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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의 고향의식
-우숙자 작품을 중심으로
Ⅰ. 서론
김 민 정(시조시인, 성균관대 문학박사)
여러 학자들이 고향에 대한 정의와 고향상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향이란 ‘태어나고 자란’ 처소적處所的 고향 외에도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고향이라고 볼 수 있는 정신적 뿌리, 정신적 유대감으로의 고향의식이 있다. ‘향수鄕愁란 원래 고향故鄕에 대한 사모思慕이지만, 그 고향故鄕이란 반드시 유형有形임을 요하지는 않는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무형의 정신적 안식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고향세계故鄕世界(Heimwelt)는 모든 인간과 모든 인간 공동체共同體를 둘러싸고 있는 친척 및 이웃 같은 절친한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개인과 공동체에 제각각 다르게 매우 광범위하고, 그러면서도 유한한 것이다. 고향의 의식적이고 형이상학적 측면을 볼 때 그 고향의 본질은 불변不變하고, 또 그것은 영구적永久的인 것이다. 또 그것은 자연적 공간만이 아닌 것이다.’라는 훗설의 정의와 ‘고향은 식량糧食을 공급供給하는 토양土壤이고, 심미적審美的 희열喜悅의 대상이며, 정신적인 뿌리감정(geistiges Wurzelgefühl)’이라고 슈프랑어는 정의한다.
또한 ‘인간의 현존은 고향상실故鄕喪失(Heimatlosigkeit)의 현존이며, 존재망각存在忘却(Seinsvergessenheit)의 현존이다. 고향은 고요하고 위험이 없는 세계지정世界指定에 대한 표현이다. 피투성被投性(Gewofenheit)과 세계내 존재성(In-der-Welt-Sein) 가운데 있는 인간현존은 그 본래성本來性이 비본래성非本來性에 의해 은폐되어 그 본래성을 잃은 상태에 있다. 이런 상태가 故鄕喪失이다. 그리고 고향인 본래성本來性의 회복이야말로 철학자의 과제이고, 또 인간의 근본적인 지향목표指向目標’라고 하이데거는 정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볼노프는 ‘고향은 인격이 태어나고 자라고 또 일반적으로 계속 집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영역이다. 고향은 그에게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등과 같은 가족 내에서의 친밀한 인간관계들과 함께 시작된다. 이 요소 외에 고향은 마을과 같은 공간적인 차원과 또 전통 같은 시간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다.’고 정의하였다. 이것은 고향을 어떤 영역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 혈통 및 가족 중심적으로 접근하는 시도이다. 또한 양현승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돌아갈 수 없는 공간의 가장 일반화된 것은 ‘고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고향이란 일반적으로 ‘태어나서 자란 곳’이라는 피상적 의미에서 현재적 삶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정신의 안식처’이자 시인에게 있어서는 시심의 사유思惟 시공간時空的으로 바뀐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일종의 복고적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이 고향에 대한 향수는 시간과 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양현승에 의하면 이것은 서로 상반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누구나 돌아가고 싶다고 느끼는 고향의 의미가 공간적으로는 회귀가능성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적 의미에서는 절대회귀불가능성으로 인식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숙자 시인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고향의식과는 다르다. 보통은 고향의 공간적 의미의 회귀가능성은 실제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우숙자의 경우는 인위적인 장벽에 막혀 돌아갈 수 없는 경우라서 시간적·공간적으로 모두 회귀불가능하기 때문에 실향의 아픔은 더욱 절실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시조시인 소정小庭 우숙자는 북한 개성을 고향으로 두고 월남한 시인이다. 그는 1984년 <현대시조>지로 등단한 이후 계속 분단된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에 관한 시를 썼다. 1988년 역사적인 올림픽 개최를 대한민국에서 개최하게 됨으로써 당시의 정부는 ‘2차 대전 후 계속되어 온 남북 적대관계와 경쟁 상태가 올림픽까지 지속되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라고 공표함으로써 북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동반관계로 ‘북방 외교정책’으로 통일의지를 표방하여 월북 작가의 해금조치를 단행함으로써 북한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시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를 마음 놓고 쓰고 발표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이전에는 승공, 반공 사상이 철저했던 남한의 이념 때문에 북한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을 동조한다고 생각하거나 사상범으로 몰릴 염려도 있어, 혈육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부끄러운 지난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분단문학에서 통일문학으로 가야할 필연의 과정에서 우리 문단 내부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철저히 정리해야 할 문제가 월북작가들의 전면 해금이라고 강우식은 주장한 바 있다.
