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의 파도소리
고요한
명절이 되어도 고향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가족 모두가 고향을 떠나온 세월이 사십 년이 되어간다. 가까운 친족, 구우(舊友)하나 없다. 이방인처럼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열일곱에 대구에 내려 올 때는 초근목피로 배를 채우기도 하였으나 친족 어른들과 친우들의 마음은 나의 전도를 성원하는 아름다운 순수이었나 보다.
그동안 대구에서 만난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들의 친목을 위하여, 수 십 년을 총무를 하면서 인접고을, 벗들과도 합류하며 ‘희로애락’을 같이했다. 모두가 상부상조하면서 살아온 우정의 세월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변화가 생겨서인지 몇 년 동안 소식이 뜸한 친구도 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만감이 교차한다.
두 모임이 해산되고 나니, 유, 소년시절 친우들이 더욱더 보고 싶어진다. 서울과 충주에 살고 있는 친구와는 ‘카카오 톡’으로 우정을 나눈다. 한결같은 마음들이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소통이 지연되면 연속 타전이다. 마지막 여생을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게 건강하게 살자면서 모범적인 수칙을 공유하기도 한다.
남녀 간에 회자되는 이야기며, 동서양 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사색의 상념들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은 심정들이다. 예를 들면 계절이 바뀔 때나, 여행을 할 때, 몸이 불편하면 더욱 친구가 그리워진다. 다정했던 연인이나 옛 벗이 그리울 때, 우리들의 희로애락의 심금이 간절하게 울려 퍼지나 보다.
마음도 심란하여 6일 정동진으로 떠나기로 마음먹고 5일 차표를 예매했다. 아침밥은 대충 식은 밥에 나물로 배를 채우고 배 하나를 등짐가방에 넣고, 06: 16분 종점을 향해 출발 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출렁이는 파도, 싱그러운 바다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기분이다.
잔뜩 흐려져 있는 날씨다. 부슬비가 내리다가 강우량이 많아진다. 영월역을 지나니 비가 멎는다. 그동안 역을 지날 때 마다, 정차한 정거장의 역 이름을 촬영하며 무료함과 지루함을 풀었다.
어느덧 열차는 정동진역을 몇 정거장 남겨놓은 묵호역에 도착했다. 날씨 탓에 일출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 동해시도 돌아 볼 겸 하차하여 해장국 한 그릇을 먹고 조금 걷다가 택시를 타고 해변으로 가려다가, 시외 주차장을 먼저 찾았다. 행여나 안동 영주 제천 등의 차가 있으면 내려오려는 생각이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하니 요금이 5200원이다.
황급히 매표소에 가서 물어보니 남행은 울진뿐이다. 그것도 1시간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동해시의 밤은 한산하기만 하다. 다시 택시를 타고 역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3200원이다. 기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1800원을 주고 묵호역을 출발, 정거장 몇 곳을 지나, 정동진역에 내리니, 많은 사람들이 제천행 열차를 기다리기도 하고 해변이 술렁인다. 나는 3시간이 넘는 기다림을 이용하여, 시가와 해변을 산책했다.
역을 포함한 해변이 길게 동해를 향해 모래밭 개활지가 펼쳐진다. 나는 동해를 마시며 출렁이는 파도와 해변을 바라보았다. 비록 어둡고 흐린 밤이었지만, 정동진의 장엄한 동해의 파도에 넋을 잃었다. 아 아 장엄하다. 태평양을 향한 민족의 웅비가 장대하다. 오징어를 잡는 어선의 불빛을 바라본다. 새날의 건강과 평화를 빌었다. 울적한 마음을 파도에 실어 저 멀리 작별을 고했다.
다시 역에 도착한 나는 일박하려고 역 매표원에게 물으니 숙박이 불가하다는 말을 듣고 00:03분 열차표를 사서 제천역에 내리니 03시 40분이다. 동대구역 가는 열차시각이 06:48분 차표를 구입하고 역 대합실에 앉으니 의자위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신분을 알 수 없는 사람이 ‘4성 장군’계급을 단 모자를 쓰고 의자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 사람의 신분은 노숙자이든 내가 알바가 아니다. 군의 명예가 이렇게도 비참하게 추락 했단 말인가! 명예를 생명처럼 생각하는 장군의 계급장이 아닌가! 지구대 헌병이나 지구대경찰, 철도경찰이 역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라고 넘길 수 있겠는가 하는 비애를 느꼈다.
오직 국가를 위하여 충성한 이 나라의 최고위급 장군의 상징이 아닌가. 06시가 지나니 그 사나이는 작은 손수레에 비닐 통 몇 개를 싣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승차시간이 되어 동대구역으로 돌아오니 7일 오전 10:56분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답답한 세상이다. ‘동일거리 택시요금’의 차이, 군 장성의 명예를 전과자, 양아치들이 실추시키는 세상, 곧 국방이 필요 없고, 국가존재를 부정하는 처사다. 가정의 평화는 안주인의 정성에서 비롯된다.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모두가 웃지 못 할 희극을 보는 부정적인 ‘에피소드’가 아닌가! 정동진의 파도소리가 귓전에서 맴돈다.
2017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