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 - 不滿]
‘불만’이란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나타내는 말로서 ‘만족’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만족(滿足)’하다 할 때의 만(滿)은 ‘가득 차다’거나 ‘풍족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만(滿)’자는 ‘水’(물 수)와 ‘㒼’(평평할 만)이 결합한 글자로서 ‘㒼’자는 물이 가득 찬 두 개의 항아리를 끈으로 묶어 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혹자들은 ‘만족’의 의미를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을 때, 멈추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뜻으로서 욕심을 최소화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아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자의적인 해석일 뿐, 만족이라는 단어는 철학적 용어이기보다는 의학적 용어에 가깝다.
우리 몸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신체 기관은 발이다. 심장에서 만들어진 혈액이 발끝까지 가득 채워졌을 때의 모습, 곧 혈액의 순환 욕구가 발끝까지 충분히 전해진 상태를 일러 ‘만족’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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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申仁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의 출처에 관한 문헌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과거 위인전을 펴내는 과정에서 출판사에서 임의로 작명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사임당’은 당호이다. 즉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스승 삼겠다는 의미에서 ‘사임(師任)’을 자신의 당호로 삼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고액화폐인 오만 원 권에는 신사임당의 초상화가 실려 있다. 그녀는 우리에게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녀가 아들 이율곡을 키워낸 ‘현모’라는 점은 수긍할 수 있지만, 그의 남편 이원수에게 ‘양처’였다는 점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오만 원권 화폐에 굳이 왜 신사임당을 선정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내게 ‘불만’으로 존재한다. 유명세로 치자면 ‘허난설헌’도 있고, 여성 몫으로 치자면 ‘유관순’ 열사도 있는데 말이다.
‘조충도’를 비롯한 그의 예술사적 업적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국수주의적 안목을 배제하고 세계사적 안목으로 넓게 보자면 동시대에 르네상스의 문예 부흥을 이루었던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모나리자’, ‘해부도’ 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피에타’, ‘다비드상’ 등의 작품에 비견해 본다면 감히 천재 화가 운운하는 소리를 함부로 낼 수는 없겠다 싶은 것이 나의 주관적 평론이다.
덧붙여 논하자면 우리나라 화폐의 모델에는 두 명의 성리학자가 있다. 두 분 모두 대단히 뛰어난 대학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학문적 업적을 놓고 중국의 경우처럼 ‘주자학’이니 ‘양명학’이니 하는 독립적 학명으로서, ‘율곡학’이니 ‘퇴계학’이니 하는 학술적 칭호를 사용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일이다. 그들은 모두 주자의 아류로서, 성리학적 한계를 넘어선 독자적 사상이나 새로운 학문적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조선의 성리학자를 두 명씩이나 나라를 대표하는 화폐의 모델로 삼은 까닭에 대해서는 매우 의문스럽기 짝이 없다. 가문의 사례로 보아도 율곡과 이순신은 덕수 이씨요, 퇴계는 진성 이씨이며, 세종은 전주 이씨이다. 다른 성씨로는 유일한 여성인 신사임당이 평산 신씨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인물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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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모에 나는 아내와 함께 ‘영웅’이라는 영화를 봤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라는 예술 장르에 문외한이니 감히 영화에 대한 감상평은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안중근’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31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 분이다. 그러나 나의 가슴에, 민족의 정신에, 역사의 현장에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은 영원한 구국의 영웅으로 살아있다.
나는 민족의 영웅 ‘안중근’에게서 내 삶의 존재에 대한 근원을 가능하게 한 무한한 빚이 있다. ‘율곡’도 ‘퇴계’도 ‘사임당’도 존경할만한 문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내가 그들에게 목숨을 담보할 만한 빚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들을 국가를 대표할만한 민족사적 영웅이라 하기에도 여전히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화폐는 교환의 매개물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필수적인 경제 활동의 징표이다. 우리나라 최고액권 화폐의 모델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은 여성 화가로서의 신사임당보다는 마땅히 민족사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가 선정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있어 가장 많은 서훈자가 나왔다. 건국훈장 15개를 포함하여 약 40여 명의 서훈자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안중근 의사의 가족에게 갚기 어려운 빚이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안중근을 조사했던 일본 검사의 말이다.
“일본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안중근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
또한 중국의 속담이 된 말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다.
“혁명가가 되려거든 손문처럼 되고, 대장부가 되려거든 안중근처럼 되라.”
그리고 루쉰(魯迅)의 스승이었던 중국의 석학 장타이옌(章太炎)은 안중근을 이렇게 평하였다.
“안중근은 조선의 안중근, 아시아의 안중근이 아니라, 세계의 안중근이다.”
이 위대한 영웅뿐만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한 역사적 위인 어떤 사람도 화폐의 인물로 선정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나는 매우 분개한다. 돈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정신사적 가치가 있다면 우리의 역사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한 위대한 영웅의 ‘사생취의(捨生取義)’ 정신일 것이다. 영웅의 초상을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시장경제의 가장 중요한 매개수단인 화폐의 모델로 삼아 존경의 의미를 담는 것은, 살아서 빚진 자들이 해야 할 지극히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여전히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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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님이 옥중의 사형수 아들에게 보낸 편지 전문이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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霞田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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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穗 ;
단지 혈맹 동지 - 12명
안중근, 김기룡, 강순기, 정원주, 박봉석, 류치홍, 조순응, 황병길, 백규상, 김백춘, 김천화, 강창두
餘滴 ;
안중근 의사 의거일 ;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일 ; 1910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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