우숙자는 아홉 권의 시조집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실향과 이산가족의 아픔과 서러움과 통일의 기원 및 통일에 대한 희망적인 작품을 썼다. 그의 시조집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든 시조들은 한결 같이 실향의 아픔과 통일에의 염원이 주제이다. 그것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보지 못하는 이산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통일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의 시조집을 통하여 나타나는 고향의식을 살펴보고, 고향이 어떻게 반추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Ⅱ. 실향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
그는 우리민족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분단과 통일에 대한 문제를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며 살아온 실향민이다. 6․25 전쟁 당시 여고 6학년이었던 그녀는 고향인 개성을 등지고 떠나 한 많고 고달픈 피난살이를 하였다. 그리워하면서도 가지 못하는 고향 개성에 대한 애환과 어린 날의 추억을 쓴 작품들을 찾아보면 실향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자유시인 중에 구상, 전봉건, 김동규 같은 시인들도 월남하였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들을 썼는데, 특히 북을 고향으로 둔 전봉건 시인은 『북의 고향』서문에서 타의에 의해 가지 못하는 고향을 가질 때 그리움과 생각이 더욱 크고 간절함을 시사하기도 했다. 우숙자 시조를 살펴보자.
비늘처럼 돋아나는 향수의 아픔이여
한 쌍의 떼기러기 북녘으로 날아가는
저 하늘 우러러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불붙는 심혼 속에 솟구치는 그리움이
잠들어 누워있는 불사의 정맥으로
피 맺힌 가슴을 풀어 열풍으로 떠도는가
끝없이 공전하는 눈물 흘린 시간 위로
내 정말 참으면서 오래도록 살아야지
신이여 돌아갈 수 있는 내 뜨락을 주옵소서. -「고향 생각」전문
부칠 데 없는 시를 / 매일 밤 썼습니다.
동여맨 깊은 상처 형벌처럼 가혹하여
이 목숨 / 고백하기에 / 긴긴 밤을 지샜지요.-「세모의 밤-갈 수 없는 고향」첫째 수
속절없는 세월 속에 / 벽화처럼 걸린 침묵
이렇듯 남아있는 뜨거운 아픔이고
세모에 / 우는 이 밤을 / 어디에다 부치리까 -「세모의 밤-갈 수 없는 고향」셋째 수
「고향 생각」처럼 인간은 연어의 회귀와도 같이 동물적 본능으로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 고향이란 ‘태어나고 자란’ 처소적 고향 외에도 형이상학적 고향이라고 볼 수 있는 정신적 뿌리, 정신적 유대감으로의 고향의식이 있다. ‘향수란 원래 고향에 대한 사모이지만, 그 고향이란 반드시 유형임을 요하지는 않는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무형의 정신적 안식처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가고 싶은 의지가 있고, 시간과 여비가 있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둔 사람에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으며 안타까운 마음 또한 더욱 짙을 수밖에 없다. 북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비늘처럼 돋아나’고 고향을 그리다가 ‘피 맺힌 가슴’이 되고, 끝내 화자는 ‘신이여 돌아갈 수 있는 내 뜨락을 주옵소서’라고 절규하게 된다.
「세모의 밤」은 부제가 ‘갈 수 없는 고향’이다. 평소에도 그리운 것이 고향인데 부모·형제·친척을 만나고 명절을 쇠러 가는 세모일 때 만나볼 수 없는 부모·형제·친척과 갈 수 없는 고향을 둔 서러움은 더할 것이다. 실향민의 서러움은 ‘부칠 데 없는 시’를 밤마다 쓰는 것이다. 실은 ‘부칠 데’가 없는 것이 아니고 부치지를 못하는 것이다. 고향이라는 공간은 있으나 바라보고 그리워만 하였지 갈 수 없는 땅이 바로 휴전선 이북의 북한이다. 때문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동여맨 깊은 상처 형벌처럼 가혹’한 세월로 표출되고 있으며, 또한 그 고향은 언제쯤 갈 수 있으리라는 ‘기약 없는 발걸음’이고 ‘벽화처럼 걸린 침묵’인 것이다. 70여 년간의 깊은 상처, 세계에서 아직도 휴전선을 간직한 유일한 나라의 아픔, 이산가족을 슬퍼하는 민족의 아픔이 절절하게 나타나는 작품이다.
