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76)
발우공양
꽃망울 터지기 시작한
벚꽃길 마스크를 쓴 노부부 걸어간다
손을 꼭 잡고 앞선 할머니 따라
한쪽 팔 곱은 할아버지
불편한 다리를 끌며 간신히 걸어간다
마이 아픈교
괘안타
마이 힘든교
쪼매 힘드네
자네는 괘안나
괘안니더
자네도 힘들제
그케 쪼매 힘드니더
이 순간이 올 때까지 저들도 악착같았으리
단단한 옹벽처럼 버티고 서서 식구를 여미고
큰 소리로 삶을 받아치며 흐뭇하던 시절도 있었으리
어쩌다 한쪽 옹벽 무너져 내렸는지
알 수 없어도 발우 같은 서로의 몸을 공양하며
꽃길을 걷듯 여생을 조심조심 건너간다
- 김명기(1969- ), 『멸망의 밤을 듣는 밤』, 아시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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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합니다. 시위의 양식마저도 시절과 세대의 변화에 따라 변합니다. 최근의 시위에서는 나눔의 방식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결제입니다. 한 유명인이 시작한 찻집의 선결제 예약 나눔은 다른 여러 유명인들의 음식점과 찻집에서의 나눔으로 확산되었고, 선결제로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신 이들이 이어서 선결제를 하면서 이 나눔의 방식이 불길처럼 확 번지고 있습니다. 여의도에서도 광화문에서도 남태령에서도 이 선결제 방식의 나눔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방식이야 같기도 다르기도 하지만 오래되었지요, 이 나눔의 마음들. 44년 전 광주에서도 있었습니다. 나눔은 모심이기도 하지요. 모심의 마음이 곧 나눔의 마음입니다. 발우는 절에서 승려가 공양할 때 사용하는 나무 그릇으로 밥그릇, 국그릇, 물그릇, 찬그릇 4합이 한 벌로 이 중 주로 밥그릇만을 일컬으며 바리때라고도 합니다. 공양은 부처님 앞에 음식물이나 재물 등을 바치는 것으로 다만 승려들이 식사하는 것만을 일컫기도 하며 발우공양은 절에서의 식사의례입니다. 공양은 불교 용어라도 음식이나 의복 등을 이바지하면서 웃어른을 모신다는 뜻으로 일상적으로도 쓰이기도 합니다. “마이 아픈교/괘안타/마이 힘든교/쪼매 힘드네//자네는 괘안나/괘안니더/자네도 힘들제/그케 쪼매 힘드니더” 웃어른을 모신다로 사전은 뜻풀이를 하지만 이 시에서의 노부부의 서로 모심은 위아래가 없습니다. 그저 공양합니다. 아픔과 어려움을 서로 나누며 서로 모시며 “꽃길을 걷듯 여생을 조심조심 건너가”는 노부부의 공양이 애틋합니다. 서로 외에는 의지할 데가 이제 더 없어서만은 아닐 겁니다. 이건 “발우 같은 서로의 몸을” 서로 나누고 서로 모시는 것이 서로의 몸에 배어 있어서일 겁니다. 이 위아래 없는 서로 나눔과 서로 모심의 시 「발우공양」을 2024년의 성탄절에 성탄 선물로 드립니다. (20241225)
첫댓글 서로 나눔과 서로 모심의 시로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