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정 개인전
내숭 올림픽
나에게 있어 ‘끈’을 둘러싼 긴장은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의 시선과 내 자아 사이의 긴장으로 환원된다.
나는 나의 작업을 통해, 아마도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이는 그 원초적 지배력의 실체를 밝혀보고자 한다.
글 : 선승혜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이화여자대학 조형예술학부 겸임교수)
[2014. 6. 19 - 6. 30 가나인사아트센터1층 본전시장(T.02. 736. 1020, 인사동)]
메시지: 한국화의 POP “나를 들다”
작가 김현정은 소녀시대 (Girls’ Generation)와 같이 한국화의 아이돌이다. 당돌하게 나를 그려낸다. 예쁘기도 예쁜데, 당돌하면서도 ‘내숭’이라고 한다. 김현정으로 ”한국화 POP”을 퍼트리자. 김현정의 “한국화 POP”은 즐겁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입가에 흐른다. 귀여운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숭: 나를 들다> (2014)라고 영차 들어올리는 모습이 좋다. 작가는 ‘내숭’이라고 하지만, 타자가 보기에는 ‘자기 긍정의 에너지’이다.
내숭 소녀가 한복을 입고 있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21세기형으로 변신했다. 한복을 입은 아이콘은 그 누구의 독점적 이미지가 아니다. 어떻게 변형시켜 표현했는가에 각자의 ‘작가 권리’가 있다. 신윤복의 여인들이 나들이와 목욕을 즐겼다면, 내숭 소녀는 라면을 먹고, 운동을 한다. 화려한 식탁에서 만찬을 즐길 것 같은 그녀가 박스 위에 라면을 먹는다. 동네에 비치된운동기구에서 운동하면서 ‘내숭 올림픽’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주눅들지 않는 즐거운 아줌마들을 공감으로 끌어들인다. ‘내숭’으로 전통 인물화의 고상함을 살짝 비켜가면서, 자유를 획득했다. <내숭> 시리즈에 이어, <폼생폼사> 시리즈는 당구와 골프라는 남자의 운동에서 오묘히 여성스러운 매력을 드러낸다. 내숭에서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고 말하며 폼을 잡는약간의 허세 욕망을 드러내는 변화가 일어났다. 앞으로 소녀의 내숭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다.
매력: “살짝 살짝 반투명”
‘내숭 소녀’는 귀여우면서도, 요염하고, 당돌하다. 귀여움 속의 당돌한 매력에 눈길이 저절로 머문다. 왜일까? 그 대답은 세 가지 요소에 있다. 바로 ‘얼굴’, ‘몸’, ‘의상’이다.
얼굴이 예쁘다. 미인도 계통이다. 보는 것이 즐겁다. 현학적인 수사는 필요 없다. 보고 또 보고 싶은 것이다. 예쁜 얼굴에 대해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여자들은 경쟁적으로 반응한다. 작가 김현정이 원래 미인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관객들은 그림에서 작가를 직접 보듯이 미인도를 자화상으로서 인식하고 몰입한다. 미인이 미인을 그리는 극히 드문 자화상의 탄생이다. 스스로 그리는 ‘브로마이드’이다. 작가는 POP의 아이돌 스타와 같이 스스로 팬들을 열광시킨다.
몸에 눈이 간다. 살짝 살짝 한복을 통해 몸의 윤곽선이 보인다. 몸을 얇은 윤곽선으로 그린 후에 옷을 덧그린다. 마치 종이인형에 옷을 입히는 것 같은 즐거움의 과정이다. 몸의 옅은 담채는 여리여리한 복숭아빛 피부를 연상시킨다. 보일 듯 말 듯 몸의 윤곽선이 살짝 비추어 보인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관객의 관음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더욱 궁극적으로는 청춘의 생명빛이다.
한복이 명절, 결혼식, 환갑잔치와 같은 집안 행사에서만 입는 것이 아니라, 한껏 내숭을 떨고 싶은 그 순간에 나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그 멋이 된다. 특히 치마가 잠자리 날개와 같이 속이 들여다 보이도록 옅은 담묵으로 그려내는 기법은 수준급이다. 한복을 입은 다른 작가들과 선을 긋는 표현기법이다. 치마가 반투명으로 속이 비쳐 보이는 기법은 고려불화의 기법과 맥락이 같다. 유독히 고려의 양류관음은 그림 속에서 중국과 일본 불화와 달리 반투명으로 살갗이 비추어 보이는 가사를 입고 있다. 작가 김현정은 정확하게 고려불화가 하얀 윤곽선으로 가사를 그려서 투명함을 표현한 기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응용했다. 2014년 신작은 몸동작과 선에 자신감이 생겼다. 2013년도 작품은 인물의 선에 살짝살짝 망설임이 베어났다면, 2014년에는 더 경쾌하면서도 내면의 힘이 보인다. 작업의 인기만큼 많이 그린 노력이 보이고, 또 인기를 자양분으로 하는 지혜도 있다. ‘내숭 소녀’가 더 당당해 졌다. 약간의 머뭇거림이 사라지고, 나를 더 당당히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김현정 작가가 좋다.