얼마를 더 참아야 / 눈물 같은 고향일까
하늘을 깎아내는 목 메인 종이학의
그 슬픔 / 내가 될 수 없는 / 아! 사랑의 內在律
죽으면 잊어질까 / 겹겹이 멍든 사연
목숨 같은 망향 속에 흔들리는 시간들이
천 갈래 / 여울목에서 / 갯벌처럼 누웠다. -「고향」 전문
망향의 그리움이 짙게 나타나는 시이다. 얼마나 많이 참아온 세월인가. 인생의 4/5쯤을 인내와 기다림으로 보냈다. 한국전쟁 중에 잠시의 피난으로 생각하며 떠나왔던 고향땅을 70여 년 동안 밟지 못한 아픔의 세월이 된 것이다. 그 아픔은 곧 ‘하늘을 깎아내는 목 메인 종이학’으로 표현되어 날지 못하는 종이학에 비유하고 있으며 그 슬픔조차 내가 될 수 없다고 하며 슬픔보다 더 깊이 자리한 고향에의 사랑을 ‘사랑의 내재율’로 표현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목숨 같은 망향 속에’라고 하여 목숨과 망향을 동격으로 보고 있다. 이 시조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곧 목숨처럼 간절하고 절실한 것이다. ‘죽으면 잊어질까/ 겹겹이 멍든 사연’이라고 하여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 볼 수 있으며, 고향에 대한 짙은 향수가 나타나는 부분이다. 그러한 처소적 공간에 대한 그리움의 시간은 마음의 천 갈래 여울목, 곧 모든 생각의 끝자락에 갯벌처럼 질펀하게 누워있다.
點으로 흐려지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추럭에 흔들리며 달빛 안고 떠나온 길
귀촉도 슬피우는 밤 이 한이여 민들레여 -「故鄕으로 가렵니다」첫째 수
숨 닳던 그리움을 낙엽처럼 굴리누나
허공에 쏟아 놓은 하많은 이야기가
언 가슴 녹인 노래여 긴 銀河의 울음이여 -「故鄕으로 가렵니다」셋째 수
물빛 염원으로 익어가는 祖國이여
포탄이 울고 간 날 온 밤을 서성이던
기억의 모롱이에서 望夫石은 말이 없다 -「故鄕으로 가렵니다」 다섯째 수
첫째 수에서는 어머니와 이별하던 날의 정경이 나타난다. 어머니와 이별하여 아득히 점처럼 멀어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뒤로하며 트럭을 타고 피난하던 날의 모습이다. 달빛을 안고 떠나오던 그 밤에 대한 기억이다. ‘귀촉도(歸蜀道)’란 두견이를 말함인데,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귀촉의 의미이다. ‘귀촉도 슬피우는 밤’에서 ‘귀촉도’란 고향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화자자신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셋째 수에서는 ‘숨 닳던 그리움’이란 고향에 가 닿는 마음은 언제나 숨차다는 의미이다. 숨이 닳듯 자주 잠기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러나 그 그리움을 끝내 허무하게 낙엽처럼 굴리고 있다.
경기도 개성은 우숙자 시인이 태어난 곳이다. 판문점에서 임진강 철교를 지나 자유의 집 전망대에 오르면 꿈에도 잊지 못하는 고향, 송악산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우시인은 황진이의 숨결이 살아있는 개성에서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육남매의 맏딸로 태어났다. 제법 많은 토지를 소유했던, 소위 지주의 다복한 딸로, 온실의 화초처럼 남달리 고이 자랐다. 개성고녀 6학년, 6·25동란으로 삼일 아니면 일주일이면 족하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울면서 달 밝은 밤 홀로 트럭을 타고 고향을 떠났다.
