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Ⅷ. 성경 해석 방법
정경으로 확립된 이후, 삶의 지침으로 자리잡게 된 성경은 교회와 대중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그래서 성경 해석과 이에 관한 각각의 방법론이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는 크게 ‘교부시대와 중세 – 근대 – 근대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근대 이후 성경 연구의 대표적 방법론인 ‘역사 비평적 방법론’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1. 교부 시대와 중세
초세기 학문 발전의 중심점이 되었던 곳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였다. 요즘 유학생들이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학위를 취득하듯이, 그 당시 연구를 위해 사람들이 모인 곳은 이 두 곳이었다.
그 도시들에서는 진리 접근의 길을 서로 다른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특별히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 부각되었던 방법을 ‘알레고리(allegorie)적 방법’이라고 하는데, 이 방법을 한국어로는 ‘우의(寓意)적 해석’이라고 번역한다. 분명한 준거 없이 은유적으로 설명하여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땅을 설명할 때 ‘땅은 어머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이 방법은 ‘은유’가 가지는 또 다른 차원의 모호성 때문에 안티오키아 학파의 지적을 받게 된다.
이러한 지적을 보완하면서 나온 또 다른 해석 방법이 ‘티포로기(typoligie: 예형론)’다. 예형론(豫型論)이란 어떤 일정한 타입을 예로 선정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고자 할 때, 청중이나 독자가 잘 아는 하나의 아이콘(신사임당, 한석봉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등)을 예로 들어 ‘우리 어머니는 신사임당 타입이었다.’라고 소개함으로써 대상들로 하여금 추상적일 수도 있는 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인상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 접근하게 하는 방법이다. 단순히 은유(우의적 방법)보다 ‘예’가 되는 기준이 있으므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구체성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이었다.
이처럼 우의적 방법을 통해, 때로는 예형론적 방법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해석했던 것이 교부들이 선택한 대표적인 해석 방법이었다.
중세로 들어서면서 서구는 그리스도교화된 세상을 이루었고, 당연히 성경은 사회의 핵심적 이슈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아직 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아 대부분의 문헌은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었고, 더구나 대부분의 대중이 문맹이던 시절이었기에, 성경에 대한 실제적이고 비평적인 접근이 불가능했다.
더욱이 이 시기는 인간의 ‘이성(ratio, 理性)’이 매우 부정적으로 이해되었던 시대였다. 인간의 이성은 믿음을 방해하고 저해하는 위험스런 요소일 뿐이며, 따라서 교회의 권위와 가르침에 인간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은 철저히 배격되어야 할 위험스런 일로 인식되었다. 무조건적인 신앙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미덕으로 강조되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 시기의 성경 해석은 교도권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본으로만 전해지는 성경을 일반 대중들은 직접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에 대한 해석은 사제들한테만 유보된 권한이었고, 이는 성경 해석이라는 중요한 작업이 어느 한 개인의 주관적 해석으로 전락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2. 근대
중세와 근대를 구분 짓는 결정적 사건은 14-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르네상스였다. ‘재생(renaissance)’이라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르네상스는 일종의 문화혁명이자 새로운 정신의 탄생을 의미했다.
특별히 르네상스의 확산에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동로마 제국의 멸망(1453년)과 인쇄술의 발명(1455년)이었는데, 쿠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당시 가장 중요한 책으로 인식되던 성경을 인쇄하여 보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대중이 직접 성경을 접하게 되자, 차츰 ‘비평적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자 하는 조짐이 나타나게 되었다. 교회의 권위에 의해 주어지는 교의와 성경 내용을 무조건적 신앙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인간의 이성을 인식과 식별의 절대적 매체로 사용하고자 하는 경향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확대되면서 점점 대중 안에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게 된 것은 하느님 말씀이 합리적인가 아닌가, 검증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물음이었고 이러한 물음은 기존의 무조건적 신앙과 충돌하는 현상을 야기시켰다.
더욱이 이러한 조짐은 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16세기)를 통해 가열되었다. 그는 교황을 중심으로 체계적 조직을 이룬 가톨릭교회와 단절하면서, 교황의 권위보다 하느님 말씀의 권위만을 강조했다. 제도 교회와 분리되면서 교도권에서 독립한 독자적인 성경 해석을 강하게 주장했던 것인데, 사실 이러한 흐름은 네델란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D. Erasmus)에 의해 시작된 바 있다. 에라스무스는 성경 해석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던 교도권의 권위를 벗어나 성경을 독립적으로 연구할 것을 권장했고, 당시 교회의 표준 성경이었던 라틴어 성경보다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선호하여 이를 출판하기도 하였다(1516).
