”公曰:“吾亦欲如此。”遂上城观之。见北门外敌军不多,因问本城居民:“此去往北,地势若何?”答曰:“此去皆是山僻小路,可通西川。”公曰:“今夜可走此路。”王甫谏曰:“小路有埋伏,可走大路。”公曰:“虽有埋伏,吾何惧哉!”即下令马步官军:严整装束,准备出城。
한편, 관우가 맥성에서 기병과 보병을 점검하니 겨우 3백여 명이 남아 있었다. 식량과 사료도 떨어졌다. 이날 밤, 성 밖의 오나라 군사들이 각각의 군사 성명을 부르니, 성을 넘어 달아나는 자들이 아주 많았다. 구원병도 올 기미가 없었다. 관우의 심중에 아무 계책이 없어 왕보에게 말하기를,“내가 지난날 공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게 후회스럽구려! 오늘 위급하니 장차 어찌해야겠소?”하니, 왕보가 소리내 울며 말하기를,“오늘의 일은 비록 자아(강태공)가 다시 태어난들 역시 아무 계책을 쓸 수가 없습니다.”했다. 조루가 말하기를,“상용의 구원병이 오지 않음은 유봉과 맹달이 관망하며 병력을 움직이지 않아서입니다. 어찌 이 고립된 성을 버리고 서천으로 달아나 병력을 재정비해 회복을 도모하지 않습니까?”하니, 관우가 말하기를,“나 또한 그리하고자 하오.”했다. 곧 성에 올라가 관찰하니 북문 밖 적군이 많지 않아서 이곳 성의 거주민에게 묻기를,“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지세가 어떻소?”하니, (주민이) 답하기를,“이곳으로 가면 모두 외진 산속 좁은 길인데 서천으로 통합니다.”했다. 관우가 말하기를,“오늘밤 이 길로 가야겠소.”하니, 왕보가 간하기를,“좁은 길은 매복이 있을 테니 큰 길로 가야 합니다.”했다. 관우가 말하기를,“비록 매복이 있더라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하고, 즉시 기병과 보병 관군들에게 군장을 갖추어 성을 나갈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甫哭曰:“君侯于路,小心保重!某与部卒百余人,死据此城;城虽破,身不降也!专望君侯速来救援!”公亦与泣别。遂留周仓与王甫同守麦城,关公自与关平、赵累引残卒二百余人,突出北门。关公横刀前进,行至初更以后,约走二十余里,只见山凹处,金鼓齐鸣,喊声大震,一彪军到,为首大将朱然,骤马挺枪叫曰:“云长休走!趁早投降,免得一死!”公大怒,拍马轮刀来战。朱然便走,公乘势追杀。一棒鼓响,四下伏兵皆起。公不敢战,望临沮小路而走,朱然率兵掩杀。
왕보가 울며 말하기를,“군후께서 길을 나서면 조심해서 보중하십시오! 저는 군사 백여 명과 더불어 죽을 각오로 이곳 성을 지키겠습니다. 성이 비록 격파될지언정 저는 항복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군후께서 조속히 돌아오셔서 구원하기를 바라겠습니다!”했다. 관우도 흐느끼며 작별했다. 마침내 주창과 왕보를 남겨서 함께 맥성을 지키게 했다. 관우 스스로는 관평, 조루와 더불어 패잔병 2백 남짓을 이끌고 북문에서 튀어나갔다. 관우가 칼을 비껴들고 전진하여 초경(저녁 8시쯤)이 지나, 대략 2십여 리를 가니 산속에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함성이 크게 울리며 한 무리 군마가 나왔다. 선두의 대장 주연이 말을 몰아 창을 꼬나들고 외치기를,“운장은 달아나지 마라! 어서 항복하면 죽음은 면해주겠다!”했다. 관우가 크게 노해 말에 박차를 가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주연이 곧 달아나니 관공이 기세를 타고 추격했다. 한바탕 북소리 울리더니 사방에서 복병이 모두 일어났다. 관우가 감히 싸우지 못해 임저로 가는 좁은 길을 향해 달아났다. 주연이 병력을 이끌고 습격했다.