이 작품에서의 고향은 ‘고향세계(Heimwelt)는 모든 인간과 모든 인간 공동체를 둘러싸고 있는 친척 및 이웃 같은 절친한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의 영역이다.’는 훗설의 정의와 ‘식량은 양식을 공급하는 통양이고, 심미적 희열의 대상이며, 정신적인 뿌리감정(geistiges Wurzelgefühl)’이라고 정의한 슈프랑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내 가슴 젖어있는 失鄕民의 슬픔이여
썰렁히 누워있는 由緖 깊은 滿月臺는
山 같은 고요로움이 그때처럼 낯익다 -「내 고향 만월대」 첫째 수
한적한 聖域에는 愛隣의 세월들이
칼바람 울음으로 어둠을 끌어안고
五百年 기나긴 꿈이 이끼로나 돋는가 -「내 고향 만월대」 둘째 수
허물어진 돌계단을 조심스레 오르라면
송악산 이마위로 산새들이 날아들고
벼랑 끝 넝쿨딸기가 오순도순 날 부르던… -「내 고향 만월대」 셋째 수
오늘은 들녘마다 하얀 눈이 나리는데
내 노래 나직나직 묻혀있는 山川이여
한목숨 꽃으로 피던 가고 싶은 고향이여. -「내 고향 만월대」여섯째 수
늘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젖어 있는 실향민, 그 고향의 유서 깊은 만월대의 산같이 침묵하는 그 모습이 예전처럼 낯이 익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의 화자는 고향의 유명한 만월대와 그 주변의 정겹던 고향에서의 모습들을 회상하며 그리움에 젖고 있다. 일상적으로 인간은 만나지 못하거나, 떨어져 있는 거리감이 있을 때 그리움을 갖는다. 어렸을 때 보던 만월대, 송악산의 산새들, 넝쿨딸기, 과수원의 능금 등등 어린 날의 향수가 배어있는 소재들을 사용하여 그리움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 그리움은 여섯 째 수의 ‘오늘은 들녘마다 하얀 눈이 나리는데 / 내 노래 나직나직 묻혀있는 山川이여 / 한목숨 꽃으로 피던 가고 싶은 고향이여.’에서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 원인과 그 그리움의 절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휴전선 이북의 갈 수 없는 공간인 만월대와 시간적으로도 갈 수 없는 과거로 나타나 공간적회귀와 시간적회귀가 둘 다 불가능하여 이 작품에서의 그리움의 강도는 그만큼 더 높다. 더구나 그리움을 자아내는 요소 중 하나인 눈이 오는 날, 보고 싶은 사람과 가고 싶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순간은 미친 전설처럼 / 半世紀가 흐릅니다
고작 열흘이면 족하다 하시며 내 손을 잡고 달래시던 어머니
그날의 / 女高時節이 / 백발 속에 자랍니다
-「화갑송-임신년의 빗장을 열면서」 넷째 수
나그네 가는 길이 / 구름되어 흐릅니다
빛나는 저 太陽도 우리들의 것입니다
松岳山 / 고운 바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갑송-임신년의 빗장을 열면서」일곱째 수
‘열흘이면 족하리’ 말씀하며 딸을 달래어 피난길을 보내던 어머니, 어느 덧 반세기가 지나 그때의 여고생은 희끗희끗한 백발이 되어 회갑을 맞아 어머니를 회억하고 있다. 구름으로, 태양으로, 바람으로라도 고향에 가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다.
침묵 보다 더 크나큰 / 진실은 없으리라
아주 작은 간이역에 마음 주는 초록 불빛
이별이 / 없는 고향으로 / 혼불 하나 세운다
실향의 긴 긴 눈물 / 내 영혼에 불 당기면
오늘을 간직하는 뜨거운 여정 위로
묻어둔 노래였었나 / 아! 세월의 구름다리 -「나그네-그리움」전문
가지 못한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은 ‘긴 긴 눈물’로 나타난다. 가슴에 묻어둔 고향, 가슴에 묻어둔 노래, 자나 깨나 그리운 고향은 우리 민족이 즐겨 부르는 아리랑처럼 가슴속에 늘 괴어 있다. 이별 없는 고향, 언제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고향을 화자는 꿈꾸고 있다. ‘침묵보다 더 크나큰 진실은 없으리라’ 아주 많이 보고 싶을 때, 아주 많이 그리울 때, 아주 깊이 아플 때 우리는 차라리 침묵한다. 늘 혼불로 깨어있는 고향이다.
어린 날의 추억과 꿈이 있는 곳, 고향은 늘 마음의 안식처이자 뿌리이다. 실향민에게 있어 그 고향은 갈 수 없기에 더 그립고 더욱 간절한 것이다. 그 갈 수 없는 공간적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나타낸 시조들이 위 시조들이다. 이렇듯 우숙자 시인의 시집에서 나타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곧 공간적으로 회귀불가능한 고향 상실에서 오는 아픔과 시간적으로 회귀불가능한 어린 날에 대한 향수로 나타난다.