이어진 과학혁명(17세기 후반)과 계몽주의(18세기)는 세상과 자연을 하느님의 창조물로 보기보다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이해하였고, 모든 사물과 사건의 식별 기준은 인간의 이성이 되어야 함을 알리는 것이 곧 ‘계몽(啓蒙)’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는 과학과 대립되는 ‘비과학적 존재’ 또는 인간을 ‘계몽’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 등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걸출한 학자들의 인식론을 통합시켰다고 평가받는 임마누엘 칸트가, 인간의 감각을 통해 ‘경험’될 수 있고, ‘이성적’으로 근거지울 수 있는 것만이 인식될 수 있음을 주장하게 된다. 결국 근대 계몽주의의 핵심에는 이성과 신앙의 첨예한 대립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이성의 잣대로만 해석하고 인간의 인식이 검증할 수 있는 부분만을 선별하고자 했던 당시의 노력은, 성경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배웠듯이 성경은 ‘하느님의 감도’로 쓰인 책이고, 하느님을 계시하고자 작성된 책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느님의 존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하느님의 존재를 인간의 언어로 완벽하게 검증해 낼 수도 없다. 인간의 지혜가 하느님의 계획을 알아챌 수 없기에, 21세기의 첨단 과학도 급작스런 재앙 앞에서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살아가면서 더욱 분명히 인식하게 되는 것이 있다면, 우리 삶에는 검증할 수 있는 부분보다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내가 왜 너를 좋아하는지, 내가 왜 너를 싫어하는지, 자신의 마음도 검증할 수 없으며, 내가 검증했다고 해서 그 실체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 내가 본 것만이 사실이 아니며, 내가 확인해 분명히 인식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진리나 진심이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인간중심주의는 ‘내 인식이 확인할 수 없다면 하느님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천명하게 하는 급진적 무신론을 낳았고, 이는 인간 이성의 인식 기능이 모든 존재와 사건의 중심 잣대가 된다고 자만하였던 시대적 과오였다고 할 수 있다.
3. 근대 이후
계몽주의적 사고는 프랑스 시민혁명(1789년)과 영국 산업혁명(19세기)을 일으켰고, 이렇게 기존 체제와 사회에 대한 전복이 일어나면서 19세기 말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패러다임을 갖게 된다.
성경 연구에도 새로운 접근이 일어나는데, 19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20세기를 풍미한 대표적 성경 연구 방법을 ‘역사 비평적 방법’이라고 한다.
(1) 통시적 방법론
‘역사 비평적 방법론’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방법은 ‘역사적’이고 ‘비평적’인 관점을 위주로 하여 진행된다. ‘역사적’이란 성경 본문의 역사(시대 배경, 저자, 제작 장소, 편집 과정)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고, ‘비평적’이란 인간의 이성을 사용하여 합리적이고 검증 가능한 내용을 밝혀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사적 성격’ 때문에 이 방법론을 ‘통시적(通時的) 방법론’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방법론으로는 본문비평, 문헌비평, 전승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등이 있다.
① 본문비평
성령의 감도를 받은 저자가 최초에 작성한 원문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파괴되거나 유실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성경 원문은 단 하나도 없다. 다만 원문에 대한 여러 사본만 전해지고 있고, 이 사본들을 근거로 가장 원문에 가까운 본문을 재구성했는데, 이렇게 재구성하여 편집된 본문이 현재의 성경이다. 본문비평이란 이렇게 여러 사본을 바탕으로 원문을 재구성하는 일체의 작업을 통칭한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이 나름대로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산물임을 감안하여 본문비평을 역사 비평적 방법론에 포함시킨다.