关公所随之兵,渐渐稀少。走不得四五里,前面喊声又震,火光大起,潘璋骤马舞刀杀来。公大怒,轮刀相迎,只三合,潘璋败走。公不敢恋战,急望山路而走。背后关平赶来,报说赵累已死于乱军中。关公不胜悲惶,遂令关平断后,公自在前开路,随行止剩得十余人。行至决石,两下是山,山边皆芦苇败草,树木丛杂。时已五更将尽。正走之间,一声喊起,两下伏兵尽出,长钩套索,一齐并举,先把关公坐下马绊倒。关公翻身落马,被潘璋部将马忠所获。关平知父被擒,火速来救;背后潘璋、朱然率兵齐至,把关平四下围住。平孤身独战,力尽亦被执。至天明,孙权闻关公父子已被擒获,大喜,聚众将于帐中。
관우를 따르는 군사가 점점 드물어졌다. 4, 5리를 달아나지 않아서 앞쪽에서 함성이 다시 진동하고 불빛이 크게 치솟았다. 반장이 말을 달려 칼을 춤추며 달려들었다. 관우가 크게 노하여 칼을 돌리며 맞이했다. 겨우 3합에 반장이 패주했다. 관공은 감히 싸움에 연연하지 못하고 급히 산길을 따라 달아났다. 뒤에서 관평이 뒤따라와서 조루는 이미 난전 중에 죽었다 보고했다. 관우가 슬프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며 관평을 시켜 배후를 차단하고 스스로 앞에서 길을 열지만 따라오는 사람은 겨우 열 사람 남짓이었다. 행렬이 결석에 이르니 양쪽이 모두 산인데 산 둘레가 온통 갈대와 마른풀이고 수목이 뒤섞여 있었다. 때는 이미 오경(새벽 4시경)이 다 지났다. 달아나고 있는 사이에 한바탕 함성이 일더니 양쪽에서 복병이 모조리 튀어나와 긴 갈고리와 올가미를 일제히 들어서 먼저 관우가 타고 있는 말을 얽어매어 넘어뜨렸다. 관우가 몸이 꼬꾸라져 낙마하자 반장의 부장 마충이 사로잡았다. 관평은 부친이 잡힌 것을 알고 부리나케 구하러 오지만, 배후에서 반장과 주연이 병력을 인솔해 일제히 몰려와서 관평을 사방에서 에워쌌다. 관평이 외로이 홀로 싸우다가 힘이 다해 역시 사로잡혔다. 해가 뜰 무렵에 이르러 손권은 관공 부자가 이미 사로잡힌 것을 전해 듣고 크게 기뻐하며 장수들을 막사 안으로 불러 모았다.
少时,马忠簇拥关公至前。权曰:“孤久慕将军盛德,欲结秦、晋之好,何相弃耶?公平昔自以为天下无敌,今日何由被吾所擒?将军今日还服孙权否?”关公厉声骂曰:“碧眼小儿,紫髯鼠辈!吾与刘皇叔桃园结义,誓扶汉室,岂与汝叛汉之贼为伍耶!我今误中奸计,有死而已,何必多言!”权回顾众官曰:“云长世之豪杰,孤深爱之。今欲以礼相待,劝使归降,何如?”主簿左咸曰:“不可。昔曹操得此人时,封侯赐爵,三日一小宴,五日一大宴,上马一提金,下马一提银:如此恩礼,毕竟留之不住,听其斩关杀将而去,致使今日反为所逼,几欲迁都以避其锋。今主公既已擒之,若不即除,恐贻后患。”
잠시 뒤,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관우를 끌고 마충이 앞으로 오니. 손권이 말하기를,“나는 오래도록 장군의 크고 훌륭한 덕을 연모하며 진진지호(제후 사이의 결혼 동맹)를 맺기를 바랐거늘 어찌 거절하셨소? 공께서 언제나 스스로 천하무적이라 여기셨으나 오늘 무슨 까닭에 내게 사로잡히셨소? 장군께서 오늘 이 손권에게 귀순하시지 않겠소?”하니, 관우가 성난 목소리로 욕해 말하기를,“푸른 눈 어린 놈아! 붉은 수염 쥐새끼 같으니! 나는 유황숙과 더불어 도원에서 결의형제하며 한나라 황실을 바로잡을 것을 맹서했거늘 어찌 너 같은 한나라 역적과 한 패가 되겠느냐! 내가 이제 간계에 빠져 죽음이 있을 뿐이니 어찌 여러 말이 있겠느냐!”했다. 손권이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운장은 세상의 호걸이니 내가 깊이 그를 아끼오. 이제 예를 갖춰 대하며 투항을 권하고자 하는데 어떻소?”하니, 주부 좌함이 말하기를,“안 됩니다. 지난날 조조가 이 사람을 얻었을 때 제후에 봉하고 작위를 내리며 사흘마다 작은 연회, 닷새마다 큰 연회를 베풀고, 말을 타거나 내릴 때마다 금과 은을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은혜와 예를 베풀었으나 결국 그를 붙잡아두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가 관문의 장수들을 죽이고 가버린 것을 들었을 뿐입니다. 마침내 오늘날 조조가 그에게 핍박 받더니 하마터면 도읍을 옮겨 그 예봉을 피하려고 할 뻔했습니다. 이제 주공께서 이미 그를 사로잡았으니 만약 즉시 제거하지 않으면 후환을 남을까 두렵습니다.”했다.