민족의 분단, 국토의 분단은 우숙자시인 한 개인의 슬픔이나 한이 아닌 우리 민족 전체의 아픔이고 한이다. 그가 유독 그러한 시조를 많이 쓰는 까닭은 사춘기 소녀시절에 그리운 가족을 북한에 두고 고향을 떠나왔기 때문이다. 평생의 한으로, 그리움으로 남아 이렇듯 가슴 아픈 시조들을 토해내고 있다. 그의 고향의식에는 민족 분단의 아픔을 대변하는 절실한 실향의 아픔과 어린 날의 향수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Ⅲ. 이산가족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
한 사람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조국의 현실, 분단의 아픔 속에 탄식과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오며 자기자신을 가다듬고 있다. 시나 시조는 말이 아니라 암시이며 상징의 기법으로 이루어지는 고도의 언어이다.
다시 와서 울고 있네 / 무슨 사연 저리 깊어
엄마 찾아 삼만리 고향 찾아 삼만리
망향의 / 그리움 속에 / 나도 나도 슬퍼요 -「매미」둘째 수
분단의 세월 속에서 통한의 아픔을 노래하는 그는 한 사물을 바라보는 속에서도 갈 수 없는 고향과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을 생각한다. 하나의 매미울음을 들으면서도 그는 고향을 생각하고 있다. ‘엄마 찾아 삼만리 고향 찾아 삼만리’로 매미가 헤매며 운다고 생각하며 ‘망향의 그리움 속에 나도 나도 슬퍼요’라고 하여 매미와 시적화자가 동격이 되어 있다. 동시조처럼 보이는 이 작품에서도 이산가족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이 짙게 드러나고 있다.
눈물로 살아온 때묻은 세월들이
고목의 빛깔로 바래져 가도
어머니 그 고운 모습만은 내 가슴에 살아 있습니다
-「북녘땅의 어머니를 그립니다 - KBS 6·25특집」첫째 수
삼십 팔년간 나 홀로 끝도 없는 생각 속에
어두운 기억 저편 버릇처럼 기다리면
아련히 북창 너머로 떠오르는 얼굴이여
-「북녘땅의 어머니를 그립니다 - KBS 6·25특집」둘째 수
어머니! 어머니는 진정 살아 계신가요
멍이 든 세월자락 못이 박힌 그리움에
살아 온 그 무게만큼 목을 느려 부릅니다
-「북녘땅의 어머니를 그립니다 - KBS 6·25특집」넷째 수
어린 동생 품에 안고 나를 떠나보내실 때
행여나 잘못 될까 치마폭을 적시더니
한 맺힌 그 가슴 안을 무엇으로 메웠나요
-「북녘땅의 어머니를 그립니다 - KBS 6·25특집」다섯째 수
도도하게 밀려오는 남과 북의 입김으로
흐르는 구름마저 잠시 멈춘 이 아침에
심지 끝 타는 그리움을 시로 빚어 띄웁니다.
-「북녘땅의 어머니를 그립니다 - KBS 6·25특집」일곱째 수
고향에서 헤어진 어머니, ‘어린 동생 품에 안고 나를 떠나보내실 때 / 행여나 잘못될까 치마폭을 적시더니 / 한 맺힌 그 가슴 안을 무엇으로 메웠나요’ 특별한 상징이나 비유는 없어도 구구절절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과 실향의 아픔과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는 정이 넘쳐 독자의 가슴도 눈물로 적시는 작품이다. 한 개인을 넘어 이천만 이산가족의 아픔, 우리 민족의 아픔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칠흑의 밤이 울던 피난길 仁川에서
인연을 끊어놓고 가버린 사랑이여
三界의 어디에선가 홀로 있을 영혼아
통곡 속에 젖은 달빛 저승으로 길 밝히고
참새떼 몰려들어 슬피도 우는 새벽
극락의 하늘 문으로 아련히도 보이던 너
산사의 종소리에 포개지는 바람소리
첩첩한 계곡으로 흐느끼는 긴긴 밤이
어두운 모롱이에서 돌아설 줄 모른다.