전파: 스물일곱.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작가 김현정의 미술사적 공헌은 한국화를 SNS로 가져오면서 대중 속으로 전파시킨 것이다. <수고했어, 오늘도>(2014)처럼, 매일매일 영차영차 역기를 들어올리듯 SNS에서 정성껏 포스팅하고, 성의껏 댓글에 답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작가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즐거움으로 김현정 한국화의 열기가 후끈하다. <아차> (2013)에서 라면을 알루미늄 냄비에 끓여서 뚜껑에 덜어먹으며 루이비통 가방과 스타벅스컵을 바라보던 그녀의 그림은 SNS를 강타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사실 나도 그래’라는 유머 섞인 공감으로 수없이 작품의 이미지가 공유되었다. 이처럼 작가 김현정의 ‘내숭’은 SNS에서 일반인의 관심을 일거에 끌어들여, 그녀만의 한국화 팬그룹을 형성시키고 있다.
한국화라는 거창한 명제가 없이도, 작품에 매료된 사람들이 난생처음 그림을 사기도 하고, 강연에 가고, 전시에 간다. 2014년 3040세대들이 한국화 팬그룹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기쁘다. 나 역시 팬의 한 명이다. ‘내숭’이라는 제목처럼, 겉으로는 새침한 미인 한국화가인줄만 알았더니, 실제로는 성실하게 작업을 하고, 자신작업을 철저하게 아카이빙하며, 새로운 기획과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제 27살. 자화상과 같은 인물화를 그려낸 용기가 좋다. 내숭이라고 표현하는 당돌함이 마음에 든다. 여자들이 혼자 즐기는 일상이 그림의 주제가 되어 더욱 즐겁다.
글 : 김현정 작가노트
내숭올림픽, 치열했던 성장의 기록
성장한다는 것은 삶의 색채와 향기를 더 다채롭고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는 변화로 나타난다. 난생 처음 맞닥뜨리는 이벤트들은 나를 놀라고 당혹케 만들기도 하지만, 부족함이 있다고 느꼈던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서 색다른 삶의 감각을 터득하게 되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스물여섯에서 스물일곱으로 넘어가는 삶의 관문에서, 나는 버겁다고 느껴질 만큼 큰 도약을 경험했다.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하늘에 끌려 작업실 근처의 근린공원에 나선 적이 있다. 근린공원의 체력단련장은 활기가 넘친다. 다양한 복장, 다양한 얼굴 각각의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aura)는 청명한 공기, 새파란 하늘, 울긋불긋한 단풍과 더불어 나에게 다채로운 색의 향연처럼 다가왔다. 바로 그 찬란한 이미지가 ‘내숭올림픽’의 출발점이 되었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친근하고 게임 같은 운동들을 통해 열정, 집념, 환희, 감동, 분노, 좌절과 같은 빛나는 감정의 조각들이 표출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프리즘이 백색광에 혼재하는 각각의 색소들을 분산시켜 보여주는 것과 같다. 세계(World)를 상징하는 오륜기는 다양한 삶의 색채를 반영한다. 올림픽은 삶의 다채로움을 표상한다. ‘내숭올림픽’에서의 올림픽은 스포츠 축제라는 의미를 넘어서, 운동이라는 단면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색과 향기의 축제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자아 사이의 긴장관계에 관한 인식,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아의 탐색은 이번 ‘내숭올림픽’에서도 계속된다. 나는 여전히 세계와 나를 잇는 끈을 사이에 두고 ‘끈다리기’를 한다. 때론 느슨해지기도 하고 때론 팽팽해지기도 하는 그 긴장 속에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잡고 나의 온몸으로 세계를 마주하려 노력했다. 때로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수고했어, 오늘도”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삶의 길을 모색해 왔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갔다고 믿는다. 나를 압박하는 세상의 많은 것들에 “레드카드”를 내미는 자신감은 주체성의 발현이며, “승리는 나의 것!”이라고 외치는 “순정녀”는 한층 더 단단해진 자화상이다. 나의 작품들은 이를테면 지난 일 년 나를 채웠던 많은 감상을 담은 일기장이다. 삶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 그리고 그 중간에 불현 듯 찾아오는 환희와 즐거움과 같이 복잡다단하게 경험하였던 감상들을 좀 더 촘촘하고 다채롭게 포착하여, 내숭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고백한다.