원문(Original Text) | 성령의 영감을 받은 저자가 가장 최초로 완성한 문서 |
사본(Manuscript) | 최초에 존재했을 원문과 복원된 본문들에 대한 필사본 |
본문(Text) | 유실된 원문을 본문비평을 통해 재구성한 문헌 |
② 문헌비평
문헌비평이란 성경 본문의 흐름 중에서 중복, 반복, 모순,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 최소한의 문학 단위를 밝혀내는 작업을 말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 1,1-2,4a과 2,4b 이하가 서로 다른 저자의 작품(제관계와 야훼계)임을 밝혀낸 것은 문헌비평의 결과였다. 하느님의 이름이 서로 다르게 제시되어 있다는 것과 서술적 문체가 다르다는 근거를 통해 이 두 문헌이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 문헌비평을 통해 오경 연구의 중심적 가설이 되고 있는 문헌가설이 등장하였다.
③ 전승비평
문헌비평을 통해 각기 다른 기원을 가진 문헌들이 합성되어 현재의 성경을 이루었다는 사실과 이 각각의 문헌이 어느 시대 작품인지가 밝혀졌다면, 전승비평은 그 개별적 문헌 안에 들어 있는 전승의 역사를 밝혀낸다.
예를 들어 문헌 가설에 의해 가장 후대의 작품이라고 판명된 문헌은 제관계 전승이다. 그러나 이렇게 후대의 작품이라고 판명된 문헌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가장 오래된 전승(구전층)이 작은 액자소설처럼 끼워져 있을 수 있다.
이렇게 한 문헌 안에 내장된 오래된 전승층을 가려내는 방법을 전승비평이라고 한다. 곧 전승비평은 본문 안에 용해되어 존재하는 전승층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후대 문헌 안에서도 고대 사회의 단면들을 재구성할 수 있는 요긴한 내용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풀어 설명하면, 성경 안에서 발견되는 꿈, 전쟁이야기, 설화, 신화 등은 이 문헌이 작성되기 훨씬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오래된 전승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해당 문헌 작성 이전의 사회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④ 양식비평
양식비평이란 같은 부류의 전승이 함께 모여 있을 때, 그 문학 양식에 집중하는 비평방법이다. 예를 들어 시편들만 대거 수집되어 있다면 이 전승을 함께 수집한 공동체에는 시(또는 노래)와 관련된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일정한 양식을 함께 모은 공동체적 자리를 ‘삶의 자리’라고 한다(시편의 경우 ‘전례’가 삶의 자리였음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오경 안에는 ‘신화’라는 양식과 ‘법조문’이라는 양식이 대거 등장한다. 특별히 법조문은 함께 모여 일종의 법전의 형태로 제시되기도 한다(계약법전, 신명기 법전, 성결 범전, 제관계 법전 등). 이렇게 특별한 양식이 함께 모인 것은 당시 이 법조문을 모은 공동체의 관심을 반영한다.
오경은 특히 ‘율법서’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부분을 법조문에 할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율법들은 그냥 아무런 형식 없이 무작위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법전들 안에 소속되어 등장한다.
Ⓐ 십계명(탈출 20,2-17; 신명 5,6-21)
오경에 제시된 바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 후 석 달 만에 시나이에 도착하고(탈출 19,1), 이집트를 떠난지 2년 되는 해 두 번째 달 20일에 시나이를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한 행진을 시작한다(민수 10,11).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시나이에 체류한 것은 일 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이지만, 이 기간에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기록(탈출 19장-민수 10장)은 탈출기에서 신명기까지 내용의 절반에 해당하는(전체 58장) 광범위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시간 동안 발생한 사건 중, 중요한 사건은 모세를 통한 하느님과의 ‘계약 체결’과 이를 준수하기 위해 제안된 ‘율법 제정’이었다. 이때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주신 핵심 법률은 ‘십계명’(탈출 20,2-17)이다. 성경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십계명은 ‘모압’에서 다시 한 번 주어지는데, 이 내용은 신명기 5장 6-21절에 수록되어 있다.
