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그리며
박영덕
옛 선비들은 동절기가 오면 81송이의 백매화(白梅花)를 그려 벽에 붙여 두었다. 그리고는 동지(冬至) 이튿날부터 한 송이씩 붉게 칠해 갔는데 마지막 꽃잎이 붉게 물들면, 때는 바야흐로 경칩과 춘분의 중간쯤에 이르렀다. 이 무렵 비로소 구구소한도를 떼어 내고 창문을 여는데, 뜰엔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매화가 피어 있었다. 난방도 식량도 어렵던 시절의 소한 법이지만, 희망이라는 꿈을 잃지 않으려는 그 시절 선비들의 지혜이며 낭만적 여유이고 기다림의 미학이지 않은가.
그때 그려지는 매화가 왜 81인가는 구구단을 외워 보면 눈치를 챌 수 있다. 양기(陽氣)를 뜻하는 홀수에서 가장 큰 수는 아홉수다. 아홉에 아홉을 곱하면 81수, 동지부터 9일마다 점차 추위가 누그러져 9번째, 즉 81일이 되는 날에는 추위가 한결 풀리고 봄이 어느새 찾아왔으리라.
겨울에 구구소한도를 그리는 풍습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이라 한다. 여러 가지 화법이 있으나 그중 선비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매화도(梅花圖)였다. 매화는 고상한 절개를 지녔다 하여 예부터 사군자 중 으뜸으로 쳤다. 또 동토에 뿌리를 내리고 풍설을 이겨내면서 꽃을 피우니 온갖 역경과 고난을 극복해 온 우리 민족의 역사에 비견되기도 한다.
매화는 다른 꽃보다 앞서 꽃을 피운다. 또한 홀로 피고 그 향기도 요란하지 않다. 암향부동(暗香浮動), 향과 풍취가 있는 듯 없는 듯 아련하고 달그림자처럼 여여하며 어렴풋하다. 그래서 문인화의 매화는 곧잘 보름달과 함께 피어 있다. 퇴계 이황은 절우사(節友社) 뜰에 매화를 심어 놓고 이른 봄 추운 데서 매화와 대화하기를 즐겼다. 공교롭게도 매화가 피는 섣달 초순에 세상을 떴는데 돌아가시던 날, 기르던 분매에 물을 주라고 당부한 게 유언이었다지 않은가.
우리 선비들의 매화 사랑은 앉아서 매화를 그리고 봄을 기다렸던 것만은 아니다. 겨울 산골짝에 피어 있을 설중매(雪中梅)를 찾아 떨치고 집을 나서기도 했다. 그것을 심매(心梅) 또는 탐매행(探梅行)이라 불렀다. 한 송이 꽃을 만나기 위해 천릿길을 찾아 나서는 탐매 정신은 의(義)와 진리(眞理)를 찾는 치열한 미의식이자 선비정신이 아니고 무엇이랴.
오늘날 우리는 육신의 추위보다 마음의 추위를 더 타고 있다. 춥다고 투덜대고 더 따뜻한 털옷이 없음을 불평한다. 그런 곤고한 삶터를 불편해하며 주위를 탓하고 위정자들을 비난한다. 기다림의 여유를 지니면 언젠가는 봄이 온다는 꿈 대신 성급하게 불평만을 쏟아놓는다. 그러니 몸보다 마음이 더 추워질 수밖에 없질 않겠는가. 어느 시대건 현재의 삶은 늘 그늘지고 춥게 마련이다. 바라는 것은 과거나 미래에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은 본디 단단히 준비해서 맞이해야만 하는 힘든 계절이 아니던가.
우리 이제 저마다 창문에 매화를 그려 놓고 한 송이 한 송이씩 아름답게 채색해 나가면서 ‘함께 누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되는 건 어떨까. 헐뜯을 거리만 찾지 말고 남의 약점과 어두운 과거를 들추는 대신, 오늘은 꽃송이에 미움보다 사랑의 마음을 채색하고, 내일은 교만보다 용서의 마음을 그려 넣으며, 글피엔 탐착보다 미덕의 마음을 그려 넣는 구구소한도를 그려보는 게 어떨까. 하면 마음 켯속에 아름다운 꽃들만 활짝 피어날 것이고, 함께 연 창문 밖에는 희망과 꿈이라는 꽃이 향기롭게 피어나질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