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黑風令 제4권 제34장 누군가가 노린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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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연경을 벗어나 북쪽으로 삼백 여리.
탁 트인 관도(官道)를 지나노라면 좌측으로 까마득히 치솟은 산봉
우리를 보게 된다.
청와산(靑瓦山).
두꺼비 등처럼 능선의 굴곡이 심하다하여 붙여진 이름 청와산 기
슭으로 이른 새벽 안개를 가르며 빛살처럼 빠르게 신형을 날리는
인영이 있었다.
그는 바로 환우령이었다.
환우령은 태극무원청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택하기 위해
청와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그의 신형이 양쪽으로 험준 벼랑이 솟아 있는
계곡으로 들어설 때였다.
(누군가 있다!)
환우령의 눈이 싸늘하게 굳어지며 거짓말처럼 신형이 우뚝 멈추었
다.
살기(殺氣)!
그의 전신피부가 논바닥처럼 갈라질 정도로 사방에서 옥죄여 오는
극렬한 살기를 본능적으로 감지해낸 것이다.
아름드리 거목이 빽빽하게 우거진 계곡의 입구 양옆 숲 속.
빛 한점 스며들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운 숲 속에서 무엇인가가 환
우령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걸음이 멈추어지는 순간,
츠스스스……
마치 귀령이 솟구치듯 먹물을 뿌려 놓은 듯 어두침침한 숲 속에서
수백에 달하는 인영이 그의 신형을 사방에서 에워싸며 안개가 바
람에 일렁이듯 괴이한 신법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하나같이 새까만 흑의(黑衣)를 걸쳤고 뇌전처럼 강렬하게 번뜩이
는 두 눈에서는 단숨에 보는 사람의 피(血)를 말릴 듯 가공할 살
기를 뿜어내고 있다.
헌데, 기이하게도 그들의 허리춤에는 체대 대신 은빛 찬란한 포승
줄을 둘렀으며 칙칙한 묵광(墨光)이 은은히 뿜어지는 묵검(墨劍)
을 차고 있지 않은가.
은포승과 묵검!
환우령은 그들의 신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황궁최고의 비밀감찰조직이라는 즙포사신대로군!)
바로 그때 환우령의 뇌리에 언뜻 떠오르는 의혹이 있었다.
(즙포사신대가 무슨 이유로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일까?)
환우령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다.
"그대가 천세야황인가."
질문도 단정도 아닌 웅후한 음성이 환우령의 귓전을 두드렸다.
환우령의 시선이 즙포사신대의 전면에 서 있는 노인에게로 천천히
돌려졌다.
일견키에도 태산준령처럼 무산의 위엄을 풍기는 금의노인(錦衣老
人)은 대략 오순 가량으로 보였고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보다 날카
로운 눈매에 칼날처럼 섬뜩하게 느껴지는 예광(銳光)이 뇌전처럼
뿜어져 나온다.
금의노인은 단순히 모습을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환우령은 거대한
절벽이 자신을 짓눌러 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환우령은 노인의 얼굴을 직시하며 무섭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바로 황궁무림 최고의 절대자(絶對者)로 군림하는 즙포사
신대의 총수(總帥) 천수태찰(天手太刹)이오?"
순간, 금의노인의 두 눈에서 번갯불 같은 신광(神光)이 작렬했다.
"젊은이! 그대가 노부의 명호(名號)를 입에 담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노인의 음성은 서릿발처럼 차가왔으나 자신이 천수태찰이라는 것
을 분명히 시인하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환우령의 안색이 납덩어리처럼 무겁게 굳
어졌다.
-천수태찰(天手太察) 범고우(凡孤雨)!
대명제국의 삼백만 병권(兵權)을 한 손에 장악하고 있는, 병부상
서(兵府尙書)조차도 그 앞에서는 깍듯이 허리를 꺾는다는 황궁무
림(皇宮武林) 최고의 거인(巨人)!