孙权沉吟半晌,曰:“斯言是也。”遂命推出。于是关公父子皆遇害。时建安二十四年冬十二月也。关公亡年五十八岁。后人有诗叹曰:“汉末才无敌,云长独出群:神威能奋武,儒雅更知文。天日心如镜,《春秋》义薄云。昭然垂万古,不止冠三分。”又有诗曰:“人杰惟追古解良,士民争拜汉云长。桃园一日兄和弟,俎豆千秋帝与王。气挟风雷无匹敌,志垂日月有光芒。至今庙貌盈天下,古木寒鸦几夕阳。”关公既殁,坐下赤兔马被马忠所获,献与孙权。权即赐马忠骑坐。其马数日不食草料而死。
손권이 한참을 깊이 생각하더니 말하기를,“그 말이 맞소.”하고, 마침내 끌어내라고 명했다. 이에 관우 부자가 모두 살해당했다. 때는 건안 24년 겨울 12월이었다. 관우가 죽을 때 나이가 58세였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한나라 말기 그 재주가 무적이더니, 관운장 홀로 무리 가운데 우뚝했네. 신 같은 위엄 능히 무력을 떨치고, 학자처럼 우아하고 학문도 알았네. 하늘의 해는 마음속 거울이고, <춘추>의 의리는 엷은 구름 같았네. 찬란히 만고에 드리우니, 삼분천하에서 으뜸일 뿐이겠는가!”했다. 또 시를 지어 이르기를,“인걸들은 오로지 옛 해량 땅을 추억하고, 선비와 백성들은 앞 다투어 한나라 운장을 숭배하네. 도원의 그 어느 날 형과 아우가, 천추에 제사 올리는 황제와 왕이 되었네. 기운은 거센 바람과 우레 같이 필적할 자 없고, 지조는 빛나는 해와 달처럼 길이 전하네. 지금껏 모시는 사당이 천하에 가득하고, 저녁마다 고목에 까마귀 깃든지 몇몇 해리오.”했다. 관우가 죽고 나서 그가 타던 적토마를 마충이 붙잡아 손권에게 바쳤다. 손권이 즉시 마충에게 하사해 타게 했다. 그 말이 며칠 동안 풀을 먹지 않더니 죽었다.
却说王甫在麦城中,骨颤肉惊,乃问周仓曰:“昨夜梦见主公浑身血汙,立于前;急问之,忽然惊觉。不知主何吉凶?”正说间,忽报吴兵在城下,将关公父子首级招安。王甫、周仓大惊,急登城视之,果关公父子首级也。王甫大叫一声,堕城而死。周仓自刎而亡。于是麦城亦属东吴。却说关公英魂不散,荡荡悠悠,直至一处,乃荆门州当阳县一座山,名为玉泉山。山上有一老僧,法名普净,原是汜水关镇国寺中长老;后因云游天下,来到此处,见山明水秀,就此结草为庵,每日坐禅参道,身边只有一小行者,化饭度日。
한편, 왕보가 맥성에 있는데 뼈와 살이 떨려 놀라서 주창에게 묻기를,“어젯밤 꿈에 주공께서 온몸이 피에 젖어 제 앞에 선 것을 보았소. 급히 여쭈다가 문득 놀라 깨어났소. 주공께서 무슨 길흉이 있는지 모르겠소?”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문득 보고하기를, 오나라 군사들이 성 아래에서 관우 부자의 수급을 들고 투항을 권한다는 것이다. 왕보와 주창이 크게 놀라 급히 성에 올라 바라보니 과연 관공 부자의 수급이었다. 왕보가 큰 소리로 외치더니 성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주창도 목을 찔러 죽었다. 이에 맥성도 동오에 넘어갔다. 한편, 관우의 뛰어난 혼령이 흩어지지 않고 정처 없이 헤매다가 곧바로 한곳에 이르니 바로 형문주 당양현의 어느 산인데 그 이름 옥천산이었다. 산 위에 노승이 한 사람 있는데 법명이 보정이었다. 원래 사수관 진국사의 장로였다. 그 뒤 천하를 구름처럼 떠돌다가 이곳에 와서 산수가 빼어난 것을 보고 풀을 엮어서 암자를 만들었다. 날마다 좌선하며 도를 구하였다. 그 신변에는 어린 행자 하나만이 있어서 탁발하며 날을 보냈다.
是夜月白风清,三更已后,普净正在庵中默坐,忽闻空中有人大呼曰:“还我头来!”普净仰面谛视,只见空中一人,骑赤兔马,提青龙刀,左有一白面将军、右有一黑脸虬髯之人相随,一齐按落云头,至玉泉山顶。普净认得是关公,遂以手中麈尾击其户曰:“云长安在?”关公英魂顿悟,即下马乘风落于庵前,叉手问曰:“吾师何人?愿求法号。”普净曰:“老僧普净,昔日汜水关前镇国寺中,曾与君侯相会,今日岂遂忘之耶?”公曰:“向蒙相救,铭感不忘。今某已遇祸而死,愿求清诲,指点迷途。”普净曰:“昔非今是,一切休论;后果前因,彼此不爽。今将军为吕蒙所害,大呼‘还我头来’,然则颜良、文丑,五关六将等众人之头,又将向谁索耶?”
