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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77
요한계시록 20:1-3
천 년 동안
요한계시록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소위 말하는 ‘천년왕국’을 어떤 이론으로 받아들이냐 하는 것으로 구분하려고 한다. 신학적인 용어로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다. ‘전천년설’이란 오늘 본문과 같은 구절을 근거로 후에 잠깐 놓인다고 하였기에 예수님의 재림 후에 문자적으로 천년왕국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후천년설’은 점차 천국이 되어 나중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다는 주장인데 오늘날 기독교계에서는 거의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그리고 ‘무천년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재림이 있기까지의 기간을 상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론이다.
물론 신학적으로 어떤 주장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관점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것을 믿느냐를 가지고 보수적이냐 아니냐 혹은 나와 같은 신앙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을 한다. 그러나 이런 신학적 학설을 가지고 같은 신앙이냐 아니냐 혹은 보수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없고, 또한 어느 주장이 맞고 틀렸는가 하는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주장이나 이론이 아니라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요한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차원에서 복음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싸우시고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하였다. 19장에서 흰말을 타신 예수 그리스도가 대적자 짐승과 거짓 선지자, 우상을 숭배하던 자들을 십자가에 근거하여 심판하심으로 확실한 승리를 이루셨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제 다시 그 근본적인 실체를 밝히시고 교회요 성도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20장에서 보여준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1절). “또 내가 보매”라는 표현 역시 장면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미 앞에서 보여주신 말씀이 이러하다.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계 9:1-3)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란 하늘까지 높아진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향해 맞서 대적하는 존재를 표현한 것이다. 즉 십자가를 대적하고 자기 의를 내세우는 존재이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율법으로 자기 의를 챙기려고 하는 자들이다. 성전을 중심으로 율법적 행위로 하늘의 존재요 의가 된 것처럼 사는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취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열쇠와 큰 쇠사슬로 무저갱를 잠근다.
“무저갱”이란 ‘아뷔쏘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라는 말인데 용, 짐승, 거짓 선지자의 거처로 표현되었다. 용, 짐승, 거짓 선지자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비진리이고 다른 복음이며 다른 예수이다. 즉 땅적 존재가 모이는 곳이나 죄인된 생각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 자칭 유대인이라는 하는 자들을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씀하셨다(2:9, 3:9).
결국 무저갱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에서 나오는 비진리의 생각이나 사상이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율법을 해석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으로 무저갱에 빠뜨렸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복음을 드러내도록 보내심을 받은 자가 열쇠를 가졌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교회에게 무저갱의 열쇠가 주어졌다는 뜻이다.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8-19)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2절).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하늘로부터 받아 내려온 것은 용을 결박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본문이 말씀하는 “천 년 동안”이란 무슨 의미인가? 성경에 기록된 인물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이 ‘므두셀라’이다. 창세기 5:25-27에 의하면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다고 되어 있다. 므두셀라 외에도 900세를 넘게 산 사람이 있지만 천 년을 넘기지는 못하였다.
인간이 천 년의 기간을 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어쩌면 천 년을 산다는 것이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오래 살고 싶은 욕망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천 년 이상의 수명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천 년이라는 인간 수명의 한계를 넘어선 그것이 곧 영생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 인간은 죽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창세기 5장은 아담의 족보를 보여주면서 특이하게 “죽었더라”라는 표현을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즉 죽음의 족보이다. 그 죽음의 족보에서 천 년을 뛰어넘는 자가 없다는 것은 인간이 다 죄인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선악의 지식 나무를 취한 인간은 생명이신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죽은 존재이기에 영원한 생명이란 하나님 편에서 허락하셔야 되는 것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십사만 사천”이 사람 수로 표현할 수 있는 ‘십사만 사천 명’이 아니듯 “천 년 동안”이란 표현도 시간적 의미로 어떤 일정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어이다. 천 년을 시간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시간이란 인간이 자연의 변화에 따라 의식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의식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의 상태를 천 년으로 이해하고 본문을 본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것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라고 ‘천’으로 말씀의 은혜 안에 있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용을 결박한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용과 짐승, 거짓 선지자의 생각과 사상으로 사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하신다는 뜻이다. 용을 무저갱에 가두었다는 것은 십자가 죽음으로 율법을 다 이루었고 온전히 성취하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심으로 광명의 천사로 가장했던 대적자들이 땅적 존재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긴 상태라고 상징적인 묘사를 한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이 십자가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 12:28-29)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 12:31-33)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라는 표현을 단순히 사탄에 대한 것이라고만 생각할 말씀이 아니다. 땅에서 들린다는 것은 바로 십자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내가 임금으로 행세하였다가 쫓겨난다는 것은 무저갱에 던져 넣어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의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진리로 장악되는 은혜를 입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천년왕국’이라는 이론이나 주장을 염두에 두어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십자가 죽음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천 대까지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죽는 죽음을 통해 날마다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3절)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는 말씀은 모순이 아닌가? 문자로 보면 모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연약한 육의 상태에 갇혀 있음을 알라는 것이다. 이 말씀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 초대교회의 상황이다.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29-31)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6-7)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19-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악이 횡행하고 있고 우리는 육을 좇는다. 세상에서는 아직도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환난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졌다면 말씀에 의해 십자가의 길로 끌려가는 은혜 아래 있다. 그렇게 천 년의 상태에서 다음과 같은 하늘이 음성을 듣는 자가 교회요 성도이다.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계 12:10-12)
(20240519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