백혈태무존의 안배로 인해 즙포사신대의 총수라는 막강한 지위까
지 올랐고 다시 백혈태무존을 배반하여 오인(五人)의 자객들이 황
궁에까지 침투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게 한 장본인.
그 문제의 인물 천수태찰이 환우령 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천수태찰, 본인의 앞을 가로막는 이유를 말해 주겠소?"
바로 그때였다. 천수태찰의 입가에 실날같은 잔소(殘笑)가 스쳤
다.
"대단한 젊은이로군. 본인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감히 두 다리를
땅에 딛고 뻣뻣하게 서있다니…… 좋아."
그는 분명히 웃고 있었으나 웃음 끝자락에 묻어나는 진득한 살의
(殺意)를 환우령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환우령은 마음 속으로 짚히는 바가 있어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천수태찰, 당신이 바로 금철무련(金鐵武聯)의 절대자(絶對者)이
오?"
환우령의 입에서 금철무련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천수태찰의 독
수리보다 예리한 눈매에 섬뜩한 살광(殺光)이 스쳤다.
"젊은이는 지나치게 영리하군. 허나…… 이런 경우에는 죽음(死)
을 재촉하는 화근이 될 뿐이지."
(그랬었군. 역시 금철무련은 황궁의 그늘 속에 신형을 은폐한 채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었군!)
바로 그때였다. 천수태찰의 입술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천세야황, 그대를 저승까지 인도할 죽음의 군자(君子)들을 소개
하지."
금의노인의 뒤쪽으로 십 팔 인의 황포중년인(黃袍中年人)들이 한
자루 신검(神劍)을 거꾸로 땅에 박아 놓은 듯 죽음의 냄새를 짙게
뿌리며 석상처럼 도열해 있다.
■ 黑風令 제4권 제34장 누군가가 노린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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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헌데, 그들의 가슴을 보라!
금기린(金麒麟)!
황포중년인들의 가슴에는 황제(皇帝)의 권위를 상징하는 금기린
(金麒麟) 문양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생생하게 수 놓아져 있고
그 밑으로 은빛 찬연한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보위십팔존(保衛十八尊).
천자(天子)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옥체(玉體)를 보호하는 황
궁무림 최고의 신비인(神秘人)들!
보위십팔존이 일명 죽음의 군자(死君子)들이라고 불리우는 까닭은
그들이 누구를 죽이든 간에 그 살인(殺人)은 황제를 위한 충성(忠
誠)으로 간주되며 국법(國法)의 제재를 받지 않는 무상의 특권(特
權)이 그들에게 부여돼 있기 때문이었다.
느릿하게 천수태찰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작하라."
그의 한 마디는 곧 상대의 죽음(死)을 의미한다.
보위십팔존들의 신형이 서서히 유령처럼 미끄러짐과 동시에 즙포
사신대들이 느릿하게 발검(發劍)했다.
찰나간에 허공을 뒤덮는 냉막 싸늘한 검광(劍光)!
그들의 일신에서 폭발하듯 가공하게 뻗쳐 나오는 살기는 단숨에
환우령의 기혈(氣血)을 들끓게 만들었다.
환우령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생(生)에 최대의 위기(危機)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버---- 언쩍!
백룡거궐도를 뽑아드는 환우령의 손아귀에 축축하게 땀이 배는 것
은 그가 무림에 출도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으음…… 이럴 때 십대봉공이라도 있었다면……)
허나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쏴아아아아아----!
사방에서 거대한 해일처럼 덮쳐오는 검막(劍幕)의 파도.
죽음을 예고하는 파공성과 더불어 수백 개의 묵검(墨劍)이 얼음보
다 섬뜩한 냉광(冷光)을 뿌리며 환우령의 전신을 향해 짓쳐드는
바로 그때였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괴변이 일어났다.
우우우우…… 우우우……!
허공 어디에선가 천지(天地)를 쪼갤 듯 엄청난 굉음(宏音)이 들려
오고 있지 않은가?
"……?"