이날 밤 달이 밝고 바람이 맑은데, 자정이 지나 보정이 암자 안에서 가만히 정좌하고 있었다. 문득 공중에서 누군가 크게 불러 말하기를,“내 머리를 돌려주시오!”하는 소리를 들었다. 보정이 얼굴을 들어 찬찬히 살펴보니 공중에 한 사람이 보이는데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들고 있었다. 그 왼쪽에 얼굴이 하얀 장군이, 오른쪽에 얼굴이 검고 수염이 구불구불한 사람이 따르고 있었다. 일제히 구름 속에서 옥천산의 정상으로 내려왔다. 보정은 그가 관우인 것을 깨닫고 곧 손에 쥔 먼지떨이로 문을 두드리며 말하기를,“운장은 어디 계십니까?”하니, 관우의 영혼이 문득 깨닫고 즉시 말에서 내려 바람을 타고 암자 앞으로 내려와서 두 손을 포개고 묻기를,“법사는 누구시오? 법명을 알려주시오,”했다. 보정이 말하기를,“노승은 보정입니다. 지난날 사수관 앞의 진국사에서 일찍이 군후를 만났는데, 오늘 어찌 잊으셨습니까?”하니, 관우가 말하기를,“지난 날 구해주신 은혜를 입어, 고마움을 잊지 않았소. 지금 제가 이미 재앙을 만나 죽었는데, 바라건대 맑은 가르침을 구하오니, 미로에서 벗어나게 가르쳐주시오.”했다. 보정이 말하기를,“어제는 그른 것이 오늘은 옳은 것이 되니, 아무 것도 논하지 말고, 뒤의 결과나 앞의 원인도 피차 틀린 것이 없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여몽에게 해를 입어 큰 소리로 내 머리를 돌려주라고 하시지만, 그렇다면 안량과 문추, 5관의 여섯 장수 등 많은 사람의 머리는 또한 누구에게 찾아야겠습니까?”했다.
于是关公恍然大悟,稽首皈依而去。后往往于玉泉山显圣护民,乡人感其德,就于山顶上建庙,四时致祭。后人题一联于其庙云:“赤面秉赤心、骑赤兔追风,驰驱时、无忘赤帝,青灯观青史、仗青龙偃月,隐微处不愧青天。”却说孙权既害了关公,遂尽收荆襄之地,赏犒三军,设宴大会诸将庆功;置吕蒙于上位,顾谓众将曰:“孤久不得荆州,今唾手而得,皆子明之功也。”蒙再三逊谢。权曰:“昔周郎雄略过人,破曹操于赤壁,不幸早夭,鲁子敬代之。子敬初见孤时,便及帝王大略,此一快也;曹操东下,诸人皆劝孤降,子敬独劝孤召公瑾逆而击之,此二快也;惟劝吾借荆州与刘备,是其一短。今子明设计定谋,立取荆州,胜子敬、周郎多矣!”
이에 관우가 문득 크게 깨달아 고개 숙여 귀의하고 떠났다. 그 뒤 때때로 옥천산에 나타나서 백성들을 지켜주었다. 시골사람들이 그 은덕에 감격해서 산 정상에 사당을 만들어 사시에 제사를 지냈다. 뒷사람이 그 사당에서 한 연시를 짓기를,“붉은 얼굴에 붉은 마음을 간직하고, 적토마를 타고 바람 따라 내달릴 때에도 적제(남쪽 신으로 한고조 유방을 상징)를 잊은 적 없었고, 푸른 빛 등불로 역사를 살펴보며 청룡언월도를 짚고, 어디에서도 푸른 하늘 아래 부끄럽지 않았네.”했다. 한편, 손권은 관우를 이미 살해하고 마침내 형주와 양양의 땅을 모두 거두어 전군을 포상하고 음식을 주어 위로했다. 연회를 베풀어 장수들을 크게 모아 공로를 경축했다. 여몽을 상석에 앉히고 뭇 장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내가 오래도록 형주를 얻지 못하다가 이제 손바닥에 침 뱉듯이 쉽게 얻었으니 모두 자명(여몽)의 공이오.”하니, 여몽이 거듭 공손히 사례했다. 손권이 말하기를,“지난날 주랑(주유)의 뛰어난 지략이 남달라서 적벽에서 조조를 격파했으나 불행히도 일찍 죽어서 노자경(노숙)이 대신했소. 자경이 처음 나를 만났을 때 곧 제왕의 대략을 제시하니 첫째로 기쁜 일이었소. 조조가 동쪽으로 쳐들어오자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투항을 권했으나 자경이 홀로 나에게 공근(주유)을 불러보고 거꾸로 공격하도록 권했으니 둘째로 기쁜 일이었소. 다만 내게 형주를 유비에게 빌려 주도록 권한 것이 그의 유일한 실책이었소. 이제 자명(여몽)이 계책을 세워 단숨에 형주를 취하니 자경과 주랑을 크게 능가하는 것이오.”했다.