-「동생의 죽음-피난길 仁川에서 “十三才”의 동생을 잃음」전문
피난길에서의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쓴 이 작품은 그 애절함이 신라의 제망매가를 생각나게 한다. 피난길에서 생명을 잃거나, 헤어진 가족이 한 둘이 아닐 것이며 그러한 한국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엄마! 다리 아파? 아니다 괜찮다
뒤돌아 보며 늙은 어미 걱정한다
길 잃은 후조 가슴에 피어나는 꿈인가
-「아름다운 모녀-노상에서 지나가는 모녀를 보며」첫째 수
離散의 설운 목숨 엉겅퀴처럼 살아왔네
始原의 血脈들이 정화수에 비쳐오고
아! 나는 황망한 구름이 되어 송악산에 머문다
-「아름다운 모녀-노상에서 지나가는 모녀를 보며」셋째 수
노상에서의 다정한 모녀의 모습으로 연상되는 고향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다정한 모녀의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아프고 어머니 비슷한 동년배만 보아도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를 그리워한 세월을 ‘離散의 설운 목숨 엉겅퀴처럼 살아왔네’라고 하여 엉겅퀴가시처럼 아프게 가슴을 찔리며 살아온 나날을 시인은 이 작품에서 토로하고 있다.
목마른 고개에서 / 몸으로 우는 바다
모자(母子)의 깊은 유열(遺烈) 달 없는 고향처럼
이별은 / 화인(火印)이 되어 / 이국땅을 적시는가 -「만남」둘째 수
불연의 이 그리움 / 옷자락 끌며 끌며
북으로 가는 어매, 남으로 오는 아들
세계는 / 국제화 시대라고 아니 / 개방화라 하지 마오 -「만남」넷째 수
남한도 아닌 북한도 아닌 제3국 땅에서 90세가 넘은 어머니와 60세가 넘은 아들이 만나는 광경을 보고 쓴 작품이다. 한 맺힌 가슴은 ‘몸으로 우는 바다’로 표현되고 있다. 이산가족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해 세계가 국제화 시대고, 개방화 시대라고 하지 말라고 시인은 절규한다. 이산가족의 아픔과 한탄을 대변하는 시조 작품이다.
원한의 덩어리를 / 묻어놓고 돌아선다
눈물로 뼈를 깎는 서러운 형장이여
무심한 / 구름밭 속으로 / 당신 얼굴 그리며……
-「마카오에서 - 중국 국경지대를 바라보며」첫째 수
지척에 고향을 두고도 갈 수 없는, 지척에 그리운 사람을 두고도 갈수 없는 마음이 얼마나 애타는지, 얼마나 아픈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고향이 있는 쪽, 어머니가 계시는 쪽으로 늘 가고 있는 마음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머루알 익어가는 초록빛 고향의 律
하이얀 가슴들이 해조음에 실려가네
강 건너 친정집에도 해는 뜨고 있을까. -「分界線에 서서」다섯 째 수
‘강 건너 친정집에도 해는 뜨고 있을까’라고 시인은 분계선에 서서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슬픔이 시인의 가슴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작품이다.
온 땅이 꺼지도록 긴 한숨은 늘어나고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 동생 보고 싶어
오작교 난간에 서서 징검다리 바라본다 -「고향 방문단을 지켜보며」셋째 수
염주알 굴리면서 하얗게 지새는 밤
다시는 울지 않을 苦待하는 內室에서
뜨거운 이 祖國愛로 달래보는 향수여. -「고향 방문단을 지켜보며」넷째 수
이 시에서도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 동생 보고 싶어’ 염주알 굴리면서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나타난다. 고향 방문단을 지켜보는 시인의 마음은 시인의 고향과 어머니와 동생에게로 가고 있다.