"……?"
장내의 모든 인영이 흠칫 안색을 굳히며 굉음이 빛살처럼 날아오
는 허공을 향해 고개를 돌릴 때였다.
쿠구구구구…… 쿠쿠쿠……
거대한 먹구름처럼 장내를 휩쓸어 오는 핏빛 광풍(狂風)!
피하거나 놀랄 사이가 있었다면 거짓말이다.
굉음이 최초로 들렸다고 생각되는 순간 어마어마한 핏빛 강풍의
회오리는 이미 장내를 강타하고 있었다.
쿠콰콰---- 콰쾅!
수백 개의 천둥번개에 동시에 작렬하듯 천번지복(天飜地覆)의 폭
음이 터지는 순간, 새벽안개 사이로 선명하게 뿌려지는 수십 줄기
의 피화살!
"크아악!"
"아아아아---- 아아악!"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처절한 비명 소리가 저 멀리 산정(山頂)까
지 메아리 치며 울려 퍼졌다.
환우령을 사방에서 공격하던 즙포사신대의 흑의인들이 핏빛 강풍
에 격중되어 사지가 처참한 몰골로 추풍낙엽처럼 날아가고 있지
않은가?
실로 그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돌연한 상황!
(누가 이토록 가공할 무공(武功)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헌데 더 더욱 기이한 것은, 광폭하게 난무하는 핏빛 강풍은 환우
령에게는 근접치도 않고 오직 즙포사신대들만 잔인하게 학살(虐
殺)하고 있었다.
이 순간 천수태찰의 눈꼬리가 악마처럼 쭉 찢어져 올라가며 동공
가득히 무섭도록 소름끼치는 살광(殺光)이 뇌전처럼 뿜어지고 있
다.
"광천혈살풍(狂天血殺風)! 네 놈이 또……!"
천수태찰은 이미 여러번 광천혈살풍의 피해를 입은 듯 어금니가
으스러지도록 짓씹고 있었다.
"보위십팔존은 즉시 천세야황을 격살하라!"
"존명-!"
짤막 무심한 대답과 함께 보위십팔존의 신형이 일제히 유령처럼
솟아 올라 환우령을 향해 격사되어 오는 순간, 환우령의 백룡거궐
도가 눈부신 은빛 무지개를 그렸다.
"천외뇌전류(天外雷電流)----!"
눈 깜빡이는 것을 백으로 쪼갠 것보다 더 짧은 순간에 천지를 수
직으로 쪼개는 뇌전(雷電)처럼 위맹한 도강(刀 )이 보위십팔존
중에 다섯 명을 짚단 무너지듯 쓰러뜨리고 있었다.
■ 黑風令 제4권 제34장 누군가가 노린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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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천원무극경에 실린 빛보다 빠른 쾌도식(快刀式)!
그들이 제아무리 죽음의 군자라고 불리우는 보위십팔존이라 하나
환우령의 가공할 신공절학(神功絶學)을 막아내기에는 처음부터 역
부족이었다.
"커…… 억!"
혼백없는 시신들이 땅 위로 널브러질 때 환우령은 무자비하게 즙
포사신대들을 유린하는 혈무(血霧) 덩어리를 언뜻 보았다.
(광천혈살풍! 들은 바 있다. 근자에 들어 황궁의 즙포사신대들만
을 골라 잔인하게 도살(屠殺)한다는 신비스러운 살성(殺星)이라고
……)
생각을 하다가 문득 환우령의 뇌리에 전율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
었다.
(인간의 능력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율스러운
마강(魔 ). 저 혈무인(血武人)은 피(血)를 볼 수록 더욱 흉폭하
게 날뛰고 있다…… 그렇다면!)
불현 듯 환우령의 짙은 눈썹이 꿈틀 경련을 일으켰다.
(저런 개세마공(蓋世魔功)은 과거 팔십 년 전 중원 무림을 단신으
로 피바다를 만들었던 혼세마황(混世魔皇)의 환환마경(幻幻魔經)
밖에 없다! 그렇다면…… 광천혈살풍의 정체는 바로…… 천중빙화
냉옥상?)