于是亲酌酒赐吕蒙。吕蒙接酒欲饮,忽然掷杯于地,一手揪住孙权,厉声大骂曰:“碧眼小儿!紫髯鼠辈!还识我否?”众将大惊,急救时,蒙推倒孙权,大步前进,坐于孙权位上,两眉倒竖,双眼圆睁,大喝曰:“我自破黄巾以来,纵横天下三十余年,今被汝一旦以奸计图我,我生不能啖汝之肉,死当追吕贼之魂!我乃汉寿亭侯关云长也。”权大惊,慌忙率大小将士,皆下拜。只见吕蒙倒于地上,七窍流血而死。众将见之,无不恐惧。权将吕蒙尸首,具棺安葬,赠南郡太守、孱陵侯;命其子吕霸袭爵。孙权自此感关公之事,惊讶不已。
이에 친히 술을 따라 여몽에게 내렸다. 여몽이 술을 받아 마시려다가 갑자기 술잔을 바닥에 던지더니 한 손으로 손권을 꽉 붙잡고 소리 높여 크게 욕하기를,“푸른 눈의 어린놈아! 붉은 수염 쥐새끼야! 아직도 나를 못 알아보겠느냐!”했다. 장수들이 크게 놀라 급히 구하려는데 여몽이 손권을 밀어뜨리고, 큰 걸음으로 전진하여 손권의 자리 위에 앉아 두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알을 부라리며 크게 꾸짖기를,“나는 황건적을 깨뜨린 이래로 천하를 30년 동안 종횡하였다. 지금 네가 하루아침에 간계로써 나를 도모했으니 내가 살아서 너의 고기를 씹어 먹지 못하지만 죽어서라도 마당히 여몽 도적놈의 혼을 뒤쫓겠다! 나는 바로 한수정후 관운장이다!”했다. 손권이 크게 놀라서 황망히 높고 낮은 장수와 사병을 거느리고 모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그런데 보니 여몽이 바닥에 쓰러지며 몸의 일곱 구멍으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장수들이 보더니 무서워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손권이 여몽의 시신을 거두어 관을 갖춰 장사지내고 남군태수 잔릉후를 추증했다. 그 아들 여패에게 벼슬을 물려받도록 명령했다. 손권이 이로부터 관공의 일에 감응하여 놀라고 의아해하기를 마지않았다.
忽报张昭自建业而来。权召入问之。昭曰:“今主公损了关公父子,江东祸不远矣!此人与刘备桃园结义之时,誓同生死。今刘备已有两川之兵;更兼诸葛亮之谋,张、黄、马、赵之勇。备若知云长父子遇害,必起倾国之兵,奋力报仇,恐东吴难与敌也。”权闻之大惊,跌足曰:“孤失计较也!似此如之奈何?”昭曰:“主公勿忧。某有一计,令西蜀之兵不犯东吴,荆州如磐石之安。”权问何计。昭曰:“今曹操拥百万之众,虎视华夏,刘备急欲报仇,必与操约和。若二处连兵而来,东吴危矣。不如先遣人将关公首级,转送与曹操,明教刘备知是操之所使,必痛恨于操,西蜀之兵,不向吴而向魏矣。吾乃观其胜负,于中取事。此为上策。”
문득 보고하기를, 장소가 건업에서 찾아왔다고 했다. 손권이 불러들여서 묻자, 장소가 말하기를,“이제 주공께서 관우 부자를 죽였으니 강동에 재앙이 머지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유비와 더불어 도원결의할 때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서했습니다. 지금 유비가 양천(서천과 동천)의 병력을 가진데다 제갈량의 지략과, 장비, 황충, 마초, 조운의 용맹을 겸하고 있습니다. 유비가 만약 운장 부자의 살해당함을 안다면 반드시 온 나라의 병력을 일으켜서 온 힘을 다해 복수에 나설 것입니다. 아마 동오가 대적하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했다. 손권이 이를 듣고 크게 놀라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내가 잘 따져보지 못했구려! 이렇다면 어찌해야겠소?”하니, 장소가 말하기를,“주공께서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사오니 서촉의 병력이 동오를 침범하지 못하게 만들어 형주가 반석처럼 안전할 것입니다.”했다. 손권이 무슨 계책인지 묻자 장소가 말하기를,“지금 조조가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중원을 범처럼 노려보니, 유비가 급히 복수에 나선다면, 반드시 조조와 화평을 약속할 것입니다. 만약 두 곳에서 병력을 연합해서 온다면 동오는 위태해집니다. 차라리 사람을 보내 관공의 수급을 조조에게 넘겨주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면 유비는 이것이 조조가 시킨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 반드시 조조를 몹시 미워할 것입니다. 서촉의 병력이 동오를 향하지 않고 위나라로 향하게 되니, 우리는 그저 그 승부를 살펴보며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상책입니다.”했다.