두 십계명의 차이
탈출 20,2-17 | 신명 5,6-21 |
-시나이 산에서 주어짐 -하느님에 의해 직접 체결된 계약 -제4계명: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쉬신 것을 기념하는 날 -제10계명: 탐내지 말아야 할 대상은 “이웃의 집”,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라고 되어 있음 | -모압평지에서 주어짐 -모세가 한 연설의 한 부분으로 제시됨(호렙 산에서 주신 하느님의 말씀을 상기하는 맥락에서 제시됨) -제4계명:안식일은 이집트 노예 생활을 회상하며, 해방자요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기억하는 날 -제10계명: 탐내지 말아야 할 대상은 “이웃의 아내”, “이웃의 집이나 밭,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재산은 무엇이든지 욕심내서는 안된다”라고 되어있음. |
물론 성경이 언급하는 대로 십계명이 광야 여정 중에 하느님으로부터 제시된 계명이라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우상 숭배에 대한 철저한 배격 사상은, 가나안에 들어가 왕정이 시작되고 예언자들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크게 부상했던 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집’, ‘전답’, ‘가축들’을 탐내지 못한다는 계명은 정착된 농경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유랑 생활을 하던 광야의 여정에는 실제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소재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특별히 신명기의 십계명이 탈출기보다 여성의 존엄성에 대한 진보적 의식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탈출기의 열 번째 계명은 여성을 재산의 하나로 간주하여 여러 재산 목록과 함께 제시하고 있지만, 신명기는 여성을 가장 먼저 자리에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장의 구조를 통해 신명기는 여성을 다른 재물 목록과 차별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 계약 법전(탈출 20,22-23,33)
‘언약법전’ 이라고도 불리며, 탈출기 20장 22절-23장 33절에 제시되어 있다. 십계명이 이스라엘과 하느님 사이에서 체결된 계약의 기본적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면, 계약법전에 수록된 법들은 이를 일상생활에 적용시키는 세부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계약 법전이라는 이름은 탈출기 24장 6-7절에 근거하고 있는데, 모세가 계약을 맺을 때 제단에 피를 뿌린 다음 ‘계약서’를 읽었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었다.
이 법전이 형성된 시기는 정확히 단언할 수 없으나, 적어도 모세 당대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전반적 내용이 가나안 정착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법전에는 왕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가나안 정착 이후부터 왕정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까지의 시기(기원전 12-11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계약 법전에 등장하는 율법 형태가 다양하다는 점은 이 법전에 포함된 율법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다른 유형의 율법들과 혼합되면서 정착된 것임을 암시한다.
Ⓒ 성결 법전(레위 17-26장)
레위기 17-26장에 제시되고 있는 법전은 ‘성화 법전’이라고도 불린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레위 11,45;19,2;20,26등). 그러므로 이 법전은 부정해진 것을 다시 하느님 앞에 정결하게 하기 위한 방법들을 기술하고 있으며, 거룩하신 야훼와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역시 하느님과 같은 속성, 즉 ‘거룩함’을 공유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법전은 원래 독립적으로 존재해 오다가 레위기 편집 안에 몸체로 삽입된 듯하다.
Ⓓ 신명기 법전(신명 12-26장)
신명기 12-26장에 제시되어 있는 법전으로, 대부분 ‘계약 법전’의 내용을 반복하거나 더욱 구체적으로 심화한 인상을 준다. 당시의 상황에서 보았을 때, 오래된 법들은 그것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없었고, 따라서 계약 법전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확장 심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신명기 법전은 ‘계약 법전의 확장-수정판’으로 이해될 수 있고, 보다 체계화된 신학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유일한 성소에 대한 법(신명 12장)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예배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요시야 개혁의 특성을 잘 반영한다. 자주 등장하는 내용은 예배에 대한 강조,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 야훼의 구원에 대한 주제 등이다.
Ⓔ 제관계 법전
이 법전은 모세오경 전체 안에 산발적 형태로 등장한다. 탈출기 25-31장;35-40장, 레위기 1-16장, 민수기1-10장;18-19장;28-30장에서 볼 수 있으며, 소위 ‘제관계 전승’이라고 불리는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위에서 제시된 다른 법전들과 특별한 관련은 없는 듯하지만, 굳이 유사한 법전을 들자면 ‘성결 법전’을 들 수 있다. 성소, 성전, 제사, 사제, 정결례, 축일 등 전례와 연관된 부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결 법전은 제관계 법전보다 일상적인 삶에 대한 법들을 대거 포함하고 있다.
이상의 법전 중 모세오경에 독립적인 단위로 삽입된 세 법전, 계약 법전, 신명기 법전, 성결 법전의 특성을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은 연관 관계를 드러낸다.