-천중빙화 냉옥상!
삼 년 전, 천수태찰을 암살하기 위해 황궁에 잠입했다가 자금뇌옥
에서 죽어갔던 부친(父親)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혼세마황의 환환마
경을 훔쳐서 종적을 감추었던 눈 속에 핀 매화처럼 차갑고 강인한
여인 천중빙화 냉옥상.
바로 그녀가 광천혈살풍이라는 희대의 살성(殺星)으로 변한 것이
다.
"크아아아악!"
몇마디 처절한 단말마를 끝으로 장내의 피바람은 완전히 막을 내
리고 있었다.
보위십팔존을 비롯한 즙포사신대 수백 명이 순식간에 미친 듯이
광란하는 혈무인의 독수(毒手)에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환우령은 이 돌연한 상황을 믿기가 어려웠다.
하나같이 당금 무림의 절정고수라고 알려진 즙포사신대들이 아닌
가?
더욱이 각대문파의 장문인 수준을 능가한다는 황궁무림의 최절정
무인(武人) 보위십팔존까지 이토록 허무하게 쓰러지다니……
돌연 천수태찰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살기로 바뀌었다.
"광천혈살풍, 죽어랏!"
천지가 뒤흔들 듯 웅휘한 폭갈에 이어 천수태찰의 본신공력을 실
은 쌍수(雙手)가 대해처럼 위맹한 장력(掌力)을 쏟아냈다.
콰우우우우…… 웅!
그의 장심(掌心)에서 칼날처럼 폭사되는 금청색 강기( 氣)!
파라옥천강(破羅玉天 )이라는 신공절학(神功絶學)인 것이다.
황궁무학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적절기(無敵絶技)가 펼쳐
지고 있는데 혈무로 뒤덮인 그녀는 핏빛 강풍을 휘몰아 파라옥천
강에 정면으로 맞부딪쳐 갔다.
바로 그 순간 환우령이 다급한 외침을 토해냈다.
"멈추시오! 냉소저, 그를 죽이면 안돼!"
휘익-
환우령의 신형이 빛살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가며 그들의 사이로 뛰
어들었다.
(천수태찰을 제압하여 그의 입을 통해서 금철무련의 내막을 알아
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콰과과과---- 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회오리치는 강기의 폭풍!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 악!"
허공에 긴 여운을 남기며 메아리치는 그 소리는 황궁무림의 절대
신(絶代神)이라고까지 불리웠던 천수태찰 범고우가 이승에서 최후
로 내뱉은 음성이었다.
(늦었다! 좀 더 빨리 막았어야 했는데……)
숨을 돌리며 가볍게 내려서는 환우령의 발 밑에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천수태찰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헌데 환우령으로서 전혀 뜻밖인 것은 광천혈살풍에 의해 천수태찰
정도의 고수가 단 일장(一掌)에 죽었다는 사실이었고, 그가 바로
환환마경을 극성까지 터득한 천중빙화 냉옥상이라는 심증을 가일
층 뒷받침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광천혈살풍은 환우령의 주위를 한 바퀴 쾌속하게 휘도는가 싶더니
그대로 허공 까마득한 저편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실로 환우령이 예기치 못한 돌연한 행동이었다.
한 순간 환우령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천중빙화 냉옥상…… 내게 최초로 무공을 전수해 준 은인의 딸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환우령의 신형은 한 줄기 유성이 되어 긴
포물선을 그리며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날아갔다.
■ 黑風令 제4권 제34장 누군가가 노린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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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험준절벽 중턱에 위치한 동굴.
소슬한 가을바람도 비켜 지나가는 청와산 심심산중에 위치한 협곡
우측의 절벽이었다.
"가까이 오지마…… 죽인다…… 모두 죽인다!"