权从其言,随遣使者以木匣盛关公首级,星夜送与曹操。时操从摩陂班师回洛阳,闻东吴送关公首级至,喜曰:“云长已死,吾夜眠贴席矣。”阶下一人出曰:“此乃东吴移祸之计也。”操视之,乃主簿司马懿也。操问其故,懿曰:“昔刘、关、张三人桃园结义之时,誓同生死。今东吴害了关公,惧其复仇,故将首级献与大王,使刘备迁怒大王,不攻吴而攻魏,他却于中乘便而图事耳。”
손권이 그 말을 따라 곧이어 사자를 시켜 나무상자에다 관우의 수급을 담아 밤새 조조에게 보냈다. 이때 조조는 마피에서 군사를 거두어서 낙양으로 되돌아가던 중이었다. 동오에서 관공의 수급을 보내온 것을 듣더니 기뻐서 말하기를,“운장이 이미 죽었다니 내가 밤에 편히 누워서 잘 수 있겠소.”했다. 그런데 섬돌 아래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말하기를,“이것은 바로 동오에서 재앙을 떠넘기는 계략입니다.”했다. 조조가 보니 바로 주부 사마의였다. 조조가 그 까닭을 묻자 사마의가 말하기를,“지난날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도원결의를 할 때,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서했습니다. 이제 동오가 관공을 해치고 그 복수가 두려운 나머지 그 수급을 대왕께 바치는 것입니다. 유비로 하여금 노여움을 대왕께 옮겨서 동오가 아니라 위나라를 치게 만들고, 그들은 도리어 중간에 편승하여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했다.
操曰:“仲达之言是也。孤以何策解之?”懿曰:“此事极易。大王可将关公首级,刻一香木之躯以配之,葬以大臣之礼;刘备知之,必深恨孙权,尽力南征。我却观其胜负!蜀胜则击吴,吴胜则击蜀。二处若得一处,那一处亦不久也。”操大喜,从其计,遂召吴使入。呈上木匣,操开匣视之,见关公面如平日。操笑曰:“云长公别来无恙!”言未讫,只见关公口开目动,须发皆张,操惊倒。众官急救,良久方醒,顾谓众官曰:“关将军真天神也!”吴使又将关公显圣附体、骂孙权追吕蒙之事告操。操愈加恐惧,遂设牲醴祭祀,刻沉香木为躯,以王侯之礼,葬于洛阳南门外,令大小官员送殡,操自拜祭,赠为荆王,差官守墓;即遣吴使回江东去讫。
조조가 말하기를,“중달(사마의)의 말씀이 옳소. 내가 무슨 계책으로 풀어야겠소?”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이 일은 아주 쉽습니다. 대왕께서 관공의 수급을, 향나무로 깎아 만든 몸에 붙여서, 대신의 예절로써 장사지내 주십시오. 유비가 이를 알면 반드시 손권을 몹시 미워해 힘을 다해 남쪽을 정벌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승부를 살피며, 서촉이 이기면 동오를 공격하고, 동오가 이기면 서촉을 공격하면 됩니다. 두 곳 가운데 한곳을 얻는다면 나머지 한 곳 역시 오래가지 못하옵니다.”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그 계책을 따라 곧 동오의 사자를 불러들였다. 사자가 나무상자를 바쳐서 조조가 그 상자를 열어보니 관우의 얼굴이 평소와 같았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운장공은 그간 별고 없으셨소?”했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관공의 입이 벌어지고 눈이 움직이며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서는 것을 보고, 조조가 놀라 쓰러졌다. 관리들이 급히 구하여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깨어나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관장군은 참으로 하늘의 신령이오!”했다. 동오의 사자도 관공의 혼백이 나타나 몸에 붙자, 손권이 여몽의 말을 따랐던 것을 욕하며 조조에게 고자질했다. 조조가 더욱 무섭고 두려워 곧 희생과 단술을 마련해 제사를 지내며, 침향목을 깎아서 몸을 만들고 왕과 제후의 예로서 낙양성 남문 밖에 장사지냈다. 대소 관원들에게 장례에 참여할 것를 명하여, 조조 스스로 제사에서 절을 올리고, 형왕을 추증하며 관리를 보내 묘지를 지키게 했다. 그리고 즉시 동오의 사자를 강동으로 되돌려 보냈다.