기도보다 더욱 깊게 / 물이 드는 설날아침
실향의 아픈 가슴 임종처럼 펼쳐보면
덧없는 / 세월의 잔에 / 눈물만이 고인다 -「일기」둘째 수
덧없는 세월의 잔에 눈물만이 고이는 시인, 살아온 세월은 ‘비우고 비워내도 차오르는 두레박’처럼 고여오는 핏줄에 대한 그리움과 그 그리움을 풀지 못하고 안으로 피멍드는 가슴엔 눈물만 고이는 시인의 심정이 나타나고 있다. 시인의 의지만으로 갈 수 없는 고향, 분단의 이데올로기 속에 세월만 흐르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이상의 작품에서는 이산가족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향은 인격이 태어나고 자라고 또 일반적으로 계속 집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영역이다. 고향은 그에게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등과 같은 가족내에서의 친밀한 인간관계들과 함께 시작된다.’는 볼노프의 고향에 대한 정의 개념 속에서, 특히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등과 같은 가족내에서의 친밀한 인간관계들이 시작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의 고향의식, 즉 이산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의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Ⅳ. 통일에 대한 염원 및 희망
강우식은 그의 논문 『한국 분단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분단문학은 우리의 분단된 현실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분단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산적한 국내외적인 여러 요인들의 해결과 통일의지가 아닌 단순한 분단된 슬픔을 노래한 분단문학이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가자 백두산으로! 오라 한라산으로!>라는 구호아래 제6공화국 이후 한반도의 통일정책은 확연히 달라지고 있고, 정부·민간 차원에서도 북방 외교정책, 통일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時代를 안고 가는 / 失鄕民의 아픔이여
이제는 神도 놀랜 만삭의 몸부림을
향수의 / 닻을 내리고 / 임진강을 건느리 -「고향 일기」넷째 수
통일의 푸른 날을 / 손놓아 기다린다
목 놓아 불러보는 너와 나의 목소리
지척인 / 고향 산천이/ 새벽처럼 밝아온다 -「고향 일기」다섯째 수
‘이제는 신도 놀랜 만삭의 몸부림’과 ‘통일의 푸른 날을/ 손 놓아 기다린다’라는 표현에서 시인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알 수 있다. 반세기가 지나고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한반도, 이제는 통일이 와서 그리운 이산가족도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인은 ‘지척인 고향 산천이 새벽처럼 밝아온다’고 통일이 오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잠시 섰다, 가는 자리 / 길은 너무 멀었었다
회한(悔恨)의 굽이굽이 바람도 비껴섰다
분단은 / 형벌이었다 / 새벽종이 울린다
-「두 사람 -남북 정상 회담에 부쳐」, 첫째 수
수고로운 당신들의 / 넉넉한 걸음걸음
산하도 푸르러라, 하늘도 푸르러라
통일의 / 저 기도소리 / 온 천지를 메웁니다
-「두 사람 -남북 정상 회담에 부쳐」, 넷째 수
두 사람의 정상이 2000년 6월 15일 만났다. 잠시의 회담이 오갔고, 이 땅에 통일의 싹이 조금씩 움트기 시작했다. 시인은 그것을 ‘새벽종이 울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잠시 섰다 가는 자리는 두 정상들의 짧은 만남일 수도 있고, 우리 인생을 그렇게 비유한 것일 수도 있다. 두 정상의 작은 행동으로 ‘산하도 푸르러라, 하늘도 푸르러라 // 통일의 저 기도소리 / 온 천지를 메웁니다.’고 시인은 통일의 꿈에 부풀어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큰 만큼 작은 움직임 한 번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내 나라의 이곳저곳 / 왜 갈수가 없단 말가
가꿔야 할 모반의 땅 얼어붙은 한반도여
바람아 / 문을 열어 다오 / 목이 타는 조국인데… -「임진각 전망대에서」전문
누가 막아 놓았을까 / 소떼가 연 판문점 길
통일대교 건느시는 정회장님의 높은 방북
한줄기 / 분단의 벽을 뚫은 / 소떼들의 행열이여
-「염원 담은 소때 북한 간다」첫째 수
“소 한 마리가 천 마리가 되어 / 고향에 빚 갚으로
갑니다” “음메”“우어엉” 하얗게 타는 염원
통일을 / 앞 당겨다오, / 새 지평을 열어다오
-「염원 담은 소때 북한 간다」셋째 수
뱃길로 허물었다 / 분단의 긴 장벽을
동해를 가르면서 밤새 달려온 금강호여
아직도 / 산 그림자 짙은 / 어둠 쌓인 장전항
-「새로운 바람소리-금강산 가는 길」, 첫째 수
