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시리즈, 거짓 가르침과 영적 미혹에 대한 경고
16) 이적과 기사의 함정 - 기적을 행하나 다른 신을 쫓게 하는 거짓 선지자
신명기 13장 1~3절
13: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13: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13: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여러분,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를 참 좋아합니다.
기도하자마자 병이 씻은 듯이 낫고, 꼬였던 재정 문제가 기적처럼 풀리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뜁니다.
"야, 저분은 진짜 능력 있는 주의 종이구나", "저기 가야 뭔가 응답을 받나 보다" 하면서 눈과 귀가 쏠리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도 목사이지만, 삶이 팍팍하고 기도가 막힐 때면
눈앞에서 홍해가 쫙 갈라지는 것 같은 기적 하나만 딱 보여주셨으면 좋겠다고 떼쓰고 싶을 때가 참 많습니다.
사람은 본래 눈에 보이는 것을 쉽게 믿고 따르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이 종교적인 본능을 완전히 뒤흔드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떤 선지자가 나타나 눈이 번쩍 뜨이는 기적을 행했는데,
그 기적이 실제로 눈앞에서 이루어지더라도 "그 말을 절대 듣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일까요?
기적보다 훨씬 중요하고 본질적인,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정말 쫓고 있던 신앙의 실체가 무엇인지 거울 보듯 정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기적이 진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신명기 13:1~2a)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세는 거짓 선지자가 기적을 행하는 '척' 쇼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적과 기사가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오트 (אוֹת) — "이적." 어떤 사실을 증명하는 '표적, 표시'라는 뜻입니다.
모페트 (מוֹפֵת) — "기사."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 '경이로운 사건'을 뜻합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것은 가짜 마술이 아니라, 진짜로 초자연적인 힘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사탄도 사람을 미혹하기 위해 얼마든지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출애굽 때 애굽 술객들도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었고(출 7:11~12),
예수님도 마지막 때 거짓 그리스도들이 "큰 표적과 기사"로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려 할 것이라 하셨으며(마 24:24),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에서 불법의 사람의 역사가 "거짓 기적과 이적"으로 나타난다고 경고했습니다.
요즘 전화 한 통 받으면 자녀 목소리, 손자 목소리와 똑같은 음성으로 다급하게 돈을 요구하는 사기가 있다고 하지요.
목소리를 흉내 낸 것뿐인데 부모 마음은 속절없이 흔들립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현상이 신기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리'라는 보증은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미혹됩니다.
"거기 가니까 병이 나았대", "그 예언이 딱 맞았대" 하면 말씀의 분별력은 다 내려놓고 맹목적으로 사람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기적 그 자체는 결코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요약: 현상에 매이지 마십시오. 기적은 진리를 증명하는 최종 면허증이 아닙니다.
2.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신명기 13:2b)
거짓 선지자의 진짜 목적이 여기서 폭로됩니다.
기적을 일으킨 다음, 그가 이끌고 가는 방향은 결국 "다른 신들을 따르자"입니다.
엘로힘 아헤림 (אֱלֹהִים אֲחֵרִים) — "다른 신들."
이것은 단순히 깎아 만든 우상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전체에서 반복되는 언약 배교의 표현으로,
하나님이 아닌 '내 욕망을 채워줄 다른 존재', '내가 주인 노릇 하게 만들어 줄 다른 체계'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신앙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중요한 것은 기적의 유무가 아니라, 기적 이후에 향하는 방향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체험을 했어도 그 결과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미혹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 모두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의 방향을 점검해 봅시다.
기적을 경험한 뒤에 예수님이 더 사랑스러워졌습니까, 아니면 그 기적을 행한 사람이나 나의 특별한 체험이 더 커 보입니까?
말씀보다 체험이 앞서면 신앙이 뒤틀립니다.
십자가의 복음보다 축복만 강조하고, 죄에 대한 회개보다 능력만 강조하면 방향이 어긋납니다.
참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지만, 미혹은 체험을 앞세우고 사람을 우상화합니다.
요약: 참된 신앙의 기준은 현상의 크기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방향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시험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 왜 사탄이 이런 기적을 행하도록 가만히 놔두십니까?
처음부터 막아주시면 우리가 안 속을 텐데요."
하나님의 깊은 마음이 3절에 담겨 있습니다.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신명기 13:3)
나사 (נָסָה) — "시험하다."
골탕 먹이거나 넘어뜨리려는 시험이 아니라, '검증하다, 드러내다'라는 뜻입니다.
이 시험은 신명기 8장 2절, 광야 사십 년 동안 "네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 하시던" 그 시험의 연장선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광야 시험 앞에서 번번이 무너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험도 그 반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마음을 몰라서 테스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험을 통해 우리 스스로 우리 믿음의 실상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다 믿음이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기적과 말씀이 충돌하는 순간, 내가 진짜 말씀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내 소원을 들어주는 기적의 신을 사랑하는지가 드러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꼭 붙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시험은 여러분이 구원받은 자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고, 하나님은 한번 붙드신 자를 끝까지 붙드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험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은혜로 주신 믿음이 우리 삶 속에서 진짜인지 자라가고 있는지를 우리 스스로 보게 하시는, 사랑의 훈련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 우리 예수님을 보십시오.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실 때, 사탄은 예수님께 계속 '기적'을 요구했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기적을 증명해라."
그러나 예수님은 기적으로 대항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말씀으로 받아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시험받아 무너졌지만,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받아 승리하셨습니다.
가장 큰 기적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십자가는 무기력한 실패였습니다.
조롱하는 이들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기적을 보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아버지를 향한 순종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 그 순종이 오늘 믿음으로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시험 앞에서 흔들릴 때 붙들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강한 의지가 아니라, 이미 시험에서 이기신 그리스도의 순종입니다.
요약: 시험의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참된 믿음이 드러나고 자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삶의 적용 — 오늘, 작게
오늘부터 작게 실천할 세 가지
하나, 오늘 하루, 자극적인 영적 영상 시청을 잠시 멈추고 대신 성경을 펴서 단 한 장이라도 하나님과 마주 앉아 담백하게 읽어보십시오.
둘, 어떤 설교나 간증을 들을 때 "와, 신기하다"로 끝내지 말고, 내 손으로 성경을 찾아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 보십시오.
셋, "이 체험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만드는가, 아니면 내 욕심을 채우게 만드는가?"를 오늘 하루, 한 번이라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결론 —
신앙의 본질은 놀라운 기적을 많이 보는 능력이 아닙니다.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내 삶에 여전히 문제가 가득할지라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전부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끝까지 붙드는 것, 그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화려한 기적과 감동의 옷을 입고 우리를 찾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려 유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기적이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적을 판단합니다.
눈에 보이는 표적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 안에서 그분과의 깊고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적이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적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