작업을 하고, 작가노트를 쓰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불분명했던 것들을 분명하게 가름한다. 지난 1년 동안 치열하게 살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사고와 신념이라는 것이 견고해짐을 느꼈다. 여전히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나아짐을 느낀다. 내숭올림픽, 지난 일 년 간의 치열했던 성장의 기록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내숭을 통한 자아 탐색
글 : 백윤수 (前 고려대학교 조형학부 전임교수, 前 한국미협회 회장)
작가는 태블릿·만화·리모콘·핸드폰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공통된 화제를 지니며, 이를 통해 자신이 그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이해시키려 하고 또 이를 매개로 실제 그들과 대화를 함으로써 자신의 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작가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모습을 짐작하기 위해 우리가 참고로 할 수 있는 것들은 <Hidden Story>, <새벽 1시>, <떨림>, <공> 등에 등장하는 일상적이자 자질구레한 소품 등이다. 목마·봉제인형·골무인형·장난감 방망이 등 어렸을 때 사용하던 장남감· 선글라스·헤어드라이어·구두 등 일상적인용품·코끼리·하마·얼룩말·악어와 같은 동물 등 보통 사람들도 늘 좋아하고 사용하는 대상을 그림으로써 자신 속에 감추어진 생각과 욕망도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가 외부에 드러내는 것이 그저 단순하게 잠깐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동안 곰곰이 성찰한 결과라는 것을 우리는 <몰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몰입>에서는 자신이 무엇인가에 침잠하는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자율신경에 의해 움직이는 엄지발가락의 모습을 재미있게 포착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의식적인 경지에서 무의식적인 경지로까지 나아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세상일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것처럼 언제나 의도대로 잘 진행되지는 않는다. 생각지도 않은 실수가 중간 중간에 끼어들어 전혀 예기하지 못한 결과를 야기하거나 혹은 상대방의 오해를 사는 경우를 우리는 비일비재하게 겪고 이 때문에 또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인간다운 매력을 느끼고 동질감과 연대감을 지닐 수 있다. 따라서 관점을 바꾸어보면 이러한 실수가 오히려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며 또 실수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마음의 여유와 재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아차>에서 볼 수 있는데 많은 물건을 쇼핑하고 두 손에 쇼핑백을 가득 들어 경황이 없는 중에 신발이 벗겨진다면 참으로 당황하게 될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스위치가 소화에 맞춰져 있는데도 희미하게 불이 켜져 있는 경우인데, 다른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오직 그림에만 몰두할 때 흔히 일어나는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아차라는 제목으로 바꾼 임기응변을 통해 한 순간의 실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오히려 유머로 전환시키는 작가의 심적 여유를 느끼게 된다.
작가는 테마의 전개를 거의 모두 배경 없이 그리는 형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며 여백의 미와 동시에 주제를 강력하게 제시하는 효과를 지닌다. 그리고 대상의 얼굴이 오른 쪽을 향하기도 하고 왼쪽을 향하기도 하며 아래 혹은 위로 향하기도 하는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자신 있는 용필 능력을 과시한다. 또한 유려한 선의 사용과 아울러 수묵 및 담채의 능숙한 구사는 형호(荊浩)가 말하는 유필유묵의 경지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제의 묘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늘 경험하는 친근한 과정을 포착하는 작가의 관찰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감상자에게 진실함을 전달하는 매우 적절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주제를 과장 없이 재미있게 드러냄으로써 그저 아름답게 그린다는 수준을 넘어 무엇인가가 그림 속에 있다는 암시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그림을 보면 작가가 그림 그리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논어』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는데 작가가 그림을 즐기는 경지로까지 승화시킬 것을 기대한다.
폼생폼사 순정녀, 112 x 134cm
올림픽 캘리그라피_컬러
수고했어오늘도107 x 165
준비완료! 112 x 173cm
내숭 우연을 가장한 만남 각 129 x 153cm
나는 니가 필요해 131 x 194cm
나를 움직이는 당신 130 x 196cm
마라토너 200 x 121cm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87 x 111cm
주부9단의 봄날 191 x 130cm
투혼 111 x 129.5cm
|
첫댓글 작품이 풍자적이고 해학이 넘쳐 좋습니다 축하드립니다