却说汉中王自东川回成都,法正奏曰:“王上先夫人去世;孙夫人又南归。未必再来。人伦之道,不可废也,必纳王妃,以襄内政。”汉中王从之,法正复奏曰:“吴懿有一妹,美而且贤。尝闻有相者,相此女后必大贵。先曾许刘焉之子刘瑁,瑁早夭。其女至今寡居,大王可纳之为妃。”汉中王曰:“刘瑁与我同宗,于理不可。”法正曰:“论其亲疏,何异晋文之与怀嬴乎?”汉中王乃依允,遂纳吴氏为王妃。后生二子:长刘永,字公寿;次刘理,字奉孝。
한편, 한중왕(유비)이 동천에서 성도로 돌아오자, 법정이 상주하기를,“주상의 선부인(감부인)께서 별세하시고, 손부인께서도 남쪽으로 되돌아가셔서 반드시 돌아오실 것 같지 않습니다. 인륜의 도리를 폐할 수 없사오니 반드시 왕비를 맞으셔서 안살림을 돕게 하옵소서.”하니, 한중왕이 그 말을 따르자 법정이 다시 상주하기를,“오의에게 누이동생이 있는데 아름답고 어집니다. 일찍이 들으니, 어느 관상가가 그녀의 관상을 보고 훗날 반드시 크게 귀하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지난날 유언의 아들 유모와 허혼했으나 유모가 일찍 죽었습니다. 그녀는 이제까지 과부로 지내고 있으니 대왕께서 들여서 왕비를 삼음 직합니다.”하니, 한중왕이 말하기를,“유모는 나와 같은 종친이니 도리에 어긋나오.”했다. 법정이 말하기를,“그 친소관계를 논해본다면, 어찌 진나라 문공이 회영(秦穆公의 딸로 晉나라 懷公의 부인이 되었음)과 혼인을 맺은 것과 다르겠습니까?”하니, 한중왕이 이에 허락하여, 마침내 오씨를 왕비로 맞아 들여 훗날 두 아들을 낳으니 첫째가 유영이었고,자는 공수이며, 둘째는 유리였으며,자는 봉효였다.
且说,东西两川,民安国富,田禾大成。忽有人自荆州来,言东吴求婚于关公,关公力拒之。孔明曰:“荆州危矣!可使人替关公回。”正商议间,荆州捷报使命,络绎而至。不一日,关兴到,具言水淹七军之事。忽又报马到来,报说关公于江边多设墩台,提防甚密,万无一失。因此玄德放心。忽一日,玄德自觉浑身肉颤,行坐不安;至夜,不能宁睡,起坐内室,秉烛看书,觉神思昏迷,伏几而卧;就室中起一阵冷风,灯灭复明,抬头见一人立于灯下。玄德问曰:“汝何人,夤夜至吾内室?”其人不答。玄德疑怪,自起视之,乃是关公,于灯影下往来躲避。玄德曰:“贤弟别来无恙!夜深至此,必有大故。吾与汝情同骨肉,因何回避?”关公泣告曰:“愿兄起兵,以雪弟恨!”
한편, 동서 양천에서 백성은 안정되고 나라는 부강하며, 곡식은 풍년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이 형주에서 와서, 동오에서 관공에게 구혼하자 관공이 강하게 거절했다고 말했다. 공명이 말하기를,“형주가 위급하게 됐습니다. 사람을 보내 관공을 대신하게 하고, 관공을 불러들여야 합니다.”했다. 상의하고 있는 사이에, 형주에서 승첩을 알리는 사자가 끊임없이 왔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관흥이 도착해서 위나라 7군을 수몰시킨 일을 상세히 말했다. 문득 또다시 소식을 알리는 기마병이 와서, 관우가 강변에 돈대를 많이 설치해서 방어가 몹시 세밀해 만에 하나도 실수가 없을 것이라 말했다. 이로 인하여 현덕이 방심했다. 그런데 문득 어느 날 현덕은 온몸의 살이 떨리고 걷거나 앉아도 불안함을 느꼈다. 밤에도 편히 잠들 수 없어 일어나 내실에 앉아 촛불을 밝히고 책을 보는데 정신이 혼미해져 방석에 기대어 누웠다. 실내에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더니 등불이 깜빡였다. 머리를 치켜드니 등불 아래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현덕이 묻기를,“그대는 누구기에 한밤중에 내실까지 들어왔소?”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지 않았다. 현덕이 괴이하게 여겨 스스로 일어나 바라보니, 바로 관우가 등잔 그림자 아래에서 움직이며 숨으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아우는 그 동안 별고 없었는가! 밤이 깊었는데 이렇게 오다니 반드시 큰 사고가 있겠구나. 나와 너는 정이 골육과 같은데 어째서 회피하는가?”하니, 관우가 울면서 고하기를,“바라건대 형님께서는 병력을 일으켜 아우의 원한을 풀어주시오.”했다.