「임진각 전망대에서」는 내 나라 땅인데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은 시인으로 하여금 절규하게 한다. 임진각 전망대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시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염원 담은 소때 북한 간다」에서는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는 정부차원에서 하지 못하는 통일에 대한 길을 트기 위해, 그리고 경제적인 교류를 위해 민간 기업가인 정주영씨가 소떼를 몰고 그 길을 넘어간다. 그 시간은 우리 민족에게, 그리고 이산가족에게 통일의 희망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은 ‘하얗게 타는 염원 / 통일을 / 앞 당겨다오, / 새 지평을 열어다오’라고 염원하고 있다. 「새로운 바람소리 - 금강산 가는 길」은 정주영 회장이 소를 몰고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관광길을 트고, 금강산 여행을 갈 수 있게 된 후의 작품이다. 반백년 동안 기다려왔던 북행길을 가면서 그는 통일에의 가능성과 통일에의 염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 산 그림자 짙은 / 어둠 쌓인 장전항’이라고 하여 아직 밝은 아침이 찾아오기에는 기다림이 있어야함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
문화부 출범이후 / 처음으로 운행하는
우정의 문화열차 지역간을 좁히누나
환희의 / 통일열차로 / 元山까지 달렸으면… -「우정의 문화열차를 타고」, 여섯째 수
서로의 문화예술 / 형제처럼 사랑하리
자랑스런 “통일문화” / 바로잡을 시점에서
고조된 / 이 쓰라림을 / 부끄럽지 않게 하자 -「통일 연수원에서」, 넷째 수
작품「우정의 문화열차를 타고」에서 시인의 염원은 ‘환희의 / 통일열차로 / 元山까지 달렸으면…’하는 것이다. ‘우정의 문화열차’ 문화예술단원이 펼치는 공연을 보며 고향을 생각하고, 통일을 생각한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통일을 하여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기를 바라는 시인의 염원이 드러난 작품이다. 또 「통일 연수원에서」에서는 통일을 준비하는 시인의 자세가 나타난다. 셋째 수에서 ‘우리는 단일민족 / 떳떳한 국민이다’라는 인식이며, 서로의 문화예술을 형제처럼 사랑하겠다는 시인의 의지이다. 그리하여 서로의 문화를 존중해 주며 ‘통일문화’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보여줌으로써 그 동안의 분단된 세월, 그 쓰라림을 부끄럽지 않게 하자는 의지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 속에 갇혀 있는 / 이 나라 백성들아
통일의 지름길이 어디쯤 오고 있나
물방아 / 돌아가는 소리, / 명경처럼 나리는 비 -「비 오는 날」둘째 수
힘들고 무거웠던 / 자존의 구름다리
언젠가는 돌아가리 무지개 뜨는 언덕
사향의 / 기다림 안고 / 거듭나는 오늘이여 -「사랑․1 - 기다림」둘째 수
위 「비 오는 날」에서는 ‘통일의 지름길이 어디쯤 오고 있나’를 가늠하며 통일을 기다리고 있다. 통일을 위한 일들이 각계각층에서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물방아 돌아가는 소리’로 상징하고 있다. 「사랑․1 - 기다림」에서는 ‘언젠가는 돌아가리 무지개 뜨는 언덕’은 바로 통일의 날이 오면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의지이며, 통일에 대한 강렬한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고향의식 속에는 분단의 현실에서 통일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염원과 통일에 대한 희망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다음의 이인석의 「다리」라는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다리를 놓자 / 다리를 놓아야 한다 / 우리가 사는 일은 다리를 놓아야 한다 / 너와 나의 마음에 / 다리를 놓자 / 휴전선에 / 서울과 평양에 / 가로 세로 거미줄 얽히듯 / 이렇게 다리를 놓아 나가면 / 언젠가는 하나가 되리 / 주의가 공간을 갈라놓을 수 있나 / 가로막는 권력의 담장을 쳐부셔라 / 아무리 거룩한 말씀을 휘둘러도 / 피와 살을 갈라놓는 이유일 수는 없다
Ⅴ. 결론
이상으로 우숙자 시인의 작품을 통해 실향민의 고향의식을 찾아보았다. 즉 그의 고향의식 속에는 첫째는 실향의 아픔과 어린 날에 대한 향수이며, 둘째는 이산가족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이며, 셋째는 통일에 대한 염원과 희망이다.
실향민으로서 고향과 이산가족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과 통일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우숙자 시인의 시가 단순히 분단문학의 하나로서 ‘분단문학’에 머물러 있어서는 가치가 반감된다. 강우식 교수의 말처럼 ‘통일 문제는 그 누구도 희망을 저버려서는 안 될 절대명제이고 또 우리 모두가 통일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 회피는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발전하는 역사 속에서 통일을 향한, 통일문학으로서의 의의를 지닐 때만이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며 우리 민족의 앞날을 밝게 할 것이다.
그의 9권 시조집을 통한 ‘실향민의 고향의식’을 편의상 위처럼 세 가지로 분류해 보았지만 결국 그가 쓴 실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산가족에 대한 아픔의 시들은 통일만이 그 그리움과 아픔을 치유해 줄 수 있다고 볼 때, 그의 모든 작품 속에는 통일을 열망하는 마음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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