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올해 애창곡

[인송 박병두]

노래방 가면 누군가는 꼭 불렀다, '먼지가 되어(로이킴·정준영)'

[올해 애창곡 차트 살펴보니]

에일리 '보여줄게' 애창곡 2위
10년 전 曲, 임창정 '소주 한잔'… 복고바람 타고 노래방 '단골곡'

벼락스타 크레용팝 '빠빠빠' 분위기 띄우는 노래로 인기
박구윤 '뿐이고' 트로트 독무대

아무렇게나 노래방 선곡기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없다. 요즘 가요 트렌드와 개인 취향, 모임 성격까지 감안해 노래를 고르고 마이크를 잡는다. 노래방 애창곡 순위를 '사회성 짙은 음악 차트'라고 부르는 이유다.

국내 최대 노래방 기기업체 금영의 월간·연간 인기곡 집계를 통해 본 2013년 노래방 차트 순위를 보면, 대중은 노래방에서 과거 지향적이고 조금은 촌스럽고 풋풋한 뭔가를 갈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지' 쌓이고 '소주 한잔'에 취한 노래방

노래방의 과거 취향은 연간 순위에서 또렷하게 읽힌다. '작은 가슴을 모두 모두어 시를 써봐도…' 작년 오디션 프로 슈퍼스타K4 경연을 통해 오랜만에 리메이크된 '먼지가 되어'(로이킴·정준영)는 늦가을과 송년회 시즌을 관통해 올봄까지 '노래방 왕'으로 군림했고, 이 기세로 2013년 애창곡 차트 1위를 거머쥐었다.

올해 노래방을 달군 가수들. 왼쪽부터‘보여줄게’의 에일리,‘ 빠빠빠’의 크레용팝,‘ 소주 한잔’‘나란 놈이란’의 임창정. /조선일보 DB·뉴시스

2위 에일리의 '보여줄게'는 작년 10월에 나온 비교적 신곡이지만 '잇츠 레이닝 맨' '아이 윌 서바이브'는 '뽕끼'가 살짝 스민 80년대 댄스팝 색채가 물씬한 노래. 2000년대 초반 발표돼 10년 넘게 노래방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너를 위해'(임재범)와 '보고 싶다'(김범수)가 나란히 3·4위를 차지했다. 이어 작년에 발표됐지만 애절한 분위기로 3·4위 곡과 정서가 통하는 '가수가 된 이유'(신용재·5위) 순이었다.

이런 복고(復古) 바람은 가을 들어 기묘한 현상까지 만들어냈다. 임창정이 9월 내놓은 신곡 '나란 놈이란' 곡이 가을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며 애창순위에서 가파르게 치솟더니(11·12월 2위), 그가 10년 전 내놓은 '소주 한잔'이 별안간 월 순위 정상(10·11·12월 1위)에 오른 것.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한 임창정이 반가운 데다 그가 활약한 90년대 재조명 바람, 늦가을에 어울리는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복고풍 노래는 계절을 잘 탄다. 남녘에서 벚꽃 소식이 북상 중이던 4월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4위까지 오르며 음원과 노래방을 함께 장악하더니, 낙엽이 절정이던 지난달 SG워너비의 '센치멘탈'한 발라드 '살다가'가 월 순위 3위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크레용팝·임창정·허각 돋보여… 트로트는 박구윤

가수들의 활약상을 보면 올해 벼락 스타는 크레용팝. 올여름 벗는 대신 입고, 섹시한 몸동작 대신 개다리춤을 추는 이 '변종' 걸그룹의 '빠빠빠'가 음원순위와 SNS뿐 아니라 노래방까지 장악(8·9월 1위, 하반기 2위)했다. 단순간결한 박자와 노랫말, 폴짝폴짝 뛰기만 하면 되는 직렬5기통춤, 거기에 따끈한 신곡이라는 프리미엄까지…. 오랜만에 격을 깨고 어느 정도 망가지는 모습도 필요한 노래방 모임에 이만한 노래도 없었다.

슈퍼스타K를 통해 인생역전에 성공한 허각도 노래방 강자로 등극했다. 연초 발표한 정규 1집 앨범에서 '모노드라마'(1위)와 '1440'(4위) 등을 3월 노래방 차트 위에 올렸다. 편한 이미지와 널리 알려진 인생사 덕까지 봤겠지만 무엇보다 90년대 감성 발라드 문법에 충실한 노래들이 입에 붙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다.

신곡 중에는 '내 눈물아 슬픈 추억아~'로 이어지는 강한 후렴구가 있는 더 원의 '잘 있나요'(7월 1위·하반기 1위), 90년대 걸그룹 스타일을 되살린 에이핑크의 '노노노'(8월 3위·하반기 3위) 등 부르기 좋게 만든 노래가 강세를 보였다. 대형 기획사 아이돌이 노래방에선 외면받은 가운데 중독성 있는 후렴 구절을 갖춘 엑소의 '으르렁'이 겨우 체면(9월 2위)을 지켰다.

트로트에선 서른한 살 박구윤이 2010년 발표한 '뿐이고'(연간 15위) 독무대였다. 1년 내내 20위 안팎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선배들을 멀찍이 따돌리더니 송년 모임이 많아지는 12월 들어 11위까지 순위를 높였다.

반면 신곡 발표로 나라 전체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조용필과 싸이의 노래방 차트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조용필의 '바운스'와 싸이의 '젠틀맨' 노래방 최고 순위는 각각 6월 9위, 5월 6위에 그쳤고, 연간순위도 '바운스'가 76위, '젠틀맨'은 전작 '강남스타일'(26위)보다 훨씬 못 미치는 100위권 밖이었다. 세계 팝 시장을 겨냥한 첨단 리듬이 정작 노래방에선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 셈이다.

[到叡유민지]

ㅡ흐흐흐흐흐 푸하하하하, 묘한 함수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