言讫,冷风骤起,关公不见。玄德忽然惊觉,乃是一梦。时正三鼓。玄德大疑,急出前殿,使人请孔明来。孔明入见,玄德细言梦警。孔明曰:“此乃王上心思关公,故有此梦。何必多疑?”玄德再三疑虑,孔明以善言解之。孔明辞出,至中门外,迎见许靖。靖曰:“某才赴军师府下报一机密,听知军师入宫,特来至此。”孔明曰:“有何机密?”靖曰:“某适闻外人传说,东吴吕蒙已袭荆州,关公已遇害!故特来密报军师。”孔明曰:“吾夜观天象,见将星落于荆楚之地,已知云长必然被祸,但恐王上忧虑,故未敢言。”
말이 끝나자 서늘한 바람이 몰아치더니 관우가 보이지 않았다. 현덕이 문득 놀라 깨어나니 한바탕 꿈이었다. 때는 정각 밤12시였다. 현덕이 몹시 의심스러워 급히 정전으로 나가서 사람을 시켜 공명을 불러오게 했다. 공명이 들어오자 현덕이 꿈에서 놀라 깨어난 것을 자세히 말했다. 공명이 말하기를,“이것은 바로 주상께서 관공을 마음으로 (너무) 생각하셔서 이런 꿈을 꾸신 것입니다. 어찌 반드시 많이 의심하겠습니까?”했다. 현덕이 거듭 의심하자 공명이 좋은 말로써 풀어주었다. 공명이 인사를 하고 나와서 중문 밖에 이르러 허정과 마주쳤다. 허정이 말하기를,“제가 방금 군사(軍師)의 부중으로 찾아가 기밀을 하나 알리고자 하였는데 이미 군사께서 입궁하셨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이곳까지 왔습니다.”했다. 공명이 말하기를,“무슨 기밀이오.”하니, 허정이 말하기를,“제가 때마침 바깥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니 동오의 여몽이 이미 형주를 습격해 관공이 벌써 살해되었다 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군사께 은밀히 알려드리려 왔습니다.”했다. 공명이 말하기를,“내가 밤에 천문현상을 보니 장성(장군별)이 형초 땅에 떨어지는지라 벌써 운장이 틀림없이 재앙을 입은 것을 알았으나 다만 주상께서 근심하실까 두려워서 아직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소.”했다.
二人正说之间,忽然殿内转出一人,扯住孔明衣袖而言曰:“如此凶信,公何瞒我!”孔明视之,乃玄德也。孔明、许靖奏曰:“适来所言,皆传闻之事,未足深信。愿王上宽怀,勿生忧虑。”玄德曰:“孤与云长,誓同生死;彼若有失,孤岂能独生耶!”孔明、许靖正劝解之间,忽近侍奏曰:“马良、伊籍至。”玄德急召入问之。二人具说荆州已失,关公兵败求救,呈上表章。未及拆观,侍臣又奏荆州廖化至。玄德急召入。化哭拜于地,细奏刘封、孟达不发救兵之事。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홀연히 전각에서 한 사람이 돌아 나와서 공명의 옷소매를 붙잡고 말하기를,“이렇게 흉한 소식을 공께서 어찌 나에게 속였소!”했다. 공명이 보니 바로 현덕이었다. 공명과 허정이 아뢰기를,“방금 이야기한 것은 모두 전해들은 일이오니 아직 충분히 믿을 게 못됩니다. 바라옵건대 주상께서 마음을 푸시고 절대 근심하지 마십시오.”하니, 현덕이 말하기를,“나와 운장은 생사를 같이하기로 맹세했소. 그를 만약 잃는다면 내가 어찌 홀로 살겠소!”했다. 공명과 허정이 마음을 풀도록 권하고 있는데 문득 근시(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가 아뢰기를,“마량과 이적이 왔습니다.”했다. 현덕이 서둘러 불러들여 묻자 두 사람은 형주를 이미 빼앗기고 관공이 패전해서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두루 말하며 표장(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바친다. 미처 뜯어보기도 전에, 시신(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이 다시 형주에서 요화가 왔다고 아뢴다. 현덕이 급히 불러들이자 요화가 통곡하며 바닥에서 절을 올리며 유봉과 맹달이 구원병을 보내지 않은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玄德大惊曰:“若如此,吾弟休矣!”孔明曰:“刘封、孟达如此无礼,罪不容诛!王上宽心,亮亲提一旅之师,去救荆襄之急。”玄德泣曰:“云长有失,孤断不独生!孤来日自提一军去救云长!”遂一面差人赴阆中报知翼德,一面差人会集人马。未及天明,一连数次,报说关公夜走临沮,为吴将所获,义不屈节,父子归神。玄德听罢,大叫一声,昏绝于地。正是:为念当年同誓死,忍教今日独捐生!
현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만약 이렇다면 내 아우는 끝장이다!”하니, 공명이 말하기를,“유봉과 맹달이 이토록 무례하다면 그 죄는 주살을 면치 못하리라! 주상께서 마음을 놓으소서. 제가 몸소 일려(500명의 군사)의 병력을 이끌고 형양의 위급을 구원하러 가겠습니다.”하니, 현덕이 흐느끼며 말하기를,“운장을 잃으면 나는 결코 홀로 살 수 없소! 내가 내일 1군을 이끌고 운장을 구원하러 가겠소!”했다. 곧 사람을 낭중 땅으로 보내 익덕에게 알리게 하는 한편, 사람들을 보내 인마들을 모았다. 그런데 미처 날이 밝기도 전에 줄줄이 몇 차례 보고가 들어와서, 관공이 밤에 임저로 달아나다가 동오의 장수에게 사로잡혀 의롭게 절개를 굽히지 않아 관공 부자가 죽었다고 했다. 현덕이 듣고 나서 크게 한 소리를 외치더니 혼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이야말로, 지난날 함께 죽기로 맹세한 것을 생각하니, 차마 오늘 홀로 삶을 버리게 할 수 없구나!
未知玄德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현덕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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