계약 법전 | 신명기 법전 | 성결 법전 | |
성경 구절 | 탈출20,22-23,33 | 신명12-26장 | 레위17-26장 |
제작 시기 | 왕정이전 | 왕정말기 | 유배이후 |
사회적 분위기 | 대가족의 족장들이 분쟁을 통제함 | 1) 예배와 사법권의 중앙 집중화로 힘의 중심이 이동됨 2) 가족 중심에서 예루살렘 중심으로 이동됨 | 1) 유배후,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 의식으로 선민 의식을 표방하게 됨 2) 행정과 사법 개혁이 절실히 요구됨 3) 민족의 정체성을 종교 제도들(율법과 성전)에서 찾으려고 함 |
강조점 | 계약을 준수하기 위한 일상 안에서의 세부 지침을 강조 | 성전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백성을 강조 |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 |
⑤ 편집비평
‘편집은 곧 해석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전승을 편집할 때 편집자 고유의 관심과 의식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의 편집 과정과 스타일을 살펴보는 것은 이 본문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살펴보는 접근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편집자가 전승을 어떻게 이어가는지, 어떤 관점이 배경이 되고 있는지, 이떤 부분을 삽입하거나 삭제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편집 비평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문장이 있는데, 바로 ‘-의 계보(족보)는 이러하다’ 라는 내용의 문장이다(2,4;5,1;6,9;10,1;11,10.27;25,12.19;36,1.9;37,2). 학자들은 이를 ‘계보 구절’이라는 전문용어로 부르고 있다.
이 계보 구절이 창세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이유는, 창세기의 편집자가 이 구절을 편집적 고리로 삼아, 산발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다양한 전승들을 연속되는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하였고, 이를 통해 창세기 전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집 작업을 시도한 사람들은 제관계(P) 학자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창세기는 ‘계보 구절’이라는 독특한 문구를 통해 이야기 부분과 족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계보 구절’은 설화와 족보를 함께 연결하기 위해 적용된 편집자의 편집 스타일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후대 학계는 창세기가 성조들의 족보와 이야기를 함께 연결시켜 완성된 작품임을 감지하게 되었다.
(2) 공시적(共時的) 방법론
‘역사 비평적 방법론’은 1970년대까지 성서학계를 주름잡은 절대적 이론으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1960년 후반 프랑스 학생 운동과 베트남 전쟁 등을 거치면서 세계정신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의 영향을 받게 되고, ‘구조주의’라는 접근법을 등장시킨다.
구조주의란 문장이나 말, 사건을 이해하고자 할 때 그것의 외적 요건이 아니라 내적 구조에서 그 의미를 찾아 내고자 하는 방법이다.
성서학계도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래서 등장하게 된 방법론들이 이른바 ‘공시적(synchronic) 방법론’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이 방법론은 기존의 역사 비평적 방법론이 지나치게 본문의 역사성(예를 들어 어느 부분이 더 원래적인 것이고 어느 부분이 후대에 첨가된 것인지, 어디까지가 실제 역사이고 어디서부터가 신화화된 이야기인지)에만 집중했음을 지적하면서 등장하였다. 이는 본문의 역사성보다 문학적이고 언어학적 측면을 중시하여 그 구조와 단면을 보자는 입장이다.
공시적 방법론에 해당되는 것으로는 구조주의적 방법론, 수사학적 방법론, 설화분석, 정경비평 등이 있다.
‘정경비평’이라는 특별한 방법론도 소개할 만한 가치를 가진다. 영국 브레바즈 차일즈가 집대성한 이 방법론은 역사 비평적 방법론이 본문 내용을 너무 분해하고 해체시킨다는 지적을 보완하면서 등장하였다.
정경비평은 역사 비평적 방법론이 성경 본문을 너무 분석적으로만 대하다 보니 하느님 말씀의 위상과 믿음, 이를 통한 삶의 복음화라는 부분이 간과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정경비평은 성경 본문을 ‘정경’의 위상을 가지는, 감히 쉽게 해체시키거나 분석할 수 없는 책이라는 점을 기정사실로 전제한다.
기존의 역사 비평적 방법론이 오리지널한 부분을 찾아내고 거기에 후대 삽입 편집된 부분을 가려내어 이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정경비평은 후대 첨가된 부분이라 할지라도 정경의 위상을 가짐을, 아니 첨가되었다면 그만큼 중요해서 정경 안에 첨가된 것이니 오리지널한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정경비평은 성경을 정경의 위상을 가진 책으로 보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 그동안 역사 비평적 방법론이 간과해 온 신학적 부분을 다시 부각시켜 성경의 위상을 회복시켜 놓으려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