상처입은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날카로운 음성이 동굴 안으로부터
새어나왔다. 그 뒤를 이어 환우령의 음성이 들린다.
"냉소저, 나 환우령을 알아 보시겠소?"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냉소저, 그대 부친(父親)의 부탁이 없었더라도 나는 냉소저가 피
에 굶주린 혈마(血魔)가 되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소!"
환우령은 조심스럽게 동굴 안쪽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핏빛으로 번뜩이는 두 눈(眼)!
천중빙화 냉옥상은 피를 보면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치는 살심(殺
心)을 견뎌내기 위해 이렇듯 인적없는 동굴을 찾아들어 자신의 영
혼을 지배하려는 환환마경의 마성(魔性)과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가갈 수록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희끄무레하
게 보였다.
팔등신의 늘씬한 몸매를 지닌 여인은 분명 빙결처럼 아름다운 미
(美)의 화신(化身)이라고 중원 전역에 소문이 자자했던 천중빙화
냉옥상이었다.
헌데 그녀의 미간(眉間)을 보라!
홍옥(紅玉)처럼 빛나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자리한 붉은 반점(班
點).
그것은 냉옥상이 이미 환환마경을 극성(極成)까지 이르도록 연마
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표시였다.
(허나 그녀가 나를 놔두고 즙포사신대만을 골라 죽이는 것으로 보
아 아직까지는 완전히 마성(魔性)에 제압된 것은 아니다! 환환마
경의 성취 정도로 보아 만령세수대법(萬靈洗修大法)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음양세수대법(陰陽洗修大法)이라면 골수까지 스며든
마성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백혈군마성을 떠나올 때 혼세마황에게 환
환마경의 마성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세밀하게 물어 본 환우령
이었다.
(그러나 음양세수대법을 펼치려면 정사(情事)가 필연적이라는 사
실이 가장 곤란한 문제다!)
바로 그때였다.
"크아아아! 죽인다!"
피를 말리는 듯 섬뜩한 폭갈과 함께 냉옥상의 신형이 퉁기듯 쏘아
져 오며 일진 강풍이 환우령의 가슴을 맹타했다.
콰광!
(우욱…… 이럴 수가……?)
환우령의 신형은 그 강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뒤로 주르륵 밀려났
다. 환우령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허나 그렇다고 그녀를
상대로 살수(殺手)를 펼칠 수는 없었다.
(표현분광신법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그녀의 마혈(魔穴)을 상처
없이 제압한 후 음양세수대법을 펼쳐야 한다!)
허나, 천중빙화 냉옥상은 숨돌릴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채 환우령을
향해 가공할 공세를 퍼부었다.
꽈우우우우……
환우령의 신형을 빗겨나가 동굴벽을 후려치는 핏빛 강풍!
좁은 동굴은 곧 무너져 내릴 듯 몸살을 앓았고 무수한 돌가루가
쏟아져 내려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환우령은 다시 일곱 번의 장력(掌力)을 얻어맞고 스물 다섯 번에
걸쳐 동굴벽 사방으로 내던져진 후에야 그녀의 등 뒤 마혈을 향해
지풍을 날려 가까스로 제압할 수 있었다.
냉옥상의 신형이 뻣뻣하게 굳으며 나무토막처럼 쓰러지는 순간 환
우령은 황급히 그녀의 늘씬한 신형을 안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
혔다.
(지금부터가 문제인데……)
한 동안 곤혹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환우령은 문득
어금니를 지그시 씹으며 그녀의 옷깃을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기껏 해봐야 책임지라고 물귀신처럼 늘어붙지 않으
면 죽겠다고 자살소동밖에 더 벌이겠나?)
사락…… 사락……
여인들의 밀어처럼 나직하게 동굴벽에 울리는 옷자락 벗겨지는 소
리.
냉옥상은 자신이 지금 어떤 운명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는 채 핏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환우령을 잡아 먹을 듯 노려보고만 있었다.
(제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군!)
첫댓글 즐감.
감사합니다.😘
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